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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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50화
제10장 연모(戀慕) (3)
“끄윽!”
눈을 뜬 조윤은 극심한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오른쪽 어깨가 떨어져나갈 듯이 아팠다.
한참을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다가 간신히 통증에 조금 익숙해지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깔끔한 방 안이었는데 어딘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깨를 보니 천이 칭칭 감겨 있었다. 꼼꼼하게 잘 싸맨 것이 아무래도 의원이 다녀간 것 같았다.
조윤은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오른쪽 어깨에 여전히 흑마장의 기운이 뭉쳐 있었다. 그러나 독 기운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그 외에 다리에 타박상을 입었고, 늑골에 금이 갔으며, 가슴에 울혈이 져 있었다. 썩 좋은 상태가 아니었으나 살아있다는 것이 어딘가?
잠시 집중해서 운기조식을 하자 조금이나마 고통이 줄어드는 것 같았다. 그때 밖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이 나자 조윤은 운기조식을 끝내고 문을 봤다.
“아, 일어났군요.”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낙소문이었다. 그녀는 푸른색의 무복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하나로 묶어 내린 모습이었는데 창가로 비춰지는 햇살이 더해져 굉장히 아름다웠다.
그 때문에 조윤이 시선을 떼지 못하게 계속 쳐다보자 낙소문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왜 그렇게 보는 거죠?”
“에? 아, 아니요. 너무 예뻐서요. 하하.”
얼결에 속마음을 말한 조윤은 멋쩍어하며 웃었다. 그러자 늘 무표정하던 낙소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모, 몸은 좀 어때요?”
“의원이 왔다 갔나요?”
“그래요.”
“통증이 있지만 참을 만해요.”
“사흘이나 누워있었어요.”
“꽤 오래 누워있었군요. 여기는 어디죠?”
“선릉표국이에요. 예전에 무경도인을 도와줬던 것이 생각나서 도움을 청했어요.”
“그럼 아직 호북이군요.”
“그래요.”
“여기에 있는 건 위험해요. 사천으로 가든가, 무당파로 가야 해요.”
“그 몸으로 움직이는 것은 무리예요.”
생각해보니 그랬다. 이런 몸으로 움직이면 낙소문만 고생하게 된다. 이에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낙 소저에게 폐를 끼칠 뻔했군요.”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제가 폐를 끼쳤는걸요. 장 노인에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천으로 가다가 저 때문에 다시 돌아왔다고요. 덕분에 목숨을 구했어요. 고마워요.”
“아니요. 당연히 할 일이었어요.”
“잠시 있어요. 사흘 동안 굶었으니까 먹을 걸 좀 가져올게요.”
“그래요.”
낙소문이 방을 나가자 조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했다. 가장 좋은 건 사천으로 가는 거였다.
하지만 당문으로 가면 꼼짝없이 당효주와 혼인을 해야 한다. 낙소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터라 원치 않는 혼인을 하기는 싫었다.
그렇다면 무당파로 가야 하는데, 그건 그것대로 좋지 않았다. 지금 무당파와 마교는 크게 한판 붙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가면 자신이야 어떻게 한다고 해도 낙소문이 위험해질 수가 있었다.
한참 고민을 하던 조윤은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은 몸부터 치료하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후 낙소문이 죽을 가지고 왔다. 그걸로 허기를 채운 조윤은 낙소문에 처방전을 써서 약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낙소문은 흔쾌히 그러겠다면서 다시 방을 나갔다. 그동안 조윤은 계속 운기조식을 하며 흑마장의 기운을 조금이라도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그렇게 반 시진 가까이 애를 쓰자 아주 약간 독 기운이 줄어든 것이 느껴졌다.
이런 식이면 치료를 하기도 전에 어깨가 다 썩어버린다. 약을 지어서 먹는다고 해도 독을 없애지는 못한다. 그저 독이 퍼지지 않게 막을 뿐이었다.
조윤은 치료방법을 생각하다가 예전에 기라가 줬던 기라독해의 내용을 더듬어봤다. 흑마장에 대한 건 없었으나 해독이 가능한 치료제는 만들 수가 있었다. 다만 약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흔하지도 않을뿐더러 굉장히 비싼 것이 몇 개 포함되어 있었다.
‘흐음…… 결국 무당파로 가야 하나?’
그랬다. 지금으로서는 무당파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라면 필요한 약재를 구할 수가 있었다.
낙소문이 돌아오자 조윤은 무당파로 가야 되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여기에서 헤어지자고 했다. 함께 가면 낙소문이 또다시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는 없어요.”
“낙 소저도 알다시피 지금 무당파는 마교와 언제 붙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갔다가 자칫 그 싸움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함께 가겠어요. 몸도 성치 않은데 혼자 보낼 수는 없어요. 게다가 저 때문에 이렇게 되었잖아요.”
“나는 낙 소저가 위험해지는 걸 바라지 않아요.”
조윤의 말을 듣고 낙소문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 때문에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조윤은 자신이 말을 잘못했나 싶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낙소문이 전혀 생각지도 않은 걸 물어왔다.
“조윤 공자.”
“네.”
“혹시 저를 좋아하세요?”
직설적으로 대놓고 물으니 조윤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문으로 돌아가면 당효주와 혼인을 해야 한다. 그런데 좋아한다고 해도 되는 걸까?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는 싫었다. 이에 조윤은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합니다.”
낙소문이 웃었다. 조윤은 그녀가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처음 봤다. 절세가인이라 할 수 있는 낙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웃으니 조윤의 심장이 뛰었다.
“나도 조윤 공자를 좋아해요.”
이어지는 고백에 조윤은 멍하니 낙소문을 쳐다봤다. 그러다 손을 내밀자 낙소문이 조금 머뭇거리다가 다가와 그 손을 잡았다.
조윤은 그녀를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비록 한 팔로 안는 거지만 어렵지 않았다. 낙소문의 상큼한 체향이 느껴지자 조윤은 약간 흥분이 되었다. 그래서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낙소문에게 입을 맞췄다.
처음에는 가볍게 입을 댔으나 낙소문이 놀라서 가만히 있자 곧 깊게 입을 맞췄다.
낙소문은 얼결에 조윤의 혀를 허락했다가 이상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 입을 떼려고 했다. 그러나 조윤이 머리를 잡고 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부끄러움을 참고 조윤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자 간질간질하면서도 좋은 느낌이 들었다. 남녀 간에 합방하는 것에 대해서는 들어서 대충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입을 맞추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조윤은 좀 더 진도를 나가고 싶었으나 무리를 한 탓에 어깨에서 통증이 일자 얕은 신음소리를 내며 인상을 살짝 썼다. 그러자 낙소문이 방금까지 당했던 일을 까맣게 잊고 조윤을 걱정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약간 통증이 느껴졌을 뿐이에요.”
“아, 약을 올려놓고 깜빡했어요.”
낙소문은 조윤과 눈을 마주치자 도망치듯이 방을 나갔다. 그런 낙소문이 귀여워 조윤은 웃음이 나왔다.
* * *
사흘을 머물며 약과 침으로 어느 정도 치료를 하자 통증이 거의 없었다. 이만하면 움직여도 되겠다는 생각에 조윤은 낙소문과 함께 선릉표국을 나왔다.
여비가 없었으나 다행히 표국주가 잘 봐달라며 돈을 챙겨줬다. 거절할 처지가 아니라 조윤은 그걸 받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말을 탈 수가 없는 조윤을 위해 마차까지 내줬다.
하지만 가는 길이 편하지는 않았다. 길이 안 좋아서 마차가 자주 덜컹거렸고, 그때마다 상처에서 통증이 일었다. 이에 몇 번이나 쉬면서 가는 바람에 이동이 상당히 늦었다.
가는 동안 낙소문과 조윤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편하게 말을 놓고 이름을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자 조윤은 두려움을 안고 그녀에게 당효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묵묵히 이야기를 다 들은 낙소문은 의외로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조윤은 혹시 그녀가 기분이 상하거나 화가 났을까 봐 걱정했으나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이상하게 여겨 이유를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조윤은 능력이 좋잖아. 아마 앞으로도 많은 곳에서 너를 사위로 맞으려고 할 거야.”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아니. 마음이 좋지는 않아. 하지만 이해 못할 일은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그거야 그렇지만…….”
“조윤은 나를 좋아하지?”
“응? 어.”
“당효주보다 더?”
“응. 말했듯이 효주는 누이동생 같아.”
“그럼 됐어. 더 이상 말하지 마.”
현대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조윤은 낙소문이 이상한 건지 자신이 이상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대로를 따라 한참을 가다보니 어느새 점심때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가면서 들른 객잔에서 사놓은 만두가 아직 있었다. 그걸로 끼니를 때울지 조금 더 가서 마을에 가서 먹을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낙소문이 앞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마을이야.”
“응.”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그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함을 느낀 조윤은 낙소문에게 잠시 마차에서 기다리라 하고 혼자 마을로 들어갔다. 혹시 몰라 검을 뽑아 들고 천천히 걷다가 문이 조금 열려 있는 집이 있기에 그리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나무문을 밀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안을 두리번거리면서 들어가자 침상에 두 구의 시체가 보였다. 하나는 어른 남자였고, 하나는 아이였다.
그들을 보자마자 조윤은 재빨리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낙소문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낙소문이 놀라서 검을 뽑아 들었다. 조윤이 창백한 얼굴로 달려오자 적이 쫓아온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차 뒤로 빼! 빨리!”
“왜 그러는데?”
“일단 가자. 가서 이야기해줄게. 빨리 여기를 벗어나야 해.”
조윤이 다급하게 외치자 낙소문은 영문도 모른 채 마차를 돌려 마을을 벗어났다. 그러자 마차를 천천히 몰며 조윤을 봤다.
“이제 이야기해줘. 왜 그런 거야?”
“전염병이야.”
“뭐?”
조윤의 한마디에 낙소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이 시대에 전염병은 재앙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