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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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1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35화
혈하-第 35 章 대하교의 채화당
펑! 펑!
폭죽이 터진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나와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불꽃놀이를 즐겼다.
사군 역시 사람들 틈바구니에 선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올해도 사흘밖에 남지 않았군.”
가는 해를 보내는 축제로 마을은 흥청거렸다.
“쩝, 조용히 쉬려 했는데……”
원래 계획은 객잔을 찾아 방을 빌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축제로 인해 주루는 모두 꽉 찬 만원.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다 보니 대부분 객잔과 주루를 겸하고 있었다.
이러면 조용히 쉴 수 없다.
“노숙을 해야 하나?”
고민은 짧았다.
사군보는 사람들을 헤치며 마을 밖으로 나갔다.
항산에서 10년을 보낸 그인지라 노숙이 어떤 때에는 더 마음이 편한 그였다.
그러나 노숙도 쉽지 않았다.
“뭐지?”
한 겨울의 숲은 스산하다.
황량하고 어두운 밤.
쉴 만한 동굴이나 바위틈을 찾던 그의 두 눈이 일순 번쩍 하고 빛을 발했다.
미미한 기척.
분명 밤을 틈타 밤새처럼 허공을 가르는 인영들이었다.
그것도 사군보가 가는 방향 건너에서 느껴졌다.
이대로 가면 그들과 마주치게 된다.
사군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커다란 나무 위로 몸을 날렸다.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기감으로 보아 강호 무림인이 분명했다.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누구건 그들과 조우할 이유는 없었다.
잠시 후.
4명의 그림자가 그가 있었던 곳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사군보는 직감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괴이하다. 서두르고 있다. 게다가 저건?’
앞선 자는 맨 몸이다.
그러나 뒤에 따르는 세 개의 인영은 각기 어깨에 조그만 자루를 메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루는 사람크기 만했다.
그 자루가 자꾸 신경을 거스르게 하였다.
‘어? 움직인다!’
꾸물꾸물.
자루 안에 있는 무언가가 연신 꿈틀거렸다.
‘인신매매!’
한 해가 저무는 12월 깊은 밤.
인적이 드문 산길.
자루 속의 사람.
딱 인신매매 각이 나왔다.
‘음……’
그는 잠시 갈등했다.
지금 당장 나서면 자루 속 사람은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저들을 따라가기로 마음 먹었다.
자루에 사람을 담아 옮긴다는 것은 어딘가에 본거지가 있다는 말이다.
그 본거지로 가면 어쩌면 다른 사람도 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일.
‘쫓아간다!’
그는 어두운 곳만 골라 앞서 가는 그들을 조심스럽게 추적했다.
***
공동묘지다.
그곳에 도착한 그들은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들은 공동묘지 뒤쪽에 자리한 큰 사당으로 다가갔다.
사당은 컸다.
사당 앞에는 제단과 좌우 석상은 보기 드문 화강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
네 사람의 얼굴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앞 선 자가 주저 없이 석상의 앞에 섰다.
쥐 얼굴에 몸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체 없이 쥐 석상의 두 눈을 짚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지극히 음산하고 나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변천(變天)!”
앞선 자가 대꾸했다.
“대하(大河)!”
또다시 쥐 석상에서 음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속, 관등성명.”
“추월당(追月堂), 천추(天鎚), 창윤(昌尹), 진용(進用), 영림(永林)입니다.”
“……”
소속과 관등성명을 확인하는지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네 사람은 이런 절차가 익숙한지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끼익.
무언가가 열리는 기관 소리가 들렸다.
사당 안에서 중년인이 나온 것도 그때다.
머리에 칠성관을 쓰고, 걸친 것은 태극 도포다.
언뜻 보면 도사 차림인 중년인을 본 네 사람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제자들이 상문관(喪門官)을 뵙습니다.”
상문관이란 일반적으로 장례식을 주관하는 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예를 거두라.”
“감사합니다.”
네 사람 앞으로 다가온 상문관은 그들이 메고 온 자루를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임무를 완수했군.”
“네. 연말인지라 사실 걱정 했는데 다행히 차질 없이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연말 분위기에 들 떠 집 밖으로 나온 것들이 제법 많더라고요.”
네 사람은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상문관은 주위를 살폈다.
“뒤에 꼬리를 달고 오지는 않았겠지?”
“예.”
“속히 들어오라.”
“옛!”
네 사람은 상문관을 따라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그긍…….
기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사당 주위는 곧 적막에 잠겼다.
***
그 광경을 똑똑히 본 사군보는 몸을 죽인 채 생각에 잠겼다.
‘번천대하! 이건 암호다. 게다가 대하……. 왠지 칠대장문인 사건과 연관 있을 것 같은데.’
철지화상은 분명 말했다.
-대하!
염왕 역시 대하교주의 수법이라 했다.
심지어 팽성귀마는 권풍진을 ‘교’라는 집단에 영입하고자 딸까지 이용했다.
‘대하교라……’
사군보는 직접 안으로 잠입하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어떻게 잠입하지?’
저들의 대화를 보아 치밀한 기관과 함정이 설치되어 있을 것은 뻔하다.
자칫 잘못했다간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게 될지도 모른다.
잠시 골똘히 생각에 빠졌던 그는 곧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그 방법이 괜찮겠다!’
그는 조심스럽게 공동묘지를 벗어났다.
***
잠시 후.
그의 모습이 나타난 곳은 최초로 네 명의 괴한을 등을 발견했던 곳이다.
그는 몸을 커다란 바위에 숨고는 청각을 곤두세우며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혹 또 다른 괴한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그 어떤 인기척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아닐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더 기다려 보다가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면 위험하더라도 직접 잠입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가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였다.
휙!
경미한 파공성이 울리며 그가 숨어 있는 바위 정면으로 희끗희끗한 그림자들이 어리기 시작했다.
모두 네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은 자루를 메고 있지 않았다.
그의 용모는 의외로 준수했다.
40대를 바라보는 중년에 수려한 이목구비는 한창 시절 아낙네깨나 울렸을 정도로 준미했다.
특히 그의 두 눈과 얇은 입술은 붉고 깊게 드리워진 색기를 느끼게 했다.
중년인은 다른 세 명의 상전인 것 같았다.
그는 걸음을 재촉하며 세 명의 수하에게 빨리 서두르라고 다그치고 있었다.
사군보는 조심스럽게 그들 주위를 살폈다.
‘혹시 그들 뒤에 또 다른 무리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는 천이통(天耳通)을 발휘해 기척을 살폈다.
‘다행히 10장 이내에 이들 외에 다른 무리는 없다.’
그는 즉시 열 손가락에 진기를 돋우었다.
어느새 열 손가락에는 솔잎 가지가 들려 있었다.
이윽고 네 명의 괴한이 그가 숨어 있는 바위 가까이 다가왔다.
어림잡아도 3장여의 거리였다.
핏! 피잇!
사군보의 열 손가락이 튕겨졌다.
손가락 끝의 솔잎 가지가 빠른 속도로 네 명의 괴한을 향해 쏘아져 갔다.
중년인이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웬 놈이냐?”
그는 바람을 가르는 작은 파공성을 느낀 것이다.
이로 짐작해 그의 무공은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님을 대변해 주었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공허하게 허공에 메아리쳤다.
“윽!”
“헉!”
짧은 신음성과 함께 네 명의 괴한은 마치 석상인 듯 제자리에 우뚝 멈추어졌다.
그들은 사군보가 날린 솔잎 가지에 의해 마혈과 아혈이 제압된 것이다.
사군보는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경악 서린 두 눈 가득 사군보의 모습이 파고들었다.
“기다렸다.”
사군보는 이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년인에게 지풍을 날렸다.
팟!
중년인의 아혈과 마혈이 동시에 풀렸다.
순간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중년인의 두 눈이 흐릿해지면서 얼굴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청하게 변했다.
사군보는 지금 그를 상대로 섭혼술을 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누구냐?”
“저는 옥면호리(玉面狐狸) 금방왕(金方王)입니다.”
중년인은 홀린 듯 힘없이 말했다.
그의 정체를 안 사군보는 가볍게 놀랐다.
‘옥면호리라면 나이 어린 소녀들만 겁탈했던 희세의 색마다.’
사군보는 옥면호리 금방왕의 색행을 떠올리며 싸늘한 한망을 폭사시켰다.
그는 당장 살수를 펼치지는 않았다.
그에게서 정체불명의 무리의 정보를 묻기 위함이었다.
“옥면호리, 네놈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이름은 무엇이냐?”
“대하교!”
“역시 그랬군! 총단은 어디냐?”
“모릅니다.”
“모르다니? 넌 대하교 사람이 아니냐?”
“정말 모릅니다.”
“좋다. 대하교에 소속된 조직이며, 그 규모에 대해 말해봐라!”
“모릅니다. 대하교에 소속된 조직들은 직계 상하 조직 외에는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번천 대하의 암호로만 통합니다.”
“그럼 네가 소속된 곳은 어디며, 그곳에서 직책은 무엇이냐?”
“제가 소속된 곳은 채화당(採花堂)이며, 부당주를 맡고 있습니다.”
“채화당주는 누구냐?”
“독모(毒母)입니다.”
“독모?”
사군보는 아미를 모았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독모는 누구냐?”
“모릅니다.”
“몰라? 그녀를 본 적이 없단 말이냐?”
“보기는 자주 봤지만, 독모의 진정한 정체는 모릅니다. 그저 독공이 워낙 강해 채화당을 맡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사군보는 섭혼술에 걸린 이상 금방왕이 거짓말을 할 수 없음을 안다.
부당주라고 하면서도 대하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에 대하교가 조직을 통제하는 방식에 있어 철두철미함을 새삼 깨달았다.
“좋다. 독모 외에 누가 또 채화당에 있느냐?”
“좌우호법인 천지쌍독(天地雙毒), 총관인 상문관, 그리고 태상호법인 이해독왕(耳海毒王)이 있습니다. 그 밑으로 각 부당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몇 개의 분타가 중원에 설치되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음…….”
사군보는 나직이 침음했다.
그가 아는 별호는 오직 하나다.
이해독왕.
묘강과 중원을 경계 짓고, 사천과 광서에 걸쳐 넓게 펼쳐져 있는 거대한 호수, 이해(耳海).
그 일대를 장악한 독종이 바로 이해독왕이다.
이해독왕은 독공으로 유명하다.
그의 독공은 해독약이 없기로 유명하다.
‘더 이상 알아낼 것은 없다. 무덤으로 잠입해 들어가 이자보다 더 높은 자를 사로잡아 심문해 보는 것이 더 현명할 것 같다.’
그는 마음을 정하자 금방왕을 싸늘히 쏘아붙였다.
“네놈이 가는 곳은 공동묘지의 큰 사당이냐?”
“그렇습니다. 그곳이 채화당의 본부입니다.”
“이해독왕도 있느냐?”
“네, 항상 계십니다.”
사군보의 두 눈에서 번개처럼 신광이 번뜩였다.
“이해독왕! 네놈의 독행을 오늘로서 종지부 찍어주겠다.”
그는 다시 금방왕을 응시했다.
“이제부터 네가 태어나 지금까지의 일을 낱낱이 말해라. 특히 대하교와 채화당에 관계를 갖게 된 이후의 일은 더욱 소상히 말해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금방왕은 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새기고 있던 사군보의 두 눈엔 점점 자욱한 살기가 짙어만 갔다.
그것은 금방왕이 그간 저질렀던 만행에 절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당장이라도 쳐 죽이고 싶었다.
자신이 지옥 문턱에 와 있는지도 모른 채 금방왕은 계속 지껄였다.
채 피지도 못했던 어린 소녀들을 겁탈, 간살 했던 일들과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행했던 수많은 살인 등등 그의 말은 전부 잔인한 만행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금방왕은 모든 말을 마치고는 넋 나간 사람처럼 그만 바라보았다.
“으으…….”
사군보는 크게 격분해 있었다.
두 눈 가득 지옥의 불길이 훨훨 타올랐다.
“살 가치도 없는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