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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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7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09화
제4장 협상 (1)
주위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당자휘는 이대로 조윤을 데려가도 되는지 아주 잠시 고민을 했다. 낙소문은 조윤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무경은 이미 짐작을 하고 있었던 일이었고, 무당칠성은 흥미롭다는 듯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게 정말이냐?”
금경삼이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물었다. 어떻게 키운 딸인데 저따위 의원 놈이 가로채간단 말인가?
금경삼의 분노를 느낀 금태희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약교연이 재빨리 나서서 그를 달랬다.
“상공. 일단 화를 가라앉히세요. 필시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이유는 무슨 이유! 저 자식이 감히 내 딸에게 손을 대! 내가 태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죽여 버리겠다!”
결국 금경삼이 터졌다. 그가 흉흉한 살기를 마구 뿜어내며 조윤을 향해 몸을 날리자 무당칠성이 앞으로 나서서 그를 밀어냈다.
퍼퍼퍼퍼퍼펑!
서로의 장력이 부딪치면서 폭음과 함께 기의 파동이 주위로 퍼져나갔다. 그 여파를 느낀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멈춰라!”
금경삼이 밀리자 금공이 끼어들었다. 금공은 그저 금경삼을 보호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러나 무당칠성은 그가 덤벼드는 줄 알고 마구 장력을 퍼부었다.
그들이 그렇게 싸우는 것을 보고 당문과 금가장의 무사들도 무기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약교연과 당자휘가 재빨리 제지를 하자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난전이 벌어지면 양쪽 다 크게 다친다. 이미 목적은 달성했다. 당자휘는 조윤을 찾았고, 약교연은 금태희를 무사히 구해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피를 흘리며 싸울 이유가 없었다.
“음…….”
“조윤! 정신이 들어?”
곁에 있던 이화가 물었다. 조윤은 머리가 좀 울리고 여전히 몸이 욱신거렸으나 이를 악물고 참았다. 다친 다리에서 이는 통증 때문에 정신이 까마득해지는 것 같았다.
“조윤!”
“괜찮아. 누이. 소리치지 마. 머리가 울려.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왜 이화 누이가 여기에 있는 거야?”
상황을 묻던 조윤은 이화 옆에 있던 낙소문과 눈이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순간 낙소문의 눈에 반가운 기색이 떠올랐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사라지고 냉랭한 표정이 되었다. 뾰로통한 표정을 보고 의아해하고 있는데 이화가 차분히 설명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 공자와 함께 너를 찾으러 왔어. 오면서 무당파에 도움을 청해서 무당칠성도 함께 왔고.”
간략하게 하는 설명을 듣고 조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창 싸우고 있는 무당칠성과 금경삼, 그리고 금공을 봤다.
무당칠성은 무당파의 최고수들이었다. 그리고 금공은 마교의 장로였다. 금경삼 역시 무공이 뛰어났다.
그러한 고수들이 사력을 다해 싸우는 모습은 평생에 한 번 보기 힘들었다. 이에 모두 넋을 놓고 보고 있었다.
조윤 역시 그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자 그 와중에 크게 깨닫는 것이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는 당황학이 보여줬던 검강이었다.
그동안 의술에 전념하느라 무공은 돌아볼 시간이 거의 없었다. 수련도 가볍게 몸을 푸는 정도에서만 그쳤었다. 그래서 깨달음의 끄트머리를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전이 없었다.
한데 저들이 싸우는 것을 보니 명확하게 와 닿는 것이 있었다. 이건 검기를 깨달을 때 느꼈던 것과 똑같았다. 해보지는 않았으나 왠지 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싸움은 이제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저런 상태에서는 어느 한쪽이 피를 봐야 끝이 난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서서 말릴 수가 없었다. 끼어들 수조차 없었다.
누구 한 명이 움직이면 양쪽이 동시에 달려들어 난전이 된다. 그러한 분위기를 파악한 조윤이 이화와 낙소문을 향해 말했다.
“두 사람 다 귀 좀 막고 있어.”
“어? 왜?”
“싸움을 멈춰야 할 것 같아서.”
“네가?”
“응. 잠시면 되니까 내공을 끌어올리고 귀를 막아.”
이화가 낙소문을 봤다. 하지만 그녀도 아는 것이 없었다. 어쨌든 조윤이 시키니 두 사람은 귀를 막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조윤은 잠시 눈을 감고 단전의 내공을 끌어올려 임맥과 독맥을 따라 돌렸다. 그러자 정신이 조금 맑아지면서 다리의 통증이 약해졌다.
끼아아아아아아악!
순간 용음성이 크게 울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그리고 그건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던 무당칠성과 금경삼, 금공도 마찬가지였다.
단순한 사자후였다면 그들을 그렇게 일시에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압도적인 내공으로 소리를 냈을 때나 가능했다.
그러나 용음성은 상대에게 충격을 주는 정도는 약했으나 듣는 사람의 신경을 굉장히 자극했다. 쇠를 긁어대는 것 같은 끔찍한 소리라서 두 번 이상 들으면 이유 없이 상대를 패죽이고 싶어질 정도였다.
싸움이 멈추자 모두가 조윤을 봤다. 그는 무리하게 용음성을 써서 안색이 창백했으나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조윤!”
이때다 싶어서 금태희가 조윤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아무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괜찮아? 왜 또 용음성을 썼어?”
금태희가 조윤을 걱정하며 볼을 쓰다듬었다. 그 같은 애정 어린 행동에 금경삼은 입을 쩍 벌리고 할 말을 잃었다.
낙소문은 뭔가 속에서 치미는 것을 느끼고 그걸 다스리느라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해야 했다. 그리고 옆에서 그걸 보는 현진은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너, 너 이 자식!”
금경삼이 크게 화를 내며 조윤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러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약교연이 그를 말리고 조윤에게 다가갔다.
“절벽에서 떨어질 때 네가 태희를 감쌌다지? 그건 고맙게 생각하지만 태희와의 관계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책임질 행동을 하고 이대로 떠나는 건 아니라고 보는데.”
“무슨 말입니까?”
조윤이 의아해하며 되묻자 금태희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어머니! 그 이야기를 왜 지금 해요!”
“확실히 해둬야지. 그도 성인이야. 스스로 한 행동에 충분히 책임을 질 수 있어. 조윤. 이대로 떠날 건 아니지?”
약교연이 직설적으로 물어왔다. 그러자 당자휘와 이화 등은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조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는 그들에게 결정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약교연의 말대로 조윤은 성인이었다. 그들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있어도 강제를 할 수는 없었다. 다시 말해 조윤이 안 가겠다고 하면 억지로 데리고 갈 수가 없었다.
“말해봐. 어떻게 할 생각인지.”
약교연이 묻는 말에 조윤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 * *
당자휘와 이화, 낙소문과 현진, 그리고 무당칠성까지 모두 자신을 찾아와준 것은 너무나 고마웠다. 덕분에 목숨까지 건졌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조윤은 이대로 떠날 수가 없었다.
“제가 억지로 끌려온 것은 사실이지만 자의에 의해 오기도 했습니다. 금 소저가 말하기를 동생이 구음절맥에 걸렸다고 하더군요. 와서 확인을 해 보니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치료를 한 후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게 이렇게 되었군요. 당 공자, 혹시 제가 보낸 서찰을 받지 못했습니까?”
“받지 못했다.”
“제가 그렇게 사라지는 바람에 걱정을 할까 봐 서찰을 보냈는데 엇갈렸나 보군요.”
“너, 설마 여기에 남을 생각이냐?”
“안 되겠습니까?”
“지금 네 몸 상태를 봐. 우선 너부터 치료를 해야 해. 게다가 구음절맥에 걸린 딸을 치료하지 못하면 저들이 너를 죽일 거다. 그런 위험을 안고 왜 치료를 하려는 거냐?”
“의원이니까요.”
조윤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을 하자 당자휘는 말문이 막혔다. 하긴, 당문에 있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당수백도 조윤이 치료를 하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협박을 했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효주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아직 효주를 완전히 치료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그리고 사내가 여러 여자를 거느리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저 여자는 마교 사람이다. 가까이 해서 좋을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으니 효주와 저 여자 중에 한 명을 선택해야 할 거다. 둘 다 얻을 수는 없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조윤이 의아해하며 묻자 당자휘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발뺌을 하려는 거냐? 듣자니 네가 저 여자와 같이 잤다던데.”
“잠이야 같이 잤습니다만…….”
“그럼 책임을 져야지.”
분위기가 이상하자 약교연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조윤은 이해가 안 간다는 눈으로 그녀와 당자휘, 그리고 금태희를 봤다. 그러다 저들이 뭐를 오해하고 있는지 알아채고는 약간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저는 금 소저와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단지 잠만 같이 잤을 뿐입니다. 책임질 행동은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다시피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고, 좁은 곳에 있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이 밝혀지자 금태희는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약교연은 그런 금태희를 향해 눈을 한 번 흘기고는 조윤을 보며 말했다.
“관계를 맺었든 안 맺었든 남녀가 함께 밤을 지새웠다는 건 문제가 돼.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었으니 딸아이를 네가 책임져야 할 거야.”
“말도 안 되는 억지군요. 조윤은 당신의 딸을 감싸다가 저렇게 다쳤습니다. 더구나 어쩔 수 없이 함께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고, 손 끝 하나 대지 않았는데 책임을 지라니, 그런 억지가 어디에 있소?”
당자휘가 끼어들며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약교연은 이대로 조윤을 보낼 수가 없었다. 금시시의 구음절맥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조윤밖에 없었다. 더구나 조윤도 치료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억지라면 할 말이 없군. 그럼 소청신의의 말에 따르지. 그가 가겠다면 잡지 않겠다. 하지만 그가 남겠다면 너희는 상관하지 마라.”
약교연이 하는 말에 모두가 조윤을 봤다. 정파 사람들은 당연히 조윤이 자신들과 함께 가리라 여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있었다.
“저 때문에 여기까지 와준 것은 고마우나 환자를 보고도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조윤이 그렇게 말하자 이화와 낙소문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다. 반면에 금태희는 크게 기뻐했다.
“모두 들었겠지. 그럼 이제 그를 놔두고 돌아들 가.”
“그럴 수는 없소.”
당자휘는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방금 그의 말을 들었을 텐데.”
“그의 의사는 존중해줄 거요. 다만 당신들을 믿을 수가 없소. 만약 치료가 잘못되면 조윤을 죽이려 들 거 아니오? 하니 치료가 끝날 때까지 조윤의 곁에 있겠소.”
“흥! 금가장은 아무나 들어올 수 없다.”
금경삼이 나서며 한마디 했다. 그러자 약교연이 잘했다는 듯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금가장으로 갈 생각은 없소. 치료를 꼭 거기에서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소? 조윤은 우리가 치료를 하면서 함께 있겠소. 그리로 딸을 데리고 오시오.”
“그게 무슨…….”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라 약교연은 크게 당황했다. 어리다고 얕잡아본 것이 실수였다. 당자휘는 생각보다 영악했다.
“당 공자.”
조윤이 당자휘를 불렀다. 그러나 당자휘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나도 양보할 수가 없다. 네가 잘못되면 효주도 위험해진다.”
“하아,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자휘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걸 안 조윤은 일단 따르기로 했다. 이에 약교연을 보면서 양해를 구했다.
“불편해도 그렇게 해주십시오. 몸이 낫는 대로 시시를 치료하겠습니다. 어차피 치료를 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도 있고, 도움을 받을 사람들도 와야 합니다. 인근에 있는 큰 객잔에 있을 테니 염려 놓으십시오.”
“꼭 그래야 할 거야. 혹여 도망을 친다면 어디에 숨어있던 찾아서 죽일 테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게 결정이 되자 조윤은 일행과 함께 그곳을 벗어났다. 금태희는 그런 조윤을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끝까지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