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56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56화
제3장 재회 (1)
기침을 심하게 하는 환자를 보던 방소교는 빠르게 처방을 적어 내려갔다. 선천적으로 기관지가 약한데 찬바람을 많이 맞아 생긴 병이었다. 탕약으로 폐의 기운을 돋아주면 효과를 볼 수가 있었다.
“여기에 적힌 대로 약을 지어 먹으세요. 하루에 세 번, 공복에 먹어야 해요. 찬바람 많이 맞지 마시고요.”
“고맙습니다. 방 소저.”
“고맙기는요. 다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방소교가 웃으면서 말하자 중년 사내도 소탈하게 웃었다. 말은 저리 해도 방소교는 성심성의껏 환자들을 살폈다. 무엇보다 실력이 좋아서 나이가 어리고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중년 사내가 나가자 건장한 체구의 젊은 사내가 들어왔다. 청색의 무복을 입고, 단아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는 제갈세가의 셋째인 제갈운강이었다.
제갈세가는 호북의 융중산(隆中山)에 위치해 있는 명문세가였다.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의 후손이라는 설이 있다. 그래서인지 제갈세가에는 총명한 사람들이 많았다. 제갈운강 역시 신기복룡(神技伏龍)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었다.
“수고가 많습니다. 방 소저.”
제갈운강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뭇 여인들의 방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매력적인 미소였으나 방소교는 한숨부터 쉬었다.
무당파에는 지금 여러 문파의 호걸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고자 하루가 멀다 하고 비무를 하고 있었다.
정도를 걷는 사람들이라 상대를 상하지 않는 선에서 끝을 내지만 때론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
방소교는 천생 의원이라 그들을 몇 명 치료해줬었다. 한데 의술이 범상치 않으니 금방 입소문이 났다. 이에 무당파의 의원에게 가지 않고 그녀한테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제갈운강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문제가 매일 찾아온다는 거였다. 방소교의 의술이 뛰어난 것을 알고 제갈세가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방소교는 아직 어딘가에 정착을 할 생각이 없었다. 좀 더 돌아다니면서 세상을 둘러보고 환자들을 치료하며 많은 경험을 쌓고 싶었다. 그래서 계속 거절을 했는데도 제갈운강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은 또 어디가 아파서 온 거죠?”
“하하. 오늘은 정말 다쳐서 온 겁니다. 치료비는 넉넉히 드릴 테니 부탁드립니다.”
멋쩍게 웃으면서 제갈운강이 팔을 내밀었다. 방소교가 보니까 검에 살짝 긁힌 상처였다. 비무를 하다가 다친 것 같았다. 하긴, 신기복룡 제갈운강은 제갈세가의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다른 문파에서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순수하게 한 번 붙어보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를 이겨서 명성을 얻거나 또는 제갈세가의 위세를 좀 깎으려는 자들도 있었다.
“살짝 베였네요.”
“상대가 만만찮았소. 화산파의 매화검수 중 한 명이었는데, 어찌나 검세가 화려한지 애를 먹었다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이겼소.”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제갈운강을 보며 방소교는 설핏 웃었다. 옛날부터 느낀 거지만 순수한 사내들일수록 참 어리다. 제갈운강은 특히나 더 그랬다.
“이런 상처는 스스로 치료해도 되지 않나요?”
“가까이에 이리 아름답고 뛰어난 명의가 있는데 왜 스스로 해야 하오?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지.”
방소교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한 말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방소교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천에 물을 묻혀 상처를 깨끗이 닦아내고 지혈제를 뿌렸다. 그리고 바늘로 상처를 봉합한 후에 깨끗한 천으로 감았다.
“상처가 덧나지 않게 다 나을 때까지 술은 마시지 마세요.”
“그대가 함께 차를 마신다면 술은 마시지 않겠소.”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어 아쉽군요.”
“매번 거절을 하는구려.”
“바쁘니까요.”
실제로 그녀는 굉장히 바빴다. 환자를 보고, 약재를 구하러 다니고, 의술을 공부했다. 허투로 낭비하는 시간이 없었다.
“당신 같은 여인은 처음이오.”
제갈운강이 미소를 지우고 진지하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러자 부담을 느낀 방소교는 애써 웃으면서 답했다.
“당신 같은 남자도 처음이에요.”
“하하. 이래서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거요.”
“치료 다 끝났으니까…….”
나가라고 말하려는데 갑자기 늙은 도사 한 명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방소교의 손을 잡고 끌었다.
“함께 가자.”
“누구시죠? 우선 손부터 놓으시고…….”
“시간이 없다.”
심양은 다급했다.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할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그건 심양의 사정이었고 아무것도 모른 채 끌려가는 방소교는 필사적으로 반항했다.
“잠깐 만요. 이것 좀 놓고…….”
그때였다. 제갈운강이 방소교의 손을 잡고 있는 심양의 팔을 잡았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시간이 없다.”
심양이 그렇게 말하면서 내공을 일으키자 제갈운강의 손이 퉁하고 튕겨나갔다.
제갈운강은 그 같은 공력에 크게 놀랐으나 곧 정신을 차리고 재차 손을 뻗어 심양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심양이 손을 한 번 휘젓자 부드러운 기운이 확 몰아쳐오며 그의 손을 또다시 튕겨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소교를 옆구리에 끼고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기다리십시오!”
제갈운강이 크게 소리치면서 심양의 뒤를 쫓았다. 방소교를 굳이 데리고 간 것을 보면 죽일 생각은 없어 보였다. 더구나 옷차림이나 무공을 보니 무당파의 노도사가 분명했다. 그러나 눈앞에서 방소교가 납치가 되었는데 모르는 척할 수는 없었다.
* * *
심양은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지나가 담을 몇 개나 넘었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의아해했으나 워낙 빠르게 지나쳐가는지라 붙잡거나 물어볼 수가 없었다. 뒤이어 제갈운강이 따라가니 뭔가 일이 생겼나 보다 여겼을 뿐이다.
무당파의 의원에 도착한 심양은 문 앞에 있는 사일해와 방태덕을 본체만체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왔구나.”
“여기 이 아이입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방소교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방소교는 심양의 옆구리에 끼워져 정신없이 여기까지 옮겨지느라 속이 울렁거렸다. 그 때문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는 걸 보고 옥승진인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괜찮은 게냐?”
“네? 네. 괜찮아요. 잠시 만요.”
방소교는 크게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그러면서 빠르게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봤다. 무당파의 도사들인 건 확실했는데 누군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방 소저.”
그때 제갈운강이 방소교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그러자 심양이 앞을 막아섰다.
“넌 뭐냐?”
“네?”
“뭔데 여기에 들어오려는 거냐?”
“어르신께서 방 소저를 이리 데리고 가는 것을 보고 걱정이 되어 뒤따라 왔습니다.”
“내가 저 아이를 해치기라도 할까 봐?”
“그건 아니지만 아무 말 없이 그리 끌고 가시니 영문을 모르는 저로서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 안에서 제갈운강이 하는 말을 듣고 있던 옥승진인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심양이 무슨 짓을 했는지 단번에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당칠성은 하나같이 그랬다. 그 나이 먹도록 철이 들기는커녕 갈수록 아이처럼 굴었다.
“많이 놀랐겠구나. 나는 옥승이라고 한다.”
“아.”
옥승진인이 스스로를 밝히자 방소교와 제갈운강은 크게 놀랐다. 무당파의 최고수이자 무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가 바로 옥승진인이었다. 인연이 없으면 평생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몰라 뵈었어요.”
방소교가 급히 포권을 했다. 그러자 옥승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심양에게 말했다.
“비켜주어라.”
“알겠습니다.”
심양이 옆으로 비켜서자 제갈운강이 얼떨떨해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너는 누구냐?”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제갈운강이라고 합니다. 제갈세가의 셋째입니다.”
“상황이 다급해 심양이 아무 말 없이 데리고 온 것 같구나. 너희가 이해하거라.”
“네.”
“물론입니다.”
“네 의술이 뛰어나다 들었다. 오대신의 중 한 명의 제자라지?”
“네. 방소교라고 합니다. 스승님은 신수신의라 불리는 분입니다.”
“다친 사람이 있어서 너를 오라 한 것이다. 봐줄 수 있겠느냐?”
“네.”
방소교가 대답하자 옥승진인이 제갈운강을 봤다. 그 뜻을 짐작한 제갈운강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그동안 저는 나가 있겠습니다.”
“그래.”
제갈운강이 밖으로 나가자 방소교가 침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윤을 보는 순간 크게 놀라 멈칫했다. 조윤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방소교가 이자림의 제자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이렇게까지 의술실력이 뛰어나게 된 이유는 조윤에게서 훔친 책 때문이었다.
서역도호부가 무너질 때 이자림은 자신의 의술을 기록한 책자를 조윤에게 줬었다. 한데 방소교는 조윤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그 책자를 가지고 달아났다.
스승인 이자림이 조윤을 아끼는 건 이해가 되었다. 조윤은 그만큼 의술이 뛰어났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훨씬 먼저 제자가 된 자신이 아닌 조윤에게 의술서(醫術書)를 넘긴 것까지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그 책자에는 이자림의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 걸 왜 조윤에게 준단 말인가?
그건 응당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이 받아야 했다. 당시에는 워낙 경황이 없어서 조윤에게 준 것이리라, 의술서를 훔친 이후 방소교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죄책감을 지웠다.
때론 조윤이 금방이라도 쫓아올 것 같기도 했고, 스승인 이자림을 만날까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책자에 있는 것을 하나씩 깨우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조윤을 만나건 이자림을 만나건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까지는.
방소교는 조윤을 보자 숨이 턱 막히면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손까지 덜덜 떨려왔다.
“왜 그러느냐?”
옥승진인이 다가오며 묻자 방소교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다 조윤이 정신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 아니에요.”
“보다시피 어깨를 다쳤다. 독기가 지독해서 내가 내공으로 치료를 하면 목숨은 살릴 수 있으나 오른팔을 영영 못 쓰게 된다. 하여 너를 부른 것이다.”
“일단 진맥을 해 보겠습니다.”
“그러거라.”
방소교는 조윤에게 다가가 어깨의 상처를 살폈다. 그리고 손목의 완맥을 잡았다.
‘독 기운이 굉장해. 내공으로 독 기운을 막아놨었나?’
이럴 경우 가장 좋은 건 독기가 더 이상 퍼지지 않게 오른팔을 자르는 거였다. 그럼 불구가 되겠지만 목숨은 건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옥승진인이 바라는 건 오른팔을 쓸 수 있게 하고, 목숨도 보전하는 거였다.
“무슨 독에 당한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비밀을 지켜야 하느니라.”
“환자에 대한 비밀을 지키는 건 의원이 당연히 할 일이에요.”
“흑마장이다.”
“흑마장이요?”
“그래.”
방소교가 그동안 천하를 떠돌았지만 무림인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지 못했다. 당연히 흑마장이 뭔지도 몰랐다. 단지 독공의 일종이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었다.
“혹시 흑마장이 뭔지 모르는 게냐?”
“네.”
“흠, 흑마장은 지독한 음기를 응축시켜서 쓰는 장법(掌法)이다. 닿는 순간 살이 녹고 썩어 들어간다.”
설명을 듣고 방소교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조윤의 어깨를 다시 한 번 살폈다.
“독기가 강하긴 강하네요.”
방소교는 품에서 침통을 꺼냈다. 그리고 침을 하나 빼서 상처에 찌른 후에 가지고 있던 작은 병에 담갔다. 그 병에 담긴 건 은온고(誾溫蠱)라는 약이었다. 이자림이 쓴 책에 적혀 있는 대로 만든 거라 웬만한 독은 조금만 먹어도 해독이 가능했다.
하지만 흑마장의 독기에 닿은 침을 넣자 순식간에 성질이 변해버렸다. 은온고의 기운보다 흑마장의 독기가 압도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방소교는 잠시 머리를 굴리며 치료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봤다. 이자림의 의술서는 수백, 아니 수천 번을 봐서 이제는 내용을 달달 외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흑마장을 치료할 방법이 선뜻 떠오르지가 않았다.
“방법이 없나요?”
낙소문이 묻자 그제야 방소교는 그녀를 봤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데도 굉장히 아름다웠다.
“누구…….”
“아미파의 제자예요. 낙소문이라고 해요.”
“아.”
방소교는 그보다 조윤과의 관계가 궁금했다. 그러다 자신이 왜 그걸 궁금해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료할 방법이 없나요? 하다못해 조윤이 정신을 차릴 수 있게만이라도 해주세요. 조윤이 그랬어요. 약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무당파에 가야 한다고요. 오른팔을 못 쓸 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당신 말은 조윤이 자신의 팔을 치료할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건가요?”
“그래요.”
낙소문의 대답을 듣고 방소교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이자림의 의술서를 공부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 이자림은 따라잡을 수 없어도 조윤은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