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57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57화
혈하-第 57 章 그는 가짜예요
비록 네 번째 부인이긴 하나 그녀의 미모와 재능, 그리고 아랫사람들을 친 가족처럼 대하는 인품에 다른 부인들보다 더 많은 총애를 받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이상한 것이다.
분명 사군보를 숨겨주었을 때 보여준 국제강과 추상여의 태도는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서는 절대 나타날 수 없는 차가운 기운이었다.
이점에 대해 의아함을 금치 못하는 사군보다.
그러나 함부로 입 밖에 낼 수 없는 것이 남의 부부생활이 아니던가?
그는 혼자 의혹만 가질 뿐이었다.
사흘이 지났다.
사군보는 몸 안에 서린 냉독에서 풀려났다.
하지만 추상여가 오기 전에는 천지온유수에서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었다.
애타게 추상여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드르륵!
욕실 문이 열렸다.
하나의 작고 섬세한 그림자가 뿌연 수증기 속으로 들어왔다.
사군보는 냉독이 풀려지게 되었다는 기쁜 마음에 이것저것 안 가리고 얼른 말했다.
“부인, 이제 천지온유수에서 나갈 수 있나요?”
그런데 어쩐 일인가?
욕실로 들어온 여인은 몸을 돌린 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사군보는 그제야 몸을 돌리고 있는 여인이 전날 본 추상여와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누…… 누구요?”
그녀는 추상여보다는 체구가 좀 작은 여인이었다.
“국연옥(國淵鈺)이예요.”
나직이 대꾸하는 음성이 은방울을 굴리는 것 같았다.
사군보의 눈이 번쩍 빛을 냈다.
‘국연옥…… 그럼, 혹시 국제강의 딸!’
사군보는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낭자는 보주의 딸입니까?”
“그래요.”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온 겁니까? 부인께서는 안 오십니까?”
“가모를 대신해 제가 온 거예요.”
“아!”
국연옥이 부끄러움에 귀밑까지 빨갛게 된 얼굴을 천천히 돌렸다.
영락없는 추상여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아마 나이만 비슷했더라면 쌍둥이라고 할 것이었다.
국연옥의 가슴도 마구 쿵쿵거렸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인데도 어느새 마음이 몽땅 사군보에게 쏠려지고 무척 가까운 것처럼 친근감이 앞섰다.
야릇한 감정이었다.
사군보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낭자,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국연옥은 살그머니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외면을 하고는 대꾸했다.
“소협께서는 가모를 만난 것이 천운이었어요. 가모께선 의술에 대하여 조예가 깊으시고 특히 냉독이라면 고치지 못하시는 것이 없어요. 지난 10여 년 간은 일체 의술을 숨기시고 약을 만지지 않으셨는데……”
“아! 부인께 그런 재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국연옥은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소협께선 이곳에 벽력신패를 얻으러 오셨나요?”
“미안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럼 필요했다면 살인도 할 수 있었겠군요.”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지만 사군보는 거짓말을 하기 싫었다.
“물론입니다. 어쩌면 영존과도 한 바탕 싸우게 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날 구해주신 부인께는 죄송한 일이지요.”
“……”
국연옥은 입을 다시 다물었다.
“낭자, 미안합니다. 그러나 나는……”
사군보는 정말로 미안해서 말을 꺼내려고 했다.
국연옥이 고개를 살래살래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보주를 죽여주세요.”
“……!”
이번에는 사군보의 입이 얼어붙었다.
보주를 죽여주세요!
맙소사!
딸이 아버지를 죽이라니.
사군보가 아연실색해 있자 국연옥은 당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소협에게 보주를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어요. 들어주실 수 있나요?”
“낭…… 낭자……”
사군보는 괜히 음성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정녕 영존을 죽이란 말입니까?”
“죽여주세요.”
이게 어느 세상에 있는 괴이한 일이란 말인가.
딸이 부친을 죽여 달라고 하다니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낭자……”
“죽여주세요. 그는 제 부친이 아니에요.”
“예?”
사군보는 너무 놀라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하마터면 자신의 몸이 알몸뚱이라는 것도 잊고 욕조 안에서 몸을 일으킬 뻔했다.
“무슨 말입니까?”
국연옥은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보주는 제 부친인 척하고 있지만 가모께선 그가 제 진짜 부친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어요. 물론 저도 가모의 말을 믿고요.”
“아! 그런 일이……”
“가짜 국제강을 죽이고 제 가부를 찾아주세요. 그러면 소협에게 벽력신패를 주겠어요.”
사군보는 기어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벽력신패를……”
촤아악……
그가 일어서자 물이 솟구쳤다.
국연옥이 무슨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힐끗 돌렸다가 기급을 하고 놀랐다.
“어마!”
에그머니나!
사군보의 알몸을 그대로 본 것이다.
사군보도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다시 주저앉았다.
“낭자, 내게 벽력신패를 주겠다고 했습니까?”
국연옥은 등을 보이며 대꾸했다.
“그러겠어요. 가짜 국제강을 죽이고 제 부친을 찾아주신다면 그 대가로 소협이 얻으려고 하는 벽력신패를 주겠어요.”
절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에는 진실이 가득했다.
문득 사군보는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빙독장을 쓴 원수는 분명 말했다.
-벽력신패는 내가 갖고 가겠다.
곧 백이령도 찾아낼 것이다.
그 말을 기억하는 사군보다.
이미 원수 손에 벽력신패가 들어갔다고 믿었는데.
“낭자,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말씀하세요.”
“아직 뇌정보에 벽력신패가 있나요?”
“네. 잘 보관되고 있어요.”
“잃어버리거나, 강탈당하지 않았다고요?”
“그건 왜 물으시죠? 꼭 본보에서 벽력신패를 잃은 것처럼 말하시네요?”
“아!”
사군보는 원수가 한 말을 들려주었다.
국연옥이 그제야 이해된 듯 말했다.
“그자가 가지고 간 것은 가짜예요.”
“가짜!”
“네, 사실 가짜 아버지 노릇을 하는 자도 그것이 가짜라는 것을 알고는 아버지로 변장한 채 지금도 본보를 뒤지고 있는 거예요. 만약 그 가짜 아버지가 진짜 벽력신패를 찾았다면 그 가짜 아버지는 벌써 본보를 떠났을 겁니다.”
“그렇군요.”
사군보는 가슴이 크게 울렁거렸다.
아직 기회가 있는 것이다.
“낭자, 나를 나갈 수 있게 해주세요.”
이때였다.
문이 열려지면서 추상여가 들어왔다.
“소협은 옥아의 말을 믿나요?”
“믿지 않을 수 없군요. 지금 부인의 얼굴 표정을 보니.”
“그럼 약속할 수 있나요?”
“약속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승낙한 것이 벽력신패 때문이라고 생각지 마십시오. 물론 벽력신패도 중합니다. 하지만 생명을 구해주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길이라면 기꺼이 일을 행하지요.”
추상여는 살며시 웃고는 들고 들어온 옷가지를 내려놓았다.
“어서 입으세요.”
“잠시 돌아서 주시겠습니까?”
사군보의 부탁에 추상여와 국연옥은 등을 돌렸다.
욕조 밖으로 나온 사군보는 얼른 옷을 입었다.
잠시 후,
“다 입었습니다.”
그의 말에 추상여는 등을 다시 돌려 그를 보면서 품속에서 백색 병을 꺼내었다.
그 안에는 알약이 수십 개 들어 있었다.
“두 시진마다 두 알씩 복용하세요.”
“이건?”
“냉독이 빠졌다 하나 여독이 남았을 지도 몰라요. 열양단이니 냉독에 상한 몸을 추스르기 좋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지금 두 알 먼저 드세요.”
사군보는 우선 단약 두 알을 꺼내어 입속에 넣고 삼켰다.
열양단이 녹아 목 구멍 너머로 넘어갈 때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곧 뱃속까지 따뜻해졌다.
사군보는 추상여에게 물었다.
“가짜 국제강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추상여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도 그가 어디에 거처하고 있는지 몰라요.”
“보주는 거처가 없나요?”
“뇌혈청이 보주 집무실이지만 그는 거기에 없어요. 마치 누가 자신을 노리는 것처럼 매일 잠자리를 바꾸죠.”
“철두철미한 놈이군.”
“다만 며칠에 한 번씩 내 거처인 여래당으로 찾아와요.”
“그럼 그때가 언제입니까?”
“오늘이에요.”
국연옥이 나섰다.
“가모께선 그놈이 찾아올 때마다 그놈의 능글맞은 접근을 피하느라 괴로움을 당하고 계세요.”
“아직 놈에게 몸을 더럽히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놈에게 우리 모녀가 그의 정체를 눈치 챘었다는 것을 알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이 내 몸을……”
추상여가 눈물을 글썽였다.
“안돼요! 그럴 수 없어요! 차라리 자결을 하는 것이 나아요! 어머님께서 그렇게 되시면 내가 놈을 죽일 거예요.”
“옥아……”
“어머님……”
모녀는 옆에 사군보가 있다는 것도 잊고 서로 부둥켜안고 흐느껴 울었다.
사군보의 코끝이 찡해오며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확인하나마나 가짜 국제강은 벽력신패를 노리고 보주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짜 보주인 국제강을 어디선가 가둔 채 핍박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부인, 내가 가짜를 잡겠습니다.”
그리고는 밖으로 나가려는데 추상여의 음성이 들렸다.
“조심하세요. 가짜 국제강은 사공(邪功)을 익히고 있어요.”
“사공이라면 나도 자신이 있습니다.”
문을 나서려는 사군보 등으로 국연옥의 음성이 달라붙었다.
“소협, 조심하세요”
사군보는 말없이 욕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욕실은 크고 화려한 여인의 침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곳에서는 추상여의 체취가 물씬 풍겨지고 있었다.
‘여기가 부인의 처소구나.’
문득 두 모녀가 가련해 보였다.
그는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가짜 놈! 네놈의 정체를 밝히고 말겠다.’
사군보가 막 침실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려는 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가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니 욕실을 나온 국연옥이었다.
“낭자, 무슨 일이 있어요?”
“……”
국연옥은 아무 말도 없었다.
다만 사군보에게 다가와 그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이걸 잘 갖고 계세요.”
“이게 뭡니까?”
“언젠가는 이게 소협에게 도움을 줄 거에요.”
말을 마친 국연옥은 쫓기듯 욕실 안으로 사라졌다.
사군보는 욕실로 들어가 버린 국연옥의 그림자를 쫒다가 손을 펼쳤다.
청옥패(靑玉佩).
조그맣고 예쁘게 생긴 청옥으로 만든 노리개였다.
끝에는 오색 술이 달려 있는 것이 여인들이 흔히 신물처럼 품속 깊이 간직하고 다니는 것이었다.
‘왜 내게 이런 것을 주지?’
사군보는 잠시 의아해 하다가 노리개를 품속에 넣고는 방문을 열고 연기처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