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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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7화
혈하-第 7 章 사당의 시신들
“후우~”
사군보의 입에서 한숨이 길게 새어 나왔다.
지독한 압박이 사라진 것이다.
지랄마군이 고개를 꺄우뚱하며 말을 꺼냈다.
“제법이구나. 1초를 받아 내다니.”
지랄마군은 예상외의 선전에 어리둥절했다.
그가 조금 전 펼친 압살마공(壓殺魔功)은 왕년에 주로 사용하던 성명절기다.
상대방을 그냥 쥐포로 만들어 버리는 극랄한 수법이다.
그걸 단순히 내공을 바탕으로 한 호신강기로 막았다.
사군보는 심호흡하며 진탕하는 내기를 가라앉혔다.
“과연 무섭군요. 지랄마군의 압살마공은 가공할 중압감을 주어 상대를 떡 주무르듯 이겨 놓는다더니. 하나……”
“하나?”
“압살마공은 지랄마군의 성명절기가 되어 있었기에 이미 강호에서는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수법이 만들어 진지 오래입니다.”
“기이한 일이군.”
“뭐가 말입니까?”
“노부의 압살마공을 견뎌낼 수 있는 무공은 세상에 단 세 개뿐이다.”
“세 개씩이나 있는 거면 네 개도 있을 수 있고, 다섯 개도 있을 수 있는 법이지. 안 그래요, 노인장?”
“그게 말이 안 된다고.”
지랄마군은 정색했다.
“불문의 금강부동(金剛不動)이 그 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것을 펼치면 온몸에서 금빛 서광이 뻗어 나오는데 네놈은 아무런 빛도 일으키지 않았다. 결국 그건 아니고……”
사군보가 의연히 팔짱을 끼며 지랄마군의 말을 받았다.
“물론. 노인장이 생각하고 있는 또 다른 것! 비망폭(飛網爆) 역시 아니고.”
“어? 비망폭을 아냐? 그래, 그게 두 번째다.”
지랄마군은 놀란 눈으로 말을 이었다.
“그래, 그것도 아니다! 그럼 남는 것은 하나인데……”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말문이 터졌다.
“인형벽공(燐泂璧功)!”
지랄마군의 얼굴이 똥 씹은 사람마냥 일그러졌다.
“네놈은 혹시 인형용장(刃泂龍將)과 어떤 사이냐?”
“그 사람은 나를 소종사라 불러요.”
“뭣이라고? 인형용장 학동인이 네놈을 소종사라고 칭한다고!”
지랄마군은 눈을 부릅떴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인형용장(刃泂龍將) 학동인(學童引).
그는 묵혈방 수석호법이다.
묵혈팔겁 중 한 사람이다.
묵혈방이 붕괴되는 날 몇몇 고수들과 함께 실종되었던 그가 눈앞의 애송이를 소종사라고 부른다면.
“정말 인형용장 학동인, 그 놈이 네놈을 소종사라고 부른단 말이지?”
지랄마군은 재차 확인했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요.”
“그런 혹시 네놈 성이 사 씨냐?”
“내 이름은 사군보. 이젠 내가 누군지 알 것 같아요?”
“에그머니나!”
지랄마군은 입을 쩌억 벌린 채 닫을 줄 몰랐다.
사 씨란다……
인형용장 학동인이 소종사라고 부르는 사 씨 성을 쓴단다.
지랄마군은 마름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그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뜸을 들이자 사군보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당신이 지금 생각하고 계신 분이 바로 내 선친이십니다.”
“허억-!”
기겁을 하며 놀란 지랄마군은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잠시 멍한 눈으로 사군보를 보던 그가 갑자기 뒤로 풀쩍 물러났다.
“나머지 2초 승부는 훗날 겨루자.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게 될 것이다. 켈켈켈……”
스스스……
마치 안개가 끼듯 그의 몸 주위로 연무가 피어나더니 이내 그의 몸은 연무 속에 묻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사군보는 어이가 없었다.
“승부를 가려봤자 패할 것이 뻔하니까 도망치는 거요?”
멀리 먼 하늘에서부터 들려오는 지랄마군의 웃음소리는 비웃음이었다.
“큭큭큭! 노부가 비겁하다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마라. 노부가 물러나는 게 아니라 네놈과의 비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생겨 강호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재미있는 일?”
“켈켈켈…… 그래! 10년 전 묵혈방이 개박살났다는 것을 듣고 사실 속이 쓰렸다. 묵혈대제는 그나마 이 늙은이가 존경하던 자 중 하나인데 그가 믿었던 수하들에게 배신당했다는 것에 가슴이 아팠거든. 그런데 그의 아들이 나타났으니 당연히 재미있는 일이지.”
“그게 재미있다고?”
“어쨌건, 앞으로 네놈 행보를 지켜보겠다. 클클클.”
지랄마군의 웃음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진짜 지랄이네!”
모든 사람이 다니는 산길을 자기 은거지라고 우기면서 덤비더니만 이젠 내기고 뭐고 다 팽개치고 훌쩍 떠났다.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란 강호 소문이 딱 맞았다.
사군보는 고개를 저었다.
“어쨌건 나쁘지는 않았다.”
정말 나쁘지 않았다.
지랄마군의 무공은 초일류다.
그의 성명절기인 압살마공을 순수한 내공의 힘으로 버텼다.
처음으로 내공을 발현시킨 결과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사군보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
사군보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무작정 걸음을 떼어놓기를 얼마큼일까.
그 자신도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방향을 돌리거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망연히 발길 닿는 데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어느 죽림을 지났을 때다.
돌연 눈앞의 기암괴석이 널려졌다.
그 왼쪽으로 사당 하나가 외롭게 눈에 띄었다.
사당은 오랜 풍상에 시달려 언제라도 거친 바람이 불면 폭삭 쓰러질 것 같았다.
사군보는 사당을 멀찍이 바라보며 그냥 지나치려다 걸음을 뚝 멈췄다.
‘피 냄새?’
차가운 겨울 밤공기에 피비린내가 풍겨지는 것을 맡은 것이다.
사군보의 눈살이 꿈틀거렸다.
“사당에서 나는 피비린내다.”
이상한 일이다.
이미 낡을 대로 낡은 사당 안에서 생생한 피비린내가 맡아진다는 것은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사당을 잠시 바라보다 그곳으로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았다.
사당으로 가까이 갈수록 피비린내가 더욱 진해졌다.
급기야는 안에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사군보는 몸을 흠칫하고는 암암리 호신강기를 일으켜 사당의 계단을 올라갔다.
삐-걱-!
반 쯤 열려져 있던 문이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스산한 분위기.
안에서 입가에 피를 흘리는 흡혈귀가 툭 튀어나와 사군보의 목을 노리고 덮칠 것만 같았다.
사군보가 사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흠칫했다.
“이건!”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시신들.
하나…… 둘…… 다섯…… 일곱……
모두 7구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사지가 잘린 자.
배가 갈라져 창자가 새어나온 자.
특히 얼굴은 망치를 내리친 것처럼 모두 문드러져 있었다.
한마디로 악랄한 살수에 죽임을 당한 모습들이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지?”
사군보는 미간을 잔득 찌푸리고 시신들을 둘러보았다.
걸친 옷을 보아 화상, 도인, 속인 등 각양각색의 신분들이었다.
다만 얼굴이 피투성이라 그들이 누구인가를 알 수는 없었다.
“휴……”
사군보의 입에서 한숨이 저절로 새어나왔다.
비록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남의 일 같지가 않은 마음이었다.
시신들을 보니 10년 전 살겁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원수! 원수 놈……’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다.
“으……”
들릴까 말까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사군보가 고개를 돌렸을 때 7개의 시신 중에서 하나가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아! 산 사람이 있었구나!’
본능적으로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 자는 역시 얼굴이 망가져 시뻘겋게 피딱지가 달라붙어 있었다.
머리카락이 없는 민대머리.
걸친 것은 승복이다.
‘화상?’
상대는 중이었다.
“여보시오!”
“살……살려 줘……”
사군보는 그의 쪼그려 앉아 상처를 살폈다.
갈라진 배에서 오장육부가 꾸역꾸역 새어나와 있었다.
‘틀렸다. 이 화상은 곧 죽는다.’
오장육부는 이미 파랗게 색이 변해 있었다.
독이다.
피도 응고가 되어 있었다.
피가 돌지 않으면 심장이 멈추고 뇌가 정지된다.
결국 이 화상의 목숨은 일각도 남지 않았다는 것.
“죄송하지만 당신을 살릴 방도가 내게는 없군요.”
“나, 난……아미……철지(鐵指)……”
“아미파 철지! 그럼 아미파 장문인입니까?”
사군보는 기겁했다.
상대가 설마 아미파 장문인일줄은 몰랐다.
“크으……우린……칠대문파……장령들……”
“장령!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칠대문파 장문인들!”
“그, 그렇다네……”
사군보는 자신도 모르게 죽은 자들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도복 차림의 시신은 모두 다섯.
각기 특색이 있는 도복을 통해 그 신분을 알 수 있었다.
도복 소맷자락에 매화문양이 있는 걸 보니 화산파다.
회색 도포에 폭이 긴 것을 보니 곤륜파다.
황색 도복인 것을 보아 공동파다.
푸른 색 도포는 점창.
“무당이 없다……”
나머지 하나의 시신은 평복에 긴 장포를 걸쳤다.
“그럼 종남파……”
구대문파 가운데 불가는 소림과 아미다.
화상은 아미파 철지화상뿐이었다.
결국 이 자리에는 소림과 무당을 제외한 칠대문파 장문인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정과 사.
백과 흑.
강호에 서로 존립하면서 앙숙처럼 지내온 자들이다.
사군보는 묵혈대제 사악의 아들.
흑도의 뿌리다.
그러나 칠대문파 장문인들이 오대산 깊은 산골에서 흉수를 당했다는 사실 앞에는 놀람과 의혹을 금치 못했다.
“대……대하교……”
“대하교?”
대하교(大河敎).
교란 단체명을 쓰는 것을 보니 종교집단일 가능성이 깊다.
강호의 역사 속에 수많은 혈사가 존재하지만 종교집단이 일으킨 혈사는 그 폐해(弊害)가 무척 깊다.
단순한 무력에 의한 패권이 아닌 사람을 조종하고, 민간인들까지 혼돈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고 가기 때문이다.
사군보는 10년 동안 무공을 익히면서 강호가 돌아가는 내력을 꿰뚫고 있었다.
그건 16인의 묵혈방 고수들이 복수를 위해 강호 소식을 지속적으로 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느 정보 속에서도 대하교란 집단의 이름은 없었다.
“자세히……자세히 말해 봐요?”
“대하교는……천하를……끄륵!”
철지화상의 입에서 피거품이 토해져나왔다.
“이봐요!”
사군보가 철지화상의 맥을 잡으려는 순간이다.
철컹! 철컹!
날카로운 소리.
마치 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사당 밖에서 들려왔다.
흠칫 놀란 사군보는 기감을 열었다.
“누군가가 온다!”
실타래처럼 풀린 생사탄기의 기감에 걸린 것은 인기척이다.
“빠르다! 경공의 속도로 보아 고수다!”
생사탄기를 거두는 즉시 사군보는 주변을 살폈다.
기감에 걸린 인기척은 벌써 사당입구에 닿아 있었다.
철지화상을 안고 나갈 수도 없다.
혼자 나가면 나가는 즉시 이곳으로 오고 있는 자와 부딪친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멍하니 여기 있기도 그랬다.
그때 그의 눈에 사당 신전을 모신 제단이 보였다.
제단은 크고 넓었다.
급히 가보니 제단 뒤로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서둘러 제단 뒤를 본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여기서 상황을 지켜보자.’
지은 죄는 없지만 칠대장문인들의 죽음과 연관된 일이다.
제단 뒤 공간으로 들어간 그는 귀식대법을 펼쳐 숨을 죽였다.
그와 동시.
쿵! 우지직!
사당 문이 부셔지며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