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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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98화
제9장 실수 (3)
금경삼이 그렇게 말하자 조윤이 금시시에게 다가갔다.
“손 줘 봐.”
“감히 누구에게 하대를 하는 거냐?”
“너한테 하고 있잖아.”
“뭐?”
금시시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지금까지 이런 경우를 당해보지 않아서 멍하니 있자 조윤이 덥석 손을 잡고 진맥을 했다. 이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빼려고 했으나 세게 잡은 것도 아닌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놔!”
“일 년 정도 남았군.”
그 한마디에 손을 빼려고 온갖 힘을 쓰던 금시시가 멈칫했다. 놀라기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일 년 남았다니? 그게 무슨 뜻이냐?”
“지금 몇 살이야?”
“여, 열다섯 살.”
금시시는 고분고분 대답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조윤은 뒤로 물러나 앉으며 바닥을 두드렸다.
“이쪽으로 누워봐.”
잠시 망설이던 금시시는 시키는 대로 누웠다. 그러자 조윤이 검지와 중지를 모아 몇 군데를 누르면서 아픈지를 물어봤다.
가슴 위와 아랫배 부분을 누르는데도 거침이 없었다. 그때마다 금시시는 얼굴이 빨개져서는 간신히 대답을 했다.
그걸 보고 금경삼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제 딸이 혹여 농락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으나 일 년 밖에 안 남았다는 말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됐어. 엎드려.”
이번에는 시키는 대로 금방 엎드렸다. 조윤은 이번에도 몸 곳곳을 누르면서 상태를 물어봤다. 심지어 허리선을 따라 엉덩이까지 눌렀다.
“됐어. 이제 일어나서 앉아도 돼. 손 다시 줘봐.”
금시시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조윤이 맥을 잡고 천천히 기를 밀어 넣었다. 하지만 워낙에 소량을 정밀하게 운용하고 있어서 금시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구음절맥은 아홉 군데의 맥이 끊겨서 생기는 병입니다. 보통은 열다섯 살을 넘기지 못합니다. 시시도 이제 한계입니다. 길면 일 년이고 짧은 몇 달 내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뭐야?”
금경삼이 흥분해서 조윤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어찌나 힘이 좋은지 한 손으로 잡았는데도 조윤의 몸이 허공에 떴다.
“아버지!”
“진정하십시오, 어르신.”
금태희와 능정명이 달려들어 금경삼을 말렸다. 그러자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힌 금경삼이 거칠게 조윤을 내려놓았다.
“허튼 소리라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
“당문의 차녀인 당효주 역시 구음절맥을 앓았습니다. 효주는 올해 열여덟 살입니다. 그렇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당 가주님이 몸에 좋다는 영약을 아끼지 않고 먹였기 때문입니다. 시시도 영약을 몇 개 복용한 것 같은데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럼 치료는? 치료는 가능한 거냐?”
“제가 효주의 구음절맥을 치료했다고 소문이 났지만 사실 완치를 시킨 것이 아닙니다. 워낙에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아홉 개의 맥 중 여덟 개는 이었지만 하나는 여전히 그대로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치료가 어렵다는 거냐?”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치료를 하는 도중에 시시가 죽을 수도 있습니다.”
“뭐?”
“당시에 효주는 그걸 각오하고 치료를 받았었습니다. 당 가주님도 동의를 했었고. 그러니 먼저 잘 상의해보고 결정을 내리세요.”
조윤이 할 말 다 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택은 저들의 몫이다. 차후 수술을 하겠다면 그때 최선을 다하면 된다.
“상의할 필요도 없는 일이군요.”
뒤에서 듣기에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두가 그쪽을 봤다. 거기에는 늘씬한 몸매의 중년여인이 서 있었다.
“어머니!”
금태희와 금시시가 동시에 그녀를 불렀다.
* * *
“다, 당신 왔소.”
금경삼이 그녀를 보고 찔끔하며 말했다. 한때 마희(魔嬉)라고 불리던 그녀의 이름은 약교연이었다. 금경삼의 아버지이니 잔혹마인 금공과 절친한 사이인 혈검 약석웅의 딸이었다. 평소는 얌전하지만 손속이 악랄하고 심계가 깊어서 금경삼은 그녀에게 꽉 잡혀 살고 있었다.
“밖에서 들으니 저 젊은이가 아주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요.”
“그랬소? 하하. 저 젊은이는…….”
“됐어요. 직접 들을게요.”
약교연이 다가와 자리에 앉자 금태희가 답삭 안겼다.
“어머니. 시시가 일 년밖에 못 산데요.”
“괜찮다. 이 어미가 있잖니. 그리고 네가 소청신의를 데리고 왔으니 치료를 할 수 있을 게다.”
그녀는 이리로 오면서 중엽과 백석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전부 전해 들었다. 그래서 조윤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 시시가 일 년밖에 못 산다고요?”
“그렇습니다.”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죠?”
“확률은 반반입니다. 치료가 성공할 수도 있고 도중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당신도 죽게 될 거예요.”
“흠.”
약교연의 말에 조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나 이런 식이었다. 치료를 원하면서 부탁이 아니라 협박을 한다. 가진 힘이 크면 클수록 더욱이 그랬다.
“그럼 치료하지 않겠습니다.”
조윤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하자 약교연의 눈빛이 변했다.
“그 말, 나에게는 죽고 싶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날 죽일 수 있습니까?”
“내가 못할 것 같은가?”
“뭔가 착각을 하고 있군요.”
“뭘 착각하고 있다는 거지?”
“당신들은 강자가 아닙니다.”
“뭐?”
약교연이 조윤이 말하는 것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조윤이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시시를 치료할 수 있는 건 천하에 오직 나밖에 없습니다. 천하오대신의를 전부 불러와도 시시를 치료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군요. 한 가지 재미있는 걸 이야기해줄까요? 예전에 대력패도 막강도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딸인 요요를 치료하지 못하면 나를 죽이겠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당 가주도 그런 말을 했었습니다. 효주를 치료하지 못하면 나를 죽이겠다고요. 지금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약교연은 조윤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알아들었다. 그러나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떻게 되었지?”
“제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합니다.”
순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설마 저런 말을 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도 그들처럼 그렇게 해야 한다는 거로군.”
“아니요. 결국에는 그렇게 될 거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호호. 재미있는 아이로구나. 너야말로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지 파악을 못하고 있다. 우리는 정파 사람이 아니다. 너를 잡아놓고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고통을 가할 수도 있다. 그럼 제발 치료를 하게 해달라고 내게 매달릴 걸.”
“재미있겠군요. 한 번 해보십시오. 하지만 절대로 치료를 맡기지 말아야 할 겁니다. 그랬다가는 시시가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고통을 당할 테니까요.”
“너…….”
약교연이 화가 나서 손을 쓰려다가 멈칫했다. 금태희가 그녀의 옷자락을 잡았기 때문이다.
“왜 말리는 거냐?”
“조윤의 말이 옳아요. 어머니, 시시의 일이에요. 저는 시시가 건강해질 수만 있다면, 시시가 하루라도 더 살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거예요. 자존심이요? 시시의 목숨이 달려있는데 그런 게 무슨 상관이 있어요.”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하는 금태희의 모습을 보고 약교연은 크게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랬다. 소중한 딸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부탁을 해도 모자랄 판에 협박이라니.
“언니.”
금시시가 금태희를 부르며 품에 안겼다. 그 모습을 보자 약교연의 마음이 약해졌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잔악할지 몰라도 딸들에게는 여느 어머니가 그렇듯 똑같았다. 그저 한 명의 어머니일 뿐이었다.
“내가 말이 과했군. 사과하지.”
“저 역시 말이 과했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약교연이 먼저 사과하자 조윤도 포권을 하면서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약교연은 조윤이 계속 오만하게 굴 줄 알았는데 생각과 다르게 고개를 숙이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대는 참 이상한 사람이군.”
“그런 이야기 많이 듣습니다.”
“다시 한 번 묻겠네. 시시를 치료할 수 있겠나?”
“말했듯이 확률은 반반입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치료를 해본 경험이 있으니 조금은 더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결과는 장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충분히 상의를 하시라고 말한 겁니다.”
“그건 상의할 필요조차 없지. 살 길이 있는데 위험하다고 해서 마다하면 내 딸이 아니야. 그렇지?”
“네, 어머니.”
금시시가 웃으면서 대답하자 약교연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러다 조윤을 보며 말했다.
“자네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실력을 한 번 보고 싶군. 그래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 마침 알 수 없는 복통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치료를 해줄 수 있겠나?”
“헛! 혹시 용산군을 데려오려는 거요?”
“그래요.”
“그는 난폭한 사람이오.”
“병이 있으니 그렇지, 평소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난 반대요.”
“소청신의가 시시를 치료할 정도의 실력이 되는지 먼저 확인하면 좋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 병도 치료가 되면 우리한테 고마워하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지만…….”
“그럼 됐어요.”
약교연이 딱 잘라 말하자 금경삼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떤가? 그래줄 수 있겠나?”
“우선 환자를 봐야 합니다. 지금은 어떤 이야기도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알았네.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내일 그를 데리고 오겠네.”
약교연이 그렇게 말하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