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60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60화
제5장 의심 (1)
상상도 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휘두르던 무기가 전부 튕겨져 그들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그들도 날려버렸다. 고개가 돌아가고 몸이 우그러들고 다리가 꺾였다.
단지 주먹을 한 번 뻗었을 뿐인데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그 같은 압도적인 무위를 보자 이제는 선뜻 덤벼들지 못했다.
“그만!”
갑작스러운 외침에 모두가 그쪽을 봤다. 당예상 옆에 약교연이 있었다. 조윤을 보는 그녀의 표정이 복잡했다.
금공이 부상을 입고 왔을 때 조윤도 다쳤다는 것을 알았다. 금공이 말하기를 살아남기 힘들다고 했다. 설혹 살아나도 한쪽 팔을 쓰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 말이 사실인 듯, 조윤은 오른팔을 쓰지 않았다. 한데도 금가장에서 데리고 온 최정예들을 너무나 쉽게 상대했다. 이건 그녀의 착오였다. 몸이 성치 않아서 쉽게 제압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를 기다린 건가요?”
“그래.”
“이유가 뭐죠? 시시의 치료는 끝났어요. 이제 더 이상 그쪽과 얽힐 일이 없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며칠 전까지는.”
“그럼 뭐죠?”
“들어와. 듣는 귀가 많으니 들어가서 이야기해.”
약교연은 당예상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조윤은 잠시 망설이며 낙소문을 봤다. 그녀는 말없이 조윤에게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다.
인질이 잡혀있는 이상 약교연의 말을 따라야 했다. 그러나 집 안에 함정이 있을지도 몰랐다. 이에 조윤은 내공을 끌어올려 만일의 일에 대비하며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당예상은 탁자에 앉아 있었고, 약교연은 그 옆에 서서 차를 따르고 있었다.
“앉아.”
조윤이 자리에 앉고 낙소문이 그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약교연이 뭔가 수를 쓴다면 서 있는 것이 대비하기에 좋았다. 그걸 알아챈 약교연이 쓰게 웃었다.
“아무것도 안 하니까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
“인질을 잡고 할 말은 아니죠.”
“예상을 잡아둔 건 부탁을 하기 위해서야.”
“부탁을 하기 위해 칼을 휘두르고 인질을 잡나요? 그건 부탁이 아니라 협박이죠.”
조윤은 당예상이 잡혀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때문에 비꼬는 투로 말을 했으나 약교연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네 도움이 필요해. 금가장으로 와.”
“왜요? 수중뇌옥에 또 가두려고요?”
“그때는 너를 설득하기 위해서 그랬을 뿐이야. 해칠 생각은 없었어.”
“금가장에는 안 갑니다.”
“와야 해.”
약교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느낀 조윤은 이유를 생각해봤으나 딱히 짚이는 것이 없었다.
“혹시 시시가 아픈가요?”
“아니. 시시는 건강해.”
“그럼 왜 자꾸 오라는 겁니까?”
조윤이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감정에 휘말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약교연은 교활한 여인이었다. 침착해야 상대할 수 있었다. 더구나 지금은 당예상이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이었다.
조윤이 순식간에 감정을 다잡는 것을 본 약교연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조윤은 항상 그녀의 예상을 벗어난다. 마치 천적인 것처럼.
“사실대로 말할게. 환자가 있어. 네가 와서 치료해줬으면 해.”
“누가 아픈 거죠?”
환자가 있다는 말에 조윤이 관심을 보이자 약교연은 또다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그는 천생 의원이었다. 무공이 그리 강하지만 강호에 어울리지는 않았다.
“독에 중독된 사람들이 있어.”
“무슨 독이죠?”
“그걸 모르겠어. 같이 있던 사람들도 중독이 되는 바람에 벌써 열 명이 넘게 죽었다.”
조윤이 당예상을 봤다. 그녀 역시 의원이었다. 독에 중독이 되어 해독이 어려운 상황이었으니 환자를 데리고 왔을 것이다. 더구나 그녀는 당문 사람이었다. 독에 대해서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겠어. 무슨 독인지. 그래서 너한테 온 거야. 내가 설득하겠다고 했는데…….”
당예상이 원망 섞인 눈으로 약교연을 봤다. 처음부터 이렇게 대화로 풀었다면 쓸데없이 다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을.
“증상이 어땠는데?”
“열은 없는데 구토를 하거나 설사를 하다가 마치 피가 빨린 것처럼 쭈글쭈글해져서 죽어.”
당예상이 하는 말을 듣고 조윤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그건 독이 아니었다. 역병 중 하나인 호열자였다.
“왜 그래?”
“뭔가 아는 게 있는 거로구나. 혹시 정파에서 독을 쓴 거냐?”
약교연이 추궁하듯이 물었다. 평소 그녀와 가깝게 지내던 사람도 두 명이나 죽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독을 쓴 사람이 누구건 반드시 죽이리라 맹세했었다.
“하아…… 그건 독이 아닙니다.”
“독이 아니라니?”
“호열자입니다.”
“호열자?”
“아!”
당예상은 단번에 알아들었으나 약교연은 아니었다. 설명을 바라는 눈으로 조윤을 쳐다봤다.
“역병입니다.”
“그, 그럴 리가…….”
* * *
독이 아니라 역병이라니, 여태까지 약교연은 누군가가 독을 쓴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예상 누이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알아봤을 텐데 이상하군.”
“내가 본 환자는 한 명뿐이야. 독에 중독이 되었다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어.”
“스스로 무덤을 팠군요.”
조윤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한된 상황에서 약교연이 독에 중독되었다고 하니 그쪽으로만 생각을 한 것이다. 만약 좀 더 상황을 알았거나 하다못해 독에 중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역병을 한 번쯤은 의심했을 것이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근의 객잔에 가서 가장 독한 술을 가져오라고 하세요.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몸을 닦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옷도 다들 새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조윤의 말을 듣고 약교연이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밖에 있는 사람을 불렀다.
“정엽!”
곧 문이 열리면서 젊은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조윤과도 안면이 있었다. 이에 살짝 눈인사만 하고 약교연을 봤다.
“가서 가장 독한 술을 사 오너라. 몸을 씻어야 하니까 최대한 많이 사 와. 그리고 갈아입을 옷도 사 오고.”
뜬금없는 명령이었다. 그러나 정엽은 군말 않고 따랐다. 약교연이 뭔가 지시를 내릴 때는 항상 정당한 이유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가 가고 나자 조윤은 약교연을 향해 물었다.
“몇 명이나 죽었죠?”
“열세 명.”
“환자는요?”
“스무 명이 넘어.”
약교연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태가 심각했다. 혹여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흩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 걷잡을 수가 없게 된다.
“그게 어떻게 역병이라고 확신하는 거냐?”
“무당파로 가면서 역병이 휩쓴 마을을 두 개나 봤어요. 전부 죽어 있더군요. 제가 이곳에 온 것도 예상 누이를 데려가면서 역병에 대해서 좀 더 조사하기 위해서예요.”
“그럼 무당파에서는 알고 있다는 거냐?”
“그래요. 제가 가서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대처할지 의논을 하겠죠.”
약교연은 혹여 조윤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냉정하게 생각해봤다. 그러나 다른 건 몰라도 이런 걸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다.
조윤은 천생 의원이었다. 아까도 잔뜩 적대감을 품고 있었지만 환자가 있다는 말 한마디에 태도가 바뀌지 않았던가?
“정파에도 역병이 돌고 있는 거냐?”
“아직까지는 없어요. 하지만 안심하지 못해요. 무당파로 가면서 이곳에 있는 객잔에 들렀었는데, 그때 역병에 걸린 환자를 봤었어요.”
“어쩔 셈이냐?”
“뭐를요?”
“함께 갈 테냐?”
조윤이 약교연을 봤다. 그녀의 눈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숨겼을 것이나 지금은 일부러 그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말 영악한 여자였다.
조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야겠죠.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조윤의 말을 듣고 약교연은 약간 당황했다. 그게 정말 역병이라면 한시가 급했다. 자칫 그녀의 가족들이 죽을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마음이 다급했으나 태연하게 물었다.
“이유가 있느냐?”
“지금 제가 간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치료를 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가서 해도 되잖느냐?”
“제가 직접 움직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찾지 못합니다.”
조윤이 준비하려는 건 수액이었다. 호열자는 수분만 제대로 보충을 해줘도 웬만해서는 죽지 않는다. 버틸 만큼 버티면 몸에 항체가 생긴다.
인간의 몸이 원래 그렇다. 외부에서 안 좋은 것들이 들어오면 몸에 열을 내서 다시 밖으로 내보낸다. 그게 구토고 설사다. 그 과정에서 수분이 함께 빠지기 때문에 죽는다.
어쨌건 지금으로서는 치료방법이 그거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실 수액을 맞을 수 있는 장비를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바늘에 구멍을 뚫는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고무관을 구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서역도호부에 있을 때 서양에서 들어오는 물건 중에 대체할 만한 것이 있기는 있었으나 여기는 중원이었다.
“먼저 가세요. 치료 장비를 구하는 대로 뒤따라가겠습니다.”
“아니. 함께 움직이겠어.”
“저는 혼자 온 게 아닙니다. 명문정파의 사람들과 함께 왔어요.”
“그들을 전부 죽이면 함께 가겠느냐?”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죠?”
조윤이 그렇게 물었으나 약교연의 눈을 보니 진심인 것 같았다. 하긴, 달리 마교겠는가?
조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림인들은 말로 하다가 안 되면 무조건 칼부터 휘두른다. 마교나 사파는 특히 더했다.
“알았어요. 그럼 함께 움직일게요. 먼저 금가장에 서찰을 보내세요. 병에 걸린 사람들을 따로 격리시켜야 해요. 그리고 절대로 접촉을 해서는 안 됩니다. 혹시 모르니 다들 독한 술로 손과 몸을 꼭 씻고, 옷은 불에 태우라고 하세요.”
그 외에도 조윤은 이것저것 주의할 것을 계속 이야기해줬다. 그러자 약교연이 지필묵을 가져다가 그 자리에서 빠르게 써내려갔다.
“이걸 상공에게 전해라. 시급한 일이니 경공이 뛰어난 사람을 보내.”
“알겠습니다.”
약교연이 서찰을 건네자 정엽이 그걸 받아서 밖으로 나갔다.
“그럼 가서 그 사람들을 보내고 올게요.”
“잠깐.”
“왜요?”
“네가 가서 딴 짓을 할지 어떻게 알지?”
“사람들이 모두 당신 같지는 않아요.”
“두 사람이 갈 필요는 없으니까 이 소저는 여기에 남으라고 해.”
약교연이 낙소문을 힐끗 보며 말했다. 그러자 조윤이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순간 약교연은 흠칫하며 놀란 눈으로 조윤을 봤다. 기도가 바뀌었다.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약교연은 숨이 턱하니 막혀왔다. 검강을 터득한 조윤이 살기를 드러내자 자신도 모르게 손이 떨려왔다. 그녀는 그걸 숨길 생각조차도 못하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내가 한 번 경고했을 텐데 그걸 잊었나 보군. 다시 말해봐. 누구를 어떻게 하라고?”
조윤이 하대를 하며 약교연을 노려봤다. 그녀는 자신이 뭘 실수했는지 알지 못했다. 총명한 그녀였으나 지금은 조윤의 기세에 눌려 평소처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
쾅!
“컥!”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약교연은 조윤에게 목을 잡힌 채 벽에 부딪쳤다. 그 상태에서 두 발이 떠 있자 자연스럽게 목이 졸렸다.
“끄으…… 흐…….”
“조윤!”
낙소문이 놀라서 부르는 소리에 조윤은 치미는 살기를 간신히 눌렀다. 그가 손을 떼자 약교연이 털썩 떨어지며 주저앉아서 기침을 했다.
“자꾸 나를 시험하지 마라.”
약교연이 약간 두려움이 실린 눈으로 조윤을 봤다. 늘 온순하고 침착한 모습만 봤었다. 그런 조윤에게 저런 거친 면이 있는 줄은 몰랐다.
조윤은 그런 약교연을 무시하며 낙소문과 당예상을 향해 말했다.
“가자. 두 사람 다 따라와.”
낙소문과 당예상은 잠시 서로를 보다가 후다닥 뒤따라 움직였다.
* * *
낙소문과 당예상은 조윤의 뒤에서 조용히 걸었다. 그렇게 박력 있는 모습은 처음 봤다. 그 때문에 낙소문은 물론이고 당예상까지 얼굴이 살짝 달아오르고 심장이 뛰었다.
“저기…… 조윤.”
“왜?”
“괜찮을까?”
“뭐가?”
조윤은 당예상이 뭐를 묻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되물었다. 그러자 당예상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마교잖아. 역병인 걸 알았으니 이대로 물러나지는 않을 거야.”
“알아.”
“어떻게 하려고?”
“가야지.”
약교연이 하는 짓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미 약속을 했다. 더구나 역병이 번지는 것을 막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 알 수 없었다.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의원이기에 할 수 있는 건 할 생각이었다.
객잔에 도착하자 일행이 모두 와 있었다. 보아하니 한두 군데만 갔다가 일찍 돌아온 것 같았다. 하긴, 역병이 돌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이전처럼 돌아다니기가 꺼려졌을 것이다.
“아, 당 소저로군요.”
“네. 또 보네요.”
무경과 안면이 있던 당예상이 웃으면서 알은척을 했다. 그러자 팽종조가 끼어들며 물었다.
“누굽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