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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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96화
제8장 천하제일의원 (3)
네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윤은 탁자에 있던 차를 잔에 따라 그들에게 내밀었다.
“반양만 빼고는 천하오대신의가 다 모였군요.”
이자림의 말에 조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반양은 조윤이 오기 전부터 와 있었다. 그런데 한 번도 보지를 못했다.
“반양은 지금 마지막 날을 대비하고 있네.”
“마지막 날이요?”
조윤이 되묻자 태삼목이 웃으면서 설명을 했다.
“매년 신의문에서는 이렇게 행사를 했었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가장 의술이 뛰어나다 생각되는 사람끼리만 모여 이야기를 나눴지. 천하오대신의란 명성도 그로 인해 생긴 거라네. 몇 년째 계속 반양을 비롯한 여기에 있는 사람들만 모였었지.”
“그랬군요. 그럼 매년 이렇게 만나서 서로 지식과 경험을 나눴던 거군요.”
“원래의 목적은 그랬었네. 각자가 가진 것을 내놓고 합쳐서 발전을 꾀하려고 했었네. 한데 처음부터 어긋나버렸지. 서로의 실력을 보니 경쟁심이 생긴 게야. 그 때문에 각자의 의술은 더 늘었으나 그뿐이었네. 거기에서 더 발전을 할 수는 없었지.”
“그런 의미에서 자네가 기라와 자림의 스승이 된 건 의미가 크네.”
우선이 웃으면서 태삼목의 말에 보탰다. 지난 세월 서로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터놓고 의술의 발전을 꾀했다면 지금쯤 새로운 역사가 세워졌을 것이다. 한데 경쟁심으로 인해 각자의 발전만이 전부였다.
태삼목이나 우선은 그게 안타까웠다. 뒤늦게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으나 이미 감정의 골이 깊게 패인 후라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조윤이 기라와 이자림의 스승이라고 한다. 그게 사실이라면 지난 세월을 후회로만 보내지 않고 값지게 바꿀 수가 있었다.
“자네는 참 나를 여러 번 놀라게 하는군. 어찌 된 일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태삼목이 묻자 조윤은 기라와 이자림, 두 사람과 어떻게 만나서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전부 이야기했다. 중간에 기라와 이자림이 끼어들어 한 번씩 거드니 태삼목과 우선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허, 그리된 게로군.”
“이로써 자네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게 되었네.”
“뭘 말입니까?”
“신의문의 문주는 자네가 되어야 하네.”
태삼목의 말에 우선과 기라, 이자림이 동시에 조윤을 쳐다봤다.
* * *
며칠이 순식간에 지났다. 그동안 조윤의 명성은 오를 대로 올라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을 정도였다. 천하오대신의 중 두 명을 제자로 뒀다는 소문이 돌고, 거기에 더해 태삼목이 삼대의가 아니라 다음 대의 문주로 앉히려고 한다는 이야기까지 새어 나갔다.
조윤은 그 일에 대해서는 입을 딱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건 여파가 더 커질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되었고, 천하오대신의가 한자리에 모였다. 한데 처음으로 그곳에 그들 말고 한 사람이 더 참석을 했다. 바로 조윤이었다.
“다들 서로, 아니 인사는 안 해도 될 것 같군.”
태삼목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계속 이야기를 했다.
“다만 조윤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네. 솔직히 나는 놀랍다네. 어찌 저 나이에 저런 경지에 오를 수가 있는지.”
“과찬이십니다.”
“하하. 자네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일세. 게다가 보게나. 우리 모두 자네의 실력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고 있지 않네. 마치 당연히 와야 될 사람이 와 있다는 듯이 말일세.”
사실이 그랬다. 조윤의 의술은 그들보다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못하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는 방법을 좀 바꾸기로 했네.”
“어떤 방식입니까?”
반양이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가 대단해서 누가 더 나은지만 겨루려고 했었네. 마음을 터놓고 의술의 발전을 꾀한 것이 아니라.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러기도 어렵지. 하니 그동안의 성과를 내보이되 조윤에게 전하는 걸세. 그럼 조윤이 누구의 성과가 가장 나은지를 판단하는 걸세.”
“그럼 제가 가장 불리하잖습니까?”
“어찌 그리 생각하나?”
“저는 조윤과 그다지 친분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라와 이자림은 그를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고, 두 분은 이곳에서 그동안 친분을 다졌습니다.”
“자네 말은 조윤이 자네를 제외하고 우리 네 사람 중 한 명의 손을 들어줄 거라는 건가?”
“그럴 수도 있잖습니까?”
“자네는 여전히 사람을 볼 줄 모르는군. 그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 그렇게 따진다면 우선과 나도 불리하지. 조윤이 그런 사람이라면 제자들 편을 들지 않겠나?”
“그거야 그렇지만…….”
“이 방법이 싫다면 굳이 강요하지는 않겠네. 그러나 우리 네 사람은 할 것이야.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나도 찬성일세.”
네 명이 그리 나오자 반양은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할 수가 없었다.
“제 의견은 안 물어보는 겁니까?”
“하하. 그렇군. 가장 중요한 당사자의 의견을 묻지 않았군. 어떤가? 해줄 텐가?”
“물론입니다. 영광으로 생각하고 최대한 공정하게 결정을 내리겠습니다. 대신에 조건이 있습니다.”
“말하게.”
“저 역시 제가 가진 것을 내보일 테니 그건 여러분이 판단을 해주십시오.”
“호오, 그거 좋은 방법이군. 그럼 그렇게 하세나.”
그렇게 결정이 나자 이자림부터 시작했다. 그는 조윤과 함께 지내면서 배운 바가 컸다. 이후 나름대로 많은 연구를 했고 그 결과 실력이 이전보다 훨씬 늘었다.
이자림은 외상치료에 대한 걸 이야기했다. 그걸 들으면서 모두 크게 감탄을 했다.
조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신의 의료장비 없이 그런 수술을 해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다음은 기라가 했다. 그의 독술은 이미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선은 기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배울 것이 많았다. 까다로운 내상치료에 기라가 말한 대로 독을 쓰면 치료 효과가 뛰어날 거 같았다.
이제 반양 차례였다. 그는 예방의학에 관심을 뒀다. 사람들이 아프고 나서 약을 먹는 것이 아니라 약을 복용해서 미리 병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화단이나 자소단 같은 영약을 연구한 것이 그래서였다. 호갑신단도 그 과정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가 내놓은 건 작은 환단이었다. 만들기는 어려우나 비싼 재료가 들어가지 않고 효과가 좋았다.
조윤은 그걸 보자 현대에서 사람들이 먹던 건강식품이 생각났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우선이 그동안의 성과를 이야기했다. 내상에 관해서는 역시 그가 제일이었다. 다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태삼목은 혈액에 대한 걸 이야기했다. 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한 것은 이자림이었다. 아무래도 외상치료를 많이 하다 보니 수혈의 중요성이 와 닿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은 이제 조윤 차례였다. 조윤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에 모두 약간의 기대감이 섞인 시선으로 쳐다봤다.
조윤은 항생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들 처음에는 그게 뭐 별거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웠다. 나중에는 그저 감탄만 나왔다.
조윤의 말대로 항생제를 만들 수만 있다면 이는 의술의 일대혁신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허허. 이건 뭐 이미 결론이 났군.”
“그러게 말일세. 나는 조윤에게 탄복했네. 그가 천하제일의원임을 인정하네.”
우선과 태삼목이 그렇게 말하자 기라와 이자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스승님이십니다. 저 역시 스승님이 천하제일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하. 저는 진즉 알아봤었습니다. 스승님의 제자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반양뿐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내가 하고자 했던 걸 네가 이뤘다. 나 역시 네가 최고라는 데 이견이 없다.”
안 좋은 이야기를 한마디쯤 할만도 하련만 반양은 의외로 순순히 조윤을 인정했다. 그만큼 항생제에 대한 건 그에게도 충격이었다.
“과분합니다. 여러분에 비하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렇지 않네. 우리는 어느 한 분야에 뛰어날 뿐, 다른 분야는 잘 모르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오로지 삼목뿐이지. 한데 이제 그런 사람이 한 명 더 생겼군.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고 하지. 이제 우리는 늙었네. 앞으로는 조윤 자네의 시대가 열릴 것이야.”
“그래서 내가 제안을 한 것일세. 부디 신의문의 문주가 되어 주게나. 자네라면 믿고 맡길 수가 있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미 의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제가 신의문의 문주가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반발을 할 겁니다. 더구나 저는 태삼목 어르신의 혈육도 아닙니다.”
“그렇지 않네. 아니, 그러지 못할 걸세. 자네가 신의문의 문주가 된다면 우리 다섯 사람이 자네를 적극 지지하고 밀어줄 것일세. 천하오대신의가 인정한 사람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맞네. 내 혈육이 아닌 것이 뭐가 어때서? 하면 지금 당장 내가 자네의 양아버지가 되겠네.”
“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아니요. 그건…….”
“왜? 내가 부족해 보여서 싫은 건가?”
“아닙니다. 그런 게.”
“그럼 그리하면 되겠군.”
“스승님. 더 이상 사양하지 마십시오. 저도 스승님이 신의문의 문주가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마음 놓고 의술을 펼칠 수 있게 버팀목이 되어 주십시오.”
“음…….”
조윤은 뜻하지 않게 일이 흘러가자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신의문의 문주라니, 태삼목에게 들었을 때도 그런 건 생각도 안 했었다. 한데 다들 이리 말을 하니 무조건 거절할 수도 없었다.
어째 떠넘기는 것 같은 분위기였으나 그건 자신의 착각이라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