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16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16화
혈하-第 116 章 귀후 문미령
공터 앞.
한 여인이 서 있었다.
그 앞으로 20여 명의 장한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그 가운데 우두머리로 보이는 노인 하나가 끼어 있었다.
노인이 여인을 보며 싸늘하게 코웃음을 꺼냈다.
“이년! 네년이 끝내 노부를 속이려는 것이냐? 딸이 부친을 믿지 못한단 말이냐?”
딸이라니?
그럼 노인은 조금 전 사내의 양기를 빨아먹은 요녀의 아버지란 말인가?
허나 그것이 아닌 듯 싶었다.
여인은 노인을 바라보며 지지 않고 마주 코웃음을 쳤다.
“흥! 아버지 좋아 하시네……어떤 아비가 딸을 강간하더냐? 호호호……내가 왜 이렇게 됐는데……내가 왜……호호호호……”
아버지가 딸을 강간하다니.
여인은 절규하듯 말했다.
“잔소리 집어 치우고 가서 송주행에게 전해라! 날 죽인다 해도 절대로 금낭을 차지할 수 없다고……”
“문미령! 끝내 천황을 배신할 셈이냐?”
“배신! 호호호호호……배신을 가르쳐 준 것이 누군데 내게 배신이란 말을 쓰느냐? 애초 널 내 아버지로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다.”
“흐흐흐……문미령, 네년이 고집을 부린다면 달리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노인은 음충하게 웃었다.
과연 그녀는 사군보 생각대로 귀후 문미령이었다.
그런데,
금낭(金囊)!
분명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신주오보 가운데 금란곡의 비밀이 담긴 금낭이었다.
그럼 금낭의 비밀을 그녀가 안다는 말인데.
천황(天皇)!
대하교의 교주인 그의 이름이 송주행임이 밝혀졌다.
노인은 노발대발했다.
“이년! 금낭이 숨겨진 장진도를 어서 내놔라!”
“호호호……내가 미쳤느냐? 그것을 주게. 죽어도 못준다.”
문미령의 얼굴에 싸늘한 냉기가 어렸다.
노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해졌다.
“찢어죽일 년! 기어코 내게 손을 쓰게 만드는 구나!”
“강신웅(姜神雄)!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봐라!”
문미령은 살기어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에게 스스로 아버지라 말한 강신웅이란 노인은 살기등등하게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또한 주위는 겹겹이 둘러싼 흑의인들에 의해 포위가 된 상태였다.
보아하니 문미령은 금낭이 숨겨져 있는 장진도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강신웅을 비롯한 천황 송주행이 그것을 원하지만 문미령이 이를 죽음으로써 지키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저년을 죽여라! 아니, 죽이지 말고 사로잡아라! 오음절맥이 무엇이라는 것인지를 가리켜줘야겠다. 그리고 사지를 차례로 잘라 죽일 테다!”
강신웅이 흑의인들에게 명을 내렸다.
휘익-! 휙!
명을 받은 20여 명의 흑의인들이 문미령에게 덮쳐 들었다.
“흥! 버러지 같은 놈들!”
문미령은 욕설과 함께 흑의인들에게 마주 덮치면서 체대를 풀어 휘둘렀다.
녹색의 체대는 마치 검처럼 날카롭고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다.
버언쩍!
휴류류륭……휴류류륭……
녹망이 휩쓸고 지나는 곳에는 여지없이 비명이 잇따랐다.
“으아악!”
“윽!”
흑의인들은 얼굴과 몸이 반쪽이 베어지면서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기세에 흑의인들은 잠깐 주춤했으나 그때뿐이었다.
오히려 더욱 거친 기세로 문미령을 단숨에 죽일 듯이 사방팔방에서 공격해 들었다.
휙! 휙!
츄츄츅-쌔애애액-!
녹영이 허공이 가득이 들어차 흑의인들의 접근을 막고는 있었지만, 차륜전법으로 나오는 흑의인들은 더 이상 쓰러뜨리지를 못했다.
아마 흑의인들이 그녀를 죽이지 말고 사로잡으라는 명 때문에 아니었다면 그녀는 벌써 피를 뿌리며 죽었을 것이리라.
휘익! 후이익-!
그들의 협공기세가 바뀌었다.
서너 명의 흑의인이 어느새 녹영을 뚫고 문미령의 조그만 몸을 무자비하게 베어 내렸다.
“앗!”
문미령은 얼굴을 창백하게 굳히며 비명을 내질렀다.
피하기에는 너무도 늦었다.
“으으……분하다! 그러나 절대 장진도를 내줄 수는 없다! 차라리 죽음으로 지키리라!”
그녀는 죽음을 생각했다.
살아 놈들에게 붙잡히고 그들에게 고통을 받다가 죽는 것보다 그게 훨씬 나은 일이다.
장진도의 행방을 가르쳐 준다 해도 살려둘 그들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막 심맥을 끊고 죽음을 머리에 그릴 때였다.
돌연,
“으악!”
처절한 비명이 들려지고 피 보라가 허공에 확 뿌려졌다.
응당 죽어 자빠져야 할 문미령은 그대로 있었다.
오히려 살초를 펼치던 네 명의 흑의인이 시체가 되어 아무렇게 나뒹굴고 있는 것이었다.
흑의인들과 문미령, 그리고 강신웅 등은 어찌된 영문인지를 모른 채 멍청해졌다.
잠시 후, 강신웅이 다시 명을 내렸다.
“죽여라! 어서 저년을 죽여라!”
넋을 잃었던 흑의인들이 퍼뜩 정신을 찾고 눈에서 시퍼런 살기를 뿜어냈다.
그들은 문미령에게 와락 덤벼들었다.
번쩍!
슈슈슈슈슈슈-스팟-!
검광이 쫙 퍼지면서 수백 개의 검화를 뿌려냈다.
문미령의 체대도 움직여 녹영이 맞부딪쳤다.
“악!”
“으아악!”
또 한 차례 비명이 일어났다.
흑의인들이 죽기를 약속이나 했던 것처럼 가슴과 목에서 피를 쏟아내며 죽어 자빠졌다.
피비린내가 주위에 꽉 들어찼다.
문미령은 강신웅에게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길게 꺼냈다.
“호호호……어떠냐? 나를 죽일 수 없을 것이라고 했지?”
강신웅은 흑의인들의 시체와 문미령을 번갈아 바라보다 치를 부르르 떨었다.
“어느 놈이냐! 어느 놈이 숨어서 살수를 펼쳐 노부의 수하를 시살했느냐?”
그렇다.
누군가가 문미령을 도와 흑의인들을 모조리 주살한 것이다.
허자, 숲 속에서 낭랑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리석은 늙은이! 죽기 싫으면 기회를 읽기 전에 어서 사라져라.”
쩌렁, 쩌렁.
그 음성엔 엄청난 내력이 담겨 있었다.
강신웅도 절정에 달하는 내가고수이지만 이 순간 소리에 실린 내력에 의해 기혈이 들끓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강신웅이 그런 말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도망갈 리 없었다.
“어느 놈이냐! 모습을 보여라! 노부가 네놈의 간을 씹어 먹을 테다!”
다시 음성이 들렸다.
“나를 꼭 보아야겠느냐?”
“물론이다! 노부는 네놈이 설령 하늘의 염라대왕이라고 하더라도 살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강신웅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휘리리릭……
허공으로 하나의 인영이 휙 스치고 지나갔다.
번개와도 같은 신법이었다.
“흥!”
강신웅이 코웃음과 함께 인영을 쫒으려는 순간, 그는 몸을 날릴 생각을 버린 채 멍해진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신비스런 일이다.
인영이 분명 숲 서쪽으로 날아갔는데 어느새 동쪽에서 솟구쳐 나와 북쪽으로 사라지고 다시 남쪽에서 나오고……
그러자 자연 강신웅의 고개만 이쪽저쪽으로 돌리며 그 자리에 멍청히 서 있기만 했다.
한순간,
“이익! 놈, 두고 보자!”
강신웅은 괴이한 신음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며 어디론가 줄행랑을 놓았다.
도저히 자기의 능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강적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가 마음이 변하기 전에 이 자리를 빠져나갈 요량으로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잠시 사위가 조용해졌다.
그런 어느 순간,
슥!
조금 전의 인영이 허공에 번쩍이더니 한곳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사군보였다.
문미령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나타나자 의아함이 가득한 얼굴로 사군보를 바라보다가 돌연 흠칫했다.
“앗! 그……그 얼굴은……!”
‘대체 내 얼굴이 어쨌다고?’
사군보는 그녀의 소스라치게 놀라는 말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왜 자기를 보고 놀라는 것일까?
문미령이 그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의 얼굴은 격동으로 떨고 있었다.
“군보……그렇지? 군보, 군보가 맞지?”
사군보는 곧 싸늘한 어조로 그녀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문미령! 멈춰라!”
부르르……
걸음을 멈춘 문미령이 사군보를 바라본 채 쓸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래……난 너를 다정히 부를 자격이 없구나……”
왠지 쓸쓸해 보였다.
사군보는 그녀의 그런 태도에 일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상대는 배신자!
그녀가 묵혈방 주요 기관을 망가뜨리지 않았다면 묵혈방이 그토록 힘없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군보는 싸늘한 살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손을 불쑥 내밀었다.
“내놔라!”
문미령은 사군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그러더니 갑자기,
훌렁!
치맛자락을 훌렁 들추더니 여인의 몸 가운데, 은밀한 구멍이 감춰진 고의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사군보의 앞에 던졌다.
팔랑!
그것은 매미껍질보다 더 얇은 비단쪼가리였다.
비단쪼가리는 너무도 얇고 가벼워 여인의 구멍을 감추는 고의 한 쪽에 접어져 감춰질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그 색깔도 고의와 같은 붉은 색.
사군보의 눈빛이 번쩍였다.
팔랑이며 떨어지는 붉은 비단쪼가리에 분명 복잡하게 그려진 지도를 그는 보았던 것이다.
‘장진도!’
그는 직감했다.
그 비단 쪼가리가 바로 금낭이 감춰져 있다는 장진도임을.
더 보고 자시고할 겨를도 없다.
슈욱……
그는 허공접물의 수법으로 비단쪼가리를 끌어당겨 손아귀에 쥐었다.
자세히 보니 역시 한 장의 지도였다.
사군보는 문미령이 이것을 순순히 내놓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괴이한 일도 다 있다.
문미령은 장진도를 빼앗기지 않겠다고 생사의 싸움을 벌였다.
심지어 스스로 목숨까지 끊으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사군보 앞에서는 순진한 양처럼 행동하다니 누가 보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미령의 처량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를 어쩔 것이냐?”
사군보는 그녀를 무섭게 쏘아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죽이겠다!”
문미령은 의외로 태연했다.
“장진도는 언젠가는 널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속에서 날 지켜준 것이었다. 널 만났으니 죽어도 더 여한은 없다. 죽여라!”
그녀는 눈까지 감았다.
사군보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변하고 있었다.
‘죽여야 된다!’
그와 정반대의 외침도 있었다.
‘죽일 수 없다! 그녀는 지난날을 참회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지난날의 음모를 알아내야 하지 않느냐?’
잠시 망설이고 있는 순간,
“윽!”
문미령이 짧은 신음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녀의 앙 다문 입술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