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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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16화
혈하-第 16 章 명왕교가 무너진 이유
“노납이 보기엔 시주의 여러 사부들 가운데에는 극히 총명한 자가 있었던 것으로 사료되는군.”
“아!”
비로소 왜 금제를 했는지 이해가 간 사군보다.
“그렇다면 막 숙부가 내 몸에 금제를 가했단 말인데?”
삼뇌마자 막여천.
하지만 백발괴인의 말을 빌리면 그 금제는 그를 해할 뜻이 아니라 그를 보호하기 위해 펼친 것임이 분명했다.
사군보는 침묵했다.
그의 몸에 어린 내공들은 그에게 무공을 가르쳐주고, 그에게 원한을 남겨준 열여섯 마인들의 원정내공들이다.
재차 언급하지만 그들이 익힌 마공들은 제각각이다.
음험하고, 극렬한 것이 있는가 하면 부드럽고, 패도적인 것도 있다.
심지어 차가운 냉한지기도 있다.
그런 각기 성질이 다른 내공들이 한곳에 모이면 자연 서로 상극되어 폭발을 일으킬 것은 뻔하다.
그렇게 되면 사군보의 몸은 가루가 된다.
하여 삼뇌마자 막여천이 그걸 방지하기 위해 어떤 금제를 가했던 것이리라.
사군보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백발괴인은 뚫어질 듯 사군보를 쳐다보았다.
“시주, 그대의 단전은 완전히 망가진 것이 아니네. 시주의 일신엔 어림잡아도 200년 수련과 맞먹는 내공이 있네. 다만 그것들은 서로 상극하며 하나로 융합되지 않은 관계로 사지백해에 흩어져 있네.”
“알고 있습니다.”
“시주 몸에 가해진 금제를 풀 수만 있다면……그리하여 서로 다른 내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서로 상생시켜 융합시킬 수 있다면 시주는 무공을 되찾음은 물론 엄청난 내가고수로 탈바꿈할 것이네.”
“……”
사군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무공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뜰 뿐이었다.
이때 백발괴인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사군보의 얼굴을 탐미하듯 살폈다.
“노납이 시주에게 한 가지 고사를 들려주겠네.”
아련히 그의 두 눈에 옛일을 더듬는 것 같은 회한이 깔렸다.
***
50년 전이다.
소림사에는 한 절세기재가 있었다.
소림사 경내 사장(寺長)들로부터 기대와 흠모를 한 몸에 받던 그는 20세도 안 되는 약관의 나이였다.
허나 지닌 재주가 출중하여 소림 장년배 선배님들도 통과치 못한 달마삼관(達磨三關)을 통과했다.
그는 소림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강호에 출도 했다.
그의 이름은 혜진(惠進).
그의 뛰어난 협행과 무공은 당시 강호를 크게 위진 시켰다.
따라서 그를 배출시킨 소림사도 같이 명망을 누리게 되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의 나이 40세에 이르렀다.
강호에서는 물론 소림사 자체에서도 다음의 소림장문인은 그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해.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혜진은 만리장성 밖 막남몽고(漠南蒙古)에서 볼 일을 마치고 오대산을 넘어 중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혜진은 뛰어난 경공술에 의지해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때,
섭두봉 인근에서 비명과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혜진은 즉시 소리 나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혜진이 비명소리를 듣고 달려간 곳은 하나의 작은 장원이었다.
그곳에 아비규환의 참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1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장원 곳곳에 쓰러져 죽어 있었고, 악도들이 날뛰고 있었다.
악도들의 손에 죽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무공을 펼칠 줄 모르는 평민이었다.
혜진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크게 살계를 연 혜진은 악도들을 모두 처치하고 10여 명의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
구원을 받은 장원 주인은 혜진을 후원으로 데려 갔다.
그곳에는 이미 말라 버린 우물 하나가 있었다.
장원 주인은 우물 옆에 있는 기다란 줄을 우물 밑으로 내리고는 혜진에게 같이 내려가자고 말했다.
혜진은 우물 속에 어떤 내력이 있음을 짐작하며 그와 함께 우물 속으로 들어왔다.
우물 바닥에는 하나의 밀도(密道)가 이어져 있었다.
그들은 밀도를 지나 당도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곳에서 혜진은 한 명의 서역밀종의 라마승을 만나게 되었다.
장원 주인은 그 라마승을 향해 대례를 올린 후, 혜진을 가리키며 조금 전 장원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라마승은 상황을 듣고는 침음했다.
‘그들이 이곳을 알아낸 것 같습니까?’
그 질문에 장원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 나타난 자들은 산적 무리였습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장원 주인은 평범한 범인이다.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결국 라마승은 벽에 붙어 있는 야명주 하나를 뽑아 주었다.
‘경비무사를 고용하세요. 숫자는 많으면 더 이상하니까, 강한 자로 한 두 명 선발하세요.’
장원 주인은 야명주를 챙기며 감사를 표했다.
이어 장원 주인은 말했다.
‘백일 치 벽곡단을 곧 마련해서 내려보내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뭘요, 생명을 구해주신 은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장원 주인은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일어났다.
혜진은 라마승과 장원 주인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혜진도 따라 일어나려 했지만 라마승이 그를 붙잡았다.
‘잠시 얘기를 좀 하세.’
둘 만이 남게 된 지하세계.
라마승은 혜진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자신을 서역 상밀원사(上密院寺)의 다밀존자(多密尊子)라 하였다.
얘기를 나누면서 또한 다밀존자가 왜 이곳에 은거해 있는 지 그 사연도 알게 되었다.
50여 년 전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80년 전.
다밀존자는 당시 서역제일인 전륜대법사(轉輪大法師)의 진산보경인 패엽경을 찾기 위해 중원에 왔다.
패엽경(貝葉經)!
200년 전 서역 제일의 고수였던 전륜대법사의 절기가 담겨져 있는 무공비급이다.
그것이 중원 대도인 신투(神偸)에 의해 도난을 당한 것이다.
이에 분노한 서역고수들은 당시 서역제일신승인 다밀존자를 대표로 하여 중원으로 와서 가까스로 신투를 잡았지만, 이미 패엽경은 다른 사람 손에 들어간 후였다.
바로 지옥혈제가 패엽경의 새 주인이 되어 있었다.
지옥혈제(地獄血帝).
지옥혈제는 수백 년 간 강호에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명왕교(冥王敎)의 젊은 교주였다.
그는 역대의 교주를 능가하는 능력으로 중소 규모의 명왕교를 크게 부상시켰다.
당시 흑도에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묵혈방의 젊은 방주 묵혈대제와 함께 지옥혈제는 흑도 양대산맥을 이루어갔다.
다밀존자는 혼자 그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는 백도 무림의 한 절정 고수를 찾아간다.
천룡대제(天龍大帝) 양업(梁業).
마침 흑도가 점점 성세를 이루고 있는 모습에 백도 무림의 앞날이 걱정하고 있던 천룡대제는 함께 지옥혈제를 잡자는 다밀존자의 제의를 받아 들였다.
천룡대제와 다밀존자는 고심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친다 해도 지옥혈제를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오대산 밀지에 기관과 진법으로 점철된 함정을 파고 지옥혈제를 유인했다.
과연 지옥혈제의 무공은 극강했다.
천룡대제와 다밀존자는 그를 죽이지 못하고 겨우 함정에 넣을 수 있었다.
풍뢰동(風雷洞).
바로 이곳이다.
비록 가두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천룡대제는 지옥혈제와의 싸움 중 입은 내상으로 결국 시한부 삶을 살게 되었다.
다밀존자 역시 오랜 요양이 필요할 정도로 내상을 크게 입었다.
두 사람은 불안했다.
지옥혈제가 다시 힘을 길러 관문과 기관 함정을 깨고 세상에 나올 지도 모른다는 불안.
이에 다밀존자는 혈패경을 제자에게 주어 서역으로 돌아가게 하고, 스스로 관문을 지키기 위해 남았다.
천룡대제는 사비를 털어 풍뢰동 위에 작은 장원을 만들고 그곳에 평민들을 살게 했다.
세상으로부터 풍뢰동을 감추기 위한 눈속임이다.
과연 두 사람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함정에 빠진 지옥혈제는 죽기는커녕 더욱 광기마저 보이며 풍뢰동 밖으로 빠져 나오려고 했다.
이를 막기 위해 천룡대제는 남은 생을 기관 함정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데 쏟다가 10년 전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은 다밀존자만이 풍뢰동을 지켰지만 그 역시 입적을 앞둔 상태.
마침 그때 운명적으로 혜진이 풍뢰동으로 온 것이다.
다밀존자는 혜진에게 자신의 뒤를 부탁했다.
혜진은 갈등했다.
자신이 만약 승낙을 한다면 영원히 바깥세상과 단절하고 이곳에서 일생을 마쳐야 할 것이다.
그의 나이는 한창인 40세다.
그는 소림 사장들의 기대를 한 몸에 이어받고 있으며 또 소림사 천년 기업을 짊어져야 할 몸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지금까지 그가 강호에서 쌓아온 모든 행적들……
강호인들의 존경을 받으며 그는 성승으로 추앙받았던 그 찬란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명예!
존경!
이 모든 것을 한 몸에 받을 자신이 아닌가.
이 모든 것을 어찌 포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만약 지옥혈제가 이 금제에서 풀려나면 그 뒤에 밀어닥치는 중원의 혈겁은 그 누가 막을 것인가?
혜진의 안색은 수차례 변화를 반복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두 눈에 정광을 내뿜으며 비장하게 입을 떼어 말했다.
‘이 또한 부처의 뜻……아미타불……’
혜진은 다밀존자의 뒤를 이어 유지를 받들기로 한 것이다.
그 후, 혜진은 이곳에 머물며 다밀존자가 전수해주는 서역 밀종무학을 익히기 시작했다.
1년 후.
다밀존자는 그가 예언한 바대로 입적했다.
세월이 흘렀다.
30년의 세월은 물처럼 흘렀다.
혜진은 30년 동안 풍뢰동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혜진.
사군보는 이 긴 얘기가 끝났을 때 눈앞의 백발괴인이 바로 소림사 기재였던 혜진이라는 것을 알았다.
경탄과 경이가 그에게 엄습해 들었다.
그것은 모든 명예를 벗어던진 채 오직 강호의 혈겁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일념으로 풍뢰동을 지켜온 혜진에 대한 경외가 결코 아니었다.
지옥혈제!
지금으로 따진다면 정확히 80년 전의 절대고수다.
그가 이끄는 명왕교의 무공을 공교롭게도 사군보가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명왕교(冥王敎).
묵혈대제가 흑도를 통일하기 이전 흑도의 하늘이었다.
그러나 교주인 지옥혈제의 돌연한 실종으로 인해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지도자가 없는 조직은 붕괴되기 마련.
명왕교의 뿌리가 흔들리자 소속되었던 고수들이 각기 세력을 이끌고 독립했다.
지금은 그 이름만이 전설처럼 강호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로 인해 흑도는 분열하였다.
묵혈대제 사악이 강호에 등장할 때에는 모두 4개의 세력으로 쪼개져 있었다.
그것을 다시 통일시킨 게 묵혈대제 사악이다.
그 과정에서 명왕교의 한 뿌리가 묵혈방에 입문했다.
묵혈팔겁 가운데 한사람.
발률천왕(拔律天王).
그는 명왕교가 분열할 때 자신을 따르는 세력들을 이끌고 독립했던 고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발률천왕은 명왕교의 마공으로 묵혈방에 투신, 묵혈팔겁에 당당이 올랐다.
그런 발룰천왕은 사군보를 탄생시킨 열여섯 명의 고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결국 사군보는 지옥혈제의 무공을 익힌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렇게 하여 명왕교의 마공을 익힌 사군보가 이곳에서 지옥혈제에 대한 고사를 듣게 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