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7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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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77화
혈하-第 77 章 살아있는 장문인들
인산인해(人山人海).
굉장하고 엄청난 사람들이었다.
동백산(桐栢山)이 생기고 아마 이처럼 많은 무림인들이 모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아니, 무림인들뿐만 아니라 호기심 많고 할일 없어 모이는 속인들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였다.
동백봉(桐栢峰).
동백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 중에 가장 높고 아름다운 봉우리.
그 중턱에 널찍한 공지까지 있어 오늘의 패왕보 개파대회에 안성맞춤이었다.
구대문파에서도 장문인들과 많은 제자들이 참석했다.
공지 가운데 큰 목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목대 상변(上邊)으로 호화스런 태사의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모두 1천여 명이나 될까?
그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저마다 오늘의 패왕보 개파대회에 대하여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소제제의 모습도 보였다.
그녀는 어디서 보나 두드러졌다.
그녀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사람이 사군보였다.
소제제가 옆의 사군보에게 나직이 말을 꺼냈다.
“공자님께선 패왕보가 어째서 오늘 개파를 하려는지 알고 있나요?”
“낭자는 무슨 짐작이 가는 것이라도 있어요?”
소제제도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나도 모르는 일이예요. 패왕보주가 누구인가도 궁금하고요.”
사군보는 눈길을 각대문파 장문인들에게 돌렸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상단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있는 구대문파의 장문인들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소림방장(少林房長) 낙일선승(落日禪僧).
무당장문인(武當掌門人) 무광(無光).
이들 두 사람을 제외한 일곱 명의 장문인들.
공동(共同) 은영진인(隱影眞人).
아미(峨嵋) 철지화상(凸旨和尙).
화산(華山) 동근도장(東根道長).
곤륜(崑崙) 진천자(震天子).
종남(終南) 화안진인(華安眞人)
청성(靑城) 혜윤도장(兮允道長).
점창(點蒼) 구주일관왕(九州一冠王) 나정각(羅政各).
그런데 이상한 일이 아닌가.
어떻게 죽은 자들이 버젓이 살아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사군보는 오대산 사당에서 죽어 있는 7명의 장문인들을 발견한 바가 있었다.
그 당시, 그는 사당에서 염왕과 부딪치지 않았던가?
그때 마침 염왕을 물리친 신비고수의 도움이 없었다면 사군보는 염왕의 손에 죽을 뻔까지 했었다.
그는 분명히 보았다.
이미 죽어 있는 7명의 장문인 배에 다시 검을 꽂던 염왕을.
그랬다면 이 자리에는 죽은 7명의 장문인 대신 그 뒤를 이은 장문인들이 있어야 당연하거늘, 모조리 살아 있다.
7명의 장문인 모두 살아 거드름을 피고 있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사군보는 소제제에게 넌지시 물었다.
“낭자, 각대문파 장문인들은 어떻게 생각해요?”
소제제의 눈이 약간 크게 떠졌다.
“무슨 말인가요?”
사군보의 검미가 움찔했다.
사군보는 그녀의 태연한 척 하면서 시치미를 떼고 있는 표정 속에서 무엇인가 숨기려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사군보는 그 나름대로 짐짓 상대의 속마음을 전혀 모르는 척 다시 말을 꺼냈다.
“각대문파 장문인으로 인하여 당금 무림에 실로 엄청난 음모가 꾸며지고 있다면 낭자는 그것을 믿어요?”
소제제는 사군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공자는 무슨 뜻에서 그런 말을 하죠?”
“사실은……”
사군보는 전날 사당에서 그가 보고 직접 격은 일을 이야기 하려다 스스로 흠칫 놀라며 입을 다물었다.
소제제의 눈빛이 예리하게 반짝이고 있음을 본 것이다.
‘역시 뭔가가 있다. 왜 장문인들의 일에 이토록 신경을 쓰는 것일까? 대체 소 낭자의 진정한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가 내심 의혹을 금치 못할 때였다.
소제제가 다그치듯 물었다.
“사실은 무엇인가요?”
“아, 아니오. 내가 또 괜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나 보네요.”
소제제는 더 묻지를 않았다.
사군보도 그녀의 눈치를 살피려하지 않고 담담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공분을 참느라 애를 썼다.
‘저들은 가짜다.’
염왕에게 두 번씩이나 죽음을 당한 저들이 어찌 저렇게 살아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여기서 밝힐 수 없었다.
그가 말한다 해도 믿어줄 사람 하나 없다.
증거도 없다.
‘저들을 조정하고 있는 인물이 누구지?’
사당에서 염왕이 한 말을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대하교주의 독문 수법.
‘또 대하교인가?’
심증은 간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을 때다.
소제제의 나직한 소리가 들렸다.
“나왔어요.”
“……!”
사군보가 대로 고개를 돌렸을 때 하나의 홍영이 대로 내려서고 있었다.
“아!”
소제제는 사군보가 그 홍영을 보고 나직이 놀람의 신음소리를 꺼내자 얼른 물었다.
“공자님도 저 사람을 알고 있나요?”
“전날 잠깐 마주친 적이 있어요.”
목대의 가운데에 살며시 내려선 홍의인은 바로 팽성귀마 고계였다.
권풍진을 핍박하고 있을 당시 팽성귀마 고계를 본 사군보다.
다만, 팽성귀마 고계만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시 탈명귀음을 발현한 그 목소리에 팽성귀마 고계가 줄행랑을 쳤기 때문이다.
이윽고.
팽성귀마 고계가 목대에 내려섰다.
여기저기에 쑥덕공론을 나누던 중인들이 순간적으로 경악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아! 팽성귀마 고계가 나타났다……”
“30년 전에 사라진 흉마가 나타났다!”
“고계가 패왕보주인가 보다!”
중인들의 술렁임은 오랫동안이나 계속되다 서서히 잦아 들었다.
이때 고계가 듣기에도 거북한 목소리로 중인들에게 소리쳤다.
“흐흐흐……노부가 30년 전의 한을 풀려고 다시 강호로 나왔다. 앞으로 누구이던 본보나, 노부의 행사를 막지 마라. 만약 이를 어길 시에는 노부는 그가 누구이던, 무슨 죄가 있건 무조건 그의 목숨을 거둘 것이다.”
대뜸 선전포고다.
강호인들을 모아놓고 살기를 드러냈다.
대체로 백도건, 흑도건 개파선언을 할 때는 최대한 자신을 낮춘다.
그게 아니라 해도 이처럼 오만불손하게 굴지 않는다.
그게 첫인사다.
그런데 첫인사가 살기다.
중인들은 어이가 없었다.
또 놀랍기도 했다.
“……”
“……”
중인들은 숨을 죽였다.
“지금이라도 누구든 노부의 말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서슴지 말고 나와 시험을 하여도 좋다!”
“……”
“……”
여전히 중인들에게는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은 서서히 분노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사군보의 몸이 꿈틀했다.
소제제가 어느새 그것을 눈치 챘는지 다급히 사군보의 손을 잡았다.
“낭자……”
“안돼요! 우리가 원하고 있는 것은 패왕보주에요.”
사실이었다.
괜히 일을 그르치게 하여 패왕보주가 누구인가를 알아내지 못한다면 오늘 두 사람이 이곳에 오는 실속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이 순간,
고계는 중인들에게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온 몸을 들썩이며 귀신의 웃음소리와 같은 웃음을 길게 터뜨렸다.
“히히힛…… 모두 노부의 말을 믿는가 보군. 그렇다면……”
그의 말이 미처 끝을 맺기도 전이었다.
“흥! 염라대왕이 여기에 오셨다!”
휘익-!
쩌렁 울려지는 외침과 함께 목대로 한 사람이 올라왔다.
30대 후반 정도의 나이에 둥근 얼굴을 하고 양쪽 옆구리에 한 자루의 판관필을 꽂고 있는 자였다.
사군보가 얼른 물었다.
“낭자, 저 사람은 누구요?”
소제제는 미간을 좁혔다.
“처음 보는 사람이에요. 객기만으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나 보군요.”
“그럼 낭자는 저 사람이 고계에게 죽는 것을 구경만 하자는 거요?”
“불쌍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객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저 사람이 바라고 있는 떳떳한 죽음일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 거예요. 죽어야 될 때 죽고 싶어 할 때 죽게 하는 것도 무림인이에요.”
사군보는 아무래도 그 중년인이 꺼림칙하여 눈살을 찌푸리며 목대로 고개를 돌렸다.
중년인은 판관필을 양 손에 빼들고 팽성귀마 고계를 잔뜩 노렸다.
“고계! 날 기억하느냐?”
“글세? 누구지?”
“30년 전, 네놈 손에 죽은 강영달, 그 분의 아들이다!”
“강영달? 미안하군, 내 손에 죽은 자들이 워낙 많아서.”
“뭣이라고!”
“그래서, 복수라도 하려고?”
고계는 안중에도 없다는 혀를 찼다.
한 마디로 중년인을 개보듯 하는 행동이었다.
그러니 중년인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죽어라!”
중년인은 눈에서 살기로 인한 핏발이 곤두서면서 고계에게 덮쳐들었다.
피리리링--!
시꺼먼 판관필에서 일어나는 필영(筆影)이 목대를 휩싸듯 일어났다.
중년인은 삽시간에 고계를 향해 쳐나갔다.
겉보기와는 크게 다르게 무공이 고강한 인물이었다.
이런 광경을 본 중인들은 모두가 결과에 대하여 궁금해 왔다.
그러나.
“으아악!”
필영 속에서 느닷없이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그리고 목대로 한 사람이 무디게 쓰러졌다.
“히히힛……”
듣기 거북스런 웃음소리가 들려지고 필영이 사라지면서 중년인의 몸이 싸늘한 시체로 변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중인들은 다시 술렁였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중년인이 어떻게 고계에게 죽음을 당했는지를 몰랐다.
고계가 무엇으로 어떻게 살생을 한 것일까?
사군보의 놀람은 더욱 컸다.
‘변했다. 일전에 만났을 때보다 더 고강해졌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믿기 힘들었다.
불과 여섯 달여 사이에 고계의 무공은 전에 비해 배는 더 고강해졌다.
간혹, 기연을 얻어 갑자기 내가고수가 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기는 하지만 사군보는 눈으로 본 현실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이 순간,
고계가 괴상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히히힛…… 가르침이 부족했는지 모르겠군. 다른 고인이 없으신지……”
이때였다.
중인들 속에서 누군가가 크게 소리쳤다.
“그대가 패왕보주요?”
“그건 아니다.”
“그럼 보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군요.”
“그래, 손님을 초대해 놓고 주인이 안 나오는 게 어디 있나?”
“보주 나와라!”
뒤따라 몇 마디가 더 들렸다.
고계는 거만스레 중인들을 둘러보았다.
“곧 보주님을 뵈올 수 있는 영광을 곧 갖게 되니 잠시만 기다려요.”
“빨리 나타나라고 해요!”
“우린 보주를 보자는 거지 피를 보자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군웅들은 다시 왁자지껄 시끄러워지며 주위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고계의 얼굴에 당혹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군보가 소제제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들이 무슨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지나 모르겠군요.”
소제제는 담담했다.
“그렇지 않을 거예요. 보주는 어쩌면 벌써 오래전에 이곳에 와 있을지 몰라요.”
“그럼 어째서 나타나지 않는 걸까요?”
바로 그 순간, 사군보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어디선가 듣기 좋은 은방울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