혈하마제 1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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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28화
혈하-第 128 章 옥인 도전
적영실은 말을 이었다.
“제 이름은 적영실이며 금란곡의 마지막 지존이었던 유리성모의 제자입니다. 능력이 부족한 데에도 불구하고 금란곡의 대통을 이어가는 지존이기도 해요.”
“음……미처 몰라 뵈었습니다.”
“괜찮아요. 공자님은 남이 아닌 데요……”
그녀의 말은 묘했다.
그러나 사군보는 이 순간 적영실이 자신을 옥인에 도전시키려 하기 때문에 남이 아니라 말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말한 남이 아니란 뜻은 다른 것인데도 말이다.
사군보는 입을 열었다.
“오늘 온 자들 가운데 염왕오살은 엣 염왕부의 잔존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패왕보에 소속되었다고 들었는데……역시 패왕보는 대하교의 꼭두각시였군요.”
“강호는 아직 대하교의 존재를 몰라요. 안다 해도 극소수뿐이죠.”
“음……”
사군보는 침음했다.
대하교의 세력이 결코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복수도 좋지만 지금 상태로는 너무도 무모하다. 사대천왕 위에 삼제, 쌍존이 있다면……그들을 과연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막막했다.
상대에 대해 모른다는 것도 그렇지만 직접 겪어본 사대천왕의 실력은 당장 강호에 나와도 일파를 이룰 정도다.
적영실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나저나……공자님의 이름은 어찌 되나요?”
“아……인사가 늦었습니다. 사군보라 합니다.”
“사군보! 그럼 묵혈방의 후예라는 탈명혈하가 바로 공자입니까!”
적영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떨린 것도 바로 그때였다.
사군보는 의아했다.
‘왜 내 이름에 이토록 놀라지? 강호의 소문 탓일까?’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적영실은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백해의 후예! 그리고 군림성의 성주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묵혈방이 곧 백해의 후신임을.
더불어 붕괴된 묵혈방의 생존자들과 백해의 전통을 이어가는 자들이 모여 군림성이란 단체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를 어쩐단 말인가? 제마오세는 서로 물과 기름인데……조사들께서 유리금강을 만든 이유도 다른 오행지기를 이기기 위함인데……’
근란곡.
백해.
어찌 보면 잠적정인 적대 관계다.
운명이 얄궂었다.
다른 제마오세를 이기기 위해 익히려 하는 유리금강을 백해의 후예에게 그 운명을 맡겨야 하다니.
하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적영실은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어쩔 수 없다. 그가 꼭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헌데 바로 그 순간이다.
“아! 마침 드릴 게 있군요.”
사군보가 품 안에서 매미껍질보다 더 얇은 붉은 비단 천, 겹겹이 접고 또 접은 비단 천을 꺼내 적영실에게 주었다.
“이건……듣자하니 금낭이 감춰져 있는 장진도라 하더군요. 우연히 얻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곡주에게 줘야 할 것 같군요.”
“헉! 이건……사부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대하교 놈들에게 금낭를 뻬앗기기 싫어 감추고, 그 장소를 그려 놓으신 장진도! 이건 대하교 놈들에게 빼앗겼던 것인데……어떻게?”
“후……말하면 길군요……”
사군보는 긴 한숨만 내쉬고는 장진도를 탁자 위에 놓았다.
그는 차마 귀후 문미령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장진도에 얽힌 이야기를 하려면 귀후 문미령의 기구한 운명까지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무리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 해도 그건 그녀의 명예와 직결된 얘기다.
“어찌된 일이건 지금은 곡주에게 돌아와 있지 않습니까.”
“그……그렇군요……”
할 말이 없다.
적영실은 떨리는 손으로 장진도를 쥐어갔다.
사군보가 물었다.
“곡주, 이젠 내가 할 일을 말해 주시지요.”
“……!”
사군보가 해야 할 일, 그건 옥인에 도전하는 길이었다.
**
달빛이 천지에 광휘를 빛낼 때.
음양봉(陰陽峰)으로 날아드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모두 열한 명으로 그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남자일 뿐 나머지 열 사람은 여인이었다.
그것도 풋풋한 소녀에서부터 30대 후반의 부인까지 골고루다.
최선두엔 1남1녀가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달빛에 비춰진 그들의 모습은 사군보와 적영실이었다.
그렇다.
이들은 금란곡을 떠나 이곳 나부산까지 날아온 금란곡의 후예들이다.
사군보가 옥인으로 탈바꿈되는 순간 그의 몸 안의 빙정을 나눠 받기 위해 엄선된 여 고수들이다.
이윽고,
그들은 하나의 봉우리 정상에 몸을 내려섰다.
열한 명의 신형이 무사히 땅에 안착하자 적영실이 눈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기……눈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바로 음양봉으로 조사님의 유지가 깃든 금화동부(金華洞府)가 있는 곳이에요.”
“……”
사군보는 말없이 눈앞에 우뚝 선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츠으으으으……
휘우우웅……후류류륭……
봉우리를 감싸며 도는 흑색과 황색의 기류.
그 광경은 너무나 기이했다.
적영실이 음양봉을 보며 말했다.
“흑색과 황색의 두 기류는 나는 새조차 모랫가루로 만드는 무시무시한 압력을 지니고 있어요. 그건 음양봉이 지닌 차고 뜨거운 두 기운이 서로 부딪치면서 발생시키는 악마의 바람 때문이지요. 아무리 무공이 고강한 고수라 해도 그 바람에 휩싸이게 되면 뼈도 추릴 수 없게 돼요.”
“……”
“하나 이제 한 시진 후면 저 기류의 소용돌이가 멎게 돼요. 그 시간은 2각 뿐이죠. 그 순간을 놓치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해요!”
“……”
“곧 시각이 되어 두 기류가 멈추면 사 공자와……”
말꼬리를 흘린 적영실은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그녀의 뒤에는 아홉 명의 금란곡녀들이 서 있었다.
적영실은 그녀들을 바라보며 사군보에게 말했다.
“우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공자와 함께 동부로 들어가게 돼요.”
“……”
“그럼 누구와 함께 들어갈 생각인가요?”
적영실은 사군보에게 말을 건네며 은근히 자기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눈길을 주었다.
사군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적영실을 응시했다.
“곡주가 정해 주시오. 난……”
적영실이 환하게 웃었다.
“그럼 본 곡주와……”
그때였다.
적영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취취가 한 발 나서며 적영실에게 허리를 굽혔다.
“곡주님께 아뢰옵니다. 소녀 취취가 공자님과 함께 들어가길 희망합니다. 소녀 지닌바 재주는 미흡하오나 본곡의 천년숙원이 이뤄지도록 신명을 다할 것이오니 윤허해 주십시요.”
취취는 그러면서 힐끔 사군보를 바라보았다.
도움을 청하는 눈치였다.
사군보도 싫지는 않았다.
잘 모르는 여자와 들어가느니 이미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넘긴 취취와 함께 들어가는 게 더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이 순간 적영실의 얼굴엔 노기가 가득했다.
“취취,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너는 물론 공자님까지 위험해 진다는 것을 모르느냐? 공자님은 너의 안전까지 신경을 쓰시게 될 것이다.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어이해 욕심을 내어 폐를 끼치려 하느냐?”
그녀가 역정을 내자 취취는 울상을 지었다.
사군보가 나섰다.
“곡주, 아무래도 취 낭자와 함께 들어가는 게 편할 듯 하니 곡주는 그녀를 너무 나무라지 마시지요. 초면보다는 구면이 있는 사이가 더 편하네요.”
“공자……”
적영실은 가슴에서 불이 났다.
나이 30살이 넘어 자기보다도 한참 어린 사군보에게 자꾸 기대어지는 자신을 볼 때마다 약이 오르고 화가 나던 그녀였다.
그런데 그가 다른 계집을 두둔하다니.
힐끔 취취를 노려보는 적영실의 눈길은 질투의 불길이었다.
취취는 움찔했다.
그러면서도 왜 곡주가 자신에게 질투의 눈을 주는 지 알 수 없었다.
사군보와 자신을 하나가 되게 해준 사람은 곡주 자신이 아닌가?
그래놓고 이제 와서 질투라니.
‘공자님은 누가 봐도 멋지신 분이야. 나이를 떠나 곡주님 역시 여자이시니 이해를 해.’
오해가 빚어낸 또 하나의 오해.
이것은 훗날 울지도 웃지도 못할 사건을 만들어 내는데.
이때였다.
“앗! 곡주님……바람이 멎었어요!”
국향주의 외침에 적영실은 음양봉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러했다.
음양봉을 감싸 돌던 두 기류가 이 순간 씻은 듯 사라지고 없지 않은가.
“음, 시간이 됐구나.”
사군보가 나직이 입을 열며 아직도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취취에게 손을 내밀었다.
“취 낭자, 내 손을 꽉 잡아요.”
취취는 나는 듯 달려와 사군보의 손을 잡았다.
휘익-!
사군보는 취취의 손을 잡은 채 비조처럼 음양봉으로 날아갔다.
그 광경을 보며 적영실이 이를 갈았다.
“으으으……”
약 올라 죽겠다는 눈치였다.
***
흑색과 황색의 기류가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의해 회전이 멈추었다 싶자 사군보와 취취는 음양봉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들이 내려가는 곳은 두 기류가 상응하는 접점이었다.
“취취, 역혈심공으로 몸을 무겁게 해요. 이럴 땐 한 순간이라도 빨리 내려가야 합니다.”
그녀는 사군보의 손을 잡고 역혈심공을 운기 했다.
큐류류류류-
그들의 신형은 기류 속으로 내리 꽂히고 있었다.
얼마나 그 속도가 빠른지 전광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벽 아래로 쏘아져 내려갔다.
[천근추 신법을 펼쳐요!]
음양봉 절벽 아래가 보였다.
파릇파릇한 초지가 펼쳐져 있었고, 거무칙칙한 색을 띤 커다란 연못이 눈에 들어왔다.
차라리 저수지라 해도 좋을 정도로 방대한 규모다.
차차착!
천근추 신법으로 안전하게 땅에 내려온 취취와 사군보.
취취는 저수지 같은 연못을 보며 탄성을 발했다.
“공자, 저 연못이 무심담(無深潭)인가요?”
“음……그런가 봅니다. 저곳에 금화동부가 있다는 말을 곡주에게 들었는데.”
“금화동부는 조사님의 유지가 있는 곳예요. 내가……내가 그곳에 가게 되다니 이게 전부 공자님 덕분이에요.”
취취는 감격했다.
사군보는 무심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안으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취 낭자는 어서 귀식대법으로 호흡을 멈춰요.”
사군보의 말에 그녀도 이내 귀식대법을 펼쳤다.
“들어갑시다.”
이윽고,
휙-
일섬을 그으며 두 사람은 연못 무심담으로 몸을 던졌다.
풍덩……!
**
‘읏! 차다!’
그들은 물에 뛰어들자마자 전신을 얼리는 차가움과 심장까지 오그라드는 냉기를 접했다.
얼마나 한기가 심했는지 그들은 이빨을 갈아 부쳤고 턱이 덜덜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