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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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84화
제4장 무림대회 (1)
무림대회 당일이 되자 당문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한적한 별채에까지 그 소란스러움이 전해져 오자 조윤은 보던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흑묘가 가져다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조윤.”
먼저 나와 있던 당효주가 웃으면서 조윤을 봤다. 그 모습에 하연이가 겹쳐져서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으나 곧 표정 관리를 하고 다가갔다.
“준비 다 했어?”
“네. 어때요?”
당효주는 오늘 한껏 멋을 냈다. 연분홍색의 궁장에 머리를 틀어 올려 기다란 비녀를 꽂은 모습이 너무나 예뻤다.
“예쁘다.”
조윤의 칭찬에 당효주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저 형식상 한 말이라 해도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하면 누구나 기쁠 수밖에 없었다.
“가자.”
“네.”
조윤은 당효주와 함께 별채를 나섰다. 무림대회가 열리는 곳은 당문의 안마당이나 다름없는 공터였는데 가는 동안에도 소란스러운 사람 소리가 시끌시끌 들려왔다.
“와…….”
순간 당효주가 감탄사를 냈다. 중앙에 마련된 커다란 단상을 중심으로 천막이 여러 개 쳐져 있고, 몇 백 명은 됨직한 사람들이 거기를 꽉 채우고 있었다.
당효주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걸 처음 봤다. 귀가 윙윙거리고 머릿속이 멍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손을 꼭 쥐어 얼결에 옆을 보니 조윤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괜찮아?”
“네?”
“괜찮냐고?”
“아, 네. 괜찮아요.”
“손 놓으면 잃어버린다.”
조윤이 농담을 하면서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주위의 소음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들렸다. 생경한 감각이었으나 당효주는 그게 싫지 않았다. 혹여 이 심장소리가 조윤에게 들리지 않을까, 오로지 그것만 걱정이 되었다.
“왔구나.”
사람들을 뚫고 단상 근처에 있는 천막에 도착하자 당자휘가 반겼다. 그걸 보고 당효주가 생긋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오라버니.”
“몸은 괜찮은 거야?”
“네. 조윤 덕분에 이제는 괜찮아요.”
“아버님하고 어머님이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어.”
조윤과 당효주가 안쪽으로 들어가자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당수백과 제갈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같은 반응에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조윤과 당효주를 유심히 쳐다봤다.
“어서 오너라.”
“아버님, 어머니.”
“오냐, 하하.”
당수백이 당효주의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그러자 제갈지인이 가볍게 핀잔을 줬으나 당수백은 껄껄 웃기만 했다.
“자네도 이쪽에 앉지.”
“아닙니다. 저는 효주를 데려다 온 것뿐입니다. 이화 누이와 만나기로 해서 가봐야 합니다.”
“그럼 자리를 비워둘 테니까 볼일을 보고 이리로 오게나.”
이곳은 당문사람들 중에서도 직계들만 모여 있는 자리였다. 그런 곳에 조윤의 자리를 만들어놓겠다는 건 이미 한 가족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윤이 대답하고 나가려는데 맞은편에서 당효령과 젊은 사내가 함께 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잠깐 당효령과 눈이 마주쳤으나 조윤은 조용히 그곳을 나왔다.
* * *
약속한 장소에는 이화와 흑묘 외에도 공소와 곽우, 등이 와 있었다. 그들은 조윤을 보자 반가운 얼굴을 하며 빠르게 다가왔다.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무사하셨군요.”
죽은 줄 알았던 사람들을 이렇게 다시 보게 되자 조윤 역시 반가웠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공소와 곽우뿐이었으나 그 외에 단목세가의 무사였던 다섯 명도 살갑게 대했다.
잠시 서로 안부를 묻는 말이 오고 갔다. 대호와 육예는 나중에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데리고 오지 않았다고 한다.
단목세가가 무너지던 날, 두 아이를 챙긴 것은 공소였다. 옆에 있는 무사 두 명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유야 어쨌든 도망을 쳤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했다.
한동안 그들도 단목세가의 생존자들을 찾아다녔었다. 그 와중에 이화를 만나게 되었고, 함께 있던 세 사람과도 조우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성도 외곽에 있는 포목점에서 다함께 지내고 있었다.
“이화 소저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단목세가를 재건하신다지요?”
“아니요. 그저 살 길을 찾으려는 것뿐입니다.”
“복수를 하려는 거지요? 그럼 이 몸이 가루가 된다 해도 돕겠습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복수만 할 수 있다면 개나 소처럼 마구 부려주십시오.”
갑작스러운 과격한 반응에 조윤은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문득 저들의 입장을 생각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들은 무인이었다. 멸문한 가문의 무사였다는 것은 평생을 따라다닐 오욕이었다. 무엇보다 저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비명에 갔다. 그 원한을 어찌 잊을까?
조윤이야 새외를 돌며 얻은 경험 덕분에 생명의 소중함과 무상함을 알지만 저들은 그렇지 않았다. 세속적이었다.
“복수는 해야 하지만 항상 여러분들의 목숨을 우선으로 하십시오. 살아있어야 뭐든 해도 하지 않겠습니까?”
복수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렇게 말했으나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들을 걱정해서 그런다는 생각에 오히려 한 목숨 다해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무림대회가 끝나고 나면 여러분들을 부르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알겠습니다.”
“한데 이제는 소가주님이 아니라 가주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닙니까?”
무사 중 한 명이 그리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이화와 흑묘마저도 동의하는 눈빛이었다.
“아니요. 저는 아직…….”
“단목세가를 재건하는 그날까지 가주님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곽우가 먼저 예의를 갖추며 포권을 하자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따라했다. 아마 이곳으로 오기 전부터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온 것 같았다.
조윤은 그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왔고,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생각했는지를 알았다. 이화와 흑묘의 이야기를 듣고 계획에 따르기로 했으나 저들의 입장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함께 고생을 좀 하겠거니 하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한데 이렇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게 아니었다. 저들의 생명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러지 마십시오.”
“저희는 단목세가의 무사들입니다. 멸문을 했어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받아주십시오.”
곽우가 무릎까지 꿇으면서 말하자 무사들이 일제히 그 자리에 엎드렸다.
“왜 이러세요? 빨리 일어나세요.”
“허락해주십시오.”
이러려는 것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조윤은 한숨이 푹 나왔다.
“알았습니다. 여러분들의 뜻을 받아들일 테니 어서 일어나세요.”
“고맙습니다. 가주님.”
“하하. 이제야 다시 뜻을 펼치겠군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무사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조윤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유독 흑묘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내공을 잃은 지금은 조윤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흑묘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조윤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의논을 했다. 당연히 거기에는 흑묘의 역할이 없었다.
* * *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회장으로 돌아가자 함성이 크게 울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단상 위를 봤더니 청성파의 현진이 크게 위용을 떨치고 있었다.
상대는 커다란 대도를 사용하는 중년사내였다. 대도를 한 번씩 휘두를 때마다 훙훙 하는 파공음이 무섭게 울렸다.
하지만 현진은 마치 어린아이를 상대하듯이 여유 있게 피하면서 가볍게 한 번씩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럴 때마다 중년사내는 흠칫하면서 공격이 끊겼고, 이내 스스로 패배를 시인했다.
“졌소이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중년사내가 포권을 하고 내려가자 현진이 검을 등 뒤로 세우면서 오롯이 섰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크게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이후 두 차례의 비무가 더 있었으나 현진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전부 이겼다.
사람들을 뚫고 당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천막에 도차하자 당효주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 옆에는 당효령과 그의 남편인 미소무가 앉아있어서 가기가 꺼려졌으나 내색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재미있는 게 많았는데.”
“그랬어?”
“네. 사람들이 계속 비무를 했는데, 청성파의 현진 도사가 나와서 연승 중이에요.”
당효주가 하는 말에 조윤은 미소를 지었다. 좋은 걸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볼일은 다 끝마친 게냐?”
“네.”
당수백이 묻는 말에 조윤은 짧게 대답했다. 뭘 하고 온 건지 물어볼 걸 대비해서 둘러댈 말도 준비를 해놓았으나 당수백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단상에서 벌어지는 비무에 시선을 고정했다.
현진은 그 사이에 또 일승을 챙겼다. 상황이 그러자 더 이상 도전자가 없었다. 웬만큼 실력차이가 나야 검이라도 한 번 맞대보지 제법 명성이 있는 사람들도 십 초식을 버티지 못하니 아예 나서지를 못했다. 이에 잠시 더 자리를 지키고 있던 현진은 멋쩍어하면서 내려갔다.
이어서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올라와서 비무를 했다. 그러다 아미파의 제자가 한 명 올라오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아미파는 청성파와 마찬가지로 사천에서 알아주는 명문이었다. 더구나 여인들이 주를 이루는 특이한 곳이었다.
어여쁜 아가씨가 검을 들고 나오니 이전보다 더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이 아미파의 제자는 화려한 검술을 선보이며 상대를 가볍게 이겼다.
하지만 이제껏 나서지 않던 실력자들이 연속으로 도전을 하자 결국 패하고 말았다. 이후에 다시 아미파의 제자가 올라왔고, 연승을 몇 번 하다가 내려가자 마지막에는 조윤도 아는 사람이 올라왔다.
‘낙소문.’
낙소문은 인상은 차가웠으나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빼어난 미인이었다.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환호를 하자 한층 더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첫 번째 도전자는 이름 없는 작은 문파의 무인이었다. 그는 제법 무공이 뛰어났으나 십 초식을 버티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 다음에는 양가창법을 구사하는 젊은 사내가 도전을 했다. 양가창법은 강호에서 알아주는 명문인 구릉양가의 가전절기였다. 젊은 사내는 그곳의 후계자로 양가창법에 완전히 통달해 있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나섰던 것인데, 안타깝게도 낙소문의 실력이 너무나 뛰어났다.
그 역시 십 초식을 버티지 못했다. 이후 세 명이 더 도전을 했으나 마찬가지였다. 이기기는커녕 그 누구도 십 초식을 버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