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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113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6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113화

제5장 안하무인 (3)

 

 

“누군가 했더니 약선신의로군.”

 

심종이 탐탁지 않은 듯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양은 천하오대신의라는 명성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지 상당히 오만했다.

 

전에 왔을 때도 장로들의 독을 치료하지 못했으면서 어찌나 잘난 체를 하던지 단지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인데도 화가 날 정도였다. 그러니 반양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고, 이에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말이 나갔다.

 

“장로님들의 치료를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다가 치료방도가 생각이 나 이렇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누가 뭐라고 했소? 여기는 소청신의요. 나이는 어리나 의술이 뛰어나서 의룡이라 불리고 있소. 어렵게 부탁해서 온 것이니 이야기를 잘 해보시오. 나는 이만 가겠소.”

 

심종이 심드렁하게 이야기를 하고는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러자 함께 있던 무당칠성 두 명이 껄껄 웃으면서 심허에게 양해를 구하고 뒤따라 방을 나갔다. 그렇잖아도 모두 있기에는 방이 좁았던 터라 심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조윤 일행을 향해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게들.”

 

일행이 자리에 앉자 심허가 모두를 한 번 쭉 쳐다봤다. 조윤이야 방금 심종이 소개를 해줘서 알고, 이화와 현진은 전에 한 번 봤었다. 그러나 당자휘와 낙소문은 누군지 몰라 잠시 시선이 머물자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당파의 명성은 익히 듣고 있습니다. 당문에서 온 당자휘라고 합니다.”

 

“아미파에서 온 낙소문이에요.”

 

“호오, 당문의 공자와 아미파의 여협이었군. 미처 못 알아봤네.”

 

고개를 끄덕인 심허가 다시 조윤을 봤다. 그러자 조윤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단목조윤이라고 합니다.”

 

“들어올 때 보니까 다리를 절던데, 먼 길 오느라 고생했군.”

 

“아닙니다.”

 

“혹시 그대를 이곳까지 청한 이유를 알고 있나?”

 

“네. 오면서 들었습니다.”

 

“그럼 길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군. 피곤할 테니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수고를 좀 해주시게.”

 

심허는 돌려 말하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낼 정도로 마음이 급했다. 그러나 먼 길을 온 조윤에게 바로 가서 환자를 봐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한데 생각지도 않게 조윤이 먼저 그들을 보려고 했다.

 

“괜찮으면 지금 그분들을 봤으면 합니다.”

 

“그럼 우리야 좋지만 괜찮겠나?”

 

“괜찮습니다. 증상이 심해 시급을 다툰다고 들었습니다. 혹여 제가 치료를 할 수 없다면 하루를 소비하게 되는 거니 지금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조윤의 말에 심허는 슬쩍 반양을 쳐다봤다. 전에 와서 치료방법을 찾아보겠다고 나간 반양이 오늘 갑자기 찾아왔다. 잠시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치료가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한데 공교롭게 같은 날 조윤이 왔다. 만약 반양이 오지 않았다면 곧바로 조윤에게 치료를 부탁했을 것이다. 하나 지금은 반양의 의견을 물어봐야 했다.

 

“하하. 소청신의에 대해서는 나도 들은 바가 있지. 듣자니 구음절맥을 치료했다지? 잘린 팔을 이어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래서 오대신의가 아니라 육대신의라 불려야 한다더군. 얼마나 의술이 뛰어나기에 그러는지 직접 한번 보고 싶군요.”

 

반양은 소문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투로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는 심허를 보며 말했다. 그 저변에는 어디 한번 할 수 있으면 해봐라, 하는 은근히 조윤을 무시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심허는 그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반양의 저러한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날 왔을 때부터 그랬었다. 듣기로는 신의문에서 쫓겨난 이유도 그런 오만함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 그리하겠소. 다 함께 가기에는 좋지 않으니 그대들은 숙소에서 쉬시게나.”

 

조윤만 데리고 가겠다는 뜻이었다. 심허가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를 하니 따라가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무송과 무경이 안내를 해줄 것이네. 우리도 갑시다.”

 

심허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윤과 반양, 두 사람만 그를 따라 방을 나갔다.

 

* * *

 

앞장서서 가는 심허를 따라서 몇 개의 건물을 지나쳐가자 갑자기 경계가 삼엄해졌다. 날이 선 무당파의 제자들이 기세를 감추지 않은 채 곳곳을 지키고 있었다. 장로들이 그리되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태화각이라고 적혀 있는 삼 층 누각에 도착하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도사가 심허를 향해 인사를 했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수고하는구나.”

 

심허는 가볍게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조윤은 심허를 따라서 삼 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따끔거리는 시선을 느꼈다.

 

보아하니 곳곳에 몸을 감추고 있는 것 같은데, 저렇게 기세를 드러낼 거면 왜 숨어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나마 삼 층에 있는 도사들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장문인.”

 

“수고하는군.”

 

심허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도사 세 명이 보였다. 그들은 가부좌를 하고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조윤은 그들이 독에 중독되었다기에 자리에 누워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저러고 앉아있으니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곧 무경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그가 말하기를 독에 대항하기 위해서 쉴 새 없이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했었다. 하니 저러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잠시 그들을 보던 심허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치료를 위해 소청신의를 데리고 왔네. 잠시 진맥을 할 테니 그리들 알게.”

 

대답은 없었으나 심허는 조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맥을 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조윤은 가장 왼쪽에 있는 노인에게 먼저 다가갔다. 그리고 손가락을 코앞에 대서 호흡을 확인한 후에 맥을 짚어봤다.

 

맥은 굉장히 미약했으나 규칙적이었다. 독에 중독되어 시일이 많이 지난 것으로 아는데 이상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안정적일 수가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자 조윤은 기진을 할 생각으로 단전의 내공을 끌어올려 조금 흘려보냈다. 그러자 갑자기 내공이 확 빨려가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독에 대항하느라 내공이 고갈되어서 힘이 들던 차에 조윤의 기운이 들어오니 그 즉시 흡수를 해버린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기진을 할 수가 없었다. 조윤은 청진기로 심장박동을 확인했다. 그리고 혹여 몸에 중독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는지 세세히 살핀 후에 심허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반양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실력이 뛰어난 의원들은 저런 식으로 진찰을 하지 않는다. 맥을 한 번 잡는 것으로 끝난다.

 

황궁에 있는 어의들은 환자의 손목에 얇은 천이나 실을 감고 열 발자국 밖에서 진맥을 하기도 한다. 한데 조윤은 맥을 잡는 것으로도 모자라 온몸을 살피고 이제는 심허에게 그동안의 증세에 대해서 묻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피까지 뽑겠다고 하자 반양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잠깐.”

 

한창 대화 중에 반양이 끼어들자 심허와 조윤이 동시에 그를 봤다.

 

“왜 그러시죠?”

 

“자네, 조윤이라고 했나?”

 

“네.”

 

“진맥이 안 되면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 어떤가?”

 

반양이 한껏 오만한 투로 말했다. 조윤은 그게 거슬렸으나 내색하지 않으며 할 말을 했다.

 

“아직 진맥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잠시 지켜보니 소문이 과장된 것 같군.”

 

반양은 이렇게 이야기하면 자존심이 상해 조윤이 화를 낼 거라 여겼다. 그러나 조윤은 침착하게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진맥이 제대로 안 되니까 그렇게 시간을 끌고 있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습니다. 진맥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제 생각에 좀 더 확신을 가지고 싶을 뿐입니다.”

 

“그럼 어떤 독인지 알아냈다는 건가?”

 

“확신은 없지만 짐작이 가는 건 있습니다. 다만 틀렸을 수도 있기 때문에 확인을 하려는 겁니다.”

 

“흥, 그럼 한번 말해보게. 저 사람들이 무슨 독에 당했는지.”

 

“말했듯이 아직 확신할 수 없습니다. 피를 뽑아서 실험을 좀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필요 없네.”

 

반양이 딱 잘라 말하자 조윤은 약간 어이가 없었다. 의원으로서 의견을 나누는 것은 응당 받아들여야 할 일이었다. 현대에서도 환자 한 명을 두고 의사들이 여러 의견을 내며 타진을 한다.

 

그런데 반양은 아예 그럴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았다. 이에 심허를 보니 그도 약간 기가 찬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반양이 쳐다보자 재빨리 표정을 갈무리하면서 말했다.

 

“소청신의는 무당파에서 초청을 한 손님이오. 너무 무례하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려.”

 

“아, 죄송합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실력도 없이 저러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그만 화를 냈군요.”

 

대놓고 무시를 하는 말에 기분이 상할 만도 하련만 조윤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공손세가에 있을 때 진위가 저러는 것을 한 번 겪어봤기 때문이다. 이에 심허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음…… 약선신의. 기왕지사 소청신의를 여기까지 오라 했으니 한번 끝까지 지켜봅시다.”

 

“먼저 말했듯이 내가 이미 치료방법을 찾았습니다. 한데도 굳이 이러는 건 내 의술이 못 미더워서 그러는 겁니까? 그렇다면 나는 치료를 하지 않겠습니다.”

 

반양이 뻗대면서 말하자 심허는 난처했다. 그 모습을 본 조윤은 반양을 한 대 치고 싶었으나 꾹 눌러 참으면서 입을 열었다.

 

“누가 치료를 하든 환자가 완쾌되는 것이 중요하니 제가 물러나겠습니다.”

 

“허, 소청신의에게는 뭐라 할 말이 없군.”

 

“괜찮습니다.”

 

조윤은 잠시 반양을 쳐다보다가 곧 그곳을 나왔다. 그러자 심허가 뒤따라 나와 제자 한 명을 붙여줬다.

 

숙소로 오면서 조윤은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다리도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를 치료한다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되던 차였다. 더구나 무당파의 장로들이 중독된 독은 보통 독이 아니었다. 치료방법이 극히 까다로워서 해독하기가 쉽지 않았다. 자칫 잘못되기라도 하면 뒷감당이 어려웠다.

 

자칭 명문정파라고 하지만 저들도 사람이었다. 감정이 없을 수가 없었다. 치료가 잘못되어서 가까운 지인이 죽는다면 그 원망을 누구에게 돌리겠는가?

 

“후우…….”

 

숨을 크게 한 번 내쉰 조윤은 방금까지 기분이 나빴던 것을 훌훌 털어버렸다. 그러자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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