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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하마제 11화

무료소설 혈하마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혈하마제 11화

혈하-第 11 章 칠대문파의 보물들

 

사군보는 신음처럼 소리쳤다.

“노물! 어서 죽여라! 지금 나를 죽이지 않으면 훗날 네놈에게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다.”

우욱!

사군보는 너무나 큰 격분에 다시 피를 왈칵 토해냈다.

“불쌍한 놈!”

절둑 절둑.

망가진 철족을 겨우 지탱하며 다가오는 염왕.

염왕은 천천히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그가 사군보를 죽인다는 것은 여반장이었다.

생과 사는 그의 손바닥에 있었다.

그런데 돌연 하늘에서 으스스한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염왕! 네놈이 전날 천축(天竺)으로 꽁무니를 빼고 도망간 줄 알았는데 죽지 않고 오히려 더 악랄해져서 중원에 다시 나타났구나.]

 

동쪽이냐? 

서쪽이냐?

대체 어디서부터 들려오는 지 알 수 없는. 

무척 무거우면서도 스산한 기운이 깃든 목소리다.

염왕은 안색이 크게 변했다.

“누구냐?”

 

[노부가 누구인지 짐작할 만 할 텐데……]

 

“개 콧구멍 같은 놈! 얼굴짝을 보이지 않고 숨어만 있는데 어떻게 네놈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단 말이냐?”

 

[후훗…… 네놈이 노부에게 주둥아리를 마구 놀리는 것을 보니 죽을 때가 다되었나 보구나.]

 

염왕은 목에 핏대를 곤두 세웠다.

“육시랄 놈아! 나오너라! 숨어서 천리전성통(千里傳聲通) 수법으로 노부를 놀린다고 네놈을 찾지 못할 것 같으냐?”

 

[후후훗……어리석은 노물!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인다고 속이 후련하더냐?]

 

염왕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네놈이었냐?”

 

[무슨 말이냐?]

 

“네놈이 칠대문파 장문인들을 시살했느냐 말이다.”

 

[후후훗……]

상대 쪽에서는 여전히 웃음소리만 들려왔다.

염왕은 숨을 씨근덕거리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오너라! 나오너라!”

그러면서도 괜히 사방으로 쌍장을 밀어냈다.

펑! 펑!

사당이 무너지고, 주변 나무들이 힘없이 부러져 나갔다.

나무에 앉아 있던 눈꽃이며 얼음이 부셔져 흩날렸다.

 

[염왕, 천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네놈에게 좋을 것이다.]

 

“지랄하고 있네! 흐흡!”

염왕의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안색이 창백해져갔다.

은연중 염왕은 자신의 고함 속에 혈곡후의 마음(魔音)을 섞어 보냈다.

그러나 오히려 상대는 마음에 끄덕 없고 자신에게 더욱 강한 중압감이 밀려왔다.

염왕을 흠칫했다.

“이……이놈……네놈이……”

염왕의 음성은 크게 떨리고 더듬거렸다.

 

[살고 싶다면 어서 도망가거라! 마지막 기회다. 만약 꽁지를 말지 않는다면……흐흐흐……]

 

염왕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믿지 못한다!”

 

[후후훗……그렇다면 한 가지만 더 보여 주겠다. 그 후에는 네놈의 목숨은 네놈이 결정해야 할 것이다.]

 

“흥!”

염왕이 얼음처럼 싸늘히 코웃음을 꺼내는 순간, 그의 앞으로 괴변이 일어났다.

파팍-!

마치 그곳에 두 개의 큼지막한 발자국이 생겨났다.

사람은 없다.

그 어떤 사물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사람 발자국이다.

푹! 푹!

사람 발자국은 한 발, 한 발 염왕에게 다가왔다.

마치 투명인간이 걸어오는 것 같았다.

염왕의 발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건만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나 할까?

그 순간이다.

무엇이 떠올랐는지 한 순간 염왕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이내 새까맣게 변해 버렸다.

“허억! 이것은 멸백보(滅魄步)! 그럼 당신은!”

그의 입이 열리기도 전이다.

하늘이 쩌렁쩌렁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염왕! 감히 네놈이 내 이름을 말할 자격이 있다고 보느냐?]

 

“허억!”

절룩. 절룩.

염왕은 황망히 뒤로 물러섰다.

그는 쓰러져 있는 사군보를 힐끗 바라 보고는 더 이상 말없이 왼쪽 숲으로 몸을 솟구쳐 나갔다.

휘이익-!

천하를 수중에 넣고 피로 물들일 것만 같았던 염왕이 꼬리를 말고 도주한 것이다.

 

조용했다.

사위는 쥐죽은 듯 고요 속에 잠겼다.

오직 사군보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사군보는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엔가 그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있을 텐데 그의 눈에는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날 왜 따라다니는 거요?”

……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누구인지 모르나 은혜를 받고 그냥 갈 나는 아니요. 모습을 드러내요.”

……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꽤 오랫동안 주위를 살폈으나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한 사군보는 곧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상대가 떠났음을 간파한 것이다.

“후……내가 겨우 이정도란 말인가?”

태음산을 내려올 때만 해도 묵혈방을 붕괴시킨 자들을 단숨에 쳐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강호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고수에게 농락을 당했다.

이어 무진곡에서는 지랄마군 무강운과 시비 끝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멍하니 그가 떠나는 모습만 봐야만 했다.

거기에다가 과거 선친에게 패했던 염왕에게 당했다.

물론 그가 상대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초절정의 고수들이다.

남들이 들으면 그야말로 기함을 할 절정 고수들.

하나같이 선친 묵혈대제 사악과 동 시대를 풍미했던 패자들이다.

그런 자들과 손속을 나누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천하가 진동할 일이거늘 사군보가 갖는 자괴감은 극심했다.

그는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일단 내상부터 치료하자.”

그는 부셔진 사당을 바라보았다.

치열했던 격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사당은 반이나 부셔져 있었다.

그래도 겨울의 찬 공기는 어느 정도 막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힘겹게 사당 안으로 들어가는 사군보.

 

**

 

“크으!”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는 금창약을 상처가 깊은 옆구리에 바르자 지독한 극통이 밀려왔다.

불로 지지는 것 같은 고통.

이를 악 물고 참아낸 그는 옷을 찢어 옆구리를 감쌌다.

이어 금창약을 상처 난 곳곳에 바른다.

옆구리 못지않게 심한 곳은 팔꿈치다.

뼈가 부러진 듯 퉁퉁 부었다.

금창약으로 생채기를 치료한 후 나무조각을 주워 부목으로 대고 찢은 옷으로 칭칭 감았다.

까까스로 외상을 임시조치한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쓰으. 쓰으.

날숨과 들숨을 거듭한다.

심호흡으로 대기의 기운을 흡수해 단전으로 몰고, 단전을 열어 그 기운을 임독양맥으로 돌렸다.

일주천……

이주천……

거듭되는 운기조식으로 내상을 다스리기를 꼬박 하루.

천천히 눈을 뜬 사군보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급한 대로 내기는 잡았다.”

그는 옆구리 상처와 팔꿈치를 살폈다.

다행히 곪지는 않았고, 팔꿈치 붓기는 많이 가라앉았다.

“이거 큰 도성으로 가서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하겠네.”

삼뇌마자 막여천의 지식 가운데 의술도 상당부분 있었다.

칼밥을 먹는 강호인치고 응급조치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강호인은 검산도림 속에 사는 삶이니까.

그러나 현재 사군보의 상처는 깊었다.

“읏차!”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사군보는 곧 난색을 표했다.

“그나저나……저 분들 시체는 어떻게 하지?”

칠대장문인들의 시신.

추운 날씨라 부패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두면 들짐승들의밥이 될 판이다.

결국 사군보는 그들을 매장해 주기로 결정했다.

 

사당 밖 땅은 곳곳이 크게 파여 있었다.

굳이 땅을 파지 않아도 될 정도로 치열했던 혈투 흔적이다.

그 중 가장 깊은 곳에 제일 먼저 철지화상의 시신을 가져왔다.

“죄송합니다.”

사군보는 시신의 옷을 뒤졌다.

신분을 나타내는 명패나, 신물 등을 찾는 것이다.

“음……이 전낭은 내가 쓸게요.”

죽은 자에게 돈이 뭐 필요하겠는가.

“이건 장문인을 상징하는 장령인가 보네.”

손바닥만 한 옥패.

그 중앙에는 장인(掌印)이 양각되어 있었다.

“이런 걸 왜 갖고 다니지?”

뜻밖에도 철지화상 품에서는 아미파의 독문절기인 복호권보(伏虎拳譜)가 있었다.  

아미 복호권법은 소림 백보신권과 비견될 정도로 절기다.

철지화상의 절기는 지공이다.

그는 지공과 함께 사용할 복호권을 평생 연구한 학승이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품에는 원본을 필사한 복호권보가 있었다.

“이건 내가 좀 볼게요.”

사군보가 익힌 무공은 모두 마공이다.

하나같이 패도적인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삼뇌자마 막여천은 항상 말했다.

 

-음과 양의 조화로 세상이 균형을 잡듯, 무공 역시 한 가지 길에 편향하면 조화를 이루기 못한다. 기회가 닿는다면 정종무학도 살펴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 외 자잘한 것이 나왔다.

이 모든 것을 챙긴 사군보는 그제야 철지화상의 시신을 구덩이 밀어 넣었다.

이어 다른 사람의 시신을 가져왔다.

7인의 장문인들.

공동(共同) 은영진인(隱影眞人).

아미(峨嵋) 철지화상(凸旨和尙).

화산(華山) 동근도장(東根道長).

곤륜(崑崙) 진천자(震天子).

점창(點蒼) 화안진인(華安眞人)

청성(靑城) 혜윤도장(兮允道長).

종남(終南) 구주일관왕(九州一冠王) 나정각(羅政各).

그 시신을 수습하면서 사군보는 그들의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증표와 유품을 찾았다.

아미 장령패와 복호권보.

공동 은영진인이 사용했던 복마검(伏魔劍).

화산 자하부(紫霞符).

곤륜 태극홀(太極笏).

종남 전진목검(全眞木劍).

청성 노군족(老君足).

점창 생사필(生死筆)과 생사필법.

그 외 제법 많은 은자 등과 잡다한 물건들을 수거한 뒤 7구의 시신을 합장한 사군보.

그는 흐르는 땀을 소매로 닦았다.

“명색이 흑도제일방파였던 묵혈방의 소종사가 칠대문파 장문인들의 모를 만들어 줄 줄이야. 세상 참 요지경이군.”

신분상 묵혈방의 소종사지만 사실 칠대문파와는 큰 은원관계도 없다.

또한 오랜 강호 관습상 백도문파라면 무조건 앙숙이니, 숙적이니 하는 마음가짐도 없다.

사람의 도리.

그것만 할 뿐이다.

“에휴~ 날이 또 저물었네……”

사군보는 주변을 휘 둘러보고는 천천히 사당을 떠났다.

 

**

 

보름달을 향해 가쁘게 달려가는 달빛은 시리도록 밝았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사군보의 마음은 더 차가웠다.

“아직 멀었다……이 실력으로는 복수는커녕 원수 손에 죽기 딱 맞다.”

가끔씩 욱신거리는 상처들.

그 고통이 더욱 그를 채찍질했다.

“묵혈방의 멸망과 관계가 된 자는 모두 죽일 것이다.”

사군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산한 한기가 그의 눈에서 물씬 풍겨 나왔다.

이때다.

가까운 숲 속에서 여인의 웃음소리가 길게 들려왔다.

“호호호……누굴 그렇게 죽이겠다는 것인가요? 나도 죽이려나요?”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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