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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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72화
제9장 대의 (3)
아침 일찍 일어난 조윤은 간단히 세면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손에는 예전에 북해에서 가지고 온 빙백신검이 들려있었다.
그동안은 검이 가지고 있는 냉기 때문에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공이 강해져서 손안으로 파고드는 한기를 충분히 흩어낼 수가 있었다. 더 나아가 그걸 흡수해서 자신의 기운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쉬익!
새하얀 순백의 기운이 허공을 갈랐다. 조윤은 가만히 서서 옥승진인과 했던 대련을 떠올렸다. 그날 배운 것의 효과는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금가장에 있을 때 노웅이 먼저 출수한 것을 간단히 제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날 얻은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천천히 빙백신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식이고 뭐고 없었다.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의지가 움직이는 곳으로, 그렇게 검을 휘둘렀다.
완벽한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였다. 검과 몸이 하나 되어 움직였다.
더 나아가 심검합일(心劍合一)까지 이룬 상태였다. 마음이 일면 이미 검이 가있었다.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첫눈이었다. 그러나 조윤은 그런 것도 모른 채 계속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신검합일과 심검합일까지는 된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했다.
옥승진인이 보여줬던 무위, 그것은 자연과 하나 되는 경지였다.
오늘, 그리고 지금!
조윤은 그 경지를 염원하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깨달음은 그의 경지를 계속 높여주고 있었기에 가능할 것 같았다.
조윤을 보기 위해서 밖으로 나온 당효주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펑펑 내리는 눈과 함께 사람이 있었다. 검도 하얗고 사람도 하얗게 보였다.
뒤이어 낙소문과 방소교가 나왔다. 이화와 흑묘도 나왔다. 그녀들 모두 조윤을 보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사아!
몸이 움직이고 검이 움직이는데 눈발이 흩어지지 않는다. 자연과 동화된 경지였다.
낙소문의 가슴에 감동이 벅차올랐다. 조윤의 손짓 하나, 표정 하나까지 그녀의 눈에 와서 박혔다. 저런 경지를 뭐라고 해야 할까?
일평생 한 번이나 보면 다행인, 그래서 감히 오를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경지였다.
이화 역시 그걸 알아보고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녀의 눈에는 시샘과 질투, 부러움, 그리고 자랑스러움이 함께 일렁거렸다.
이화는 저런 경지에 오른 조윤이 부러웠고 샘이 났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터였다. 그러면서도 조윤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고 친분이 깊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일다경 정도 더 움직이던 조윤이 움직임을 멈추고 검을 내렸다. 그는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가슴에서 환희가 일었다. 짜릿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눈이 얼굴에 와서 녹으며 시원한 느낌을 줬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고 있는 여인들을 봤다. 그녀들은 각자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으나 한 가지만은 확연했다. 그것은 놀라움이었다.
“밥 먹을까?”
조윤이 툭 던진 말에 여인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 * *
아침식사를 하고 난 조윤은 당수백을 찾아갔다. 잠깐 사이에 눈이 제법 쌓여서 걸을 때마다 사르륵 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서 오너라.”
집무실에서 일을 보던 당수백이 조윤을 반겼다. 그러면서 자리를 권하고 시녀에게 차를 내오라 시켰다.
“네가 보낸 서찰을 받았다.”
“예의가 아닌 건 알지만 미리 말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잘했다. 덕분에 나도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가 있었다.”
그때 시녀가 차를 내오자 잠시 대화가 끊겼다. 찻잔을 들자 차향이 퍼졌다. 최상급의 청차였다.
조윤이 후후 불다가 한 모금 마셨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당수백이 먼저 입을 열었다.
“효주에게도 말했느냐?”
“아직 안 했습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할 생각입니다.”
“그럴 필요 없다. 내가 했으니까.”
이건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조윤은 당수백이 뭐라고 결정을 내리고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나 먼저 묻지 않고 차를 마셨다.
“묻지 않는구나.”
“필요가 없으니까요.”
순간 당수백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무당파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조윤은 잠룡이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잠룡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
“내 의사를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이냐? 아니면 알아도 네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는 뜻이냐?”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가주님이 효주에게 뭐라고 하셨든 제가 다시 이야기를 해야 하기에 그렇게 말한 겁니다.”
당수백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조윤은 뭐든 자신의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만약 내가 반대를 한다면 어떻게 할 거냐?”
“반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찌 그리 확신을 하는 게냐?”
조윤은 대답 없이 웃었다. 그걸 보자 당수백은 섬뜩해졌다. 이전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뭐가 저렇게까지 조윤을 변화시킨 걸까?
잠시 그걸 생각하던 당수백은 곧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랬군. 자신의 가치를 깨달은 게로군.’
그동안 조윤은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당수백이 어느 정도 휘두를 수가 있었다. 한데 이제는 안 것이다.
당수백이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붙잡고 매달려야 하는 건 당수백이었다.
“하아…… 변했구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날짜는 언제가 좋겠느냐?”
“아미파에도 갔다 오고 소문의 집에도 가야 하니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그동안 할 일도 좀 있고요.”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느냐?”
“네. 문파를 하나 세울까 합니다.”
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당수백이 평소와 달리 조금 당황한 눈을 했다.
“문파라니?”
“무림문파가 아닙니다. 의술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치료할 곳이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음…….”
당수백은 눈을 감고 그 여파를 생각해봤다. 조윤이 문파를 세우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여들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시기가 너무 적절했기 때문이다. 역병을 막아낸 지금 조윤의 명성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누군가 뒤에서 받쳐준다면 안휘에 있는 신의문과 견줄 만한 곳으로 성장을 할 터. 이건 어떻게든 잡아야만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구나.”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일입니다. 그래서 부탁이 있습니다.”
“내게 말이냐?”
“네.”
“말해보아라.”
“단목세가를 재건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조윤이 하는 말의 의미는 컸다. 또한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당수백은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단목세가를 네가 원하는 문파로 재건하겠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따로 문파를 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당문의 가신가문인 단목세가를 재건하되 이전과는 달리 무림문파가 아닌 의술을 펼치는 의가(醫家)로서 거듭날 생각입니다.”
조윤의 대답을 듣고 당수백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만 된다면 당문은 지금보다 두 배, 아니 많게는 세 배까지 더 발전을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조윤의 영향력이 컸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느냐? 너는 그동안 계속 내게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느냐?”
“맞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을 만난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버님은 당문의 가신이었습니다. 당문과 단목세가를 지키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출가외인이라지만 어머님은 이곳 당문의 사람입니다. 더구나 이제 당효주와 혼인까지 합니다. 이렇게 당문과 얽혀 있는데 자꾸 벗어나려고만 했던 제가 안타깝더군요. 그래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조윤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였다. 그러면서 힐끗 보니 당수백은 격동이 일어나는 걸 간신히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이에 미미하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 했다.
“어머님의 소원이 아버님의 복수를 하고 단목세가를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단목세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그걸 원했습니다. 가주님은 저를 붙잡아두고 싶어 하셨죠. 또한 저한테 의술을 가르쳐준 스승님의 뜻도 따르고 싶었습니다. 그분은 가주님에게 패한 이후 많은 자책과 후회의 나날을 보내왔습니다. 그 때문에 제게 의술을 가르쳐줄 때 훗날 반드시 당문을 의가로 거듭나게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당자기 이야기가 나오자 당수백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야 다 지난 일이 되어버렸으나 그때는 서로 너무 젊었었다. 더구나 의원들이 아무도 당효주를 치료하지 못하자 그들에 대한 분노가 컸었다.
“무엇보다 제가 하고 싶은 건 칼을 휘두르는 일이 아닙니다. 저는 의술이 좋습니다.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싶습니다. 그들에게 행복을 주고 싶습니다. 효주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어머님과 가주님 그리고 스승님의 뜻에 반하지 않으면서 저 역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길을요.”
“허…….”
당수백은 허탈한 심정 때문에 웃음이 다 나왔다. 그동안 그는 조윤을 잡아두려고만 했었다. 그리고 자신의 통제에 놓고 뜻대로 다룰 생각만 했었다.
한데 조윤은 이리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하고,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그림을 말이다.
당수백은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조윤이 거대하게 보였다. 또한 미안했다. 이에 천천히 다가가 조윤의 어깨를 짚었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느냐? 내 모든 것을 너에게 투자하마. 돈이든 사람이든 뭐든 필요한 것이 있으며 말하여라. 아낌없이 내주겠다.”
당수백은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그러자 조윤이 웃었다.
“고맙습니다. 가주님.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조윤이 마시던 차를 마저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럼에도 당수백은 그 자리에서 계속 미동도 않고 있었다.
앞으로의 일이 기대가 되고 가슴이 뛰었다.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던가?
그걸 조금 더 느껴보고자 그는 계속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