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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하마제 19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9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혈하마제 19화

혈하-第 19 章 지옥혈제

 

사군보의 얼굴에 한 가닥 놀라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역시 대번에 불문 선공을 알아보는군.’

못 알아보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어차피 복불복이다.’

상대는 돌아가신 선친의 전대 고수다.

그 당시 천하를 오시하던 두 고수, 천룡대제와 다밀존자 조차 가까스로 겨우 함정에 몰아넣을 수 있었던 절정 고수다.

그가 자신을 믿어줄 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사군보는 추호의 두려움도 없이 낭랑하게 말했다.

“내가 어떤 무공을 익혔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잖습니까?”

“그럼 무엇이 중요하냐?”

“나와 지옥혈제 사이엔 아무런 은원이 없다는 것! 각자 갈 길만 가면 된다, 이게 중요한 게 아닐까요?”

“각자 갈 길만 가자?”

“그렇습니다.”

“크크크크! 재밌군, 재밌어!”

부르르.

지옥혈제의 눈동자가 지진 난 듯 흔들렸다.

화가 나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80년 동안 갇혀 있던 풍뢰동에서 나왔지만 이미 원수들은 모두 죽은 뒤다.

눈앞에 애송이가 어떤 연유로 이곳에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 애송이의 말대로 아무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건방지다.

두 눈 부릅뜨고 따박따박 따지는 꼬락서니가 꼬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막장까지 온 사군보는 거침이 없었다.

“날 못 믿는다면 그건 당신의 선택이고, 그렇다고 난 변명하거나 목숨을 구걸할 생각은 없네요.”

“당, 당신?”

“그럼 뭐라 부를까요? 노선배? 지옥혈제?”

“아주 가관이군.”

이젠 포기다.

그러면서도 지옥혈제는 막장까지 온 사군보를 유심히 살폈다.

“젊어서 그런가, 꼴에는 대차게 나온다 만은.”

두 눈에 힘을 주고 서 있는 사군보를 살피는 지옥혈제의 눈길은 날카로웠다.

사군보의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패기는 왕년의 자신을 보는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그게 죽음을 눈앞에 둔 객기인지 아닌지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지옥혈제의 얼굴에 경이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그는 기막힌 듯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정녕 담대한 놈일세.”

사군보는 즉시 그 광소에 깃든 내력에 대비키 위해 보리신공을 끌어 올렸다.

츠으으……

다시 사군보의 몸 주위로 은은한 홍광이 어리며 지옥혈제의 광소가 전혀 침입해 들지 못한다.

지옥혈제는 웃음을 뚝 끊고는 형형한 안광을 폭사시키며 그를 노려보았다.

일진의 감탄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놈 보면 볼수록 탐나네.’

은은한 홍광에 싸여 늠름하게 서 있는 사군보의 자태.

뛰어난 기상.

이것은 지옥혈제로 하여금 인재를 아끼는 마음이 들도록 했다.

자신을 가로막고는 추호의 두려움도 나타내지 않는 그 웅장한 패기와 광오함은 지옥혈제가 왕년에 구사했던 성격과 너무 흡사한 것이었다.

지옥혈제의 입가에 옛날의 일을 상기하듯 소리 없는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일순간,

다시 차갑기 이를 데 없는 그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애송이, 넌 내 앞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사군보는 그 말에 답답하다는 양 큰 소리로 말했다.

“가로막을 생각 없다니까 자꾸 그러네!”

속이 터졌다.

“난 아무 상관없어요. 그냥 내 갈 길만 가게 날 내버려두면 되고, 지옥혈제께서도 분하고 억울하면 여길 박살내고 그냥 강호로 나가면 됩니다.”

틱! 틱!

사군보의 전신에 어린 홍광이 불꽃을 피워냈다.

말을 하면서도 사군보는 보리신공을 거두지 않았다.

그 탓에 흥분과 짜증의 감정이 그대로 진기에 실린 것이다.

“아! 그리고!”

사군보는 눈을 부라렸다.

“이 불문선공은 지옥혈제께서 뿌리는 살기가 워낙! 아주 살벌해서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끌어올린 거지 지옥혈제를 막기 위해 끌어올린 건 아니니 오해마시고요. 나도 사람인데 내 한 몸 보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놈 정말 맹랑하네.”

지옥혈제는 바보가 아니다.

대충 어찌된 일인지 감은 잡힌다.

애송이 말마따나 분풀이로 이곳을 박살내고 나가면 그만이다.

그런데 자꾸 신경이 쓰였다.

80년 만에 사람 구경을 해서 그런가?

아니면 80년 전 천방지축 날뛰던 자신의 모습과 같은 애송이를 봐서 그런지 ‘네놈 말이 맞다.’하고 인정하고 싶어지지 않았다.

부정의 의미가 아니다.

이상한 장난기가 돌았다.

마치 재롱 피우는 손자를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80년 전 자기 힘만 믿고 천방지축 날뛰다가 결국 함정에 빠졌던 자기 자신처럼 저 막나가는 애송이가 자기 힘만 믿다가 낭패를 당하지나 않을까? 한 번 쯤 꺾어줘야 세상 무서운 것을 알 텐데 하는 그런 마음.

지옥혈제는 자기에게 이런 감정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복수 하나만으로 버텨온 외로운 세월들이다.

감정이 전부 메마른 줄 알았는데.

의외군.

나도 늙었나?

“좋다. 네놈이 다밀과 관계가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다밀존자가 어떻게 생겨먹은 중대가리인지 모른다니까!”

“하지만 혜진이란 소림 땡중과 네놈 관계는 부인할 수 없겠지!”

“그건 인정합니다!”

사군보는 숨을 한 번 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혜진 스님에게 은혜를 입고 이곳을 지키라는 유지는 받들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거든요! 막 이곳을 나가려고 하는데 하필 지옥혈제께서 나온 거라고요. 조금만 늦게 나왔으면 난 이미 여길 떠난 뒤였을 텐데.”

“노부가 지금 딱! 나온 게 억울한 얼굴이구나!”

“조금 억울하긴 하네요.”

“크크크! 고놈, 말솜씨 한번 야무지군.”

“이제 우리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지 맙시다. 날 그냥 보내주시던지, 그게 아니면 한 판 붙죠!”

“한판 붙어?”

“솔직히 처음에는 두려움이 일었지만 지금은……”

“지금은?”

“호승심이랄까? 그저 한 번 싸워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드네요.”

“허허허……”

지옥혈제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런 은원도 없지만 한번 싸워보자고?

“좋다. 네놈 기상이 맘에 든다. 또 네놈 실력도 궁금하고.”

“나도 내 실력이 궁금해요. 내가 얼마큼 실력을 지녔는지 나도 잘 모르거든요.”

“점점…… 허나 내 선배 된 처지로 너와 맞상대를 할 수는 없는 일.”

지옥혈제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천하를 오시하던 자다.

상대는 애송이.

같이 손속을 나눈다는 자체가 창피한 일이다.

“너는 나에게 2초의 공격을 해라. 나는 네가 공격할 때 조금도 반격하지 않고 있다가 2초가 끝나면 내 단 1초로써 너를 제압하겠다.”

“만약 내가 공격하는 2초에서 지옥혈제가 손을 쓰면 패하는 겁니다.”

“당연하지! 하나 더!”

“뭡니까?”

“네놈의 2초 선공 후 내가 널 공격할 때 네놈이 그 공격을 막아내거나 피해도 너의 승리다.”

“좋아요!”

“그런데……내가 네게 이만큼 호의를 베푼 이상 너도 한 가지 내가 제시하는 조건에 응해야 할 것이다.”

사군보는 움찔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뭡니까?”

“너무 염려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제압한 후에 내가 제시하는 조건을 받는다면 그것이 네게 득은 될지언정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다.”

지옥혈제는 사군보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러나 네가 만약 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노부는 너를 용납하겠다.”

“……?”

사군보는 도대체 그가 제시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절세의 마존이 과연 어떤 조건을 제시할까?

사군보는 이 모든 것을 자세히 고려해 볼 여지가 없었다.

“그 제의에 따르지요.”

지옥혈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오냐, 자, 그렇다면 이제 손을 쓰도록 하거라.”

사군보는 미소 띤 그의 표정을 보면서 속으로 긴장을 풀지 못했다.

천천히 그는 전신의 내력을 운집하기 시작했다.

사군보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어쩌면 그의 손아래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2초는커녕 1초 안에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사군보의 젊고 호기에 찬 혈기는 이런 상념을 떨쳐버렸다.

대신 호승심이 내부에서 들끓는 그의 전신을 에워쌌다.

이길 것이다. 

기필코!

지옥혈제가 비록 절세마존이라 하나 그도 하나의 인간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지금 내 몸엔 5갑자에 달하는 내공수위와 불문의 무상절예. 

거기에 묵혈방의 무공까지 터득하고 있다.

이 절세적인 내공과 무공을 바탕으로 한다면 능히 이 대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비장하게 굳어졌던 그의 얼굴에 한 가닥 자신에 찬 결의가 흘렀다.

“그럼 손을 씁니다.”

사군보는 낭랑하게 입을 떼었다.

“이얍!”

그의 입에서 한 마디 기합이 터져 나왔다.

츠츠츠츠츠……

하나의 구름덩어리인가?

사군보의 몸은 바람보다 더욱 빠르게 지옥혈제를 향해 날아갔다.

그의 몸이 지옥혈제의 몸을 휩싸니 마치 한 가닥 바람인 듯 그 형체조차 알아 볼 수가 없다.

동시에 눈앞에는 전격이 번뜩였다.

번쩍! 번쩍!

스파파파팍-! 스팟-!

수십 가닥의 전격이 소리 없이 지옥혈제의 몸을 향해 날아갔다.

그 전격은 모두 지옥혈제의 전신요혈을 노린 기막히도록 정확한 것이었다.

빛살보다 더 빠른 공격.

인간이 어찌 이런 공격을 할 수 있을까?

지옥혈제의 차가운 얼굴에 한 줄기 경이가 스치고 지나갔다.

‘천뢰기군! 믿는 구석이 있었군.’

스스스스스.

지옥혈제의 몸 주위에는 은은히 백색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펑! 피치치칙-

사군보가 날린 전격은 그 백색 기류에 부딪치자 역시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 뒤를 이어 터지는 지옥혈제의 앙천광소.

“하하하…… 네가 천뢰기를 연성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구나. 그 천뢰기가 비록 천하의 각종 호신강기를 꿰뚫는 효능이 있다고 하지만 내 앞에서는 유명무실한 재주일 뿐이다.”

“아……”

사군보는 그 광소를 듣자 입에서 실의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천뢰기(天雷氣)!

염왕조차 꿰뚤어 버렸던 절기.

2초의 공격 가운데 1초가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1초의 공격뿐이다.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다시 사군보의 몸이 일진의 기합과 함께 허공을 날았다.

“타핫-!”

휴류류륭……

검은 구름인가?

아니면 검은 바람인가?

사군보의 몸이 허공에서 커다란 공처럼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회오리바람 속에 갇힌 것처럼 전신으로 검은 기류를 마구 뿜어내는 사군보.

묵혈사령신공을 일으킨 것이다.

‘전보다 더 질이 좋다! 농후하다!’

사군보이 기운이 크게 일었다.

혜진의 도움으로 단전이 복귀되면서 다시금 일으킬 수 있게 된 본연의 내공들.

그 가운데 단연 압권인 묵혈사령신공의 마기는 지금 미친 듯 날뛰고 있었고, 그 기세는 전에 비해 더 무섭고 날카로웠다.

전보다 수십 배나 위력 있고 빠르게 변한 마기들.

휴류류류-

거침없는 기세가 석실을 진동시킨다.

‘저건!’

지옥혈제는 사군보의 전신에서 일어나는 마기에 흠칫 했다.

지옥혈제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설마 놈이 묵혈사령신공을 연성했을 줄이야.’

저주의 무공이라 불리지만 그 위력은 이미 세상에 입증이 된 절대마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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