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09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09화
혈하-第 109 章 단서가 끊겼다.
후암현(厚岩縣).
중소 규모의 마을이다.
사군보는 후암현 구석구석의 모든 곳을 다 찾아다녔다.
보는 사람마다 만박노자라는 이름을 대면서 그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만박노자를 알고 있는 사람이나, 그를 보았다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지친 몸을 끌고 벌써 몇 번이나 들렸던 주루로 막 들어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그를 불렀다.
“저……”
사군보가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이제 겨우 열다섯 정도의 소년이었다.
“나를 불렀니?”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박노자라는 사람을 찾나요?”
사군보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래, 네가 그분이 있는 곳을 알고 있느냐?”
“……”
소년은 아무 말 없이 조그만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사군보는 빼앗듯이 종이쪽지를 받아서는 펼쳐보았다.
-노부도 자네를 한참 찾았다. 후암신묘(厚岩神廟)로 와라!
만박노자.
사군보는 울렁거리는 흥분을 느끼며 소년에게 물었다.
“후암신묘가 어디에 있니?”
소년은 손짓으로 마을 북쪽을 가리켰다.
“30리 정도 가면 되요.”
사군보는 소년의 말을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벌써 마을 북쪽 하늘로 솟구쳐 올라 잠깐 사이에 까마득히 사라졌다.
‘오늘에서야 기어코 내 원수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게 되었구나.’
그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
후암신묘는 산신령을 모시는 사당이다.
“만박노자 노선배.”
“……”
아무 소리도 없다.
사군보는 이상한 예감에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네? 이리 오라 해놓고 어딜 간 거지?”
그때 천정에서 웃음이 들렸다.
“흐흐흣……”
듣는 사람의 가슴을 얼려놓을 듯 싸늘한 웃음소리였다.
“노선배……적이 아니니 내려오시죠. 내가 사군보입니다.”
“흐흐흐……”
사군보는 처음에는 은연중 노기를 느꼈었으나 이내 생각을 달리했다.
무림기인들 중에는 성격이 괴팍한 사람이 더러 있으니까.
“노선배, 장난이 심하군요.”
“흐흐흐……만박노자를 보고 싶으냐?”
말이 끝나면서 천정 쪽에서 하나의 큼지막한 물체가 떨어져 내렸다.
쿵!
사군보는 물체가 묘 바닥에 둔하게 떨어진 것을 보고는 직감적으로 일이 그릇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흐흐흐……그놈이 만박노자니 실컷 만나 보거라.”
사군보는 흠칫 놀라 바닥에 떨어진 물체를 보았다.
놀랍게도 그것은 육순이 넘어 보이는 노인의 죽은 시체였다.
그러나 앞에 떨어져 있는 한 구의 시체를 보고는 그 사람이 틀림없는 만박노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죽다니……내 한걸음 늦었구나. 놈들이 그의 입을 막으려고 그를 죽인 게 분명하다.’
눈앞의 시체는 자칭 천리 밖을 보고, 천리 안의 일을 들으며, 모르는 게 없는 만박노자의 시체였다.
사군보의 몸은 노기로 인하여 부들부들 떨렸다.
“죽일 놈!”
휘익-!
그는 음성이 들려오는 천정으로 휙 솟구쳐 올랐다.
천정에서 다시 웃음이 들려왔다.
“흐흐흐……잘 왔다!”
꽈르르릉……!
천정에서 천 근 무게의 무서운 장력이 사군보의 몸에 떨어져 내렸다.
펑! 펑!
천둥소리가 묘 안에서 일어나 하늘로 오르듯이 굉음이 일어났다.
우지직! 우지직!
묘가 그 충격에 힘을 잃고 몇 곳이 무너졌다.
쿵!
한쪽 구석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묘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다 기어코 주저앉았다.
와르르릉……와르르릉……
우지끈! 쿠아앙-!
허공으로 두개의 인영이 솟구쳤다가 반대쪽으로 날아가 땅으로 내려섰다.
사군보가 땅에 내려서는 것과 동시에 상대를 향해 재차 덮쳐 가려다가 그만 그는 아연해졌다.
“흐흐흐……”
사방팔방에서 웃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상대의 그림자는커녕 도무지 어디에서 웃음소리가 전해져 오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마치 웃음소리는 산에 울리는 메아리처럼 웅웅~ 거리며 온 천지를 메아리쳐왔다.
사군보의 입에서 이 갈리는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천뢰전음(天賴傳音)!”
지금 들리는 이 웃음소리는 전날 패왕보주가 꽃마차를 따르는 사군보와 소제제를 향해 말할 때 사용했던 천뢰전음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패왕보주는 분명 여자였다.
그리고 지금의 목소리는 나이가 지극한 노인이 분명하다.
“흐흐흐……”
왼쪽인가 싶으면 어느 새 오른 쪽에서 웃음이 이어진다.
사군보는 귀를 쫑긋 세우며 주위를 살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어디에도 인기척은 감지되지 않았다.
“흥! 네놈이 만박노자를 죽인 것은 내가 원흉을 알아내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이렷다.”
“흐흐흐……알면 됐다.”
“흥! 만박노자를 죽였다고 원흉이 언제까지 숨어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 원수 스스로 내 앞에 나타나 목을 내놓을 것이다!”
“흐흐흐……그럴까?”
“난 꼬리가 용이고 머리는 지렁이인 놈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그중에 네놈도 끼어있지.”
“흐흐흐……격장지세로 노부를 화내게 해 모습을 드러내게 하려는 네놈 속셈을 모르는 노부는 아니다. 헛수고마라.”
“만박노자를 왜 죽였느냐고 묻지는 않겠다. 또 네놈의 정체가 뭐냐고 묻지도 않겠다. 다만 한 가지 꼭 알아둬라. 당신은 곧 날 만나게 될 것이다.”
“흐흐흐…… 기대해 보겠다. 네놈이 어떻게 노부를 찾아낼지.”
“그래, 한 가지 알려주마. 난 묵혈의 후예다!”
사군보는 가슴을 활짝 열며 당당히 말했다.
“……!”
상대방이 놀랐는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러나 사군보는 느낄 수 있었다.
주변 공기가 갑자기 팽팽하게 긴장되는 것을 미루어 상대가 극도로 놀랐다는 것을.
사군보는 전 공력을 끌어올려 천안통과 지청공을 발휘해 상대의 위치를 가늠하고 있었다.
‘아직……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기의 파장이 다른 곳에 비해 세 군데가 달랐다.
오른 쪽 숲 속의 거대한 나무 위.
뒤쪽에 장승마냥 거대하게 자리한 바위 뒤.
왼쪽 발목까지 밖에 차지 않는 잡초가 무성한 초지.
그곳 세 군데의 공기의 파장이 다른 곳에 비해 더욱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놈은 저 세 곳 가운데 한 곳에 있다.’
그는 모든 감각을 세 군데로 나누며 입을 열었다.
“난 이 길로 황산에 갈 것이다. 내가 왜 그곳에 가려는지 아느냐?”
“……!”
파라라랑……
바람이 부는 듯 주변 공기가 파랑을 일으켰다.
사군보는 나직하나 똑똑히 말했다.
“단자혈 고청흠, 요니 초난난, 그 두 년 놈이 그곳 황산 와우채에서 채주로 변장해 있기 때문이다.”
말이 끝날 무렵.
‘찾았다!’
사군보의 몸이 핑그르 돌았다.
아니 돌았다고 느낀 순간 이미 그의 몸은 뒤쪽에 장승처럼 서 있는 거대한 바위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놈! 잡았다!”
꽈르르릉……
쌍장이 확 뒤집어지면서 그의 장심으로부터 거창한 기둥 같은 강기가 일어났다.
그는 끝내 천뢰전음을 보내온 자를 찾은 모양이었다.
꽝!
사군보가 내지른 적령장에 거대한 바위가 가루가 되어 박살이 났다.
그러나 허탕이다.
“흐흐흐……! 노부는 여기 있다.”
바위는 사라졌으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대신 오른 쪽 숲 너머에서 웃음이 들려왔다.
“치잇-!”
사군보는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마음속에 지녔던 원수의 비밀을 원수 중 하나로 짐작되는 자에게 알려가면서까지 그를 잡으려고 했는데 보기 좋게 허탕만 친 것이다.
사군보는 급히 몸을 오른 쪽 숲으로 돌렸다.
그러나 그가 들은 것은 음산한 괴소 뿐이었다.
“흐흐흐……단자혈과 요니를 죽이던 살리던 노부와는 관계가 없다. 지켜보겠다. 어떤 방법으로 노부를 찾아낼지……흐흐흐……”
웃음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다.
떠난 것이다.
“치잇-!”
사군보는 발로 애꿎은 땅을 내찼다.
분통이 터지고 속에서 열딱지가 올라와 몸이 부를 떨렸다.
“놈! 기필코 네놈을 찾아내겠다.”
사군보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러나 곧 그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들끓는 열화를 가라앉혔다.
눈을 감고 조용히 지난 기억들을 되새겨보았다.
태음봉을 내려온 후 이제껏 원수 가운데 한 놈도 찾아내 죽이지도 못하고 엉뚱한 일에만 매달려 왔다.
철천지한을 안겨준 자들.
묵혈방이 한 순간에 붕괴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묵혈방 안에 원흉과 내통한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배신자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그 일곱 명의 배신자들은 한 결 같이 묵혈방의 요직에 있는 절정고수들로 묵혈방 중대사를 논하는 묵혈삼십육강 가운데 있었다.
수라묵검(修羅黙劍) 사후(査厚).
침묵의 수라검이라 불리는 검마.
그는 묵혈방의 원로인 묵혈팔겁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가 왜 묵혈방을 배신했는지 아는 자 아무도 없다.
단자혈 고청흠.
묵혈방의 천기당(千技堂).
당시 당주는 삭주천기(削主千技) 백나(白羅)다.
단자혈은 삭주천기 백나의 수제자로 천기당의 이인자였으나 계집에 눈이 멀어 묵혈방을 배신하였다.
요니 초난난.
삭주천기 백나가 나이 60살이 넘어서 얻은 부인.
그녀 나이 고작 20대 후반이었으니 그 뜨거운 몸을 어찌 늙은 삭주천기 백나가 달래줄 수 있으랴.
결국 요니 초난난과 단자혈 고청흠은 눈이 맞았고, 남몰래 통정을 해오다가 묵혈방을 배신한다.
백미호 자자련.
묵혈사전 가운데 하나인 환영전의 부부주.
마창(魔槍) 동영문(東英門).
묵혈방 외성을 지키는 수성호위무사들의 총영반.
묵혈방이 무너지는 날, 그는 묵혈방으로 통하는 팔달통문의 위사들을 모조리 죽이고 가짜를 내세워 묵혈방 안으로 원수들이 쳐들어 올 수 있게 했다.
귀후(鬼后).
항상 희뿌연 안개 같은 귀무로 몸을 감싸고 다니는 여자.
여자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묵혈방의 형당주의 직책을 맡고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녀였다.
그녀는 묵혈방 내부에서 혼란을 야기 시켰다.
야불(夜佛).
묵혈방의 뇌옥은 곧 지옥이었다.
묵혈의 율법은 무서워 이를 어긴 자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용서란 없다.
묵혈율법을 어긴 자나, 혹은 묵혈방에 반기를 든 자들, 한 결 같이 묵혈대제에게 살심을 가진 자들이 갇혀 있는 곳이 바로 묵혈방 뇌옥이고 야불은 그곳의 뇌옥장이었다.
묵혈방이 무너지는 날, 뇌옥이 열리고 굶주린 맹수들은 우리를 뛰쳐나왔다.
배신자들.
삼뇌마자 막여천은 사군보에게 이들의 목을 베어 묵혈방을 재건하는 날 제물로 쓰라고 유언했다.
또한 이들을 문책하면 묵혈방을 붕괴시켰던 자들의 정체를 밝힐 수 있다고 했다.
그 누구도 감히 생각치도 못했던 묵혈방의 붕괴.
내부에서 동조한 무리들이 있었기는 하나 단 하룻밤 사이에 묵혈방을 철저하게 붕괴시킬 수 있는 자들은 현 강호엔 전무하다.
그들을 찾기 전에는 절대 자중하라고 삼뇌마자 막여천은 신신당부했다.
더불어 신주오보를 모아 그 안에 어린 비밀을 풀어 유아독존의 무공을 익히기 전에는 절대 정체를 드러내지 말라 했다.
하나 이젠 더 기다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