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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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20화
혈하-第 20 章 백 살 넘은 형님
‘이거 그냥 있으면 당하겠는데.’
지옥혈제는 내력을 집중시켜 진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츠으으으으……
뽀얀 안개와 같은 백색기류가 그의 몸에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가 풍뢰동에서 연성한 백연신공(白然神功)이었다.
대자연의 기운에 어려 있는 호연지기.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백연신공의 기운은 자신의 내력을 수천, 수만 개의 땀구멍을 통해 배출시켜 그 기운 하나, 하나를 통제하는 무공이다.
그 기운들을 몸에 두르면 금강불괴와 같은 호신강막이 된다.
그 기운들을 하나하나 탄환처럼 쏘아내면 사방 10장의 모든 사물을 모조리 꿰뚫린다.
지옥혈제의 모든 무공이 총망라된 그 결정체가 바로 백연신공이다.
백색기류는 그의 내기.
그 자체였다.
파파팟-!
차차차창!
하얀 백연신공의 기운과 검은 묵혈사령신공의 기운이 허공에서 부딪치면서 번갯불이 튀었다.
서서히 두 기운이 맞물려지는 순간.
“타핫!”
크게 기운을 낸 사군보가 두 번째 공격을 시도했다.
우르르릉-
슈슈슈슉-!
석실 내는 순식간에 사군보가 시전해낸 장영이 소용돌이로 가득 찼다.
사군보는 이 순간 묵혈사령신공의 마기를 바탕으로 귀영신법(鬼影身法)을 펼쳤다.
그는 신형을 빠르고 은밀하게 움직임과 동시 두 손으로는 구유현명장을 펼쳤다.
콰콰콰콰!
석실이 무너질 듯 굉음이 울렸다.
사군보가 일으킨 장영, 장영 하나하나가 모두 상대의 숨통을 끊을 만큼 가공할 위력이 담겼다.
“앗!”
지옥혈제는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내질렀다.
그는 자신을 향해 무수한 장영이 폭풍처럼 쏟아져오는 것을 보았다.
지옥혈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의 감탄은 단순히 사군보가 펼친 무공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저건 본교의 무공이다! 놈이 어떻게 본교의 무공을 알지?’
그렇다.
지금 지옥혈제를 압살할 듯 압박하며 닥쳐오는 공세들은 명왕교의 무공이다.
너무 잘 알고 있는 절기들.
그렇기에 더 방심하면 안 된다.
쏵! 쏵! 쏵!
예리한 파공음을 내며 쏟아져 들어오는 그 장영의 소용돌이에는 도저히 반격을 하지 않고는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지옥혈제가 반격을 한다면 그것은 바로 패배인 것이다.
“음……”
지옥혈제는 이를 악물었다.
‘일단 놈의 선공을 피한 후 알아보자.’
그의 몸이 가볍게 흔들리는 것 같다.
스스슥-!
지옥혈제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니, 지옥혈제의 몸은 한 가닥 백선으로 화해 그 빽빽한 장영 속을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었다.
너무나도 빨라 그저 한 줄기 백선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의 신법은 실로 사람이 발휘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느새 지옥혈제의 몸은 그 빽빽한 장영의 늪을 벗어났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사군보의 얼굴에 한 가닥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얍!”
그와 동시에 그의 입에서 대갈일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쌍장이 일순간 기묘하게 회전을 하였다.
두 손은 각각 괴이한 모양을 취하며 앞으로 쓸어갔다.
꽈르르릉……!
한 명의 고수가 각기 다른 절학을 펼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혜진의 도움으로 탈태환골하여 천고에 다시없는 골격을 소유케 되었다.
그리하여 이런 유래 없는 재간을 부리게 된 것이다.
지금 그의 왼손은 구유현명장(九幽玄冥掌) 가운데 가장 위력이 강한 살초인 구유멸렬(九幽滅裂)이 펼쳐진다.
그리고 오른손은 적령장이 가미된다.
꾸르릉- 꽈르릉-!
쌔애애애액-!
진정 가공할 만한 기세가 아닐 수 없다.
석실 안은 요란한 굉음과 괴이한 음향으로 가득 차 무너질 듯 크게 진동했다.
이 두 가지 절초는 괴이한 변화를 담고 있어 지옥혈제의 몸을 산산조각으로 낼 듯 쓸어갔다.
‘이거 만만치 않은데.’
투로는 물론, 내공 운용까지 그 속속들이 훤히 알고 있는 구유현명장이지만 지금 사군보가 펼치는 것은 변칙적인 수가 들어가 있었다.
그 이유는 사군보의 모든 움직임과 투로는 묵혈사령신공의 마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적령장이라는 흑도 제일의 장법까지 중간 중간 끼어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묘하게 수를 틀어버려 지옥혈제를 헷갈리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점을 사군보는 계산했다.
너무나도 익숙한 것들.
너무나도 뻔 한 수읽기.
상대는 지옥혈제다.
아무리 자신이 뛰어나다 해도 지옥혈제를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이길 확률을 높이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구유현명장과 귀영신법이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방심을 하게 만든다.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예측을 하게 만든 다음 그에 변화를 주어 기회를 갖고자 하는 수법.
그것이 지금 통했다.
일촉즉발(一觸卽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옥혈제는 그 공격에 격중 당할 위기에 놓였다.
그런데,
팟-!
사군보의 눈앞에서 돌연 지옥혈제의 몸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앗!”
사군보는 놀라며 급히 몸을 돌리려 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2초 선공은 끝났다! 내 1초를 받아라!”
콰우우우우!
사군보의 눈앞에 마치 만년 빙굴의 한기가 몰아닥치듯 싸늘한 한풍이 몰려왔다.
펑! 펑펑펑!
사군보가 펼친 모든 기운이 풍선 터지듯 터지며 사라져 버렸다.
“악!”
사군보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나왔다.
그의 몸을 향해 엄습해 온 한기가 심장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무서운 고통을 주었던 것이다.
퍼퍼퍽!
뭔가가.
둔중한 무언가가 온몸을 강타하는 극통.
사군보는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끄으응……!”
기절에서 깨어난 그가 맨 처음 본 것은 의혹을 가득 담은 채 자기를 보고 있는 지옥혈제의 얼굴이었다.
사군보는 자신이 지옥혈제의 마지막 공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패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얼굴에는 짙은 낙망의 빛이 떠올랐다.
‘이것으로 내 운명도 끝인가?’
사군보는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이내 굳은 결의의 빛을 떠올리며 입을 떼었다.
“나는 패배를 인정합니다.”
지옥혈제의 얼굴에서 미미하게 격동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 빛은 사라지고 그는 입을 떼었다.
“너는 본교의 절학을 어디서 터득했느냐?”
“……!”
귀영신법(鬼影身法).
구유현명장(九幽玄冥掌).
이 두 가지 절식은 지옥혈제의 유명칠절(幽冥七絶) 가운데 두 절식이다.
앞서도 밝혔듯이 명왕교가 사지분열 될 때 발률천왕이 묵혈방에 가입해 그 무공이 사군보에게까지 이른다.
“사실 그건……”
사군보는 모든 사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옥혈제의 실종 이후 명왕교의 붕괴를 비롯하여, 새로이 흑도 무림을 관장하게 된 묵혈방의 득세.
그리고 묵혈방의 붕괴와 발률천왕을 통해 명왕교의 무공을 익히게 된 사연을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지옥혈제의 얼굴에는 무한한 격동이 일어났다.
사군보의 얘기가 끝났을 때 그의 얼굴엔 또 다른 노기가 떠올랐다.
“미리 말하지!”
“네?”
“네놈이 본교와 그런 연원을 갖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네가 본교의 무공을 얻었다면 우린 서로 척을 지면 안 된다. 그런데 넌 그 사실을 밝히지 않고 내게 손을 썼다. 이건 결코 용납할 수가 없구나.”
사군보는 그 말을 듣자 그만 가슴이 섬뜩했다.
그러나 그는 굽힘이 없는 어투로 낭랑히 말했다.
“나는 분명 유명칠절 가운데 두 가지를 익혔어요. 그러나 이미 명왕교는 이 땅에서 사라졌고, 명왕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은 옛날 얘기에 불과할 뿐이니 내가 귀영신법과 구유현명장을 익혔다 해서 그걸로 우리 관계가 어쩌니, 사승이 어쩌니 하고 말하기 싫었고, 또 선배가 그걸로 날 엮는 것 또한 싫었을 뿐! 나는 묵혈의 후예! 명왕교의 후예가 아니라고요.”
“음……”
지옥혈제의 얼굴에 참을 수 없는 분노의 빛이 나타났다.
분명 사승은 이어지기는 했다.
명왕교의 무공을 익힌 자임은 분명하다.
굳이 촌수를 따지면 증손관계라고 할까?
이게 또 괴상망측하다.
정식으로 사승을 이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잡아먹을 듯 사군보를 노려보더니 들끓는 감정을 억누르느라 이를 악물었다.
잠시 후.
그는 낮게 가라앉은 무겁고 침울한 어투로 입을 떼었다.
“맹랑한 놈, 명왕교가 정녕 사라졌다고 보느냐?”
지옥혈제의 이 어투에는 극도의 감정을 억제하려는 양 위엄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끝내 숨길 수 없는 것은 비분과 감개였다.
사군보의 얼굴에는 곤혹의 빛이 나타났다.
지옥혈제는 한바탕 미친 듯 웃어 제쳤다.
“흐핫핫핫핫! 나는 결코 명왕교가 사라졌다고 보지 않는다. 분명 강호 어딘가에 그 뿌리를 내리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을 것이다.”
지옥혈제는 격동으로 몸을 떨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람이다.
희망이다.
정말 명왕교가 그 뿌리까지 완전히 소멸되었다면 지옥혈제는 그 업보를 고스란히 짊어지어야만 한다.
자기 자신의 힘만 믿고 날뛰었던 철없던 시절의 업보.
지옥혈제는 천천히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는 형형한 눈으로 사군보를 쏘아보며 입을 떼었다.
“자, 그럼 조금 전 우리가 겨루기에 앞서 약조한 것을 얘기해 보자.”
“……!”
사군보는 흠칫하며 아득히 정신이 혼란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이미 사나이의 입으로 약조를 한 몸.
어찌 번복할 수 있으랴.
“좋아요. 내가 이 일전에서 패했으니 약조한대로 말에 따르죠. 내 목이라도 줄까요?”
지옥혈제는 미미하게 웃었다.
“네가 네놈 목이 왜 필요하겠느냐? 나는 단지……”
그가 말을 끊자 사군보는 속으로 더욱 긴장하여 쳐다보았다.
과연 어떤 말이 나올 것인가?
지옥혈제는 부드럽고 낮은 어투로 말했다.
“어쩌면 그것은 조건이기보다는 부탁이라 함이 더 옳을 지도 모르지. 노부는 너에게 의발전인(依鉢傳人)이 되어 달라 할 참이다.”
“허억-!”
사군보는 순간 경악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대마존의 의발전인.
그것은 흑도무림인들이 꿈속이라도 염원하는 지고한 것이다.
사군보는 그가 패배한 조건으로 이런 것을 제의하자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지옥혈제는 그가 일시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쩍 벌리고 있자 안색을 굳혔다.
“너는 지금 표정으로 보아 내 제의를 거절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니냐?”
사군보는 고심했다.
그러나 그는 곧 굳은 신색으로 입을 열었다.
“난 위대한 묵혈의 후예입니다.”
사군보는 가슴을 폈다.
“묵혈의 후예?”
제옥혈제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자신이 80년 동안 갇혀 있는 동안 세상은 변했다.
발률천왕이 묵혈방에 복속된 사정은 조금 전 들었다.
그러나 묵혈대제 사악을 흑도제일인으로 인정하는 건 다른 문제다.
게다가 10년 전 멸문까지 당했다면 얘기가 또 다르다.
“묵혈방은 멸문 당했다 하지 않았느냐? 사악? 네 아비 역시 원수의 손에 죽었고……”
“내겐 묵혈방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위대한 대업이 있어요. 또한 묵혈방을 배신한 자들과 묵혈의 이름을 더럽힌 원수들을 찾아 피맺힌 한을 갚아야 하는 몸.”
“그러니 내 제자가 되라, 내 뒤를 이어 명왕교의 교주가 되면 그깟 원수들 일거에 싹 쓸어버릴 수 있다.”
“제의는 고맙지만 거절합니다.”
“왜?”
“내 힘으로 이루고 싶습니다. 또, 명왕교는 이미 없어졌다니까요……”
“이놈아! 내가 건재하잖아!”
“그래봐야 지옥혈제님도 혼자시잖아요.”
“허허……”
지옥혈제의 얼굴에는 동시에 낙담과 비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잠시 동안 사군보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내 제자가 되지 못해 안달을 하던 다른 자들에 비해 기개가 출중하고 대몰차기 그지없다. 이런 놈은 옆에 두지 못할 바에는 아예 죽여 훗날의 후환을 남겨서는 안 되는데 죽이기 정말 아깝군.’
예전의 그였다면 벌써 사군보는 곤죽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잠시 사군보를 바라보던 지옥혈제가 묵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좋다!”
“이제 없던 일로 하는 거 맞죠.”
“아니다! 사부와 제자 사이가 싫다면……어떠냐? 형님, 아우 하는 사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