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79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79화
제2장 준비 (1)
아침 일찍 조윤은 당자휘를 찾아갔다. 당수백과 약속한 대로 그에게 무공을 전수해주기 위해서였다. 방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자 듣기 좋은 미성이 들려왔다.
“누구냐?”
“조윤입니다.”
“들어와.”
안으로 들어가자 탁자에 앉아서 책을 보던 당자휘가 슬쩍 시선을 들어 쳐다봤다. 무슨 일인지를 묻는 것 같은 눈빛에 조윤이 먼저 말을 꺼냈다.
“가주님에게 이야기를 들으셨을 겁니다. 사부님의 심득을 전하러 왔습니다.”
“아, 그 일 때문이군. 후원으로 가지.”
당자휘는 읽던 책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검을 챙겨 들고 아무도 없는 한적한 후원으로 향했다.
“여기면 보는 사람이 없을 거야. 아버님께 이야기를 들었다. 네가 큰 조부님의 심득을 전해줄 거라고 하던데.”
“네. 사실입니다.”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있다. 혹시 형님에게도 무공을 전수하는 거냐?”
“아닙니다. 공자님에게만 전하라 했습니다.”
“그래?”
약간 의외였던지 당자휘는 살짝 놀란 눈을 했지만 곧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썼다.
그 모습을 보고 조윤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장남인 당신우를 놔두고 당자휘에게만 무공을 전수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후계자로 인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데 왜 저런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왜 그럽니까?”
“아버님은 아직도 내가 못 미더운가 보군.”
“무슨 뜻입니까?”
“아버님이 내게만 무공을 전하라고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공자님을 후계자로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지.”
“그게 아닙니까?”
“그래. 형님에게는 큰 조부님의 심득이 필요 없다고 여기시는 거다.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너에게 무공을 전하라 한 거고.”
그제야 조윤은 자신의 말을 듣고 당자휘의 얼굴이 왜 굳어졌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설마 당수백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황학의 심득이었다. 도대체 당신우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게 필요가 없단 말인가?
“그런 줄은 몰랐습니다.”
“괜찮아. 나도 몰랐었으니까. 큰 조부님의 심득이라고 했지?”
“네.”
“말해봐. 그게 뭔지.”
“사부님께서는 제게 비연팔식이라는 검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처음 듣는군.”
“일단 보여드리겠습니다.”
조윤은 백아를 뽑아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내공은 일체 운용하지 않은 채, 초식명을 외치면서 비연팔식을 펼쳤다. 조용히 서서 그걸 끝까지 지켜본 당자휘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이해가 안 가는군.”
“뭐가 이해가 안 갑니까?”
“그게 정말 큰 조부님이 전해준 무공인가?”
“네.”
“이상하군.”
“뭐가 이상합니까?”
“마치 시중에 도는 흔하디흔한 검법처럼 초식이 너무 단순해.”
당자휘의 말을 듣고 조윤은 약간 기분이 상했다. 비연팔식은 당황학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무공이었다. 한데 저런 반응이라니, 자신뿐만이 아니라 당황학까지 낮춰보는 것 같았다.
“단순한 만큼 습득하기도 쉽고 실용적입니다.”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봐라.”
당자휘가 그렇게 말하면서 비연팔식의 첫 번째 초식인 비연상승을 펼쳤다. 그러자 검이 날카롭게 대기를 갈랐다. 깔끔하니 군더더기가 없는 동작이었다.
조윤은 몇 달에 걸쳐서 터득한 것을 당자휘는 단 한 번만 보고 그대로 해냈다. 재능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말대로 그만큼 흔한 초식이기 때문이었다.
“이게 첫 번째 초식이라고 했지?”
“네.”
“그런데 이건 그냥 올려치는 거잖아. 두 번째 초식도 그래. 비연하강이라고 했던가?”
“네.”
당자휘가 이번에는 비연하강을 펼쳤다. 앞서 펼친 비연상승과 마찬가지로 그는 너무나 쉽게 해냈다.
“이것도 똑같아. 그저 내려치기잖아. 초식이 달랑 두 개라는 것도 이상하고, 그런데 비기는 네 개나 있다고?”
“네.”
조윤은 약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어디 그것도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투였다.
“첫 번째 비기인 비연참을 봐. 말이 비기지 실상 뛰어서 내려치는 거잖아.”
당자휘가 비연참을 펼쳤다. 그리고 비슷한 초식을 몇 개 더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건 무당파의 검술이고, 이건 청성파의 검술이다. 상승검술도 아니고 입문을 하면 기본적으로 익히는 검술이야. 어때? 비슷하지? 두 번째 비기인 비연섬도 마찬가지야. 그것도 웬만한 검법에는 다 있는 초식이야.”
조윤이 얼이 빠져서 멍하니 보고 있자 당자휘가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물었다.
“세 번째 비기가 뭐라고 했지?”
“비연폭입니다.”
“다시 보여 봐.”
“네.”
조윤이 대답을 하고 백아를 뽑았다. 이것만큼은 쉽게 따라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서 순식간에 비연폭을 펼쳤다. 그러자 하얀 섬광이 세 번, 빠르게 지나갔다.
비록 내공은 실지 않았으나 완벽했다. 이에 조윤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습니까?”
“그런 초식도 흔해.”
“정말입니까?”
“아직 하나 더 있지?”
“네.”
“그것도 해봐.”
당자휘의 말에 조윤은 비연을 보여줬다. 허공으로 날아올라 몸을 한 바퀴 돌리면서 검을 휘두르자 대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그건 그나마 좀 독특하지만 그리 뛰어난 초식은 아니야. 어떤 무공이던 크게 세 가지의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첫째는 힘, 둘째는 빠르기, 셋째는 변화다. 상승의 초식일수록 그 세 가지가 뛰어나. 그런데 네가 보여준 초식은 그저 조금 빠를 뿐이야. 힘도 부족하고, 변화도 없어.”
조윤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비연팔식의 초식이 그렇게까지 흔할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비연팔식을 배우기 전에는 검법이라고는 배워본 적이 없었고, 접한 무공도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단목세가에 있을 때 백모연과 단목몽오에게 무공의 기초를 배운 것이 다였다.
* * *
“호, 혹시 구결을 들으면…….”
“구결을 들어도 별다를 게 없을 것 같지만 일단 들어 보지.”
구결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핵심요결이었다. 단순한 초식이라고 해도 내공을 운용하는 방법이 독특할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당자휘도 조금은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조윤이 말하는 초식의 구결을 듣고 저도 모르게 인상을 살짝 썼다.
“그게 다야?”
“네.”
“혹시 큰 조부님의 심득을 숨기려는 거냐?”
“아닙니다. 저는 약속한 건 지킵니다.”
“하긴, 정말 그런 생각이었다면 그런 걸 구결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
“그게 무슨 뜻입니까? 혹시 구결도 흔한 겁니까?”
“정말 모르고 있었나?”
“네. 저는 사부님을 만나기 전에는 제대로 무공을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저 기초수련만 했었습니다.”
“그랬었군. 그걸 아버님도 알고 계시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가르치라고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사부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검강을 터득하셨습니다.”
“검강이라고?”
당자휘가 놀라서 되물었다. 무림에 숨은 고수들이 모래알만큼이나 많다지만 검강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평생 동안 무공만 수련을 해도 검기조차 터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믿을 수가 없군. 그럼 너도 검강을 쓸 수 있는 건가?”
“아닙니다. 검기를 조금 쓰는 수준입니다. 그마저도 내공이 없어서 이제는 불가능하지만요.”
“검기를 쓴다고?”
당자휘가 아까보다 더 놀란 기색을 보였다. 조윤은 그 같은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전에 당수백도 그러더니 왜 저렇게 놀라는 걸까?
“큰 조부님께 무공을 배운 게 몇 년이지?”
“오 년 정도 됩니다.”
“그런데 검기를 터득했다고?”
“네.”
당자휘는 아무 말 없이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 질문을 했다.
“큰 조부님이 어떻게 무공을 가르치셨지?”
“네?”
“어떤 방식으로 배웠는지를 묻는 거다. 그저 초식만 배운 것은 아닐 거 아냐?”
“초식을 계속 반복 연습했고, 이후에는 그걸 쓸 수 있게 대련을 했었습니다. 당문을 떠나 새외에 가서는 비슷한 또래들과 비무를 했었고요.”
“하아…… 모르겠군. 그 정도는 무공을 하면 누구나 다 하는 건데, 도대체 뭐가 너를 그렇게 성장시켰을까?”
“저도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뭐가?”
“검기를 쓰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조윤이 물어보자 당자휘가 대답은 않고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설명을 해줬다.
“어이가 없군. 올해 몇 살이지?”
“곧 열여덟 살이 됩니다.”
“그 나이에 검기를 쓰는 사람은 강호를 통틀어 열 명도 안 된다. 소림사나 무당파 같은 명문에서조차도 찾기가 쉽지 않아. 더구나 너는 겨우 오 년을 수련했어. 네 나이에 검기를 쓰는 사람들은 전부 어렸을 때 벌모세수를 받고 뛰어난 스승의 가르침을 십 년 이상 꾸준히 받은 자들이야.”
“벌모세수가 뭡니까?”
“그런 것도 몰랐나?”
당자휘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검기까지 쓴다면서 조윤은 무공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거의 없었다.
“벌모세수란 건 진기도인을 해서 아이의 혈도를 미리 뚫어주는 거다. 그럼 실낱같이 흐르던 기운이 마치 강물과 같이 강해지고, 탁기(濁氣)가 들지 않아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몸이 되지.”
“명문가의 아이들은 전부 그런 걸 하나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 벌모세수는 내공의 소모가 심해서 적어도 일 갑자 이상의 내공을 지니고 있는 사람만이 가능해. 아무리 명문가라고 해도 그런 정순한 내공을 가진 사람은 몇 명 없다. 더구나 그렇게 내공을 소모하고 나면 적어도 몇 년은 연공을 해야 기운을 되찾을 수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벌모세수를 시켜놓아도 아이의 오성이 부족하면 그런 노력이 전부 허사가 된다는 거야.”
“그렇군요.”
벌모세수라는 건 한마디로 도박이었다. 문파와 세가의 미래를 위해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 하지만 결과는 확실하지 않은, 그런 도박이었다.
“이제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았나?”
“저는……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요. 그냥 사부님이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이에요.”
“겸손은 됐어. 나도 사람들에게 천재라고 인정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검기를 쓰지 못한다.”
당자휘가 샘이 난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자 조윤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 그런 줄 몰랐어요.”
“솔직히 말하면 아버님이 너한테 무공을 배우라고 하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아. 아버님이 너한테 효주를 내주려고 하는 것도 이해가 되고.”
“저를 잡아두려는 거겠죠.”
“그래. 네 재능을 알아보고 욕심을 내시는 거다.”
“저는 이곳에 맞지 않아요.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것이 두려워요. 더구나 이제는 내공도 없고요. 효주를 치료하고 나면 의원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조윤이 힘없이 이야기하자 당자휘가 미간을 살짝 좁히면서 쳐다봤다.
검기를 다루는 경지까지 갔으면서 저런 소리를 하다니 기가 찼다.
자신에게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웅지를 품고 세상을 향해 크게 한 걸음을 내디뎠을 것이다. 그런데 조윤은 소심하게 도망을 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나하고 손을 잡는 것이 어때?”
“네?”
“나를 따라라. 내가 가주가 되면 너를 자유롭게 해주겠다. 그때까지만 나를 도와.”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조윤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자휘가 갑자기 왜 저런 말을 하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지금 저는 내공이 없습니다. 도움을 주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닙니다.”
“산공독에 당했다지? 해독약을 주겠다.”
“그렇다 해도 가주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을 겁니다.”
“그것도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잘 이야기를 할 테니까.”
만약 당자휘가 정말 그렇게만 해준다면 애초에 세웠던 계획을 훨씬 쉽게 진행시킬 수가 있었다. 단지 당신우를 밀어주려던 것을 당자휘로 바꿀 뿐이었다. 이에 당자휘를 보니 그는 진심인 것 같았다.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단순히 제가 재능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버님은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서 사천무림을 하나로 만들려고 하신다. 그리고 형님을 전면에 내세워 구심점으로 삼을 생각이시지. 그렇게 되면 다음대의 가주는 무조건 형님이 된다.”
“제가 나서면 바뀔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아미파와 청성파는 전부 너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너는 가문의 복수를 한다는 뚜렷한 명분도 있지. 아버님도 그걸 알기에 네가 나서는 걸 막으려고 한 거다.”
“가주님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제가 나서는 걸 탐탁지 않게 여깁니다.”
“아니. 네가 나서되 나를 지지한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단목세가의 생존자들이 몇 있다. 그들을 모아서 세력을 만들어. 그리고 복수를 핑계로 끼어드는 거다. 이후에 형님이 아니라 나를 도우면 된다.”
“원하는 것이 무림맹의 맹주입니까? 아니면 당문의 가주입니까?”
“맹주는 관심 없다. 그건 형님이 해도 돼. 하지만 당문의 가주는 아니야. 절대로 형님이 되도록 놔두지 않을 거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으나 조윤은 굳이 묻지 않았다. 지금 그걸 들으면 제안을 바로 수락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직은 좀 더 생각을 할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지. 언제 답을 줄 거냐?”
“일단 효주의 치료가 무사히 끝나야 뭐를 해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 이후에 확답을 하겠습니다.”
“좋은 대답을 기다리겠다. 그럼 오늘은 이만 하고 갈까?”
“네.”
조윤은 당자휘를 따라가면서 빨리 이화를 만나 이 일을 상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