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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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79화
혈하-第 79 章 종잡을 수 없는 행보
슈슈슈슈슈-!
검은 기운은 마치 살모사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린다.
검은 기운은 은은한 녹색을 띤 종리천의 기세를 여유 있게 빠져 나오며 그의 심장을 노렸다.
빙글!
그는 날렵하게 신형을 연거푸 여섯 번 회전하여 검은 기운을 띤 고계의 손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양 손을 현란하게 뿌리며 고계의 상체를 공격했다.
팡-
파파팟-
고계의 손과 종리천의 손이 허공에서 서로 부딪치고 밀치며 튕겨낸다.
삽시간에 5초가 오고갔다.
하나 공세의 주도권은 고계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다.
팽성귀마 고계가 절정의 고수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천외삼협 중 한 사람인 종리천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눈에 드러난 사실을 사람들의 예상을 크게 벗어났다.
점점 패색으로 물들어가는 종리천의 얼굴.
그때였다.
“고 당주, 멈춰라!”
꽃가마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그러자 일시에 살기가 사라지면서 고계가 목대로 내려섰다.
“속하, 고계는 교주님의 명을 받들었습니다.”
허리가 꺾어질 듯이 공손하게 예를 올리며 말을 꺼내는 고계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굴함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고 당주는 물러나게.”
꽃가마에서는 여전히 듣는 사람의 마음을 황홀하게 하는 옥성이었다.
“예.”
고계는 뒷걸음질로 꽃가마 옆으로 물러났다.
“허허허……”
종리천은 그 모양을 보고 고개를 젖히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천둥을 치듯 우렁찬 웃음은 동백산의 동백봉을 무너뜨릴 것 같은 것이었다.
자괴감이다.
허탈함이다.
그리고 천외삼협 쪽과 꽃가마 쪽은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소름이 오싹 끼칠 만큼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침묵이었다.
갑자기 꽃가마 안에서 요사한 웃음소리가 들려 나왔다.
“호호호……천외삼협, 본 개파대전을 망치려고 일부러 시비 걸러 오셨나요?”
그 웃음이란……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떨려옴은 물론 사악한 요괴가 사람을 홀리듯 간드러진 웃음이었다.
조금 전 천상옥음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어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성스럽다가도 갑자기 요사해 진단 말인가?
천외삼협의 검미가 꿈틀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오랜 세월을 강호에서 활동하던 노장들.
곧 정색을 하고는 종리천이 입을 열었다.
“허허허……정말 요사한 여인이로군, 그래. 보주의 생각에는 노부들이 정말 시비 걸러 왔다 보시오?”
그는 비록 겉으로는 웃음을 터뜨리며 자못 여유 있는 언행을 보이고는 있지만 그 역시 꽃가마 안의 여인에 감히 경거망동을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게 아니면 다른 뜻이 있는 건가요?”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질문이다.
선뜩 대답하지 못한 종리천은 군웅들 쪽으로 힐끗 바라보고는 대꾸했다.
“이곳에 저렇게 많은 무림 친구들이 모여도 누구 한사람 패왕보의 개파와 그 개파의 의의를 이이 제기하는 자가 없는데 어찌 이 보잘것없는 세 늙은이가 이의를 가질 수 있겠나?”
“고마운 일이네요.”
음성에 꿀이 뚝뚝 떨어진다.
“천외삼협의 은혜를 잊지 않겠어요. 오늘 본보가 세 분 친구에게 무례를 저지른 것이 있다면 용서하기 바래요. 그럼 다른 뜻이 없는 것으로 나는 알았으니……이젠 내려가 주시겠어요?”
그러나 그 꿀은 결코 달콤하지 않았다.
잘 벼려진 칼날처럼 차가웠다.
종리천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내려가지 말라 해도 내려갈 생각이네. 하나 그 전에 한 가지 꼭 할 일이 있네.”
“뭔가요?”
“귀하의 얼굴을 보고 싶군.”
뜻밖의 제안이라 놀란 듯 웃음소리가 짤랑거렸다.
“호호호호……만약 싫다면?”
“흠! 그땐 어쩔 수 없지.”
“호호호……무력이라도 쓰시겠다는 말로 들리는군요.”
“당연, 패왕보가 강호에 나온 의도가 불분명한 이 마당에 보주란 사람 역시 얼굴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속셈이 있어서가 아닐까?”
“다른 속셈이라니요?”
“야망!”
“호호호……”
꽃가마 속에서 호들갑스러운 웃음이 울려 퍼졌다.
야망(野望)!
그 말 한마디가 던지는 여파는 의외로 컸다.
이제껏 사태만 관망하고 있던 대다수의 군웅들도 이 순간 꽃가마를 향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만약 꽃가마 속의 패왕보주가 진면목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를 긴장이 어린 분위기로 장내는 돌변했다.
꽃가마의 주렴이 가볍게 움직였다.
“호호호……강호 위명이 과연 헛것은 아니었군요. 말 몇 마디로 군웅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나로 하여금 궁지에 몰리게 하다니……”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당장이라도 진면목을 보여줄 태세였다.
“호호호……그런데 어떻게 하죠.”
그녀의 음성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죄송해요. 나는 그 누구에게도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로 맹세했어요. 그리고……이미 강호동도들에게 본보의 개파를 알렸으니 이만 물러갈까 해요.”
“어! 그냥 가겠단 말이야?”
종리천은 어이없는 듯 헛바람을 내쉬었다.
이 한마디에 목대 위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살벌하게 변했다.
“호호호……그러고 보니 천외삼협께서는 엉큼한 데가 있군요.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죠?”
“허허……그것을 노부의 입으로 꼭 말해야만 하나?”
“호호호……나는 세 분의 의도를 모르겠어요.”
이때다.
계속 잠을 자는 척 하던 만해대학사가 불쑥 몸을 일으켰다.
“히히히……난 꽃가마가 좋아. 꽃가마를 타겠다.”
그리고 너무나 엉뚱하면서도 의외로 빠른 걸음으로 꽃가마로 다가간 것이다.
꽃가마 안에서 요사한 웃음이 퍼져 나왔다.
“호호호……장 노웅께서는 이 꽃가마를 타고 싶으신가 본데, 태워 드릴까요?”
“응! 태워줘!”
만해대학사가 어리광을 부리듯 헤헤 거리며 대꾸했다.
그러나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새 귀신같이 꽃가마에 접근한 순간,
“호호호……타고 싶으면 타세요.”
“정말?”
의외였다.
적어도 꽃가마 속의 보주라는 여인이 만해대학사가 다가오면 살수를 펼친다거나 다가오지 못하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순순히 타라니.
더욱 점입가경(漸入佳境)인 것은.
스르르……
마차 문을 가린 주렴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틈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패왕보주의 이런 행동에 만해대학사는 일시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이건 또 뭔가? 진짜 날 보고 타라는 눈친데……’
이미 내친걸음인지라 만해대학사는 더 볼 것도 없다는 양 성큼 꽃마차 안으로 올라탔다.
“선배님!”
“장노웅!”
놀란 천외삼협이 만해대학사를 불렀으나 이미 그의 몸은 꽃마차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천외삼협이 막 꽃마차를 향해 몸을 날리려는 찰라,
“가자!”
다시 짤막한 명이 떨어지고 꽃가마는 가볍게 나는 듯 목대 위로 사라졌다.
휘리릭--!
종리천이 소리쳤다.
“도망가지는 못할 것이다! 세상 끝까지라도 쫒아 갈 테다!”
그러나,
휘이익--!
꽃가마는 어느 새 하늘 높이 솟구쳐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 뒤로 패왕보주의 음성만 남았다.
“호호호……그럼 세상 끝이 어디인지 구경이나 해 보세요.”
은근히 따라올 용기가 있으면 따라오라는 말이었다.
“흥! 누가 겁날 줄 알고……”
“형제들, 갑시다!”
휘익-
그 음성이 끝남과 동시에 천외삼협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곧장 꽃가마를 뒤 쫒아갔다.
순간, 목대 주위 중인들은 그제야 벌집을 쑤셔놓은 듯 웅성거리고 야단들이었다.
“이건 뭐야?”
“대체 우릴 뭘로 보는 거야?”
“장 노영웅이 나타나고 천외삼협 때문에 개파대회가 엉망이 되었잖아.”
“그러기에 내 뭐랬어? 요란한 잔치치고 먹을 게 없다고 했잖아?”
“이봐! 우리도 따라 가보자!”
쑥덕쑥덕……
웅성웅성……
꽃가마가 사라진 쪽으로 날아가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발길을 돌리는 자들도 있었다.
그 소란 속에서 언제 사라졌는지 구대문파의 장문인들 역시 자리를 뜨고 없었다.
사군보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난 꽃가마를 뒤 쫒아 갈 생각인데, 소 낭자는 어찌 할 거요?”
“나도 가요.”
말이 끝났을 때 벌써 두 사람의 몸은 10여 장 밖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곧 하늘로 솟구쳐 올라 쏜살같이 꽃가마가 사라진 쪽으로 날아갔다.
**
쌔애애액-!
꽃가마는 정말 신비한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갔다.
가마를 네 귀퉁이에서 들고 있는 채의노인들의 무공이 보기보다 고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뒤, 20여 장의 거리를 두고 천외삼협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따라가는 것이 보였다.
다른 군웅들은 꽃가마와 천외삼협의 가공할 경공술을 따라잡지 못해 도중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하지만, 사군보와 소제제는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뒤를 따르고 있었다.
사군보는 마음대로라면 단숨에 꽃가마를 따라잡아 가마를 일장에 부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그러자니 자연 천외삼협의 뒤 20여 장을 두고 신법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소제제가 벌써 사군보의 속마음을 눈치 채고 옆으로 바싹 붙으면서 물었다.
“공자님, 패왕보주는 대체 어떤 여인일까요?”
“……”
사군보는 아무런 대꾸도 안했지만 속으로는 많은 생각을 굴렸다.
‘정말 모를 여자다. 나이가 100살이 넘는다는 이 여자의 말이 사실일까? 그렇다면……’
사군보는 그녀에게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연민의 정을 생각하며 얼굴을 붉혔다.
소제제가 생긋이 웃었다.
“공자님은 지금 내 생각을 하고 있나 보군요?”
사군보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아니긴 무엇이 아니란 말인가.
소제제도 그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공자님은 꽃가마 속의 보주의 정체보다는 지금 내 나이를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죠?”
“……”
“이제 머지않아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만약 내 나이가 100살이 넘었다면 어떡하죠?”
“……”
사군보는 대꾸를 못했다.
그런 것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괴이한 것은 마음 한 구석에서 엉뚱한 외침이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안 된다!
그녀가 내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
-아니다!
그녀의 나이가 100살을 넘었을 리 없다.
사군보는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소제제는 사군보가 어째서 그러는 것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 척 앞으로 달려가기만 했다.
사군보는 어색한 기분에 멍청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둥그스름하게 곡선을 그리며 내려오는 어깨.
가냘픈 허리와 알맞게 퍼진 둔부.
그 둔부는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둔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어디를 보아도 100살이 넘었다는 여인은 아니었다.
사군보는 소제제의 모습이 숲속으로 사라졌을 때 퍼뜩 제정신을 되찾고 앞으로 솟구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