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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하마제 15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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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혈하마제 15화

혈하-第 15 章 우물 속의 기연

 

석실이다.

흙벽을 파고 벽을 돌로 쌓아 만들었다.

따로 문을 두지 않고 그저 장방형으로 만든 공간.

그 안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길게 자라 제멋대로 헝클어진 백발.

수염은 머리카락보다 더 길게 자라 가슴팍을 완전히 덮었다.

그 인영은 수염과 머리로 인해 용모를 알아볼 길이 없는데 유난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붉은 포단만이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분명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등 같이 빛나는 커다란 눈이다.

그 눈동자에는 혜광이 일렁이고 있었다.

백발 괴인은 사군보를 한참 응시하다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자네는 어찌하여 이곳까지 들어올 수 있었느냐?”

그 창노한 음성이 막 끝난 순간이었다.

“끄아악!”

우르릉- 우릉!

소름끼치는 괴성과 함께 이들이 있는 석실이 금세 무너질 듯 마구 흔들거렸다.

드드드드.

지진이 난 것처럼 땅까지 흔들렸다.

“헉!”

사군보는 깜짝 놀라 흔들거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어 비틀거렸다.

백발괴인은 이것을 보자 침중하게 탄식을 터뜨렸다.

“아…… 저 노괴의 무공이 이제 신화경에 이르렀으니, 풍뢰동(風雷洞)에 펼쳐진 금제를 돌파하는 것이 시간문제구나.”

중얼거리듯 탄식하며 내뱉는 백발괴인의 두 눈에 비통한 빛이 서렸다.

그러더니 그는 의혹이 어린 눈으로 자기를 응시하고 있는 사군보를 쳐다보았다.

“아!”

그의 얼굴에 한 줄기 경이의 표정이 뗘 올랐다.

“그래. 시주가 이곳에 들어온 것은 모두 하늘의 안배인 듯 싶구나.”

느닷없는 이 말에 사군보는 움찔하며 무엇이라 대꾸를 하려 했다.

그러나 강철이라도 꿰뚫을 것 같은 백발괴인의 안광에 그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백발괴인은 다시 말했다.

“소 시주, 시주는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경위와 시주의 내력에 대해 노납에게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있는가?”

사군보는 스스로 ‘노납’이라 칭하는 말에 자세히 백발괴인을 살폈다.

무성한 수염과 머리카락 사이로 내비치는 다 떨어진 옷자락은 중들이 입는 옷, 가사(袈裟)였다.

‘스님이셨구나.’

사군보는 상대의 자상한 어투로 보아 나는 나쁜 인물이 아니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분을 함부로 남에게 말하지 말라는 삼뇌마자 막여천의 말이 떠올라 대강 얼버무렸다.

“일신상의 이유를 가문에 대한 내력을 말하지 못함을 이해해 주십시오. 나는 사군보라 하오만……스님은 누구신지요?”

여전히 방약하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백발괴인은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은 듯 탄식만 불어낼 뿐이었다.

“우리의 만남이 시주에게 복이 될지 화가 될지 노납은 더 이상 선택할 여지가 없군, 그저 노납은 안타까울 수밖에……”

사군보는 그 중얼거림의 의미를 몰라 몹시 의아했다.

한 가지 확실하다.

이 눈앞의 백발괴인이 신비한 내력을 지닌 절세고인이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었다.

백발괴인이 위엄이 깃든 음성으로 사군보에게 말했다.

“시주, 노납이 잠깐 시주의 맥을 살펴봐도 괜찮겠나?”

사군보는 뜻밖의 제안이라 움찔 놀랐다.

“내 맥을 살피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맥문(脈門).

심장과 연결된 혈이다.

여길 잘못 누르면 심장마비로 죽는다.

즉, 사혈이란 말이다.

난생처음 본 자가 느닷없이 맥을 잡겠다고 하니 놀랄 수 밖에.

백발괴인은 가벼이 웃었다.

“오해하지 말게.”

지금 오해하지 않게 생겼어?

당신 같으면 네! 하고 바로 손을 내미냐?

“시주의 안색을 보니 단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그리 말했네. 안 그런가/‘

“그걸 어떻게!”

얼굴만 보고 안다고?

믿을 수 없었다.

“믿어지지 않는 눈치군. 심맥이 틀어지고, 단전이 망가진 게 아닌가?”

“그러니까……정말 얼굴만 보고 알 수 있다고요? 그게?”

“내 말이 틀리지 않았을 텐데.”

“너무 정확하니 더 이상하잖아요.”

“허허허…….”

“혹시……”

“뭘 궁금해 하는지 알겠네. 일단 맥을 봐야 알 것 같지만 혈색을 보아하니 아주 가망이 없는 건 아닐 것 같네.”

“내공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까요?”

“봐야지 그건. 그러기 위해서는 시주의 체내 진력이 어느 정도 수위를 지니고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네.”

사군보는 방금 그의 말을 잘못 듣지 않았나 싶어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내 단전을 다시 복원시킬 수 있다, 이 말입니까?”

“그러네.”

백발괴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군보는 기쁜 마음에 망설이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조심스레 사군보의 손목을 잡은 백발괴인은 스르르 눈을 감는다.

“……”

그러나 잠시 후,

번쩍-!

그는 돌연 눈을 번쩍 떴다.

백발괴인은 사군보의 얼굴을 뚫어져라 살피더니 급히 허공으로 시선을 돌리며 부르짖듯 탄성했다.

“아…… 이것이 정녕 하늘의 뜻이란 말인가?”

백발괴인은 사군보가 마공을 익힌 것을 알아냈다.

마공을 익힌 자는 백발괴인에게는 적이나 진배없다.

평생을 마와 싸워온 사람이 바로 백발괴인이다.

그러나 백발괴인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노납이 입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오늘, 시주를 이곳에 보낸 것이 하늘의 뜻이라면……아미타불……대체 하늘은 뭘 원하는 것일까?”

사군보의 무공이 온전했었다면 백발괴인은 사군보를 보자마자 살수를 펼쳤을 것이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사군보는 단전이 망가져서 내공이 흩어졌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청년일 뿐이다.

무공 한 줄 익히지 않은.

그렇기에 백발괴인은 하늘의 뜻을 운운한 것이다.

한편, 백발괴인의 이런 모습에 놀라 황급히 물었다.

“혹시 내 몸에 무엇이 잘못된 것이라도……”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백발괴인은 크게 광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하!”

백발괴인의 웃음 속에는 허탈함이 가득했다.

“평생을 제마멸사의 길에 두었거늘. 노납의 후사를 마(魔)에 맡기게 되었구나.”

사군보는 정신이 없었다.

단전을 봐준다 하더니 갑자기 하늘의 뜻이라니?

제마니, 멸사니 후사라니……

혼자 중얼거리는 백발괴인.

하지만 백발괴인의 중얼거림 속에서 사군보는 눈앞의 인물이 불가의 고승이란 점과, 그가 자신의 내공의 근본인 마기를 알아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치 늙은 고승.

그의 말대로 평생 제마의 길을 걸었다면 자신의 마지막을 흑도의 후예인 사군보에게 걸어야 한다는 것이 허탈하고 허망할 수 있으리라.

사군보는 백발괴인의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다.

스스로 감정을 저어한 백발괴인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노납이 시주의 몸을 살피니 시주의 몸에 있는 신양맥(神陽脈)과 태음맥(太陰脈)사이에 있는 비혈(肥穴) 세 군데가 제혈 되어 있었네. 이로 인해 단전은 제 기능을 잃었지. 마치 물을 막은 저수지의 제방이 무너져 물이 넘쳐나듯 시주의 내공은 흩어지고 모래알처럼 갈라져 있을 것이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운기를 해도 모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마 시주는 예전에 200년 가량의 내공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네.”

“그걸 어떻게!”

“그 200년 내공은 각기 성질이 다르더군. 마기로 뭉쳐져 있긴 했지만 달랐네.”

그걸 맥만 잡고 알아낸다고?

“노납이 시주의 맥을 짚어보았지 않았는가? 지금은 내공이 빠져나가 텅 빈 단전이지만 그 잔여는 남아 있어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허허허……너무 실망 말게. 보아하니 시주의 내공은 10여 명의 고수들이 자신의 내공을 시주에게 나눠져 형성된 것으로 보이네만……맞는가?”

“그것까지!”

사군보는 대경실색했다.

사군보는 16인의 죽음과 맞바꾼 내공을 지니고 있었다.

서로의 성질이 다른 내공들인지라 양적으로는 근 200년에 해당하는 내기지만, 연단이 되거나 정제가 된 상태가 아니다보니 질적 효과는 크게 보지 못한 그였다.

“아미타불……그들은 각기 상반된 무공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며, 한 결 같이 패도적인 내공을 지닌 자들이던데?”

“그렇습니다 만……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말씀하시게.”

“스님이라 칭하겠습니다.”

“스님이 맞네. 허허허……”

“스님께서는 내 단전을 살폈고, 내가 익힌 대부분의 내공의 본질까지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잠시나마 고민하는 게 역력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고민은 내 단전을 복구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그런 문제죠?”

“너무 단적으로 말하는군.”

“지금 제 입장을 고려한다면 돌려 말할 시간도 그럴 필요도 없지요.”

“맞네. 사실 노납은 자네가 흑도인이란 사실에 갈등했었네. 하지만……아미타불.”

백발괴인은 다시금 말을 끊었다.

사군보는 정색하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스님이 내 맥을 짚어봤다면 다 알 것이 아닙니까. 스님 생각대로 난 마공을 익혔습니다! 자, 긴말 말고 정녕 내, 내공을 되살릴 수 있습니까?”

“아미타불……예전의 노납이었다면 시주를 살리기는커녕 살계를 열어 시주 또한 이곳에 가둬놓았을 것이나…… 이미 노납은 늙은 몸인데다가 입적을 눈앞에 두고 시주를 만나게 해준 것은 하늘의 뜻, 시주의 내공은 분명 살릴 수 있네.”

“아……!”

사군보는 기뻤다.

백발괴인이 입을 열었다.

“사실 이건 하늘의 뜻이라네. 노납이 크게 손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시주는 단전을 다시 복구할 수 있었네. 물론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는 미지수지만.”

“자연스럽게 복구? 난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주에게 내공을 전이해 준 자 가운데 시주의 몸에 금제를 가한 자가 있네.”

“금제라니요?”

사군보는 흠칫했다.

내공을 전승한 사람들은 전부 스승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 중 자신의 내공에 금제를 가한 사람이 있었다니?

믿기 어려웠다.

“결코 시주에게 해가 되는 금제는 아니었네.”

해가 되지 않는 금제?

“그 금제는 시주의 내공을 억제하고 저어하는 금제로, 아마도 모종의 일로 시주가 폭주하게 되어 마인이 되는 경우가 생길 때를 예방하기 위한 장치 같았네.”

“폭주? 예방?!”

“폭주라 함은……각기 성질이 다른 내공이 어느 한순간 시주 체내에서 돌변할 수 있다 함을 말함이네. 감정의 변화……그게 가장 위험하지.”

쉽게 표현을 한다면 평소에는 서로 잘 지내다가 한 순간 어떤 계기가 마련됨에 따라 그 성질이 폭발한다는 말이다.

그 계기 중가 장 무서운 것이 감정의 변화다.

분노.

살기.

증오와 같은 극단적인 감정은 마기를 크게 성하게 한다.

하나도 아니고 무려 16종류의 마기다.

그 중 하나라도 감정의 변화에 반응한다면 사군보에게 해악으로 변질될 수 있다.

금제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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