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53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53화
제1장 우연 (3)
“제가 처음에 생각한 건 이런 거였어요. 독이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잠깐의 어지럼증은 유발을 시킬 수가 있어요. 그 때문에 넘어져서 어딘가에 머리를 부딪쳤다면 어혈이 생겨서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될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일반사람이었을 경우죠. 궁주님은 무공을 익혔잖아요. 그 정도의 독으로 어지럼증을 느낄 리도 없고, 설사 그랬다고 해도 넘어질 리도 없죠. 그래서 쉽게 판단을 내지리 못한 거예요.”
“그럼 다른 원인이 있다는 거야?”
“아니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요.”
거기까지 이야기했을 때였다. 방문이 벌컥 열리면서 화규백이 들어왔다.
“무슨 생각인지 나도 한 번 들어보지.”
“오라버니.”
화설린과 조윤은 크게 놀라며 그를 봤다. 설마 그가 다시 돌아올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시녀라고 하기에 그런 줄로만 알았지, 의원일 줄은 몰랐구나.”
화규백이 조윤을 보며 말했다. 화설린과 조윤을 처음 봤을 때는 그다지 위화감이 들지 않았었다.
한데 방을 나와서 걸으면서 생각해보니 뭔가가 이상했다.
동생인 화진모가 염장과 함께 마강을 죽이려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것이 불과 두 시진 전이었다.
화진모가 말하기를 그 자리에 화설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럼 마강이 안전한 곳으로 피할 동안은 함께 있어야 정상이건만 여기에 와있었다.
그게 이상해서 설마 하면서 되돌아온 것인데 생각지도 않게 시녀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남자였고, 또한 의원이었다.
“본의 아니게 속이게 되었습니다. 조윤이라고 합니다.”
조윤이 침착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화규백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물었다.
“아버님의 병세를 알아냈느냐?”
“그렇습니다.”
“치료를 할 수 있느냐?”
“가능합니다. 다만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못 고칠 수도 있다는 뜻이구나.”
“치료를 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나, 치료도중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의원들이 왔다 갔지만 그리 말한 것은 처음이다. 정말 아버님의 머리에 있는 어혈을 풀 수 있는 거냐?”
조윤은 말없이 화규백을 봤다. 보아하니 그는 이미 화중천의 병세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만약 독을 쓴 것이 그라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라.”
“궁주님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 말해주세요.”
너무 직설적이었을까? 화규백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힐끗 화설린을 봤다.
그 같은 반응에 화설린은 화규백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라버니. 아버님에 대한 일이라면 나도 알 권리가 있어요. 뭐를 숨기고 있는 거죠?”
“말해도 믿지 않을 거다.”
“그 판단은 제가 해요. 알고 있는 게 있으면 뭐든 말해주세요.”
화설린이 간절하게 부탁을 하자 화규백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언제고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하니 지금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버님이 저렇게 된 것은 마강 때문이다.”
“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자 화설린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마강은 지금까지 그녀가 믿고 따랐던 사람이었다. 언제나 그녀를 아껴주었고 한 번도 해를 가한 적이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마강은 오래전부터 야심을 품고 있었다. 서쪽의 랑족을 끌어들여 우리를 밀어내고 북해를 장악하려 했다.”
“믿을 수 없어요.”
“나 역시도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나중에야 진실을 알았지. 아버님에게 독을 쓴 것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적이 없다. 랑족이 세력을 키우고 있다지만 그다지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나나 진모가 궁주의 자리를 노리고 그랬다는 것은 더 말이 안 되지.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나는 궁주가 된다. 한데 왜 아버님을 해치는 불명예스러운 방법을 택하겠느냐? 진모 역시 그렇다. 그 녀석이 모난 구석은 좀 있어도 그렇게 독하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둘 중 한 명이 아버님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누군가가 낭설을 퍼트리고 있는 거지.”
듣고 보니 그랬다. 화규백과 화진모가 궁주의 자리를 놓고 다투기 시작한 건 화중천이 쓰러진 이후였다. 그전에는 서로 툴툴 거리기는 했어도 사이가 좋았었다.
“마강은 신중해서 좀처럼 야심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아주 조금씩 아버님께 독을 쓰며 때를 기다렸지. 그래서 아버님은 그를 처리할 계획을 세우셨다. 중독되어 쓰러진 척하면 그가 행동을 할 거라 여긴 것이지. 왔다가 간 의원들은 모두 아버님과 내가 입막음을 했다. 그래야만 마강이 움직일 테니까. 한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아버님이 정말 일어나지 못하게 되신 것이다.”
“머리의 어혈 때문이군요. 만성으로 진행되어서 초기에는 쉽게 알아챌 수가 없었을 거예요.”
조윤이 끼어들어 말하자 화규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이후에 다시 의원들을 불렀지만 모두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때 마강이 본색을 드러냈지. 랑족을 끌어들여 신궁을 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아버님이 미리 손을 써놓은 것이 있었다.”
“설마, 염장인가요?”
“그래. 마강은 그동안 야심을 숨기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의를 보였다. 그래서 인망이 두터웠지. 아버님이 직접 손을 쓰기에는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이 터진 후에 손을 쓰면 너무 늦는다. 그래서 염장을 이용한 거다. 우노와 마수는 너무 충직하기도 하고, 무공이 약해서 제외되었지.”
“그럴 수가…….”
당시에 뭔가가 이상하긴 했었다. 마강을 하늘처럼 따르던 염장이 갑자기 변심을 하고 도전을 한 것이다.
비무야 흔히 하는 거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데도 염장은 모두가 보는 가운데 마강을 쓰러트리고 팔다리를 잘랐다.
화설린 역시 그걸 지켜봤었고, 염장을 말리려고 했으나 화규백이 제지를 했었다.
나중에 염장을 만난 화설린은 이유를 물었었다.
왜 사부인 마강에게 그랬냐고.
그랬더니 염장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때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 한데 화규백의 말을 들으니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마강은 염장에게 그렇게 당하고 나서 잠적했다. 그때 죽였었어야 했는데, 손을 쓸 틈도 없이 사라졌지. 이후에 그는 아버님이 일어나지 못하자 진모를 부추겨서 나와 대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너를 이용해서 신궁의 정보를 빼냈고.”
화설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화규백이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하기에는 앞뒤가 너무 잘 맞았다.
무엇보다 화규백은 그렇게 거짓말을 잘하지 못한다.
화설린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멍하니 있자 화규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동안 마강이 화설린을 이용했듯이 화규백 역시 그녀를 통해서 정보를 얻었었다.
덕분에 마강이 있는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고, 화진모를 자극해서 염장과 함께 그를 죽이러 가게 만들었다.
한데 이제는 화설린이 사실을 알았으니 마강에게 보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성격상 그런 일은 하지도 못하고 한다고 해도, 마강을 속이지 못해 금방 들킬 것이다.
“내가 해줄 이야기는 다 했다. 믿고 안 믿고는 네 판단이다.”
“나는 숙부님이 그런 줄은 전혀 몰랐어요. 애초에 왜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죠?”
“말했다시피 그는 그동안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있었다. 말한다 한들 누가 믿었겠느냐? 아버님과 내가 굳이 그런 계획을 세웠던 것도 그래서였다.”
“그래도…….”
“네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나 역시 그랬었으니까. 하나만 묻자.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그를 죽일 수 있겠느냐?”
잠시 생각을 하던 화설린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만큼 마강에 대한 믿음이 컸고 받은 것이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숙부라고 부르며 따르던 사람을 어떻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가 야심을 품고 그런 짓을 했다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줬던 것만큼은 진심이었다.
“됐다. 그래서 말하지 않은 것이다.”
화설린과 이야기를 끝낸 화규백이 조윤을 봤다.
“이제 너한테 물으마. 정말 아버님을 치료할 수 있는 거냐?”
“말했듯이 장담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볼게요.”
“네 생각은 어떠냐? 네가 데리고 왔으니까 잘 알 것 아니냐?”
화설린은 대답 대신 조윤을 봤다.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챈 조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마강 아저씨가 왜 그때 자꾸 떠나라고 했는지 알겠어요. 혹여 내가 궁주님을 치료할까 봐 불안했던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사부님이 마강 아저씨와 친분이 있다지만 이번 일에는 깊이 관여할 생각이 없어요. 사부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러고 싶지도 않아요. 궁주님을 치료한 후에는 사부님의 약을 지을 약재를 얻어서 곧바로 떠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냐? 마강과 연관이 있다니.”
화규백이 살기를 드러내면서 묻는 말에 조윤은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조윤은 지금까지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마강과 관계된 사람에게 아버님을 맡길 수는 없다.”
“아니에요. 조윤은 그렇지 않아요.”
“듣고 싶지 않다.”
화설린이 설득을 하려고 했으나 화규백은 듣지 않았다. 그러자 화설린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오라버니!”
“안 된다.”
“지금까지 오라버니는 저를 속여 왔잖아요. 그러니까 이번에는 제 뜻대로 할 거예요.”
“너는 마강이 어떤 자인지 몰라서 그런다.”
“잠깐만요.”
두 사람이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려고 하자 조윤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잠시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할 말이 있으면 해라.”
“궁주님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어요. 예전에 제 아버님도 똑같은 병에 걸렸었어요. 그래서 수많은 의원들이 왔었고 심지어 신의문에도 왔었지만 아무도 치료하지 못했었어요.”
“그래서?”
“그냥 놔두어도 죽는데, 만약 제가 마강 아저씨의 부탁을 받았다면 굳이 치료를 할 이유가 없잖아요.”
듣고 보니 그랬다. 하지만 조윤을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망설임을 눈치챈 조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화중천을 치료하려고 했던 건 당황학과 마강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한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고, 저런 말을 들으면서까지 치료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정 믿지 못하겠다면 관둘게요. 사부님을 치료할 약재만 주세요. 그럼 돌아갈 테니까.”
“안 돼!”
화설린이 놀라서 소리를 지르며 조윤의 팔을 잡았다.
이대로 조윤을 보내면 영영 아버지가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어떻게든 치료를 하게 만들어야 했다.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화설린이 무릎을 꿇자 조윤은 크게 당황하며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화규백 역시 놀라서 화설린을 부축했다. 그러자 그녀가 손을 확 뿌리치면서 말했다.
“조윤이 아니면 아버지를 치료하지 못해요. 만약 조윤이 나쁜 마음을 먹고 아버지를 죽인다면 내 손으로 죽이겠어요. 그러니까 치료를 하게 해줘요.”
화규백은 안 된다고 말을 하려다가 꾹 눌러 삼켰다.
화설린의 눈을 보아하니 절대로 물러설 것 같지가 않았다. 이에 조윤을 보며 말했다.
“치료를 해라. 대신에 내가 옆에서 지켜볼 것이다.”
조윤은 탐탁지 않았으나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