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77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77화
제1장 이유 (2)
“반갑소. 만 장주.”
“흠. 와서 앉으시오.”
만조동이 마치 주인인 것처럼 낙명호에게 말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낙명호는 내색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저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풍기는 기도를 보니 청성파에서 온 것 같군요.”
“현성이라고 합니다.”
“현교라고 합니다.”
두 사람이 담담하게 신분을 밝히자 낙명호는 적지 않게 놀랐다. 보기에 젊어서 배분이 그리 높지 않을 거라 여겼건만 현자 배면 이대제자였다.
“허허. 그렇구려. 나는 낙명호라고 하오.”
낙명호는 잠시 현성과 현교를 보다가 만조동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침착하게 물었다.
“한데 만 장주께서 두 사람과 함께 이곳에는 어인 일로 오신 겁니까?”
“몰라서 묻는 거요?”
“말씀해 보시지요.”
“내 돌려서 이야기하지 않겠소. 내 아들이 오늘 이곳에 머무는 객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하더이다. 해서 그를 보고자 왔소. 누구기에 그래 대담한지 한번 보고 싶구려.”
“그는…….”
낙명호가 어렵게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대청의 입구가 어수선하더니 곧 낙소문이 안으로 들어왔다. 갑자기 눈이 환해지는 미인을 보자 모두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오랜만에 뵈어요, 만 장주님.”
낙소문이 먼저 인사를 하자 만조동이 흠칫 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뒤늦게 그녀가 누군지 알아본 것이다.
“누군가 했더니 낙 국주의 장녀로군.”
“네. 맞아요.”
만조동은 만국위의 말을 듣자마자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이곳으로 왔다. 마침 만가장에 현성과 현교가 있어서 함께 온 것이다. 한데 낙소문이 와 있을 줄은 몰랐다.
“네가 여기에는 어쩐 일이냐?”
낙명호가 짐짓 엄한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그러자 낙소문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제 동생의 일로 만 장주님이 오셨다기에 왔어요.”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장주님만 왔다면 그랬을 거예요.”
말을 하는 낙소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현성과 현교에게 향했다. 그 의미를 깨달은 만조동이 살짝 인상을 썼다. 낙소문의 말은 만가장에서 청성파의 제자들을 데리고 왔으니 소화표국에서는 아미파의 제자인 그녀가 나서겠다는 뜻이었다.
* * *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것 같구려. 혹시 화룡이라 불리는 낙 소저가 아니시오?”
“맞아요.”
“반갑소. 나는 현성이라고 하오. 이쪽은 내 사제인 현교고. 사부님께서는 청성파의 장문인이신 학운진인이시오.”
현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학운진인의 이름까지 언급을 했다. 낙소문의 명성이 제법 알려졌으나 자신들의 배분이 높으니 알아서 기라는 뜻이었다.
“반가워요.”
낙소문이 짧게 인사를 받자 현성은 그녀가 자신의 의도를 알아챈 거라 여겼다. 이에 슬쩍 만조동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험! 그럼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겠소. 만가장과 소화표국은 오랜 세월 친분을 이어왔소. 낙 국주가 그자를 감쌀 이유가 없지 않소? 하니 그를 불러오시오.”
“아버님. 만 장주님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구죠? 혹시 조윤 공자인가요?”
“그래. 맞다.”
“역시 그 일 때문에 온 거로군요.”
낙소문이 그렇게 말하면서 만조동을 봤다. 그리고 고저 없이 무감정한 말투로 물었다.
“조윤 공자를 찾는 이유가 뭐죠?”
“그가 내 아들에게 무례를 범했기 때문이다.”
“뭔가 잘못 알고 있군요. 무례를 범한 건 조윤 공자가 아니라 만 장주님의 아들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만조동이 인상을 팍 쓰면서 들고 있던 찻잔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러자 뭔가를 잠시 생각하던 낙소문이 그를 무심히 보면서 말했다.
“장주님. 장주님의 아들이 화영이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화영이에게 갖은 협박을 했더군요.”
“말을 함부로 하지 말거라!”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늘 있었던 일도 장주님의 아들이 화영이와 함께 있는 조윤 공자를 보고 오해를 해서 일어났습니다. 그저 화영이와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대를 하면서 검을 뽑으려고 했다더군요.”
낙소문이 직설적으로 이야기를 하자 만조동의 얼굴이 눈에 뜨이게 붉어졌다.
“국위는 젊다. 사내가 되어서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더냐?”
“정도는 지켰었어야죠.”
“그래서 국위가 화영이에게 해를 끼친 것이 있더냐?”
“아니요. 그가 직접적으로 해를 끼친 건 없어요. 다만 장주님께서 소화표국에 압박을 가했을 뿐이죠.”
그것마저 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 만조동은 이제 대놓고 낙소문을 노려봤다. 그러나 낙소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아까 장주님이 말했듯이 만가장과 소화표국은 그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어요. 한데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화영이는 장주님의 아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버님께서도 두 사람을 혼인시킬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 더 이상 화영이를 쫓아다니지 말라고 해주세요.”
“허, 국주. 이게 국주의 뜻이오? 아니면 철부지 딸의 생각이오?”
만조동은 낙소문을 깎아내리면서 낙명호를 봤다. 그러자 낙명호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낙소문이 나서서 시원하게 해준 것은 좋았으나 그 이후가 문제였다. 앞으로 만가장은 더욱이 소화표국에 압력을 가해올 것이다.
이에 한숨을 내쉬면서 낙소문을 향해 말했다.
“네 말이 심했다. 어서 장주님께 사과를 드려라.”
“그럴 수 없어요. 아버님.”
“소문아.”
“아버님은 제가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시는군요.”
“그게 무슨 말이냐? 혹여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거냐?”
낙명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낙소문은 이런 일에 선뜻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평소 같았으면 낙명호가 일을 처리한 후에 뭔가를 해도 했을 것이다.
“지금 조윤 공자가 굉장히 화를 내고 있어요.”
“그가 화를 내는 것이 뭔 큰일이라고 그러는 것이냐?”
“아버님. 그분은 무당파의 최고수인 옥승진인의 하나뿐인 제자예요. 또한 권왕이라 불리는 맹추삼 어르신의 제자이기도 하고요.”
“뭐라? 그가 옥승진인의 제자란 말이냐?”
“그래요. 함께 오신 분이 바로 권왕 맹 어르신이세요.”
“이런…….”
낙명호는 적지 않게 놀라며 낙소문을 봤다. 그저 의원 나부랭이인 줄 알았건만 이건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놀람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뿐이 아니에요. 조윤 공자는 신진사룡 중 한 명인 의룡이에요. 의술이 천하오대신의와 견줄 정도로 대단하고, 선의로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서 덕망이 높아요. 그런 사람이 만 장주님의 아들을 그리 대했을 때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낙소문이 힐끗 만조동을 보며 말했다. 마지막 말은 마치 그에게 묻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히려 만 장주님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화를 내며 직접 오겠다는 걸 간신히 말렸어요.”
“그…… 그랬구나. 이 아비는 전혀 몰랐었다.”
낙명호가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만조동을 봤다. 이제 어떻게 할 건지를 묻는 거였다.
만조동도 심사가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야 청성파의 명성이 더 높다지만 무당파의 제자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 무공이 천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옥승진인의 제자가 아니던가?
그때 생각지도 않게 현성이 나섰다.
“무당파의 명성이 대단하다지만 여기는 호북이 아니라 사천이오. 게다가 그런 신분이라면 더욱이 몸가짐을 조심했어야 하지 않겠소?”
“당신은 마치 조윤 공자가 잘못했다는 듯이 말하는군요.”
“사실이 그렇지 않소? 만가장과 소화표국의 관계를 안다면 충분히 말로도 해결을 할 수가 있었을 거요. 그리 섣불리 손을 쓰지 말았어야 했소.”
“좋아요. 그럼 장주님은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 거죠?”
“험! 나는…….”
“그에게 사과를 받아야 합니다.”
만조동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현성이 나섰다. 그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만조동은 꾹 눌러 참았다. 현성의 비위를 거슬러서 좋을 것이 없었고, 그가 한 말이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내가 원하는 것이 그거다.”
“정말인가요?”
낙소문이 재차 묻자 만조동은 힐끗 현성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힘을 얻은 만조동이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요. 제가 가서 이야기를 해 보죠. 하지만 그분이 그 뒷감당도 하셔야 할 거예요.”
“그가 잘못한 일이거늘, 꺼리길 것이 뭐가 있겠소?”
이번에도 현성이 나서며 말했다. 그러자 낙소문이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대청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