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9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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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93화
제7장 시합 (2)
“보시다시피 아홉 개를 다 꽂았습니다.”
“오…….”
여기저기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분위기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흘러가자 진위는 앞으로 나섰다.
“뭔가 이상하오. 닭이 꼼짝도 안 하고 있지 않소. 혹시 뭔가 이상한 수를 쓴 것이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나?”
진위가 그렇게 말하면서 다가와 닭에 꽂혀 있던 침을 건드렸다. 한데도 닭이 움직이지 않자 진위가 눈을 빛내며 조윤을 봤다.
“닭이 왜 안 움직이지? 무슨 속임수를 쓴 거냐?”
“당연히 침을 꽂아놓았으니까 안 움직이죠.”
“그럼 침을 빼면 다시 움직인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그럼 증명해봐라.”
진위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조윤은 당황하지 않고 침을 뽑았다. 물론 처음에 신경을 끊었던 침은 제일 마지막에 뽑았다. 그리고 닭을 툭 치자 파드득 날갯짓을 하며 움직였다.
“이제 됐나요?”
조윤이 묻는 말에 진위는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억지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치, 침은 그렇다 해도 구음절맥을 치료했다는 말을 누가 믿겠느냐? 솔직히 말해라. 끊어진 혈관을 이었다니 그런 치료법이 있다는 건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 다들 그렇지 않소? 이 자리에 의술을 배운 사람들이 많으니 어디 이야기를 해보시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진위가 이제는 의원들을 향해 소리치면서 물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의원들도 그 말을 선뜻 믿지 못했다. 당효주를 치료했다고는 하나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소문으로 어떻게 했다더라 하고 들었을 뿐이었다.
“혹시 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요?”
귀를 간질이는 고운 미성이 들려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그쪽을 봤다. 거기에는 화사하게 핀 꽃과 같은 당효주가 서 있었다. 그녀는 전쟁이 끝났다기에 조윤을 보러 왔다가 재미있는 시합을 한다기에 한쪽에서 조용히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위가 자꾸 조윤을 깎아내리고 하자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너는 누구냐?”
진위가 거칠게 물었다. 그는 상황이 불리하자 약간 흥분한 상태였고, 그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당효주라고 해요. 듣자니 조윤이 나를 치료한 걸 못 믿는 모양이던데, 그건 내가 증명하죠. 나는 구음절맥 때문에 어려서부터 별채를 벗어난 적이 없었어요. 일 년의 반 이상을 침상에서 누워 지내야 했죠.”
당효주가 처연하게 이야기를 하자 듣는 사람들도 마음이 아팠다. 저 어린 나이에 그 고생을 했다고 하니 동정심이 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렇게 생활했어요. 구음절맥을 앓는 사람은 열다섯 살을 넘기지 못해요. 하지만 나는 아버님과 어머님의 정성으로 열여덟 살까지 살았죠. 그럼에도 단지 숨만 붙어있을 뿐,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저 죽을 날만 기다렸었죠. 그런데 조윤이 나를 치료해줬어요. 보세요. 나는 이제 이렇게 걸어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가 있어요. 여러분들은 그게 얼마나 큰 행복인 줄 모를 거예요.”
당효주가 생긋 웃으면서 기쁜 얼굴을 하자 그걸 보고 있던 사람들이 덩달아 미소를 지었다. 미녀의 미소는 주위를 밝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당신은 무슨 근거로 조윤을 의심하는 거죠? 구음절맥을 치료하지 못한다고요? 조윤은 해냈어요. 이번에 큰 오라버니의 잘린 팔도 붙였다고 들었어요. 저는 조윤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듣기로는 많은 사람들이 조윤에게 치료를 받았다던데 아닌가요?”
“맞습니다. 소저. 나는 배를 찔렸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습니다.”
“나는 등을 베여서 꼼짝 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의룡이 대충 치료해도 낫더군요. 하하하.”
조윤에게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자 진위는 크게 당황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당자휘에게 죽임을 당할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어 당자휘를 힐끗 보니 역시나 눈빛이 차가웠다.
‘제길! 이제 어떡하지?’
진위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누군가가 그를 비난하자 곧 욕설이 터져 나오면서 당장에 죽이라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그 분위기에 압도당한 진위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미쳤었구나.’
그제야 진위는 자신이 뭐를 잘못했는지 깨달았으니 이미 늦었다. 사람들이 흥분해서 당장이라도 죽일 듯이 덤벼들 것 같았다.
그때 조윤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잠시 진정해주십시오!”
조용한 목소리였으나 사람들의 아우성을 일시에 잠재웠다. 내공을 실었기 때문이다.
“진 의원님이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다만 의원으로서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질책하지 말아주십시오. 의원은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실력을 뛰어난 의원이 많을수록 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이 줄어들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 의원님.”
“나, 나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리던 진위가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합니다. 당신의 의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선뜻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랬습니다. 벌을 내린다면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벌이라니요? 하하. 덕분에 이렇게 재미있는 시합을 했잖습니까?”
“그럼 나를 용서해주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조윤의 말에 진위가 크게 감격하면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나 진위는 앞으로 그대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것이오. 의룡의 의술이 오대신의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고, 인덕이 있다더니 오늘 정말 탄복했소!”
“이러지 마십시오. 어서 일어나십시오.”
조윤이 재빨리 부축을 하자 진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한 명이 눈을 빛내면서 조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야 찾았군.’
* * *
보름 정도가 지나자 당신우가 깨어났다. 그는 상황을 전해 듣고 크게 놀라면서 조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팔을 붙이기는 했으나 회복이 될지 안 될지 알 수가 없었고, 혹여 된다고 해도 오랜 세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저만치 앞서 가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아직 혈관과 신경이 잘 붙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무조건 누워있어야 합니다. 안 그럼 평생 팔을 못 쓰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알았다.”
“곧 당문에서 사람이 올 겁니다. 푹 쉬세요.”
조윤이 밖으로 나오자 진위가 따라붙었다. 그는 조윤에게 크게 감동을 받은 이후 스승으로 모시겠다며 이렇게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식사를 하셔야지요? 벌써 점심때입니다.”
“괜찮습니다. 조금 후에 먹겠습니다.”
“그럼 저도 그때 먹겠습니다.”
진위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조윤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에 극성스럽게 따라다니니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진위는 생각이 짧고 성격이 단순한 사람이었다. 실상 의원이 되기에는 맞지 않았다.
“조윤!”
멀리서 당효주가 다가오며 손을 흔들었다. 활짝 웃는 모습이 귀여워서 조윤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옆을 보니 진위도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버님이 오셨어요.”
“가주님이?”
“네. 곧 이리로 오실 거예요.”
사천의 무림인들이 정의맹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것은 어디까지나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공손세가가 무너지던 날에도 마교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치 아예 없었던 것처럼 코배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추측이 분분했으나 마교가 공손세가를 희생시키고 몸을 움츠리고 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에 정의맹이 여전히 유지가 되고 있었다.
당수백은 공손세가가 가지고 있던 이권을 당문이 아닌 정의맹으로 전부 귀속시켰다. 그러자 단순히 이름만 있던 정의맹에 힘이 실렸다.
언제든 떠날 것처럼 굴던 사람들도 당장에 이권이 생기자 머물기를 바랐다. 그러니 손익에 민감한 명문세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당수백은 며칠 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아마 당자휘가 없었다면 며칠을 더 고생했어야 했을 것이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그래. 여기에 있었구나.”
당수백은 따뜻한 눈으로 조윤을 보며 말했다. 예전과 달리 당수백은 조윤을 완전히 가족처럼 대하고 있었다.
당효주의 구음절맥을 치료했을 때만 해도 고마운 마음은 가지고 있었으나 이렇지는 않았었다. 여전히 의심하며 잡아두고 이용할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당신우를 수술하고 나서 흑묘와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자신이 과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최근 조윤의 명성이 점점 올라가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조윤은 아직도 잠룡이었다. 사천이 아니라 천하에 그 명성이 울릴 것이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다시 말해 당문에서 품기에는 너무나 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조윤을 아래에 두고 보는 것이 아니라 대등하게 보게 되었다.
“신우는 좀 어떠냐?”
“아직 뭐라고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한 달 정도 더 지켜보면 확실히 알 수가 있을 겁니다.”
“할 말이 있으니 잠시 기다리거라.”
당수백이 그렇게 말하고 당신우를 보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님이 요즘 조윤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것 같아요.”
“소가주님을 치료해줘서 고마우니까 그러시는 거겠지.”
“그것도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조윤을 높이 봐서 그러는 것 같은데.”
당효주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말하자 조윤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자신보다 한 살이 많았지만 이럴 때면 하연이가 겹쳐보여서 저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잠시 후 당수백이 나왔다.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으나 굳이 그걸 숨기지 않았다.
“가자.”
“네.”
조윤이 움직이자 당효주와 진위가 따라오려고 했다. 그러자 당수백이 눈짓을 줬다. 따라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식사는 했느냐?”
“아직입니다.”
“그럼 함께 먹자.”
“네.”
공손세가 안에서 먹을 줄 알았는데 당수백은 밖으로 나가 객잔으로 갔다. 인근에서는 제법 유명한 곳이었다.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자 점소이가 주문을 받아갔다.
“진즉부터 너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네 생각을 알고 싶구나.”
“제 생각이요?”
“그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윤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당수백이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네가 자휘와 손을 잡은 걸 알고 있다. 서로 약조한 바가 뭐냐?”
역시나 당수백이었다. 조윤은 속으로 뜨끔했으나 내색하지 않으면서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숨길 필요 없다. 나는 너를 한 가족처럼 생각하고 있다. 자휘가 뭐를 약속했든 내가 해주겠다.”
“갑자기 제게 이렇게 잘 해주시는 이유가 뭡니까?”
“솔직히 말하면 네 재능이 탐이 난다. 네가 당문에 왔을 때부터 그랬었다. 하지만 효령이와의 혼사가 틀어지는 바람에 너를 붙잡을 방법이 없었지.”
그때 식사가 나오자 대화가 잠시 끊겼다. 당수백은 차를 따라 입술을 한 번 축인 후에 이야기를 계속했다.
“신우를 치료하던 날 네가 흑묘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많이 했다. 네 말대로 가주가 되면 수많은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 말 한마디에 그들이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다. 항상 가문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희생하는 것도 많다. 네 상황도 그랬었다. 네 아버지와 나는 오랜 세월 함께해 왔었다. 복수를 하라고 기회를 준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너로 인해 계획했던 일이 틀어지려고 하자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하게 되더구나. 나는 지금까지 그것이 잘못이라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더구나.”
당수백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터라 조윤은 약간 당황했다. 차라리 속내를 숨기고 속이려 들었을 때가 상대하기가 훨씬 편했다.
“네가 효주와 혼인을 했으면 하는 건 진심이다. 너를 잡아두려는 게 아니다. 내 눈치 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단목세가를 재건하고 싶으면 그리 하고, 의원이 되겠다면 그리 해라. 뭐든 적극 지원하겠다. 자휘가 자꾸 네 명성을 알리려는 걸 가만히 두고 봤던 것도 그래서였다.”
정말일까?
당수백의 말투와 표정을 봐서는 그런 것 같았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만약 제가 효주와 혼인을 하지 않겠다고 해도요?”
“음…… 다른 사람들은 당문에 어떻게든 줄을 대려고 안달이거늘. 허허.”
허탈하니 웃던 당수백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하나만 묻자. 효주가 싫은 거냐? 아니면 내가 껄끄러운 것이냐? 만약 내가 껄끄러운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말했듯이 나는 너를 방해할 생각이 없다. 효주는 이미 너를 지아비라 생각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온실 속의 화초처럼 귀하게 키운 아이다. 네게 주기 싫은 마음도 있으나 너 만한 사람을 또 만날 수 없을 것 같기에 이러는 거다.”
“그럼 시간을 주십시오.”
“무슨 뜻이냐?”
“효주는 주위에 저밖에 없어서 좋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을 좀 더 겪어보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 아무것도 이뤄놓은 것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혼인을 하는 건 이르다고 봅니다.”
“흐음…….”
당수백은 조윤이 이렇게까지 거부를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 때문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옆으로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단검을 휘둘러왔다.
“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