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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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35화
제4장 예측 (2)
“이대로 있으면 망아추혼 때문에 바보가 될 겁니다. 뭐라도 할 수 있는 건 해야죠.”
“알았다. 일단 이야기는 전하겠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마라.”
“고맙습니다.”
당자휘는 잠시 조윤을 쳐다보다가 말없이 몸을 돌렸다. 설마 효주가 살아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당수백의 마음을 돌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혹여라도 조윤이 그저 살고자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그때는 자신이 용서를 하지 않으리라.
당자휘가 가고 나서 반 시진 정도가 지나자 당수백이 홀로 찾아왔다. 그는 조윤이 가부좌를 하고 앉아있는 모습을 한참이나 내려다봤다.
먼저 말을 걸 수도 있었으나 조윤은 조용히 눈을 감고 그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 말이 사실이더냐?”
당수백은 두서없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 같은 어투였으나 그만큼 마음이 급하다는 뜻이었다.
“효주가 아팠을 때의 일을 말해주십시오. 의원들이 진맥을 한 이후에 뭐라고 했는지도요.”
“나를 기만할 생각이면 그만두어라. 하면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최소한 고통은 주지 않겠다.”
조윤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러자 수척한 모습의 당수백이 보였다.
“선택은 가주님의 몫입니다.”
“영악하구나. 영악해.”
당수백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맞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었다. 하나 이미 결과가 정해져있었다.
지금 당수백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었다.
“효주는…….”
어렵게 말을 꺼낸 당수백이 당시의 상황을 전부 이야기했다. 그걸 곰곰이 듣고 있던 조윤은 당효주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냐?”
“아직 효주가 살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 생각하는 거냐?”
“날짜가 아직 남았습니다. 만약 효주의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았다면 아직 보름 정도의 시간이 더 남았습니다.”
“허, 네가 무슨 신의라도 되더냐? 사람이 죽는 날까지 예측을 하게.”
말을 해놓고 당수백은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윤의 의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대단했다. 그래서 사천에서는 이미 천하오대신의가 아니라 육대신의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었다.
“믿든 안 믿든 그건 가주님의 선택이지만 이것만 알아두십시오. 효주가 살아있다면 지금도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고 있을 겁니다.”
“닥쳐라!”
콰앙!
조윤의 말에 당수백이 화를 내며 뇌옥의 두터운 나무창을 후려쳤다. 그러자 뇌옥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이 크게 흔들렸다.
“저를 죽일 생각이십니까? 아니겠죠. 여기에 갇혀 있으면서 왜 가주님이 제게 망아추혼을 썼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답이 나오더군요. 제 명성 때문에 죽일 수가 없는 겁니다. 저를 죽이면 저한테 치료를 받은 정의맹의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지 않겠죠. 무당파와는 척을 지게 되고요. 그래서 망아추혼을 쓴 거 아닙니까? 일단 살아만 있다면 뭐든 변명을 댈 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모습으로 살아있는 건 살아있는 게 아니죠. 오히려 더 통쾌할 수도 있겠군요.”
“잘 아는구나.”
“하지만 가주님이 생각을 못하신 것이 있습니다.”
“뭐를 말이냐?”
“제가 왜 왔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효주가 죽었다면 가주님이 저를 죽이려고 할 걸 알면서 왜 왔는지 생각해보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그게 계속 의문이기는 했다. 듣자니 조윤은 검강을 깨우친 덕분에 무당파의 최고수이자 강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옥승진인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도망치고자 했다면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데도 조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심지어 목숨을 걸고 폭풍우까지 뚫으면서 왔다. 그 이유가 뭐란 말인가?
혹여 정말 당효주가 살아있단 말인가?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효주가 살아있다면 치료를 해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혹여 죽었다면 시체라도 가져 오겠습니다.”
“너를 어떻게 믿으라는 거냐?”
“도망갈 것 같았으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효주는 제게도 여동생 같은 아이입니다. 아직 보름의 시간이 있습니다. 속는 셈 치고 풀어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조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부탁을 하자 당수백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산공독의 해독약은 효령이 줬겠지? 하니 망아추혼의 해독약을 주겠다.”
승낙의 뜻이었다. 이에 조윤이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믿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건 네가 보여준 말과 행동이 아니었더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한 번도 도망을 친 적이 없었지. 대범하게도 항상 내게 부딪쳐왔다. 이번에도 그래야 할 거다. 안 그럼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고통을 맛보게 될 테니까.”
할 말을 끝낸 당수백이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 내밀었다. 망아추혼의 해독제였다.
조윤이 그걸 받아서 뚜껑을 열자 안에서 작은 환이 여러 알 나왔다.
“전부 먹어라.”
당수백이 시키는 대로 한 번에 환약을 전부 입에 털어 넣자 시큼한 맛 때문에 조윤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네 말대로 보름의 시간을 주겠다. 따로 금제를 가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자휘와 항상 함께 다녀라.”
“알겠습니다.”
“보름이다. 명심하거라.”
“네.”
당수백은 손수 뇌옥의 문을 열어주고 먼저 그곳을 나왔다. 그런 것으로 봐서 당수백은 이곳으로 올 때부터 이미 조윤을 풀어줄 생각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안 그럼 해독제는 물론이고 뇌옥의 열쇠까지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 * *
조윤이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당자휘가 다가왔다.
“설마 했는데 정말 아버님을 설득했구나.”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효주를 찾아야 합니다.”
“그동안 계속 세가의 무사들이 찾아다녔는데도 찾지 못했다. 그러니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몸부터 추슬러라.”
“효주가 갈만한 곳을 알고 있습니다. 이화 누이를 불러주십시오.”
“그게 정말이냐?”
“네.”
“알았다. 사람을 보낼 테니 방으로 가자.”
당자휘가 그렇게 말하면서 조윤을 부축했다. 그리고 방으로 가면서 마주친 하인에게 이화를 불러오라고 명령했다.
방에 가서 잠시 쉬고 있자 이화가 왔다. 그녀는 조윤의 몰골이 엉망인 것을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떻게 된 거야?”
이화는 어제 있었던 일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문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와 현진, 낙소문은 다른 곳으로 안내가 되었었다. 그게 조금 이상했으나 짐을 풀고 잠시 쉬고 있으면 조윤이 부를 거라는 말에 별다른 생각 없이 넘어갔었다.
“조금 문제가 있었어.”
“무슨 문제? 혹시…….”
“누이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 마. 그보다 대호랑 육예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응. 일하거나 방에 있겠지.”
“두 사람을 좀 불러줘.”
“내가 사람을 보내겠다.”
당자휘가 끼어들며 말하자 조윤이 말렸다.
“아니요. 이화 누이가 가야 해요.”
“이유가 있는 거냐?”
“네. 이화 누이. 수고스럽더라도 좀 가줘.”
“그래.”
이화는 조윤이 왜 그러는지 의문이 들었으나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여기면서 대호와 육예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세가 내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화와 육예 말고도 공소를 비롯한 단목세가 사람들 모두가 이미 세가를 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그녀가 조윤을 따라가기 전에는 다들 세가에서 지냈었다.
이화는 혹시나 해서 예전에 지내던 곳을 찾아갔다. 그곳은 성도 외곽의 빈민가였다. 워낙에 질이 안 좋은 사람들이 몰려 사는 곳이라 뭣 모르고 함부로 들어왔다가는 좋은 꼴 못 본다. 무공이 뛰어나도 앗! 하는 순간에 당하는 곳이었다.
문도 없이 거적때기로 막아놓거나 천장이 휑하니 뚫려 있어 차마 집이라고 하기에도 뭐한 허름한 건물들이 꽉 차 있는 좁은 골목을 한참이나 걷자 예전에 지내던 곳이 나왔다.
“어? 이화 소저.”
때마침 밖으로 나오던 공소가 이화를 알아봤다.
“역시 여기에 있었군요.”
“혹시 조윤, 아니 가주님과 함께 온 겁니까?”
“그래요. 왜 세가에서 나와 다시 여기로 온 거죠?”
“그게 사정이 좀 있습니다.”
“곧 가봐야 하지만 들을 시간은 있어요.”
이화가 팔짱을 끼면서 말해보라는 투로 서 있자 공소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말로 듣기보다는 한 번 보는 게 나을 겁니다.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러죠.”
공소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좁은 방이 나왔다. 한쪽에는 침대가 있고, 그 뒤에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은 벽이 있었다.
공소는 그리로 가서 벽을 규칙적으로 다섯 번 두드렸다. 그리고 벽을 밀자 안에 밑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나왔다.
“아직 망가지지 않았군요.”
“하하. 혹시나 싶어서 가끔 찾아왔었습니다.”
이화의 말에 공소가 웃으면서 말했다. 계단을 내려가자 위에 있는 방보다 몇 배는 넓은 공간이 나왔다.
“어? 사부님. 왜 다시 오세요? 뒤에는, 아, 이화 아가씨군요.”
대호가 공소를 보고 의아해하다가 함께 오는 이화를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그리고 그건 육예도 마찬가지였다.
“아가씨!”
“다들 여기에 있었구나.”
“네.”
“조윤 오라버니는 어떻게 되었어요?”
“무사해.”
육예가 묻는 말에 이화가 짧게 대답하면서 침대로 갔다. 거기에 누워있는 사람 때문이었다.
“당효주!”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세가에 있어야 할 당효주가 왜 여기에 와 있단 말인가?
더구나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어떻게 된 거죠?”
이화가 공소에게 물었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당효주가 자의로 여기에 왔을 리가 없었다.
“이야기하자면 깁니다. 일단 앉으시지요.”
이화에게 자리를 권한 공소는 차를 가져와서 내밀었다. 이화가 그걸 말없이 받아서 마시자 공소가 머리를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최근 당 소저의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육예를 부르더군요. 당분간 당문을 나가 있겠다고요. 육예에게 장소를 알아봐달라고 했습니다. 저한테 전해질 걸 알고 말이죠.”
“그래서 데리고 온 건가요?”
“그렇습니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유가 뭐죠?”
“가주님 때문입니다.”
“조윤이?”
“그렇습니다. 당 소저가 말하기를 자기는 곧 죽을 거고 그럼 가주님이 위험해진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세가를 떠나 있으면 조금은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화는 그 말만 듣고도 당효주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단번에 이해를 했다. 이에 당효주를 잠시 보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윤의 모습이 좋지 않았던 것이 그래서였어.’
어제 오자마자 조윤과 떼어놓기에 뭔가가 이상하다 했었다. 한데 이런 이유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나마 조윤이 무사한 건 당수백과 뭔가 이야기가 제대로 되었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조윤은 당효주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호와 육예를 데리고 오되 직접 가라고 한 이유도 그래서일 가능성이 컸다.
“아직 아무도 모르고 있죠?”
“그렇습니다.”
“효주를 데리고 가야겠어요.”
“당문으로 말입니까?”
“그래요.”
“이제 와서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괜찮을까요?”
“조윤이 효주를 살린다면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어렵지 않겠습니까?”
당효주는 하루의 대부분을 정신을 잃은 채 지냈었다. 또한 하루에 한 끼를 먹는 것조차 힘겨워했었다. 이미 반은 송장이나 다름없었다.
“모르죠. 조윤에게 달린 일이니까. 어서 준비해줘요.”
“알겠습니다.”
공소가 대답하고 밖으로 나가자 이화가 당효주를 이불로 감아서 안아들었다. 그걸 보고 대호와 육예가 따라나서려고 했다.
“너희 둘은 혹시 모르니까 여기에 있어.”
“네.”
“알았어요.”
대호와 육예가 순순히 대답하는 걸 들으면서 이화는 당효주를 안은 채 밖으로 나갔다.
“이쪽입니다.”
공소가 어디에서 구했는지 손수레를 끌고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조심스럽게 당효주를 눕힌 이화가 공소를 향해 말했다.
“당신도 여기에 있어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연락을 할 때까지는 밖으로 나가지 말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화가 손수레를 잡고 끌자 공소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조윤이 당효주를 살리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이번에는 정말 당문과 척을 지게 된다. 그럼 사천에서는 살아갈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