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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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49화
제9장 쌍검비격 (2)
“그만둬.”
“맞아.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야.”
우노와 마수가 조윤을 말렸다. 그러나 조윤은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왜 말리는 거죠? 당신들은 화가 나지도 않나요?”
“안 난다. 오히려 네가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모르겠다. 아까 그 여자가 너의 가족인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아니었잖아. 그들에게 당해서 죽은 남자도 마찬가지 아니냐? 그런데 왜 저들을 죽이겠다는 거냐?”
“그들이 한 행동은 옳지 않아요.”
“누가 그걸 정하는 거지? 네가? 혹여 그렇다고 해도 네가 왜 그들을 죽이겠다는 거냐?”
“마수의 말이 맞아. 오지랖 넓은 행동일 뿐이다. 어설픈 정의감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도대체가…….”
조윤은 갑자기 뭐가 뭔지 모르게 됐다. 저들은 대낮에 여자를 희롱하고 납치까지 하려고 했다. 그걸 보다 못해 도와준 남자를 아주 비겁한 방법으로 죽였다.
그러나 그건 전부 조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저들이 옳지 않다고 해서 조윤이 끼어들어 죽일 이유가 없었다.
이치만 따지자면 우노와 마수의 말이 옳았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외치고 있었다.
“어이, 이쪽에 제법 좋은 게 있다.”
“이리로 와!”
언제 왔는지 사내들이 화설린을 보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 그들은 생각지도 않게 하던 일을 방해받고, 동료들까지 죽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데 마침 빼어난 미인이 눈에 뜨이자 잘됐다는 생각에 또다시 납치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화설린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차갑게 한 마디 했다.
“죽여.”
“이러면 또 다르지.”
“잘 봐둬라. 이럴 때 칼을 휘두르는 거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노와 마수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각기 두 개의 칼을 뽑아서 휘두르자 가까이 있던 사내들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동료들이 당하자 뒤에 있던 사내들이 크게 당황하며 무기를 들려고 하는 순간, 우노와 마수가 그들을 지나쳐 갔다. 그리고 뒤에 있는 자들을 베어 넘기자 그제야 지나쳐 갔던 사내들이 피를 뿌리면서 쓰러졌다. 열 명 가까이 되는 사내들을 쓰러트리는데 그야말로 찰나였다.
그걸 보고 멀리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노와 마수는 여유가 있었다. 쓰러진 자들의 옷에 칼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는 화설린을 보며 물었다.
“저것들도 다 죽일까요?”
“기다려. 어떻게 나오나 보게.”
“알겠습니다.”
이십 명이 넘는 인원이 달려왔으나 우노와 마수를 보고는 선뜻 덤벼들지 못했다. 두 사람이 전혀 겁먹은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누군가가 화설린을 알아보고는 크게 놀라서 소리쳤다.
“헉! 당신은…….”
“나를 알아?”
“모, 몰라 뵈어서 죄송합니다. 화 소저인 줄 모르고, 그만. 뭣들 해? 화 공자님의 누이동생인 화 소저시다.”
그가 소리치자 모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화설린의 둘째 오라비인 화진모를 따르는 자들이었다. 화진모는 형인 화규백에게 맞서기 위해 다급하게 세력을 일구느라 이렇게 질이 안 좋은 자들까지도 전부 끌어왔다. 그 때문에 이들의 패악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도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사내들이 전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나 화설린은 차갑게 웃었다. 저들은 자근자근 밟아 놔도 금방 잊어 먹고 아까처럼 주제넘은 짓을 한다. 그만큼 질이 안 좋고 멍청했다. 아예 안 건드렸다면 모를까 이쯤에서 물러나면 또다시 그런 짓을 할 놈들이었다.
“다 죽여.”
화설린의 한마디에 우노와 마수가 다시 움직였다. 그러자 사내들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무기를 뽑아 들고 휘둘러 왔다. 그 와중에 세 명이 조윤에게 달려들었다. 그를 인질로 잡으려는 것이다.
조윤은 자세를 낮추고 허리에 차고 있던 백아를 뽑았다. 그러자 그에게 달려들었던 사내들 중 한 명이 피를 뿌리면서 쓰러졌다. 이어서 그 옆에 있는 사내의 목을 베고, 앞으로 나아가며 남은 한 명의 다리를 벴다.
“으아아악!”
다리를 베인 사내가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는 순간, 조윤이 지나쳐 가자 목에서 피가 치솟았다.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조윤은 빠르게 움직이며 사내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비연하강과 비연상승을 연이어 쓰면서 주먹으로 때리고, 어깨로 받는가 하면 발로 차기도 하면서 백아를 휘둘렀다.
그걸 보고 우노와 마수는 물론이고 화설린도 적지 않게 놀랐다. 무공이 생각보다 뛰어난 건 둘째치고라도 검을 뽑기 전에는 그리 망설이더니 일단 뽑고 나자 거침이 없었다. 우노와 마수가 각기 네다섯 명을 쓰러트릴 때 조윤은 벌써 십여 명 가까이 베어 넘기고 있었다. 한데 눈에 초점이 없었다.
‘설마, 제정신이 아닌 건가?’
그랬다. 검을 휘두르더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괜찮았다. 하지만 일단 누군가를 죽이게 되면 그다음부터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대막에서 마적들을 죽인 이후로 생긴 후유증이었으나 조윤은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따앙!
“큭!”
우노는 조윤이 갑자기 공격해 오자 크게 놀랐다. 만약 제때 막아내지 못했더라면 그대로 팔이 잘려 나갔을 것이다.
“뭐야? 너!”
“조심해. 그 녀석, 제정신이 아니다.”
“뭐?”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저리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방금 받은 공격도 그랬다. 조윤의 검은 빠르고 강맹하며 정확했다. 도저히 제정신이 아니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쉭!
조윤이 재차 공격을 가하자 우노가 훌쩍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조윤이 땅을 한 번 박차자 다시 간격이 좁혀졌다.
“정신 차려!”
따앙!
두 개의 칼이 교차하면서 백아를 때렸다. 그러자 조윤이 뒤로 확 날아갔다가 땅으로 내려섰다. 하지만 힘을 완전히 해소시키지 못해 발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 와중에 조윤은 몸을 빙글 돌려서 마수를 공격했다.
“이 녀석이.”
조윤의 백아와 마수의 쌍검이 연속으로 부딪쳤다. 뒤따라온 우노가 거기에 합세했다. 다섯 개의 칼이 어지럽게 얽히면서 세 사람을 따라 움직였다.
우노와 마수는 조윤을 다치지 않게 제압하려고 했다. 그러나 의외로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 무리였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다리나 팔을 베려고 했다.
우노가 자세를 바짝 낮추면서 조윤의 다리를 노렸다. 마수는 두 개의 칼을 회전시키면서 조윤의 팔을 노렸다.
적어도 다리나 팔 중 하나는 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데 조윤이 제자리에서 공중제비를 돌며 백아를 휘둘렀다. 비연팔식의 마지막 비기 비연이었다.
비록 검기도 쓰지 못했고, 아직 익숙하지도 않았지만 위력만큼은 굉장했다. 우노와 마수의 칼이 사정없이 튕겨 나가면서 두 사람 다 가슴이 활짝 열렸다. 어느 쪽이든 조윤이 달려들어 검을 휘두른다면 크게 베이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헉!”
“비켜!”
우노와 마수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화설린이 끼어들어 조윤의 목을 움켜잡고 밀어붙였다. 그러다 그대로 땅에 내리꽂자 등에서부터 엄청난 충격이 몰려왔다.
쾅!
“컥!”
잠시 멍하니 있던 조윤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러자 여전히 목을 움켜잡고 있던 화설린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한 번만 더 그랬다가는 죽여 버릴 거야.”
“네? 네.”
뭐가 뭔지는 몰랐으나 화설린의 얼굴이 너무나 가까웠다. 조윤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대답을 했다.
화설린이 그제야 손을 떼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윤도 일어나 앉았다.
“어?”
어리둥절해하던 조윤은 자신의 손에 들린 백아를 봤다. 피가 묻어 있었다. 찝찝한 느낌에 손으로 얼굴을 문대는데 거기서도 피가 묻어 나왔다.
조윤은 가만히 손에 묻은 피를 보다가 주위를 둘러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자들이 전부 쓰러져 있었다. 우노와 마수가 한 짓 같지가 않았다.
“제가 한 건가요?”
“그래. 우리까지 공격했었다. 그래서 아가씨가 나선 거고.”
“죄송해요.”
“어떻게 된 거냐?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던데.”
우노가 묻는 말에 조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당황학을 봤다. 하지만 그는 피곤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조윤이 그리된 것은 그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 * *
“그러니까 이번이 두 번째라고?”
“네.”
마강이 있는 곳으로 가는 동안 조윤은 거듭 사과하며 지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우노가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 나도 처음에 사람을 죽였을 때는 약간 충격이었지. 뭐, 금방 또 죽이는 바람에 바로 잊었지만.”
“나도 그랬던 것 같아. 정신없이 죽이고 나니까 주위에 온통 시체뿐이었어. 한동안 그 사람들이 꿈에 나와서 무서웠었다.”
마수가 동감하며 말하자 조윤이 물었다.
“그게 몇 살 때였어요?”
“열두 살인가? 그랬던 거 같다.”
“열두 살이요?”
“그래. 우노는 아마 열 살 때가 처음이었을걸?”
“아홉 살이었어.”
“아, 맞다. 아홉 살. 사부님 명령으로 도적질을 하는 놈들을 싹 쓸어버렸었지.”
조윤은 괜한 이야기를 꺼냈다는 후회가 들었다.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이후로도 몇 명을 죽이고, 어떻게 죽였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자 우노가 수레를 내려놓고 동굴로 향했다.
“사부님.”
“무슨 일이냐?”
“사부님이 늘 말하던 당황학이라는 사람이 찾아왔어요.”
“당황학이 왔다고?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라.”
“네.”
조윤이 당황학을 부축하는 걸 우노가 도왔다. 동굴 안은 모두가 들어가도 될 정도로 넓었다. 한쪽에는 살림살이가 놓여 있고, 벽에는 동물들의 가죽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피워져 있는 모닥불 앞에 오른팔과 왼쪽 다리가 없는 노인이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북해최고수라고 불리던 마강이었다.
그는 조윤과 우노의 부축을 받아서 들어오는 당황학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