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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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59화
혈하-第 59 章 가짜 국제강의 정체
사내는 인품이 너그러워 보이는 첫인상을 지닌 초노인으로 아무리 봐도 악한 기색은 찾아볼 수도 없는 선한 인상이다.
하지만 그의 모습과 달리 행동은 전혀 딴판이었다.
물론 사람이 색욕에 빠져 있을 수도 있고 또 색에 깊이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색욕과는 전혀 다른 경우였다.
‘죽일 놈!’
더군다나 가짜이면서 진짜 노릇을 하고 있는 흉물이라고 생각하니 당장 쳐 죽이고 싶었다.
이 순간 사군보의 귀로 전음이 들려왔다.
[애송이 놈아, 넌 방 입구를 지키는 놈들을 맡아라.]
사군보는 전음을 듣자마자 몸을 움직였다.
대들보를 조심스럽게 건너오자 아래로 방문이 보였다.
서너 명의 흑삼인들은 방문 앞에 둘러 앉아 무엇인가 키득거리며 방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탁!
그들의 귓전에 가벼운 소리가 들리자 흑삼인들이 반사적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 순간,
휘리릭-!
한 인형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쿵! 쿵!
흑삼인들이 약속이나 되어있는 듯 나자빠졌다.
펑!
방문을 지키던 자들을 단숨에 기절시킨 사군보가 문을 부수고 뛰어들었다.
“헉……”
그는 그만 멍청해졌다.
없다.
가짜 국제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대신 침상 위에는 어느새 깨어났는지 가짜 국제강에게 유린을 당하던 여인은 구석에 잔뜩 웅크린 채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그녀는 사군보가 묻기도 전에 천정을 손짓으로 가리켰다.
“귀, 귀신……귀신……귀……”
꽤나 무서운 광경을 보았나보다.
과연 천정으로 큼지막한 구멍이 나 있었다.
“이, 늙은 여우가!”
사군보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치며 천정으로 솟구쳤다.
보지 않아도 충분히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정에 있던 노인은 사군보가 방문 앞의 무사들을 처리하는 사이 가짜 국제강을 납치해 달아난 것이다.
펑!
갑자기 지붕 여기저기에서 굉음이 들려오고 구멍이 난 곳으로 흑삼인들이 떨어져 내렸다.
“저쪽이다!”
“놈을 놓치지 말아라!”
그들은 사군보를 발견하고 그에게로 개미떼처럼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사군보는 이를 악 물었다.
‘그 늙은 여우가 나를 함정에 빠뜨렸구나!’
그렇다고 어금니만 악 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펑!
사군보도 지붕으로 장력을 뻗어내면서 뚫려진 구멍으로 다시 솟구쳐나갔다.
“쏘아라!”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외침이 들려왔다.
쏴쏴쏴쏴쏴……
사면팔방에서 암기가 안개처럼 자욱이 쏘아져 나왔다.
피할 수 있는 틈이 전혀 없었다.
이때, 사군보의 귀로 천정에서 들렸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히히히…… 애송이 녀석! 재미있게 싸우고 있거라. 노부는 구경이나 하다 싫증이 나면 떠나련다.]
사군보의 노기를 하늘로 치솟게 하는 말이었다.
“염치없는 늙은이!”
벽력같은 소리를 지르며 허공을 박차고 다시 1장 높이의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는 모든 내공을 개방했다.
그의 전신에서 검은 기류가 몽실 몽실 피어났다.
그 기운들은 급기야 검은 화살처럼 가늘게 변했다.
수십, 수 백 개의 기운들이 소나기처럼 대지를 향해 쏟아졌다.
슈슈슈-
“으악!”
“아아악!”
사군보에게 덮쳐오던 흑삼인들이 갑자기 두 손으로 눈을 가리며 비명과 함께 비틀거리다 쓰러졌다.
눈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선혈이 꾸역꾸역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느새 사군보의 전신에는 살기가 피어올라 있었다.
그가 움직이고 있는 곳에는 시신에서 풍겨지는 써늘함과 기분 나쁜 냄새, 바로 시신 썩는 냄새가 풍겨졌다.
냄새만으로도 흑삼인들의 눈앞이 어질어질해졌다.
묵혈사령신공을 극성까지 일으킨 것이다.
그들이 기겁을 하는 사이 사군보는 어둠을 헤치며 몸을 날렸다.
“쫒아라!”
사군보는 전음이 들려온 곳으로 솟구쳐 나갔다.
그 뒤를 흑삼인들은 쫓아갔다.
이윽고 사군보가 뇌정보 서쪽 담이 있는 곳에까지 이르렀을 때다.
휘익-!
한 인형이 담을 타고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흥! 놓치지 않는다!’
사군보가 담으로 솟구치는 바로 그 순간, 돌연 여인의 다급한 전음이 들려왔다.
[위험해요! 그곳에 독진(毒陣)이 펼쳐져 있어요!]
‘독진!’
휘익!
사군보는 순간적으로 몸을 빙글 돌려 담과는 반대쪽으로 10여 장 물러나며 내려섰다.
[석탑을 찾으세요!]
다시 여인의 전음이 들려왔다.
사군보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10여 장 밖에 석탑이 보이는데 그곳에서 20여 개의 인형이 사군보를 향해 솟구쳐왔다.
그런데 괴변이 생겼다.
“우악!”
“캑!”
사군보를 향해 달려들던 자들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쓰러지는 뇌정보 무사들 가운데로 새빨간 인형이 어른거리는 것 같더니 땅에 깃털이 떨어지듯 가볍게 내려섰다.
전신이 새빨간 괴인이었다.
머리에 붉은 복면을 써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손에도 붉은 장갑을 꼈다.
붉은 복면인은 복면에 뚫려 있는 두 개의 눈구멍 밖으로 날카로운 안광을 폭사해냈다.
“기백만 갖고 벽력신패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심하다는 어투다.
사군보는 울컥 솟아오르는 노기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당신은 누구냐? 어째서 내일에 간섭하느냐?”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어서 날 따라 와요.”
“흥!”
사군보는 코웃음만 치고 상대를 따라 움직이려고 하지를 않았다.
붉은 복면인이 화를 버럭 냈다.
“가짜 국제강을 쫓지 않을 거예요?”
사군보의 가슴이 싸늘해졌다.
붉은 복면인은 국제강이 가짜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어물거릴 시간 없다니까요.”
붉은 복면인은 짜증난 어투로 말하고는 먼저 몸을 날렸다.
사군보는 황급히 붉은 복면인의 뒤를 쫓아갔다.
휘이익-!
이상스런 일이다.
붉은 복면인이 가는 길에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를 않았다.
주변 곳곳에서 사군보를 찾는 외침 소리가 울리고 있건만 그들의 앞길만은 평온했다.
‘저 복면 여자는 이곳 지리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앞서 달리는 붉은 복면인의 신법은 거침이 없었다.
주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이곳 뇌정보가 바로 자신의 안방인 듯 행동했다.
어느새 붉은 복면인은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높은 담을 넘어가 뇌정보 밖으로 날아갔다.
그 뒤를 따라 몸을 날리며 사군보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뒤로 뇌정보의 모습이 멀어져갔다.
‘대체 누구지?’
사군보는 상대의 뒤를 따르면서도 모든 일이 의아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뇌정보를 벗어났다.
**
뇌정보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숲에 이르러 붉은 복면인이 걸음을 멈추었다.
사군보는 그의 뒤를 바싹 따라붙으며 물었다.
“어째서 나를 도와주는 겁니까?”
붉은 복면인은 사군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내 정체보다 먼저 당신은 무흔도수를 찾아야 하지 않나요?”
사군보는 얼굴이 찡그려졌다.
“무흔도수……그럼 가짜 국제강을 납치해간 자가 바로 무흔도수란 말이야?”
비로소 사군보는 가짜 국제강을 납치해간 노인의 정체를 안 것이다.
무흔도수(無痕盜手)!
신비롭기 짝이 없고 괴팍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도둑이다.
그의 별호에 있는 무흔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도둑질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는 점.
도대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청년인지 아니면 중년, 또는 노인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건 그의 진면목을 본 자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귀신같은 신법에 변장이 뛰어난 도둑이다.
그러나 그를 단순히 도둑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가 훔친 물건들은 대부분 위선자나 악당들의 물건이었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훔친 물건을 처분해 빈민들을 돕는다고 했다.
무흔도수……
도둑치고는 멋있는 자였다.
문득 붉은 복면인이 사군보를 향해 코웃음을 쳤다.
“참 어이가 없네요. 가짜 국제강을 죽이겠다고 뇌정보 안을 헤집어 놓았으면서 아직도 무흔도수를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요?”
“무흔도수를 모르다니?”
사군보는 일시 의아했다.
붉은 복면인이 어이없다는 투로 대꾸했다.
“가짜 국제강이 바로 무흔도수라고요.”
“허억! 가짜 국제강이 무흔도수라고? 그 음탕한 색마가?”
사군보는 대경실색했다.
천정에서 만난 노인이 무흔도수가 아니고, 여인을 유린하던 가짜 국제강이 무흔도수라니!
붉은 복면인은 못 볼 것을 본 사람마냥 허허 거렸다.
“대체 뭐에 그리 홀렸을까? 여래부인의 미모가 그리 뛰어났나? 홀려도 단단히 홀렸군요.”
정말이지 뭐가 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강호 소문대로면 무흔도수는 의적일 수 있는데 그가 파렴치한 색마라니.
그러나 그가 색마건 아니건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는 정체불명의 노인에게 납치되었다.
어디를 가야 그를 찾는단 말인가?
그의 심중을 아는 지 붉은 복면인이 말했다.
“멀리는 못 갔을 거예요. 그놈은 자기가 쳐놓은 그물에 스스로 걸려든 물고기 같은 신세가 되어있거든요.”
“자기가 만든 그물에 자기가 걸려?”
“차차 알게 돼요.”
붉은 복면인은 자기 일을 끝냈다는 듯 등을 돌리더니,
팡-
거칠게 공기를 진동시키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기다려요!”
사군보는 다급히 그를 불렀다.
하지만 붉은 복면인은 벌써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흥! 내가 못 쫒아갈 것 같아?”
사군보는 싸늘한 코웃음과 함께 붉은 복면인의 뒤를 쫓아갔다.
이윽고 두 사람의 신형은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휙-
50여장 정도를 갔을까?
붉은 복면인이 조그만 송림으로 쑥 들어가는 것을 발견한 사군보는 그녀를 따라잡기 위해 전신 공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다.
왼쪽 가까운 숲 속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으……”
당장이라도 숨이라도 넘어갈 듯 고통스럽고 무거운 신음이었다.
사군보는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어 몸을 빙글 돌려 신음 소리가 들려오는 숲으로 들어갔다.
숲 안엔 괴이한 정경이 펼쳐져 있었다.
모두 세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알몸뚱이의 여자였다.
알몸의 여인은 놀랍게도 주막의 뚱뚱하고 못생긴 주모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주모 옆에 쓰러져 있는 남자가 바로 가짜 국제강, 즉, 무흔도수라는 것이었다.
무흔도수 옆에는 한 명이 더 쓰러져 있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으로 사군보는 그 노인을 보자마자 그가 천정에서 자신을 속이고 가짜 국제강, 즉, 무흔도수를 가로챈 인물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싸늘한 시신으로 변해져 있었다.
죽은 노인의 온 몸이 숯덩이처럼 새까맣게 탄 모습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