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8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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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87화
제5장 대가 (1)
무림대회 이튿날이 되자 공손세가와 마교에 어떻게 대항할 건지에 대한 논의가 오고 갔다. 장시간 동안 이런저런 의견이 분분하게 오고 가다 이내 하나로 압축이 되었다.
모두 힘을 합치자는 것이었다. 그러자면 구심점이 있어야 했고, 이에 사람들은 정의맹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당문의 가주인 당수백을 맹주로 추대했다.
또한 기린단, 청룡단, 백호단, 주작단, 현무단, 이렇게 총 다섯 개의 조직을 만들고, 기린단은 당문, 청룡단은 아명을 비롯한 아미파의 제자들, 주작단은 도간과 청성파의 제자들, 백호단은 중소문파 사람들, 그리고 현무단은 명성만 있거나 홀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편입되었다.
그다음 날은 결속을 다지는 의미에서 연회가 벌어졌다. 그리고 사흘째가 되자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의논을 했다.
조윤은 말없이 그 과정을 지켜보며 당문의 힘과 그걸 활용하는 당수백의 기지가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이 당수백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 그리될 것 같았다.
“어머니. 저 조윤입니다.”
“들어오너라.”
방 안으로 들어가자 예전과는 달리 많이 여윈 모습의 당이주가 보였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모두 잃었으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그녀는 수를 놓고 있다가 조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크게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담담했다.
“오랜만이구나.”
“일찍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다. 이리 찾아와준 것만도 고맙다. 이리 앉아라.”
“네.”
조윤이 맞은편에 앉자 당이주가 시녀를 시켜 차를 내오게 했다.
“네 이야기가 간간히 들려오더구나. 효주를 치료했다지?”
“네.”
“의술을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구음절맥을 치료할 정도로 뛰어난 줄은 몰랐다.”
“운이 좋았습니다. 사부님을 따라 다니다 오대신의를 두 사람이나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랬구나.”
말이 끊기자 조윤은 어색하니 앉아있기만 했다. 당이주는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모습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분위기가 변했다.
“건강은 어떠세요?”
“한 번 봐주겠니?”
당이주가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조윤이 진맥을 해보니 강력하고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전에는 없던 거였다.
“어머니, 새로운 무공을 익히고 계시나요?”
“바로 알아보는구나.”
“혹시 독공인가요?”
“맞아.”
독공은 일단 익히기만 하면 위력이 굉장했지만 독을 다루는 만큼 위험성도 컸다. 독을 조금씩 체내에 받아들여서 연공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칫 중독이 되어 죽을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다 해도 독을 계속 품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몸이 상하는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몸이 많이 상하셨어요.”
“알고 있다.”
“복수 때문인가요?”
“그래.”
“사천의 여러 문파가 공손세가와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모였어요. 곧 그들을 공격할 겁니다.”
“알고 있다.”
“제가 치료를 해드릴 게요.”
“그럴 필요 없다.”
“어머니.”
조윤이 설득을 하기 위해서 조용한 목소리로 당이주를 불렀다. 그러자 그녀가 처음으로 따뜻한 눈빛으로 조윤을 바라봤다.
“너를 떠나보내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어린 너에게만 복수를 맡겨두기가 미안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독공을 익혔다. 그런데 네게서 연락이 안 오더구나.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
“죄송해요.”
“너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당이주가 손을 뻗어 조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 어리던 아이가 이리 컸구나. 이제 네가 복수를 해줄 거니?”
“네. 복수도 하고 단목세가도 다시 일으켜 세울 겁니다. 그러니 독공은 더 이상 연공하지 마세요.”
“그래. 그래야지 내 아들이지.”
말을 하는 당이주의 상태가 이상해보였다. 몽롱하니 마치 잠이 덜 깬 사람 같았다. 마침 시녀가 차를 내오자 당이주는 그제야 조윤에게서 손을 뗐다.
“가문을 재건하려면 돈이 필요하겠구나. 내일 사람을 보내마. 이만 가 보아라.”
갑작스러운 축객령에 조윤은 약간 어이가 없었다. 차는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가 보라니, 그러다 문득 짚이는 바가 있었다.
‘혹시 독공 때문에 그런 건가?’
그럴 가능성이 컸다. 당이주의 몸 상태를 보면 독이 이미 머릿속에 침투했을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 가장 흔하게 보이는 증상이 환상을 보거나 사리판단을 잘못하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들르겠습니다.”
조윤은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 * *
아침 일찍 일어난 조윤은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수련을 했다. 낙소문 덕에 당황학이 자신에게 뭐를 가르쳐줬는지를 알게 된 이후로는 비연팔식에 연연하지 않았다. 대신에 당황학과 했던 대련을 떠올리면서 심상수련을 많이 했다.
지금도 당황학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비록 가상의 상대지만 당황학은 강했다. 도저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이 정도였었나?’
땀을 닦으면서 조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실력이 낮았을 때는 잘 몰랐었는데 경지가 높아지자 당황학의 무공이 얼마나 뛰어났었는지가 새삼 와 닿았다.
“조윤 공자십니까?”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조윤이 그쪽을 봤다. 처음 보는 사내가 서있었다. 눈매가 날카로운 것이 선해 보이는 인상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고수가 분명했다.
“맞습니다.”
“주인께서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내가 다가와 들고 있던 상자를 내밀었다. 조윤이 그걸 받아들자 고개를 살짝 숙인 후에 돌아갔다.
그가 누군지 궁금해 하다가 상자를 열어봤다. 놀랍게도 상자 안에는 금자가 가득 차있었다. 이 정도 돈이라면 작은 문파 하나쯤 세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어머니가 보낸 거로군.’
조윤은 어제 당이주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돈을 보낸다고 하기에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렇게 많이 보낼 줄은 몰랐다. 돌려준다고 받을 것 같지가 않으니 일단은 챙겨두라고 했다.
점심때쯤 이화와 흑묘가 찾아왔다. 돈을 건네면서 어디에 써야 할지 의향을 물으니 두 사람도 놀라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 역시 이렇게 큰돈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우선은 이화 누이가 보관을 해주세요.”
“내, 내가?”
“네.”
“너, 내가 이거 가지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러고 싶으면 그러던가요.”
조윤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이화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그러지 않을 거라 믿고 하는 말이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였다.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변하면 어쩌라고?
“너 정말 내가 이거 가지고 간다.”
“누이라면 그래도 되요. 지금까지 도움을 많이 줬는데 나는 해준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치. 너는 어렸을 때가 귀여웠어. 지금은 능글맞아.”
“하하.”
조윤이 웃자 이화와 흑묘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이화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이야기 들었지? 삼 일 후에 총공세를 펼친다더라.”
“네. 들었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공법을 택할 줄은 몰랐어.”
“제 생각에 가주님은 마교를 상대한 이후까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윤의 말에 이화와 흑묘가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신중을 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으나 현재 정의맹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사람들의 수가 무려 삼천 명이 넘었다.
조직을 짜고 사람들을 편입시켰으나 연대가 이뤄질 리가 없다. 그러니 조직적인 움직임은 아예 배제를 하고 단체로 움직이는 것이 낫다 판단을 한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정면대결을 하면 명문정파로서 체면도 살고, 무엇보다 마교가 무너진 이후 정의맹의 이름을 더욱이 높일 수가 있었다.
“삼 일 동안 할 일이 있어요.”
“뭔데?”
“약재 정리요.”
“에?”
“사람들이 다치면 바로 약을 쓸 수 있게 준비를 좀 하려고요.”
“그런 건 당예상한테 도와달라고 해야지.”
“이미 이야기해뒀어요.”
조윤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이화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흑묘를 봤다. 그러자 흑묘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 * *
삼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그동안 조윤은 이화와 흑묘, 등에게 사람이 다쳤을 때 응급처치 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다들 무인이라서 외상에 대한 기본적인 치료방법은 알고 있었으나 전부 제각각이었다.
이에 응급처치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일괄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들 재미있어 하면서도 낯설어했는데, 특히 심폐소생술을 할 때는 입에 대고 공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강했다. 결국 그런 환자가 생기면 조윤이 직접 하기로 하고, 대신에 그 외에는 그들이 도맡아서 하기로 했다.
“오늘이지요?”
“응.”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면서 당효주가 묻는 말에 조윤이 아무생각 없이 대답했다.
“몸조심하셔야 해요.”
“걱정 마. 나는 전면에 나서는 것도 아닌데 뭘.”
“그래도요.”
당효주가 계속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하자 조윤이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들 싸울 때 뒤에 꼭꼭 숨어있을게. 그럼 되지?”
“아니요. 제 말은 그게 아니라…….”
“다 먹었다. 갔다 올게.”
조윤이 젓가락을 놓고 일어나자 당효주가 따라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에까지 배웅을 나왔다.
“염려 마. 함께 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꼭 무사하셔야 해요.”
“응.”
조윤은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기린단은 총 열 개조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중 삼조를 당자휘가 이끌었고, 조윤도 거기에 속해 있었다.
“왔나?”
“네.”
사람들에게 한창 뭔가를 설명하던 당자휘가 조윤을 보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삼조에 속해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조윤을 쳐다봤다.
그들의 시선에는 호의가 가득했다. 조윤이 곧 당효주와 혼인을 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고, 구음절맥을 치료할 정도로 조윤의 의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러 가는 입장에서는 그런 뛰어난 실력의 의원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