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하마제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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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혈하마제 2화
혈하-第 2 章 내 이름은 사군보
사군보.
어린 시절엔 자기 멋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 하며 자라났다.
갖고 싶은 것은 언제나 손에 쥘 수 있었다.
하고픈 일이 있으면 세상없어도 꼭 해야만 직성이 풀렸다.
어린 시절 중 그가 부족하다 느낀 것은 단 하나.
아버지.
1년에 고작 두어 번 얼굴만 비치고 사라지는 아버지라는 존재뿐이었다.
그러나 어린 사군보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가슴에 묻어 두어야 했다.
그건 아버지가 다녀간 밤이면 모친이 홀로 눈물 짓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모친과 자신을 버려둔 아버지가 밉지만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모친이 가슴 아파하기에 어린 사군보는 아버지를 그렇게 가슴에 묻은 것이다.
그런 그에게 커다란 변괴가 닥쳐왔다.
10년 전이다.
모친이 죽었다.
그것도 복면을 쓴 악도들에 의해 살해를 당했다.
그 복면 흉수들은 어린 사군보의 목숨도 노렸다.
그때 위기에 처한 사군보를 구하며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적룡신 냉천군을 비롯한 다섯 사람이었다.
적령신 냉천군 등에 의해 복면 흉수들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당시 11살이었던 사군보는 모친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채 적룡신 냉천군 등에 의해 도주를 해야만 했으니.
그때 비로소 알았다.
아버지가 바로 묵혈성주라는 것을.
-묵혈대제(墨血大帝) 사악(査岳).
50년 흑도 무림을 다스렸던 묵혈방의 방주.
왜 묵혈대제가 모친과 아들을 세상에 감추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들의 존재를 숨겨온 덕분에 강호는 사군보를 모른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사군보의 존재가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다면 어쩌면 묵혈방이 붕괴될 때 사군보 역시 피바다 속에 잠겼을지도 모른다.
미래를 예견하였건.
사랑하는 부인과 아들이 강호의 피바람 속에서 사는 것을 원치 않았건.
그로 인해 사군보는 어린 시절 강호인이 아닌 평범한 어린아이로 자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이란 없는 법.
모친과 어린 사군보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다만 그들은 아버지의 측근들이었기에 아버지는 이를 묵인해 왔었다.
설마 그들이 자신을 배신할리라 믿지 못했으니까.
어쨌든, 그 해 묵혈방은 붕괴되었다.
묵혈방을 붕괴시킨 자들의 정체는 알 길이 없었다.
모두 복면을 하고 있었고, 하나같이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7명의 배신자들.
백미호(白美弧) 자자련(紫紫蓮).
단자혈(丹刺血) 고청흠(高靑欽).
요니(妖尼) 초난난(草蘭蘭).
수라묵검(修羅黙劍) 사후(査厚).
마창(魔槍) 동영문(東英門).
귀후(鬼后).
야불(夜佛).
묵혈방 내부에서 7명이 배신을 하면서 묵혈방은 안에서부터 빠르게 붕괴되었다.
겨우 살아남은 적룡신 냉천군을 포함한 16인의 묵혈성 고수들.
그들은 어린 사군보를 데리고 항산 태음봉으로 숨어 들었다.
그 날 이후 사군보는 무공을 익히기 시작했다.
적룡신 냉천군을 비롯한 16인은 사군보에게 자신들이 지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다.
그 중 삼뇌마자 막여천의 훈육이 가장 드셌다.
막여천은 자신의 뇌에 있는 지식과 지혜, 무공 전반적인 것을 사군보에게 전이시켰다.
전승(轉承)?
아니다.
사부가 제자에게 무공을 사사하는 그런 방법이 아니다.
만뇌복사현공(萬腦複寫賢功).
복사.
원본을 베끼듯.
막여천의 뇌에 담겨져 있는 모든 지식과 지혜를 섭혼술과 최면술과 같은 방식을 이용한 주술로 그대로 사군보의 뇌 속에 주입, 각인시켜 버렸다.
사군보의 뇌 안에 막여천의 뇌 속에 있는 지식과 지혜가 고스란히 옮겨진 것이다.
그 이후는 일사천리다.
그 어떤 무공이건, 그 어떤 신공이건 사군보는 거침없이 빨아 먹었다.
막여천은 ‘걸어 다니는 무공비고’란 말처럼 방대한 무공 이론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사군보는 절정의 고수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부족했다.
가장 문제되는 것은 내공이다.
아무리 방대한 양의 무공 초식을 알고 있다 해도 그 근본인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법.
1년 전이다.
20세가 되는 해였다.
16인의 묵혈방 생존자들은 마지막 불꽃을 피워냈다.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내공들을 모조리 사군보에게 주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금기의 마공인 묵혈사령신공을 베풀었다.
묵혈사령신공은 저주의 무공이다.
마(魔).
그 자체를 몸에 키우는 것.
마공의 마기를 단전은 물론 피에 섞어 온몸에 두른다.
순행은 물론, 피의 역행을 가져와 신체의 잠재력을 폭발시킨다.
자칫 잘못하면 마기에 먹혀 마인이 되는 무공이 바로 묵혈사령신공이다.
막여천은 최후의 신공으로 이것을 선택하면서 말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만 마기를 풀어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마기의 노예가 될 수 있다.
-그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마라.
-절대 잊지 마라!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묵혈의 후예임을.
-너는 최고여야 한다.
-너는 흑도 제일인 묵혈대제의 아들이다!
**
연태현(煙台縣).
팽성(烹城) 남쪽으로 20리 떨어진 곳.
조그만 마을인데 이곳에는 술꾼들만 모여 사는지 주루가 여러 곳에 보였다.
미락주루(美樂酒樓).
제법 큰 주루다.
해가 뉘엿뉘엿 기우는 석양 녘, 미락주루 안으로 사군보가 들어섰다.
그가 구석진 곳을 찾아 자리를 잡자마자 점원이 얼른 다가왔다.
“헤헤……손님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녹주(鹿酒) 한 병, 그리고 후어(煦魚) 세 마리, 돼지볶음과 교자 한 접시를 갖다 줘요.”
사군보는 탁자 위에 다섯 닢의 철전을 올려놓았다.
“헤헤헤……”
점원의 표정과 입이 크게 변해졌다.
그는 철전을 잽싸게 집어 들고는 ‘봉을 잡아다.’는 듯 어깨춤까지 추면서 주방으로 휭하니 사라졌다.
잠시 후, 사군보의 탁자에 술과 음식이 놓여졌다.
그는 천천히 음식들과 술을 음미하며 먹었다.
지난 10년을 산중에서만 살았다.
다른 사람들은 종종 변장을 한 후 강호 소식도 듣고, 생필품을 살 겸 평음봉 아래로 내려오긴 했지만 사군보는 10년을 꼼짝 못하고 산중에서만 생활했다.
10년 만에 맛보는 따뜻한 음식.
그는 천천히, 잊었던 미각을 되살리며 식사를 했다.
그가 술병 하나를 거의 비워갈 때였다.
돌연,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언제 주루로 들어왔는가?
그리고 어떻게 사군보가 않아있는 탁자로 다가왔는지 한 여인이 매달리듯 다급히 말을 꺼냈다.
그녀는 화려해 보이는 채의를 입고 있었다.
그러나 온 몸에 흙투성이고 곳곳이 찢어져 있었다.
나이는 20세 정도 되어 보였다.
“……”
사군보는 어찌된 영문을 모른 채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살려주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
여인, 소제제(蘇濟濟)는 사군보에게 바짝 다가왔다.
이때다.
쿵! 우지직!
주루의 문이 반 쯤 부서지면서 10명의 험상궂게 생긴 장한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뻘겋게 충혈이 된 눈으로 이를 잡듯이 주루를 둘러보다 사군보에게서 멈추었다.
그들은 곧 사군보에게 다가왔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소제제에게 다가온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히히힛……”
“흐흐흐……네년이 도망쳐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다.”
“깜찍한 계집, 앙탈을 하니까 더 귀엽게 보이는구나. 목(牧) 도련님이 터지지 않게 다루어 줄 테니 너무 두려워 말아라. 히히히……”
“당연하지, 저런 귀물을 어찌 함부로 돌려. 흐흐흐흐.”
“싱싱한 맛이 죽여 줄 거야.”
무뢰배들은 각각 음담패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무뢰배들 뒤로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거들먹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에 개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걸친 옷은 무척 비싼 곰 털 외투였다.
그가 들어서자 무뢰배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목소야, 저희들을 생각해서라도 너무 과격하게 다루지 말아 주십시오.”
“야! 야! 뭐해, 어서 객방 하나 잡아! 저년이 스스로 신방으로 들어왔다.”
무뢰배들 눈에 비친 소제제는 다 잡은 고기였다.
소제제는 새파래진 얼굴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이년!”
소제제에게 바싹 다가온 목소야가 돌연 그녀의 어깨를 와락 낚아챘다.
그는 사군보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찌익!
목소야의 거친 손길에 쭈그려 앉아 있던 소제제의 몸이 강제적으로 일으켜지면서 상의 옷섶이 쭉 찢어졌다.
눈처럼 희고 부드러운 어깨가 드러났다.
목소야의 눈에는 욕정의 불덩어리가 튀어나왔다.
“히히히……고것! 미리 준비 하는 거냐?”
화락.
목소야는 찢어진 상의를 놓음과 동시 소제제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아악!”
머리카락이 빠질 것 같은 극통.
소제제는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목소야의 팔목을 잡았다.
목소야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은 채 소리쳤다.
“야! 방 빨리 잡아!”
“네. 네!”
무뢰배 중 한 놈이 2층으로 올라갔다.
다른 놈은 점원에게 갔다.
또 다른 한 놈은 회계대에 있는 주인으로 보이는 장년인에게 다가갔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보아 이런 일에는 도가 튼 게 분명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소제제는 사군보를 보며 눈물로 호소했다.
두려움에 가득 차 있는 그녀의 얼굴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찡한 동정심을 유발했다.
그러나 사군보는 너무나 담담했다.
난 모르는 일이다.
비록, 말은 꺼내지 않았으나 표정으로 그런 뜻을 확실하게 드러내 보이면서 술잔을 천천히 비웠다.
사군보 뿐만이 아니었다.
이 순간 주루에 있는 손님들 모두 누구하나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그 덕분에 재미난 구경이나 하겠다는 양 눈동자 하나 깜빡이지 않고 목소야에게 끌려가는 소제제를 바라보는 자들도 있었다.
목소야는 이 지방 최고의 권력자 아들이다.
목소야에게 잡힌 여자가 불쌍하지만 괜히 나섰다가 치도곤 당한다.
“악! 아파! 살려줘요……”
질질.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가는 소제제의 비명은 점점 더 높아졌다.
발버둥으로 인하여 치마가 말려 올라가며 흰 넓적다리까지 드러나고 있었다.
사군보가 다시 무심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그의 귀로 가느다란 전음이 전해졌다.
[위기를 당한 여자가 도움을 청하고 있는 데도 모른 척 하다니! 그래도 네놈이 사내대장부냐? 허우대가 아깝다. 나가 뒈져라!]
“……!”
사군보는 내심 깜짝 놀랐다.
하지만 짐짓 그 전음을 못들은 것처럼 술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살려 주세요……살려……”
소제제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까지 끌려갔다.
그 주위로 무뢰배들이 빙 둘러 쌓았다.
또 다시 전음이 사군보의 귓전을 간지럽혔다.
[흥! 네놈의 몸에 무서운 내공이 떠돌고 있지만 이제 보니 완전 겁쟁이군. 속도 텅텅 비었구나. 네놈이 끝내 모른 척 한다면 이 늙은이가 네놈을 죽여 버릴 테다. 어서 구해, 이놈아!]
전음이 끝나면서 사군보의 등에 날카로운 것이 와 닿았다.
그것은 살기다.
조금만 움직인다면 정말로 그를 죽일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