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52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52화
제1장 우연 (2)
그때 화설린은 조윤의 의술을 보고 북해신궁으로 가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궁주님의 상태가 어떻죠?”
“그건 왜 묻는 거냐?”
“만약 궁주님이 치료가 된다면 지금의 혼란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요?”
“그렇겠지. 하지만 궁주님은 원인 모를 병으로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가 의술을 좀 아니까 진맥을 해보면 어떨까요? 객잔에 있을 때 화 소저가 함께 북해신궁으로 가자고 한 것도 그래서였어요.”
“그랬더냐?”
마강이 화설린을 봤다. 화설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북해신궁의 궁주는 이미 가망이 없었다. 그가 쓰러지자 북해에서 알아주는 명의를 전부 불러왔었다. 그러나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그 이후로 포기를 했다고 여겼건만 아직도 희망을 가지고 있었나 보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조윤의 의술이 생각보다 뛰어나요. 그리고 북해가 아닌 중원사람이니까 혹시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네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기대할수록 너만 힘들 뿐이다.”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뭐라도 하고 싶었어요.”
화설린이 고개를 푹 숙이면서 하는 말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궁주가 그렇게 되고 나서 가장 괴로운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였다.
평소 궁주가 그녀에게 쏟은 정이 적지 않았고, 그녀 역시 아버지를 잘 따랐었다.
“제게 기회를 주세요. 화 소저의 말대로 궁주님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럴 필요 없다.”
마강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조윤은 자신이 도울 수 있는 건 뭐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고, 당황학을 치료할 약재도 구해야 했다.
“어차피 사부님이 드실 약을 만들려면 약재가 필요해요. 신궁에는 약재가 많을 테니 제가 부탁을 드릴게요.”
조윤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마강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신궁은 살얼음판과 같아서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제가 드나드는 비밀통로가 있어요. 그리로 함께 가면 돼요.”
화설린이 나서자 마강이 착잡한 눈으로 쳐다봤다.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리 기대를 하면 또다시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된다.
궁주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유명한 명의가 올 때마다 그러지 않았던가?
기대하고 좌절하고, 또다시 기대하고 좌절하기를 반복했었다.
“괜찮겠느냐?”
“네. 괜찮아요.”
마강의 물음에 화설린이 기운차게 대답했다. 그녀는 아주 약간의 가능성이라 할지라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자식 된 도리가 아니던가?
* * *
마강에게 당황학을 부탁한 조윤은 화설린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혹여 염장이 다시 찾아올까 걱정이 되었으나 우노와 마수가 여차하면 도망을 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두 사람의 성격을 보건대 맞서 싸우다가 죽으면 죽었지 도망을 치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눈이 쌓인 산을 오르자 곧 동굴이 나왔다. 바로 앞에 우뚝 솟은 얼음바위가 있어서 가까이 가서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화설린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나무를 주워서 횃불을 만들었다.
“가자.”
“네.”
동굴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횃불이 없었다면 바로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화설린은 앞장서서 걸었다. 중간에 한 번씩 여러 갈래로 나눠지는 곳이 나왔으나 익숙하게 길을 찾아갔다. 그러다 석벽이 나오자 벽에 횃불을 걸고 잡아당겼다.
그긍!
돌이 움직이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조윤은 어떤 원리로 문이 열리는지 신기했다. 현대에서야 전기가 있다지만 이 시대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단지 횃불을 잡아당기는 것만으로 육중한 문이 열렸다.
“왜? 신기해?”
“네? 네.”
조윤이 얼결에 대답을 하자 화설린이 미소를 지었다.
길게 나 있는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자 또다시 석벽이 나왔고, 한쪽을 미니 커다란 방이 나왔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것으로 봐서 여자가 쓰는 방인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조윤이 방을 두리번거리자 화설린이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내 방이니까 괜찮아.”
“네.”
화설린은 한쪽에 있는 옷장에서 옷을 가져와 조윤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갈아입어.”
“여자 옷인데요?”
“아버님이 계신 곳에는 경계가 삼엄해서 모르는 사람은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어. 그리고 오라버니들이 너를 보면 좋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두 사람 다 아버님이 쾌차하기를 바라지 않거든. 그러니까 내 시비인 척해야 해.”
거기까지 말한 화설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깟 궁주가 뭐라고 권력에 눈이 멀어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지, 오라비들이 야속하고 미웠다.
조윤은 내키지 않았으나 화설린이 시키는 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자 화설린이 여자처럼 머리를 올려 묶고 자신이 하고 있던 비녀를 빼서 꽂아줬다.
“됐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야 돼.”
“그럴게요.”
화설린이 앞장서자 조윤이 뒤를 따라 걸었다.
신궁은 굉장히 크고 웅장했다. 건물이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대부분 삼 층 이상의 높은 누각이었다.
가면서 사람들이 화설린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그러나 조윤에게까지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궁주인 화중천이 있는 방에 도착하자 그 앞을 지키던 무사 두 명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셨습니까?”
“안에 누가 있나요?”
“대공자께서 오셨습니다.”
“규백 오라버니가요?”
큰 오라비인 화규백은 웬만해서는 이방에 오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어 온 것일까?
나중에 다시 올지 그냥 들어갈지 잠시 망설이던 화설린은 조윤을 힐끗 봤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니 영락없이 여자아이 같았다.
‘들키지는 않겠지?’
들어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걸음을 옮기자 무사들이 조윤을 제지했다.
“내 시비예요.”
“하지만…….”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죠? 내가 시비 한 명조차 대동할 수 없다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만.”
무사가 난처해하고 있는데 방 안에서 큰 키에 조금 여려 보이는 사내가 나왔다. 그가 바로 화설린의 큰 오라비인 화규백이었다.
“무슨 일이냐?”
“아, 아닙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게…… 아가씨께서 시비와 함께 들어가려고 하시기에…….”
무사의 설명을 듣고 화규백이 화설린을 봤다. 그러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버님을 보러 온 거냐?”
“그래요.”
“들어가라.”
화설린이 들어가자 조윤이 따라 들어갔다. 화규백이 그런 조윤의 뒷모습에 잠시 시선을 뒀으나 곧 고개를 돌렸다.
“후우…….”
조윤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신궁의 궁주가 기거하고 있는 방치고는 검소했다. 북해는 환경이 척박해서 중원과 문화가 달라서 그런 것이었으나 조윤은 알지 못했다.
화설린이 침상으로 다가가 화중천의 손을 잡았다.
언제쯤 이 손으로 다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줄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진맥을 할게요. 누가 오면 알려주세요.”
조윤이 그렇게 말하면서 화중천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손목의 맥을 통해 기를 천천히 밀어 넣어 화중천의 기운에 동조시켰다.
잠시 그렇게 진맥을 하던 조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여 진맥을 잘못한 것인가 싶어서 침을 꺼내 몇 군데 혈에 꽂아봤다.
“화 소저. 아버님이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했죠?”
“응. 손 쓸 틈도 없이 쓰러지셔서 모두 크게 놀랐었어.”
“혹시 머리가 아프다고 하지는 않았었나요?”
“아니. 그건 잘 모르겠어.”
“다리가 마비되는 증상은요? 그러니까 잘 걷지 못했다던가, 그러지는 않았나요?”
“그것도 잘 모르겠어. 아버님은 쓰러지기 전까지는 건강하셨어.”
화설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궁의 궁주니 무공이 굉장히 뛰어날 테고, 당연히 어디가 아프다 해도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에 본인도 가볍게 여겼을 것이고.
“명의들이 많이 왔다가 갔다고 했죠?”
“이십 명이 넘게 왔다 갔어. 하지만 모두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어.”
조윤은 다시 의문이 들었다. 진맥을 해보니 예전에 단목태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막하혈종인 거 같았다.
당시에 당자기는 그걸 금방 알아챘었다. 한데 그 많은 명의들이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다니, 뭔가가 이상했다.
이에 조윤은 다시 한 번 진맥을 하며 혹여 놓친 것이 있는지 꼼꼼하게 살폈다. 그러다 명치 부분에서 아주 미세하게 기가 흩어지는 것을 알아냈다.
CT촬영은커녕 X-ray조차도 없었지만 조윤은 기진으로 그것을 대신하고 있었다.
다만 현대에서도 종종 병을 알아채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있듯이 기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기진은 조윤의 주관이 섞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했다. 그래서 아까는 잡아내지 못했었다.
침을 꺼내서 명치에 꽂았다가 빼낸 후에 유심히 보고 있자 미약하게 색이 바뀌었다.
‘독이다.’
“뭐가 알아낸 거야?”
화설린이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조윤은 아직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이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 * *
초조하게 시간이 흘러갔다. 조윤이 뭔가를 알아낸 것 같은데 선뜻 입을 열지 않으니 화설린은 애가 탔다. 그렇다고 조윤을 닦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서 마냥 기다려야만 했다.
“궁주님은 독에 중독되었어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던 조윤이 드디어 눈을 뜨고 한 첫마디가 그거였다.
그 말을 듣고 화설린은 적지 않게 놀랐다.
“그게 정말이야?”
“네.”
“그걸 의심하지 않은 건 아닌데, 전에 왔던 의원들은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었어.”
“아마 궁주님의 증상 때문일 거예요.”
“증상이 어떤데?”
“독에 중독되기는 했는데 아주 미세해요.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고, 생활하는데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예요.”
“그런데 독이라고?”
“네. 그래서 의원들이 독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럼 아버님이 그것 때문에 쓰러진 것이 아니잖아.”
“맞아요. 하지만 원인이 될 수는 있어요.”
“이해가 안 가.”
화설린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하자 조윤이 차분하게 설명을 계속했다.
“궁주님은 독에 중독된 증상 말고도 머리에 어혈이 있어요. 그건 분명 의원들도 알아냈을 거예요.”
“맞아. 몇 사람이 그런 말을 했었어. 그래서 약도 지어줬었고. 하지만 병세가 심하지 않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어.”
“마지막으로 의원이 왔다 간 것이 언제였죠?”
“다섯 달 정도 된 것 같아.”
“당시에는 머리의 어혈이 그렇게 크지 않았을 거예요.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만성이니까요.”
“그럼 그게 원인인 거야?”
“지금은 그래요. 하지만 예전에는 아니었을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