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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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53화
제2장 출발 (1)
눈을 뜬 방태덕은 몸이 무거웠다. 아직 마취가 완전히 풀리지 않은 탓이다. 그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돌려 조윤을 봤다.
“아, 일어났군요. 치료는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그럼 살아난 건가?”
“네. 하지만 당분간은 움직이지 말고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조윤이 그렇게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방태덕이 뒤늦게 인사를 했다.
“정말 고맙군.”
“운이 좋았습니다.”
“내 비록 낭인이나 은혜는 안다. 돈을 주면 되나? 아니면 죽여 줄 사람이 있으면 말해라.”
“아닙니다. 약값은 전부 사 대협이 냈습니다.”
“그가?”
방태덕이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사일해와는 이곳에서 처음 만났다. 그 전까지는 친분이 전혀 없었다. 한데도 사일해는 호의를 베풀었다.
고마움보다는 의심부터 들었다. 강호란 곳이 원래 그랬다. 이유 없이 호의를 베풀면 우선 의심부터 해야 했다.
“그리 큰돈은 아닙니다.”
“약값은 얼마 안 한다 해도 내 목숨 값은 크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계산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무당파에서 파문당할 때의 일이 뇌리에 꽉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팔다리의 심맥이 잘리거나 단전이 부서졌어야 했다. 하지만 사부인 심미진인이 스스로 오른팔을 자른 덕에 오른팔만 잘리고 말았다.
그 같은 일을 겪은 이후로 그는 뭐든 주고받는 것을 정확히 했다. 누군가 팔을 베면 가서 똑같이 베었고, 목숨을 위협하면 반드시 쫓아가서 죽였다. 반대로 호의를 받으면 어떻게든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렀다.
“그럼 치료비를 조금 주세요. 이후에 약재를 사는 데 쓰겠습니다.”
“그러겠다.”
“며칠 더 지켜보다가 저는 떠날 겁니다. 실밥을 풀 때까지 경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제가 그때까지 기다릴 여건이 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다친 어깨를 치료하러 가야 합니다.”
방태덕의 눈이 자연스럽게 조윤의 어깨로 향했다. 그 시선을 눈치챈 조윤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어깨를 영영 못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를 치료한 건가?”
“의원인데 환자를 못 본 척할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아직까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 건가?”
“무당파로 갑니다.”
무당파 이야기가 나오자 방태덕의 눈이 침잠해졌다. 그 역시 무당파로 가는 중이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마교가 날뛰던 무당파가 망하건 알 바 아니었다.
다만 자신을 내친 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 앞에서 실력을 보여주고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도 무당파로 가는 길이었다. 함께 가는 것이 어떠냐?”
“아까 말했다시피 시일이 급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무당파까지 빨리 가는 길을 알고 있다. 네 예상보다 사흘은 당길 수가 있을 거다.”
방태덕이 하는 말을 듣고 조윤은 잠시 생각을 해봤다. 그가 움직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얼추 사흘이다. 기다렸다가 경과를 보고 가나 지금 가나 똑같았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해요.”
“잘 생각했다.”
“쉬세요.”
조윤이 방을 나와 보니 아래층에서 낙소문이 사일해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어떤가?”
“괜찮아요.”
사일해가 묻는 말에 조윤이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낙소문이 잔을 놓고 차를 따라줬다.
“출발을 좀 미뤄야 할 것 같아.”
“왜?”
낙소문은 뜻하지 않게 방태덕을 치료하느라 여기에서 머문 시간이 아까웠다. 조윤은 흑마장에 당했다. 지금 그 기운을 눌러놓고는 있지만 한시라도 빨리 무당파로 가서 치료를 해야 했다. 안 그럼 오른쪽 팔을 못 쓰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출발을 더 미루자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방 대협도 마침 무당파로 간대. 사흘 정도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알고 있다더라고. 그래서 경과를 지켜보고 함께 가기로 했어.”
“그럼 나도 그때 함께 가기로 하지.”
사일해가 끼어들자 낙소문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워낙에 표정이 없어서 겉으로 드러나지가 않았다. 사실 그녀는 계속 조윤과 둘이 가고 싶었다. 그런데 두 명이나 불청객이 끼어드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알았어.”
낙소문은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차만 마셨다. 조윤은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사흘 정도 걸릴 줄 알았는데 방태덕은 삼 일이 지나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통은 충수염 수술을 하면 최소 칠 일에서 십 일 정도 지난 후에 실밥을 푼다.
그러데 무림인이라 역시 회복이 빨랐다. 이에 조윤은 바로 실밥을 풀고, 그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조윤의 상태도 좋지 않고 방태덕도 그랬기에 말을 타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사일해가 기존에 있던 마차를 넘기고 사인용 마차를 구해왔다.
“출발합니다!”
사일해가 마차를 몰며 소리쳤다. 방태덕은 처음에는 그의 호의가 달갑지 않았었다. 혹여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며칠 함께 지내보니 사일해의 성격이 호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일해는 베푸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를 잘 사귀었다. 까칠해 보이는 낙소문에게도 친근감 있게 굴 정도였다. 그래서 이후로는 의심을 지웠다.
한참을 가서 산을 넘자 길게 뻗은 관도(官途)가 나왔다. 무당파는 무당산에 있다. 그리고 무당산은 균현(均縣)에 있다. 그리로 가려면 관도를 따라 가야 했다.
“사 형! 멈추시오.”
“응? 왜 그러오?”
마차를 몰던 사일해가 고삐를 잡아당겨 멈췄다. 그러자 방태덕이 마차에 난 창문으로 밖으로 한 번 살핀 후에 말했다.
“관도를 따라 가지 말고 우측에 나 있는 소로(小路)로 갑시다. 길은 좀 험해도 이틀에서 삼 일 정도는 도착시간을 줄일 수가 있을 거요.”
“알았소.”
사일해는 방태덕의 말대로 소로로 마차를 몰았다. 가면서 마차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산을 끼고 가는 길이라 그랬다.
조윤은 어깨의 통증이 밀려왔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앞을 보니 사일해도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굳이 함께 갈 필요가 없는데도 그는 고생을 자처했다. 자신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 조윤에게 미안하기 때문이었다.
“의술이 뛰어난데 무당파까지 가는 이유를 물어도 되나?”
“어깨를 치료하려면 귀한 약재가 몇 개 필요합니다.”
“그런가? 무당파에 있기는 있겠지만 쉽게 내줄지 의문이로군.”
방태덕은 아직까지 조윤이 옥승진인의 제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면 아무리 목숨을 구해줬다 해도 이렇게 호의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그는 무당파에 대한 증오가 깊었다.
“내줄 겁니다.”
“혹여 무당파에 아는 사람이 있는 건가?”
방태덕이 묻는 말에 조윤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러자 방태덕이 살짝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쓰다가 낙소문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낙 소저가 아미파의 제자이니 문제될 것은 없겠군.”
“듣자니 무당파와 사이가 안 좋다던데 이렇게 가도 괜찮은 겁니까?”
“누가 내 얘기를 했나? 사 형인가?”
“아닙니다. 소문에게 들었습니다.”
조윤의 말에 방태덕이 낙소문을 봤지만 뭐라고 하지는 못했다. 대신에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짐짓 강한 척을 했다.
“무당파 따위 하나도 두렵지 않다. 그들이 약재를 내주지 않으면 내가 빼앗아서라도 주마.”
“그게 아니라 무당파에 가는 이유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잠시 말을 끊은 방태덕의 얼굴이 어두웠다. 그러다 곧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보여주고 싶은 것뿐이다.”
그 한마디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조윤은 그가 한 말의 뜻을 짐작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가는 길에 밤이 되자 일행은 객잔에서 하루를 지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그곳을 나와 무당파로 향했다. 그렇게 며칠을 더 가자 방현(房縣)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방현에서 균현까지는 금방이었다. 앞으로 사흘 정도만 더 가면 된다. 만약 관도를 타고 왔다면 방태덕의 말대로 이틀이나 삼 일 정도 더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소로로 온 덕분에 빨리 도착했다.
객잔에서 식사를 한 일행은 각자 필요한 물품들을 사기 위해 잠시 헤어졌다.
조윤은 낙소문과 함께 옷을 샀다. 전염병이 도는 마을에서 입고 있는 옷을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에 여벌의 옷이 없었다.
또한 낙소문의 얼굴을 가릴 면사와 죽립도 샀다. 낙소문의 미모는 너무나 눈에 띄었다. 그녀가 조금 답답해했지만 객잔에 들를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누구를 찾아?”
객잔으로 돌아가면서 조윤이 계속 오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피자 낙소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니. 혹시나 해서.”
“여기에도 전염병이 퍼졌을까 봐?”
“응.”
“관청에서 잘 처리했겠지.”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아.”
그때 본 현감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관청을 나오면서도 불안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역병은 가벼운 사안이 아니니까 신경 써서 처리했을 거야.”
“그랬으면 다행이고.”
객잔에 도착하자 사일해와 방태덕이 돌아와 있었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다가 조윤과 낙소문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