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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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7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7화
혈하-第 17 章 반박귀진 탈태환골
‘이럴 수가……’
이 교묘한 인연에 사군보는 속으로 깊은 감회를 느꼈다.
그때였다.
꾸르릉- 꾸르릉-
꽝!
다시 석실이 무너질 것 같은 우렁찬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아……”
혜진의 눈에서 깊은 우려의 빛이 떠올랐다.
“저 노마두는 풍뢰동에 안배해 놓았던 아홉 개의 관문 중 이제 마지막 하나만 남겨두었다.”
9개의 관문.
그것은 9개의 기관과 함정, 진식이었다.
천룡대제 양엽이 전 재산을 투자해 만들어 낸 관문은 하늘도 가둘 수 있다 자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옥혈제는 지난 80년 동안 끊임없이 관문에 도전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관문 하나만 남긴 상태다.
혜진은 긴장된 표정으로 사군보를 쳐다보았다.
“노납은 지금 저 노마두를 상대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네.”
혜진은 암울한 빛을 얼굴에 떠올렸다.
“처음 지옥혈제가 천룡대제와 다밀존자에 의해 이곳에 갇힐 당시에 저 노마두의 신공을 당해낼 사람이 천하에 없었네. 그런데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풍뢰동에서 그는 살아남았고, 더 강해졌네. 그가 이곳을 나가면 그 누가 그를 당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에서 80년을 살아왔다면 그는 바로 불사신인 것이다.
사군보는 절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럼 지금 지옥혈제가 110살이 넘었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아미타불……”
혜진은 나직이 불호를 외더니 깊은 상념에 잠겼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감돌았다.
문득 사군보는 불안감을 느꼈다.
혜진이 눈을 떴다.
그의 눈에는 형형한 안광 대신 따사로운 한 줄기 자애에 찬 눈빛이 흘렀다.
“이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이네. 노납은 며칠 전 깊은 참오에 잠겼을 때 내 생명이 며칠 남지 않았음을 느꼈네. 그리고……”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이곳 풍뢰동의 은원을 해결해 줄 사람이 나타나리라는 것도 천기를 통해 알았네. 그런데 정말 노납의 느낌대로 시주가 이곳에 들어왔으니.”
혜진의 얼굴은 일순 정감과 따스함으로 충만했다.
그는 자애에 가득 찬 시선으로 사군보를 쳐다보았다.
“이제 사흘 밖에 남지 않은 노납의 생명…… 그래서 노납이 이곳에서 연수해 온 모든 절예를 시주에게 전수해 주겠네.”
“아니?”
사군보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바로 큰 기쁨이었다.
이때다.
기쁨도 잠시 사군보는 의혹이 일어났다.
혜진이 고련한 무학을 자기에게 전수시켜주는 진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답은 바로 나왔다.
그것은 바로 지옥혈제를 제압시키고자 함이다.
자신의 뒤를 사군보에게 넘기려는 수작.
사군보는 정도의 인물이 결코 아니다.
그런 자신이 혜진의 도움을 받고 나아가 지옥혈제를 제압해야 하다니.
갈등은 잠시였다.
혜진은 어차피 사흘 밖에 살지 못한다.
그 안에 지옥혈제와 부딪치지만 않으면 된다.
무공만 회복되면 그 즉시 떠나면 그만이다.
그리고 혜진의 은혜는 훗날 소림사에 베풀어주면 그만이다.
그의 그런 속마음을 혜진이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러나 제 아무리 득도한 고승일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읽지는 못하는 법.
혜진은 오히려 가볍게 웃었다.
“시주, 근심하지 말게. 노납에겐 한 가지 절예가 있어 사흘 안에 충분히 절예를 전수해 줄 수가 있네. 그리되면 능히 지옥혈제가 관문을 뚫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이네.”
혜진은 사군보가 과연 무공을 익힌 다음 지옥혈제를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심하고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사군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혜진은 웃음을 거두고는 그를 응시했다.
“그러나 이제 남은 것은 시주가 노납의 말대로 이 임무를 기꺼이 맡아주겠느냐 달렸군.”
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
사군보는 뚫어져라 자기를 쏘아보는 그의 눈빛에 접한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그는 혜진이 자기 마음속의 갈등을 눈치 채지나 않았을까 하였던 것이다.
사군보는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
천연이라.
자기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것.
그 모두가 혜진의 말대로 하늘이 정해준 안배가 아니겠는가.
혜진을 비롯하여 이들 모두가 하늘의 뜻으로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우연이든, 필연이건.
혜진은 사군보의 얼굴에 나타난 격동의 빛을 보자 처연히 탄식을 터뜨렸다.
“시주는 너무 걱정 말게.”
혜진은 사군보의 마음을 읽었다.
“노납이 보건대 시주의 관상에는 일시적인 겁난은 있으나 횡액을 당할 건 아니네. 아니, 오히려 그것으로 어떤 복을 입을 것이네. 노납이 장담하건대 이번 일이 결코 시주를 죽음으로 몰아넣지는 않을 것이네.”
사군보는 자신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혜진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오해하네?
그러거나 말거나 굳이 해명할 생각은 없다.
사군보는 말했다.
“나는 스님의 유지를 받겠습니다.”
“아……”
혜진의 얼굴에 커다란 기쁨이 떠올랐다.
그는 격동을 느끼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알겠네, 자, 이제 시주에게 보패세수대법(普貝洗髓大法)을 시전 하여 노납이 지닌 고도의 절예를 전수해 주겠네.”
“보리세수대법요?”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고, 이를 익히면 곡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된다네.”
“밥을 안 먹고 산다고요?”
“뿐만 아니라 시주의 그 팔……”
혜진은 사군보의 부상당한 팔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건 당장 고쳐질 수 있지.”
“정말입니까?”
혜진은 엄숙히 사군보에게 명령했다.
“자, 시주는 이제 결가부좌의 자세를 취하게.”
“……”
사군보도 역시 엄숙한 자세로 혜진의 앞으로 다가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혜진은 오른손을 들어 허공을 향해 가리켰다.
사군보의 천령개를 향해 짓누르는 것 같은 자세를 취했다.
꽈우우우우……꽈우우우……
사군보는 자기 전신을 향해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열기가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눈앞에 은은히 홍광이 어리며 무지개를 수놓는 것이었다.
이곳이 천상의 세계인가?
신선이 노니는 곳인가?
사군보는 자신의 몸이 어떤 구름 속에 노니는 것 같은 환각을 느꼈다.
망각(妄覺).
그 다음 그가 빠져 들어간 곳은 바로 자아와 이지와 모든 것을 상실한 세계였다.
**
우둑. 우둑.
뼈마디가 절로 비틀리고 꺾였다.
주룩. 주룩.
인간의 몸에 나 있는 모든 구멍들 열린다.
땀구멍, 눈코입귀의 칠공은 물론 오줌구멍 항문까지 모든 게 개방되었다.
그 개방된 구멍으로부터 시커먼 것들이 새어나왔다.
지독한 악취.
그것은 사군보의 몸 안에 있던 온갖 오염물이었다.
스륵. 스륵.
머리카락과 털이 빠졌다.
기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훌룽. 훌렁.
뱀이 껍질을 벗고 탈피로 새로이 몸을 만들 듯, 사군보의 피부 껍질이 벗겨졌다.
그 과정은 보던 혜진의 눈이 커졌다.
“탈, 탈태환골이라니!”
보리세수대법은 역근, 세수경을 바탕으로 한다.
역근 세수경은 무공 심법이 적혀 있는 게 아니다.
부처의 가르침으로 몸와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불경이다.
그것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심득을 얻는 과정에서 몸이 변화를 일으킨다.
그 변화가 바로 탈태환골이다.
하나,
소림 역사상 이를 이룬 자는 극히 드물었다.
또 이룬 자마다 그 성취가 달랐다.
그건 심득의 차이다.
혜진 역시 역근, 세수경을 보았다.
혜진은 이곳에서 30년 동안 있으면서 스스로 연근 세수경을 연구했다.
10년 어느 날.
매달 벽곡단을 내려주던 게 끊어졌다.
처음에는 잊었나? 싶었으나 시산이 지나도 더 이상 벽곡단을 내려오지 않았다.
혜진은 몰랐다.
홍련이 장원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인 것을.
결국 혜진은 지상에 문제가 발생했음을 직감했다.
아무리 그가 득도한 고승이라 해도 인간이다.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몸이다.
하나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강금 되고 진식에 갇힌 지옥혈제는 살아 있었다.
아니,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자신이 지상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스스로 도둑에게 집을 내주는 꼴과 같았다.
그리하여 그가 만든 것이 보리세수대법이다.
먹고 마시지 않지만 공기 중에 흐르는 기운으로 몸을 유지하는 방법.
그 효과로 10년 동안 곡식을 입에 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 날 수 있었다.
그런 보리세수대법이 지금 사군보의 몸을 탈태환골 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미타불……부처의 뜻은 실로 오묘하구나……”
혜진은 사군보의 탈태환골을 지켜만 보았다.
**
얼마나 많은 시각이 흘러갔는가?
사군보가 지각을 되찾았을 때에는 놀라운 변화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신이 팽팽해 터질 것 같은 내가진력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상실했던 공력을 되찾았다.
그 공력은 전과는 달리 몇 배 더 증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군보는 두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전혀 자각치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이 또 있었다.
전날 그가 묵혈사령신공을 대성했을 때 그의 두 눈에서는 비수 같은 정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은 그저 영롱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무공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의 눈빛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정광이 안으로 갈무리되어 전혀 나타나지 않은 것은 바로 반박귀진의 현상이었다.
-반박귀진지경(反博歸眞之境)!
이것은 바로 무학이 최고경지에 이른 고수들에게서만이 나타나는 놀라운 현상이다.
사군보는 물론 이런 사실을 몰랐지만 자기가 공력을 회복한 것이 모두 혜진의 도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즉시 몸을 일으켜 고개를 돌린 순간 크게 경악했다.
“헉!”
그의 등 뒤에는 열반에 든 부처마냥 온화한 혜진의 유체(遺體)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엄숙한 그의 얼굴에는 조용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것은 마치 자기의 모든 임무를 완수했다는 만족과 같은 것이었다.
“이럴 수가……”
사군보는 도저히 이런 사실을 믿을 수 없는 양 뚫어져라 그를 응시했다.
잠시 후.
그는 혜진이 자기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좌화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절감했다.
“대사의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가 누군가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
사군보는 그의 앞에 두 번 큰 절을 했다.
그가 절을 마치고 일어선 순간 혜진이 앉아 있는 뒤 석벽에 시선이 갔다.
그곳에는 혜진의 유필인 듯 깨알 같은 글씨가 박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