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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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57화
제3장 재회 (2)
한데 자신이 치료하지 못하는 걸 조윤은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에 기분이 상했다.
‘뭐지? 어떻게 치료를 한다는 거지?’
방소교는 계속 이자림의 의술서를 떠올렸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는 게 있었다.
하지만 과연 치료를 해도 될지 망설여졌다. 이유야 어쨌건 그녀는 이자림의 의술서를 훔쳐서 달아났다. 그걸 돌려달라고 하면 이미 내용을 다 외우고 있으니 주면 그만이었다. 다만 조윤이 자신을 비난할까, 그게 두려웠다.
그러다 방소교는 왜 자신이 이런 걱정을 하는지 또 의문이 들었다. 이에 세차게 머리를 흔든 후에 말했다.
“해볼게요.”
“치료가 가능한가요?”
낙소문이 조금 못 미더워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무표정했기에 그런 생각이 드러나지 않았다.
“확신하지는 못해요. 다만 시도는 해 볼 수 있어요.”
“정말 치료가 가능한 게냐?”
옥승진인이 묻자 낙소문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자소단이 있으면 한 번 해볼 만해요. 그래도 성공할 확률은 반반이지만 실패해도 목숨은 살릴 수가 있어요. 결정은 진인께서 하세요.”
자소단을 달라는 말에 옥승진인은 잠시 고민을 했다. 그가 옥자 항렬이지만 자소단에 관한 건 장문인인 심허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제가 가서 장문사형에게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가마. 너는 여기에 있어라.”
“그냥 제가 가는 게…….”
심양이 말을 하다가 급히 입을 닫았다. 옥승진인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졌기 때문이다.
“잠시 기다리거라.”
옥승진인은 방소교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 훌쩍 자리를 떴다.
* * *
방 안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심양은 심보와 함께 밖으로 나가서 방 안에 있는 건 낙소문과 방소교 두 사람뿐이었다. 방소교는 다시 한 번 조윤의 상태를 살피며 침을 몇 개 꽂았다. 흑마장의 독기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연인인가요?”
방소교가 대뜸 물었다. 당황할 법도 한데 낙소문은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흐응.”
예상은 했었지만 아니기를 바랐었다. 아까 인사를 할 때 들으니 아미파라고 했었다. 더구나 이렇게 예쁘니 사내라면 누군들 넘어가지 않을까?
“오래 만났나요?”
지극히 사적인 물음이었다. 그러나 낙소문은 별다른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대화가 끊기자 다시 침묵이 흘렀다. 방소교는 계속 낙소문을 힐끗거렸다. 그걸 알면서도 낙소문은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많이 좋아하나요?”
낙소문이 방소교를 쳐다봤다. 그러자 방소교가 머리를 긁적였다. 괜한 것을 물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낙소문은 이번에도 대답을 해줬다.
“그래요.”
“헤에…… 좋겠네요.”
“무슨 뜻이죠?”
“아, 나쁜 뜻이 아니에요. 나는 아직까지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이 없어서요.”
과연 그런가?
방소교는 그 말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조윤을 쳐다봤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조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윤. 정신이 들어?”
낙소문도 조윤이 깨어난 것을 알고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물었다. 그러나 조윤은 여전히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 머리가 윙윙거리고 시야가 흐릿해서 낙소문은 물론이고 방소교가 눈앞에 있는데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는 방소교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를…… 깨워…….”
“뭐? 잘 안 들려.”
낙소문이 조윤에게 귀를 바짝 가져다 댔다. 조윤은 작게 웅얼거리면 뭔가를 계속 말했다. 다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대충은 짐작이 갔다.
조윤은 더 말하지 못하고 다시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방 소저.”
“네, 네?”
낙소문이 부르자 방소교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그 모습이 조금 이상했으나 낙소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조윤을 깨울 방법이 있을까요?”
물론 있었다. 치료를 하기 전에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소교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조윤은 스스로 치료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이자림의 의술서를 돌려줘야 했다. 그것을 훔쳐간 일을 비난한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목숨을 구해준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이에 방소교는 아주 약간의 망설임 끝에 대답을 했다.
“아니요. 어려워요. 지금 정신을 차리면 극심한 고통 때문에 괴로워할 거예요. 그럼 치료가 힘들어요.”
“그래도 깨워주세요.”
낙소문이 말했다. 방소교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안 돼요! 자칫 조윤이 죽을 수도 있어요.”
“정말인가요?”
“그, 그럼요. 안 그랬다면 벌써 깨웠을 거예요.”
이상했다. 방소교의 말이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달리 할 말이 없어 낙소문은 더 이상 조윤을 깨워달라고 하지 못했다.
그때 자소단을 가지러 간 옥승진인이 돌아왔다.
“다행히 장문인이 자소단을 내주는구나.”
옥승진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작은 함을 방소교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서 뚜껑을 열어봤다. 그러자 청량한 향이 은은하게 번져 나왔다.
자소단을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효과가 어떨지 궁금해서 즉시 시험을 해 보고 싶었으나 꾹 눌러 참았다.
“그럼 저도 준비를 해서 올게요. 약재를 좀 챙기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러거라. 심양, 네가 함께 가거라.”
“알겠습니다.”
외부인인 방소교 혼자 가면 약재를 안 내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옥승진인은 심양을 딸려 보냈다.
방소교는 우선 숙소로 가서 침통을 더 챙기고, 약재창고로 가서 필요한 약재를 가져왔다.
“이제 치료를 시작할게요. 다들 나가주세요.”
“꼭 그래야 하느냐?”
“네. 치료에 집중하려면 그래야 해요. 제가 부르면 그때 와서 도와주세요.”
“알았다. 하면 나가 있으마.”
옥승진인이 그렇게 나가자 낙소문도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여전히 방소교가 못 미더웠다.
그들이 모두 나가는 것을 보고 방소교는 가져온 약재를 이용해서 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기 전에 이자림의 의술서를 다시 한 번 봤었다. 거기에 적혀 있는 대로만 된다면 치료가 가능했다.
약이 거의 만들어지자 방소교는 조윤의 상의를 벗겼다. 그리고 천에 물을 적셔 땀을 닦아낸 후에 마취산을 썼다. 치료 도중에 조윤이 깨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방소교는 침을 꽂아 어깨에 있는 흑마장의 독기가 퍼지지 못하게 했다. 혹여 몰라 이중, 삼중으로 막아놓았다. 그리고 단검으로 어깨의 상처를 건드리자 시커먼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바닥에 커다란 그릇을 놓고 그걸 받았다.
독을 뺄 때는 피를 빼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러나 피를 많이 빼면 자칫 죽을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 했다.
방소교는 조윤의 상태를 생각해서 최대한 뺄 수 있는 만큼 뺐다. 아직 검은 피가 남아있었으나 붉은 피에 섞여서 나오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후우…….”
방소교는 크게 숨을 내쉬면서 이마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약이 제대로 먹히면 독기가 중화될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어깨가 망가진다.
약을 드는 손이 조금 떨려왔다. 이에 방소교는 다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사실 자소단은 필요가 없었다. 치료가 잘못되었을 경우에 먹이려고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니 긴장할 필요 없었다. 방소교는 어깨의 상처에 아주 조금씩 약을 흘렸다.
* * *
“크흑!”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조윤이 갑자기 눈을 떴다. 분명 마취산으로 잠재워놓았는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흑마장의 독이 퍼지지 않게 삼중으로 막아놓았지만 조윤이 깨면서 어이없이 뚫려 버렸다. 그렇다고 독이 중화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약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다만 독이 퍼지는 것이 너무 빨랐다. 이대로라면 조윤은 죽고 만다.
당황한 방소교가 자소단을 꺼냈다. 그걸 먹이려는데 조윤이 방소교의 손을 잡았다.
“무슨…….”
마음이 다급해진 방소교가 조윤의 손을 떨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조윤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놔. 빨리 이거 먹어야 해.”
조윤은 잡고 있는 손을 확 밀어서 그녀를 밀어냈다. 설마 조윤이 그렇게까지 힘을 쓰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방소교가 어이없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조윤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면서 그녀를 잠시 보다가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리고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관찰했다. 어깨에 뭉쳐 있던 흑마장의 독기가 사정없이 혈맥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뒤이어 알 수 없는 기운이 흑마장의 독기를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러나 흑마장의 독기가 퍼지는 것이 워낙에 빨라 따라잡지를 못했다.
잠시 망설이던 조윤은 내공을 끌어올려 흑마장의 독기를 계속 돌렸다. 예전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혈맥이 전부 녹아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방소교가 피를 빼고 약을 쓴 덕분에 흑마장의 독기가 많이 옅어졌다. 더구나 뭉쳐있지 않고 흐르고 있기에 그게 더했다.
이런 상태에서 내공을 이용해서 독기의 흐름을 막는다면 기운이 강해져서 그 부분이 그대로 녹아버리고 만다. 순간적으로 그걸 알아차린 조윤은 독기가 흐르도록 내버려 두면서 태극음양신공을 운용했다.
어깨에 뭉쳐 있을 때는 그 기운이 강해서 자신의 기운으로 바꿀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옅어진 상태라면 가능했다. 이에 흑마장의 독기를 조금씩 바꿔가니 더욱이 그 기운이 약해졌다.
하지만 고통이 심하고 피를 많이 빼서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집중이 자꾸 끊겨서 태극음양신공의 운용이 자꾸 끊겼다. 이대로라면 흑마장의 독기가 단전으로 파고든다. 그럼 끝이었다. 죽고 만다.
조윤은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완맥을 잡는 것이 느껴졌다. 운기를 하는 와중에 그러면 자칫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진다. 한데도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진맥을 하는 건가? 누가?’
조윤은 아까 정신이 없었을 때 누군가가 자신에게 뭔가를 먹이려던 것이 생각났다. 아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어쩐지 낯이 익었다.
진맥을 하던 손이 빠졌다. 그러더니 몸 여기저기에 작은 통증이 일었다. 침을 꽂고 있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조윤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금 움직였다가는 흑마장의 독기가 단전으로 침투한다.
몇 개의 침이 더 꽂히자 조윤은 내공의 흐름이 원활해지는 것을 느꼈다. 혼미했던 정신도 조금이마나 맑아졌다. 누군지는 몰라도 침술이 보통이 아니었다.
마치 조윤이 어디로 기운을 보낼지 알고 있는 것처럼 길을 열어주고 있었다.
“커헉!”
조윤이 갑자기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시커먼 색의 피였다. 남은 독기를 모두 뱉어내자 긴장이 풀린 조윤은 풀썩 쓰러지려고 했다. 그걸 보고 방소교가 재빨리 조윤을 부축했다.
“조윤! 괜찮아?”
“누구…….”
조윤은 방소교를 붙잡고 빤히 쳐다보다가 서서히 정신을 잃었다.
방소교가 그를 잘 눕히고 맥을 잡아봤다. 흑마장의 독기는 전부 사라졌다. 목숨은 구했다. 그러나 오른팔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방소교는 지혈제를 뿌리고 봉합을 했다. 치료는 잘 끝났으나 결과는 두고 봐야 안다.
잠시 조윤을 보던 방소교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을 알아봤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으나 알아봤다 해도 상관없었다. 방소교는 이제 떠날 생각이었다. 더 있다가 조윤이 정신을 차리면 그때는 자신을 알아볼 테니, 그 전에 떠나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에 잠시 더 조윤을 보다가 부드럽게 뺨을 만졌다.
솔직히 방소교는 그때의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닌 척 그동안 자신을 속여 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조윤에게 이자림의 의술서를 보여 달라고 할 수도 있었다. 조윤은 아마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데도 그녀는 의술서를 가지고 달아났다. 조윤을 시샘하고 질투했기 때문이다.
방소교는 조윤보다 더 뛰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이자림이 조윤을 더 인정한 것을 후회했으면 했다.
“언제고 또 만나겠지.”
씁쓸하게 혼잣말을 중얼거린 방소교가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러자 밖에서 노심초사하며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를 봤다.
“어떻게 되었느냐?”
“치료는 무사히 끝났어요. 이제는 경과를 지켜보면 돼요.”
“그랬구나. 수고했다.”
옥승진인이 그렇게 말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낙소문과 심보, 심양이 들어갔고, 어정쩡하게 서 있던 사일해와 방태덕도 방으로 갔다.
남아있는 건 오로지 제갈운강뿐이었다. 방소교는 제갈운강을 빤히 쳐다보다가 처연하게 말했다.
“아직도 그 제안 유효한가요?”
“무슨…… 아, 물론이오. 방 소저가 제갈세가로 온다면 아버님께 말씀을 드려 최고의 대우를 하도록 힘쓰겠소.”
“그럼 부탁해요.”
“잘 생각했소.”
방소교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