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24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24화
혈하-第 24 章 살릴 방도가 있습니다.
권풍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어떤 단체인지 잘 모릅니다. 사실 총명한 소협은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나를 비롯한 천라삼군을 그 ‘교’인가 하는 곳으로 끌어 들이려고 표난난이 흉계를 꾸몄고……”
“……”
“그녀가 계획적으로 내게 접근한 것을 안 나는 그녀와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팽성귀마가 그녀와의 일을 강호에 소문을 내고 내게 나타나 노골적으로 ‘교’에 가입하라고……”
“음……”
사군보는 침음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천라삼군을 끌어 들이려 하는 ‘교’에 대한 묘한 기운이 그의 가슴에 엄습해 들었다.
‘강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암중으로 천라삼군 같은 고수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는 하나다.
노골적으로 야망을 드러내기에는 버거운 상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고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천라삼군 역시 그런 와중에 휩싸인 것이다.
사실 당금 강호 무림은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특히 묵혈방의 붕괴 이후 10년 동안 수많은 흑도 방파들이 할거했다.
강호 무림은 현재 폭발직전의 긴장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람이 잔뜩 들어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
바로 그것이다.
사군보는 권풍진의 어두운 그늘이 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얘기는 그만 두고 대체 누가 병자인지 말하지 않았어요.”
“아, 가만 보니 가장 중요한 얘기를 하지 않았군요.”
권풍진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다름이 아니라 둘째 형께서 괴질에 걸리셨는데, 둘째 형뿐만 아니라 조카까지 똑같은 괴질로 앓아 누워 있습니다.”
“괴질?”
“그렇습니다. 도대체 무슨 병인지 알 길이 있어야지요.”
“둘째 형이라면 초열도협 공자립을 말함입니까?”
“예, 기실 우리 천라삼군은 오래전부터 결의형제의 의를 맺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가장 연장자이신 적하검군 하륜 대형이 맏이고, 제가 가장 막내입니다.”
“초열도협의 증상은 어떤가요?”
“얼핏 보기엔 독에 의한 것으로 사료됩니다만……도무지 그게 어떤 독인지 몰라서……그래서 흥안령산에 은거하고 있다는 막남신의(漠南神醫)를 찾아 갔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미 거처를 옮기신 후였고, 실망한 채 돌아오는 길에 팽성귀마와 부딪치게 된 것입니다.”
사군보는 흠칫 놀랐다.
“막남신의라면 의술, 독술, 기예와 진법을 비롯해 점성술, 영매술로 유명한 분 아닙니까?”
“소협도 소문을 들으셨군요. 바로 그 분입니다.”
막남신의.
올해 세수 100세가 넘었다.
하지만 주안술을 지녀 겉으로 보기엔 스물 안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비록 지닌바 재주가 비상하긴 하나 무공을 익히지 못한 신의는 자신의 지닌 재주가 행여 흑도인들에게 이용을 당할까봐 항상 은거지를 바꾸며 환자들을 돌봐왔다.
가희 바람과도 같은 기인인 것이다.
“음……막남신의가 흥안령산에 있었다니……”
사군보는 검미를 찌푸렸다.
막남신의는 제 아무리 불치의 병이라 해도 손만 댔다하면 환자는 언제 아팠냐는 듯 벌떡 일어나게 하는 신의다.
의술을 펼침에 있어 정통적인 침술, 약방뿐만 아니라 환자에게 최면을 걸어 병이 걸리게 된 원인을 찾아내는 등 기이한 술법까지 동원해 병을 치료하는 의생이다.
그러나 그는 바람과도 같았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익히지 못한 것인지 그는 단 한모금의 내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결국 그가 역용술을 익히게 된 가장 큰 동기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의술이나 술법 등을 노리는 자가 자신을 사로잡아 그 재주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일정한 거처가 없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환자가 있는 곳이면 언제든지 나타난다.
또한 그 환자가 제 아무리 살인마왕이라 해도 나타나 병을 고쳐주기에 흑도인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사군보는 삼뇌마자 막여천이 자신의 머릿속에 기억시켜준 수많은 강호기인 가운데 특히 막남신의를 유의하라는 말을 상기해냈다.
‘막여천은 내겐 그를 거두라고 하셨다. 그의 재주는 앞으로 내가 할 일에 상당한 비중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진작 알았다면 그가 잠시 은거했다는 곳을 살펴볼 수 있었을 텐데……’
인간이란 자신이 머문 곳에 어떤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 흔적을 살피면 그 사람의 성격을 대강 알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다시 길을 바꿔 흥안령산으로 가기엔 틀렸음을 안다.
입안이 씁쓸했지만 목전의 일이 더 급하다.
천라삼군을 자기가 행하고자 하는 대업에 동참시킬 마음을 먹은 사군보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꺾지 않았던 권풍진의 태도에 사군보는 그들 천라삼군을 거둘 생각을 한 것이다.
난세엔 고수가 많다.
그러나 난세일수록 곧은 기개를 지닌 자는 흔치 않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천라삼군이야말로 난세에 꼭 필요한 인물들이다.
숱한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영역을 갖는다는 것.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군보는 권풍진에게 물었다.
“초열도협의 상태는 심각합니까?”
“심각할 정도가 아닙니다. 어쩌면 소제가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이럴 때가 아니군. 아무래도 내가 앞서 가야할 것 같군요. 지금 무군의 상태가 완전한 것이 아닌지라 급격하게 경공술을 펼치면 다시 내상이 도질 수도 있어요.”
“오! 그래 주시겠습니까?”
“기왕 내친걸음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환자를 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건 일단 환자의 병을 고친 다음에 들어도 늦지 않을 것 같네요. 지금 초열도협은 어디에 있나요?”
“월성령 영상곡(永霜谷)에 가면 자그마한 장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 월영산장(月英山莊)이 바로 둘째 형의 거처입니다.”
“월성령 영상곡……”
사군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서 가겠습니다.”
사군보는 성큼 뛰어 달렸다.
“앗!”
그 모습을 본 권풍진이 깜짝 놀라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벌써 저만큼 멀어진 사군보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축천신행보(縮天迅行步)!”
권풍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군보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그의 존재는 실로 무서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
월영산장(月英山莊).
천라삼군 가운데 한 사람인 초열도협 공자립의 장원이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월영산장의 하늘은 짙은 그늘로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데, 해가 중천에 떠오를 즈음.
월영산장의 분위기가 크게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방문 때문이었다.
사군보.
그가 권풍진보다 하루 먼저 도착을 했다.
하지만 월영산장은 이미 그의 방문을 알고 있었다.
뒤따르는 권풍진은 강호의 소식통인 개방을 통해 어느새 월영산장에 통보를 미리 했기 때문이다.
귀인 한분이 곧 당도할 것이라고.
마침 월영산장에는 천라삼군 가운데 맏인 적하검군 하륜 역시 자리해 있었다.
이윽고 사군보는 총관의 안내를 받으며 내당으로 들어갔다.
내당 내실.
방안은 휘장으로 가려진 침실을 제외하곤 모두 담홍색이었다.
사군보는 방안이 아주 운치 있게 꾸며졌다고 생각했다.
내실에는 30대의 중년부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빙설선녀(氷雪仙女) 용화화(龍花花).
공자립의 아내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용화화는 어두운 표정을 애써 지우며 사군보를 맞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느덧 공자립이 소생할 수 있다는 믿음이 떠올라 있었다.
“부인의 인사는 다음에 받겠습니다.”
사군보는 무뚝뚝하게 대답하고는 공자립이 누워 있는 침대로 향했다.
공자립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사군보는 이내 몸이 야윈 공자립을 진맥했다.
맥박은 미미하게 뛰고 있었다.
사군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용화화와 어느새 뒤따라 들어온 하륜을 번갈아 보았다.
용화화가 궁금한 듯 물어왔다.
“소생하실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사군보가 자신에 찬 음성으로 대답했다.
용화화가 기쁨에 눈물을 글썽였다.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지요?”
하륜이 사군보를 쳐다보며 물었다.
“방총산(龐叢散)에 중독되었습니다.”
“방총산이란 어떤 독인지요? 의원 수십 명이 다녀갔지만 모두들 모르겠다는 대답이었습니다.”
“방총산은 극독을 가진 열 가지의 동물과 열 가지의 식물 독을 뽑아 혼합하여 만든 독입니다. 그 독을 쏘이거나 먹게 되면 보통 사람은 즉사할 것입니다. 하지만 무림인이라면 하루를 견딜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독은 거의 해독할 약이 없습니다.”
“사실 그러했습니다. 도협께서는 밖에서 돌아온 지 하루 만에 전신에 독이 퍼져 혼절하셨습니다.”
용화화의 말을 들으며 사군보는 자신의 짐을 풀어 환약이 든 자개병 들을 꺼냈다.
그는 세 가지의 연환 각 두 알씩을 꺼내 공자립에게 먹인 다음 침낭을 열었다.
그리고 금침과 은침, 동침을 구분하여 백여 곳 혈도에다 놓았다.
그 모습을 본 용화화가 얼굴을 창백하게 질리며 눈을 감아버렸다.
이때다.
사군보가 하륜에게 신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 대협께서는 도협의 명문혈에 대고 진기를 주입시키시오. 경락이 손상을 입지 않고 잘 순환되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소협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하륜이 공자립의 명문혈(命門穴)에 대고 진기를 주입하자 공자립의 신형이 미미하게 떨렸다.
“그렇게 한 시진쯤 계속하셔야 할 거요.”
“알겠습니다.”
용화화가 끼어들었다.
“제가 도울 일은 없는지요?”
“부인께서는 도협을 꽉 붙잡아주세요. 만약 부인께서 2갑자의 공력이 없으시다면 사람을 부르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건 왜 그러는지요?”
사군보가 공자립의 전신에 꽂힌 침을 뽑으며 대답했다.
“이미 심장까지 침투한 독을 땀구멍으로 뽑아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한 달은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건 어려운 일이라 지금은 빠른 치료를 요합니다.”
“소협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용화화는 급히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녀는 육순의 노인과 40대의 장한을 불러왔다.
노인은 월영산장의 총관인이었다.
40대 장한은 공자립의 수제자인 대라쌍도(大羅雙刀)다.
이들 두 사람과 용화화의 내공을 합치면 능히 3갑자를 넘는다.
이때 사군보도 침낭을 챙겨 한쪽으로 치워놓고 있었다.
“부인께서는 도협의 머리가 움직이지 않도록 하세요. 그리고 두 사람은 몸을 잡아 절대 떠오르게 하면 안 됩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들이 각자의 위치를 잡으며 공자립을 붙잡았다.
이 순간 사군보는 공자립의 가슴 가까이에 손을 펴 천천히 흡입력을 발출시켰다.
그러자,
부르르……
공자립의 몸이 떨리며 그의 장심으로 빨려들었다.
세 사람은 기겁하며 전신의 힘을 쏟아내었다.
그럼에도 공자립의 몸은 사군보의 장심으로 빨려 들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