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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48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6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48화

제9장 쌍검비격 (1)

 

 

간밤에 눈이 펑펑 내리더니 아침에는 강이 꽁꽁 얼었다. 이에 객잔에 있던 사람들이 짐을 챙기며 떠날 준비를 했다.

 

조윤도 그들과 함께 움직이기 위해 짐을 챙기고 수레의 상태를 점검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까지 파묻힐 정도로 눈이 많이 와서 수레가 잘 굴러갈지 걱정이었다.

 

“날씨가 아직 추워요.”

 

조윤이 당황학을 수레에 태우고 옷을 여며주며 말했다. 그렇잖아도 갈수록 건강이 악화되고 있어서 이런 날씨는 굉장히 안 좋았다.

 

“괜찮다.”

 

“빨리 일을 마치고 당문으로 가요.”

 

“그래. 그러자꾸나.”

 

“이거 들고 계세요.”

 

조윤이 천으로 돌돌 만 돌멩이를 내밀었다. 돌멩이를 불에 적당히 달군 후에 천으로 말아놓으면 온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일종의 손난로인 셈이다. 그래도 날씨가 추워서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고맙다.”

 

“갈게요.”

 

조윤이 앞으로 가서 수레를 잡았다. 그러자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던 우노가 와서 옆으로 밀어냈다.

 

“내가 하마.”

 

“아니요. 괜찮아요.”

 

“내가 괜찮지 않다.”

 

우노가 그렇게 말하면서 수레를 끌었다. 조윤은 그에게만 맡길 수가 없어서 뒤에서 밀려고 했다. 그러자 마수가 다가와 말렸다.

 

“그럴 필요 없어. 저 녀석은 남아도는 게 힘이거든.”

 

“하지만…….”

 

“너는 나랑 이야기나 좀 하자.”

 

“뭐를요?”

 

“어제 아가씨가 신궁으로 가자고 했을 때 어차피 그리로 갈 거라고 했었지?”

 

“네.”

 

“북해신궁에는 왜 가는 거냐?”

 

“정확히는 북해신궁에 가는 게 아니라 마강이라는 사람을 찾아가는 거예요.”

 

마강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마수의 눈초리가 살짝 변하면서 조윤을 경계했다.

 

“그 사람을 왜 찾는 거냐?”

 

“어제 듣기로는 염장인가 하는 사람한테 쫓겨났다고 하던데 혹시 아는 사람인가요?”

 

“그래. 아주 잘 알지. 그 사람을 어떻게 아는 거냐?”

 

“제가 아니라 사부님이 아는 사람이라서 찾아가는 중이에요.”

 

“가만, 중원에서 왔다고 했지?”

 

“네.”

 

“그럼 네 사부의 성이 혹시 당 씨냐?”

 

“네. 맞아요. 당문 사람이세요. 한때 무영비검이라고 불렸대요.”

 

“아가씨, 들으셨습니까?”

 

마수가 놀란 표정으로 화설린을 봤다. 그러자 화설린이 당황학을 힐끗 쳐다보며 물었다.

 

“당신이 무영비검이라는 것을 어떻게 믿죠?”

 

“믿지 않아도 된다. 마강을 만나면 알게 될 테니까.”

 

“나는 당신을 그분에게 안내할 생각이 없어요.”

 

“그 역시도 필요 없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면 그가 찾아올 게다.”

 

“자신감이 넘치는군요.”

 

“자신감이 아니라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화설린은 마강이 늘 말하던 그 사람이 당황학이라는 것을 알았다. 믿을 만한 근거는 없었으나 느낌이 그랬다. 이에 우노를 향해 소리쳤다.

 

“우노, 방향을 돌려. 마 숙부님이 있는 곳으로 간다.”

 

“네, 알겠습니다.”

 

우노는 강을 건너지 않고 하류로 향했다. 강이 꽁꽁 얼어서 굉장히 미끄러웠으나 능숙하게 수레를 끌었다. 화설린과 마수도 마치 평지를 걷듯이 움직였다.

 

하지만 조윤은 몇 번이나 휘청거리다가 심지어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걸 보고 마수가 조언을 해줬다.

 

“발을 디디려고 하지 말고 미끄러트려. 그럼 넘어지지 않을 거다.”

 

그의 말대로 조윤은 발을 죽죽 밀면서 걸었다. 그러자 중심을 잡기가 훨씬 쉬웠다.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무공이 뛰어나도 빙판에서는 고생을 하지. 그래서 그들을 상대할 때는 이곳에서 많이 싸운단다.”

 

“헤에. 그렇군요. 지리적인 이점을 그렇게도 이용하는군요.”

 

“중원인들, 그중에서도 스스로 정파라고 하는 사람들은 체면을 중요시해서 항상 정정당당히 싸우려는 경향이 있거든. 그에 비해 북해에서는 이기는 사람이 정당한 거다.”

 

“이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건가요?”

 

“맞다. 죽으면 다 소용없으니까.”

 

그런 생각은 주로 흑도방파들이나 사파에서 한다. 그들은 체면이고 뭐고 없이 이익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한다. 그러나 조윤은 아직까지 그런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정파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마수가 하는 말이 그다지 와 닿지가 않았다.

 

한 시진 정도를 더 가자 마을이 나왔다. 그리 큰 마을은 아니었으나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로에는 상인들이 나와 있었고, 음식점이나 술집, 객잔도 성황이었다. 이곳에서 강을 건너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

 

“네.”

 

우노가 커다란 객잔으로 수레를 끌고 가자 다 함께 그리로 움직였다.

 

“어? 저거…….”

 

조윤이 뭐를 봤는지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벌건 대낮에 사내들 몇 명이 여자들을 희롱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말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해코지를 당할까 두려워서 피하기에 바빴고, 사내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때 사내들이 아예 여자 한 명을 강제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여자가 울고불고 반항했으나 소용없었다. 사내들이 양쪽에서 팔을 하나씩 잡고 가니 발이 질질 끌리며 딸려 갔다.

 

“가서 말려야겠어요.”

 

“그만둬.”

 

“예?”

 

조윤은 마수를 봤다. 딱 봐도 납치를 당하고 있건만 모른 척하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협객은 아니었으나 저런 걸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여자가 납치를 당하는데 어떻게 모른 척해요?”

 

“그건…….”

 

말을 하려던 마수가 입을 닫았다. 때마침 웬 건장한 사내가 그들을 단숨에 때려눕혔기 때문이다. 그는 두툼한 외투에 털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딱 봐도 이곳 사람이 아니었다.

 

“이 자식!”

 

“죽어!”

 

그에게 당한 사내들의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러나 사내의 무공은 보통이 아니었다. 오는 족족 그의 주먹에 얻어맞고 대자로 뻗었다. 개중에는 팔이 부러지고, 머리를 기둥에 밭쳐서 쓰러지는 자들도 있었다.

 

“이쪽이다!”

 

“빨리 와!”

 

“망할! 죽어!”

 

사내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골목에서 달려 나왔다. 객잔에서도 대여섯 명이 나왔고, 술집에서도 몇 명이 뛰쳐나왔다. 그 수가 제법 많았으나 사내는 이리저리 도망을 다니면서 서너 명씩 계속 쓰러트렸다.

 

그러다 누군가가 도를 뽑아 들자 사내도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서 휘둘렀다. 그때부터는 피가 튀고 팔다리가 잘려 나가면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우르르 몰려들던 사내들은 그를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모두 도망쳤다. 그러자 그가 칼을 허공에 한 번 휘둘러 피를 털어낸 후에 칼집에 넣었다.

 

그는 그때까지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여자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라는 뜻이었다. 여자는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후다닥 가버렸다.

 

하지만 사내는 개의치 않고 얼굴에 미소를 지으면서 한쪽에 던져 놓았던 짐을 어깨에 멨다.

 

“협객이네요.”

 

조윤이 중얼거리자 마수가 긴장을 풀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뭐가요?”

 

마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가 끝나지 않았다는 건지 의아해하며 조윤이 다시 그쪽을 보는 순간, 지붕 위에 있던 자들이 그물을 던졌다.

 

그가 칼을 뽑아서 그물을 잘라내려는데 이번에는 멀리서 활을 든 자들이 화살을 날렸다. 그물 때문에 움직임이 여의치 않은 상태라 날아오는 화살을 전부 쳐내지 못하고 어깨와 다리에 맞았다. 그때를 노려 골목에서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니 독을 확 뿌렸다.

 

“끄아아악!”

 

그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다가 쓰러지자 사내들이 달려들어 칼로 마구 내려쳤다.

 

멀리서 그걸 지켜보고 있던 조윤은 멍하니 할 말을 잊었다. 무공만 따지자면 무뢰한들은 저 사내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몇 명이 덤비든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 그물을 던지고, 화살을 쏘고, 독을 뿌려서 죽였다. 조윤은 아까 마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북해에서는 살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한다고 했었다. 체면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지금 보니 정말 그랬다. 어떻게 보면 야비하고 더러운 방법이었지만 생사가 오가는 와중에 이것저것 가릴 이유가 없었다.

 

“너무해요.”

 

“그가 이곳을 너무 몰랐던 거다.”

 

“그는 좋은 일을 했어요.”

 

“맞다.”

 

“그런데 왜 저렇게 죽어야 하죠?”

 

“약하니까.”

 

조윤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약하니까 죽는다니,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건 아니었다. 화가 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약하니까 죽는다면 저들에게도 똑같이 해주겠어요.”

 

조윤이 그렇게 말하면서 수레에 놔둔 백아를 꺼내려고 했다. 그러자 당황학이 백아를 집으려는 손을 잡았다.

 

“일단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저들 모두를 죽이고, 나중에 가족이나 친구가 복수를 하러 오면 그들 역시 죽여야 한다. 그럴 각오가 되어 있느냐?”

 

없었다. 조윤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화가 나서 검을 휘두르려는 것뿐이다.

 

“검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네가 죽는 것은 제쳐두더라도 누구를 죽이려면 그 정도의 각오 없이는 안 된다.”

 

“저는…….”

 

조윤은 말을 하다 말고 백아를 봤다. 평소와 달리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야 진정한 검의 무게를 깨달은 것 같구나. 내가 굳이 너를 이곳까지 데리고 온 것도 그래서다. 그 무게를 알고도 검을 휘두를 수 있다면, 그건 네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떠냐, 협(俠)에 목숨을 걸 테냐? 네 모든 것을 걸고, 상대가 누구든 검을 휘두를 수 있겠느냐?”

 

당황학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조윤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떴을 때는 백아를 들어서 허리에 찼다. 나름대로 각오가 섰다는 뜻이었다.

 

“언젠가 정절사태님이 그랬었죠. 영웅은 백 명을 죽여 만 명을 살린다고요.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 그런 사람이라면 하겠어요.”

 

조윤이 하는 말을 듣고 당황학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가르칠 것은 다 가르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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