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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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47화
제8장 화설린 (3)
그들이 객잔 안으로 들어서자 그때까지 시끌시끌하던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만큼 세 사람의 존재감이 컸으나 조윤은 상관하지 않고 진맥을 한 사내를 보며 말했다.
“기가 좀 허하기는 하지만 건강하니까 문제없어요. 빨리 좋은 처자 만나서 인연만 맺으면 돼요.”
“하하. 그런 말 말아라. 그 녀석은 벌써 혼인을 해서 애가 둘이나 있단다.”
“하하하하.”
일행인 노인의 말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갑자기 들어온 세 사람 때문에 경직된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렸다.
이후로도 조윤은 마지막 한 명까지 진맥을 했고, 사람들은 고마워하며 먹을 것을 시켜주거나 약간의 돈을 주기도 했다. 괜찮다고 거절을 해도 막무가내로 안겨주니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끝났네요.”
조윤이 그렇게 말하면서 누군가가 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진맥을 하면서 틈틈이 달인 약을 당황학에게 건넸다. 그걸 단번에 쭉 들이켠 당황학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남았구나.”
“예?”
조윤이 의아해하고 있는데 귓가를 간질이는 고운 미성이 들려왔다.
“의술을 잘하나 보네.”
누군가 싶어 돌아보니 아까 죽립을 쓰고 들어왔던 여자였다. 아까는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보니 굉장한 미인이었다.
갸름한 얼굴에 눈은 크고, 코는 오뚝하며, 입술은 작고 붉었다. 거기다 키가 크고 몸매가 좋아서 끝단에 털이 북슬북슬한 옷이 아주 잘 어울렸다.
그녀 옆에는 역시나 잘생긴 외모의 젊은 사내와 덩치가 거대한 사내가 딱 붙어 있었다. 은근히 주위를 경계하는 것으로 봐서 호위무사인 것 같았다.
그녀가 말을 걸자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조윤에게 향해 있었다.
“약간은 할 줄 알아요.”
“그럼 나도 봐줄래?”
“손을 주세요.”
조윤의 말에 잘생긴 사내와 덩치 큰 사내의 인상이 살짝 굳었다. 혹여 나쁜 생각을 품고 기운을 흘려 넣는다면 여자가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상관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조윤이 그 손을 잡고 가만히 맥을 잡았다. 그러자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이는 인위적으로 생긴 것이었다.
“무공을 익혔나요?”
“그래.”
“한빙지기(寒氷之氣)를 익힌 것 같은데 맞나요?”
“맞아.”
여자가 순순히 인정하자 주위에서 그걸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혹시 신궁지화(神宮之花)라고 불리시는 화설린 님이십니까?”
누군가가 묻자 여자가 그를 잠시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신궁의 꽃, 또는 북해의 꽃이라고 불리는 그녀는 북해신궁의 궁주가 아끼는 딸이었다.
“맞아요.”
“오…….”
순간 여기저기에서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 * *
조윤은 그들이 왜 그러는지 몰라 의아했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보니까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것 같은데, 한빙지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효과를 보고 있으나 나중에는 오히려 몸을 망치게 될 거예요. 한빙지기는 한쪽에 치우친 기운이라서 오래 연공하면 좋지 않아요. 최근 잠이 잘 안 오거나 달거리가 불규칙하지 않았나요?”
달거리란 월경을 뜻하는 말이었다. 여자들이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보통은 이렇게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화설린은 전혀 개의치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맞아. 잠이 안 온 지는 꽤 됐어. 달거리도 일정치 않고.”
“그게 몸의 균형이 깨져서 생기는 증상이에요. 거기서 조금 더 연공하면 성격도 변할 거예요.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그럴 거예요.”
화설린의 얼굴에 처음으로 표정이 떠올랐다. 아직 성년도 되지 않아 보이는 아이가 사람들을 진맥하고 있기에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었다.
이곳은 여행객이나 장사치들이 많이 머무는 객잔이었다. 그렇게 타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어디든 아픈 곳이 한두 군데쯤은 다 있다. 그래서 어설픈 실력으로 병을 봐주고 돈을 뜯어내는 돌팔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돈을 받지 않고 오히려 가지고 있는 약재까지 주면서 성심성의껏 봐주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는 생각으로 진맥을 받은 것인데, 생각보다 더 뛰어났다.
조윤의 말대로 화설린은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서 영약을 많이 복용했고, 오라비들도 익히지 못한 빙백신공(氷白神功)을 아버지한테 전수받았다. 그 때문에 건강하다 못해 힘이 넘쳤으나 언젠가부터 잠이 잘 안 오고, 이유 없이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 한데 단지 맥만 한 번 잡아보고 그걸 정확히 알아낸 것이다.
“치료법은 있는 거야?”
“가장 좋은 건 한빙지기를 더 이상 연공하지 않는 거예요.”
“그건 안 돼. 무공을 포기할 순 없어.”
“그렇겠죠. 아까 들어보니까 북해신궁의 아가씨라던데, 맞죠?”
“맞아.”
“그럼 양기를 보충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하지만 음기가 너무 강해서 문제예요. 웬만한 약으로는 어림도 없을 테고, 그렇다고 열양지기(熱陽之氣)의 무공을 익힐 수도 없고. 음…….”
잠시 방법을 생각하던 조윤이 화설린을 슬쩍 곁눈질했다. 그러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방법이 있기는 한데.”
“뭔데?”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열일곱 살이야.”
“그럼 혼인을 하세요.”
“뭐?”
“혼인을 해서 남자와 섹스, 아니 그러니까 교접? 그것도 아니고, 아무튼 남자와 잠자리를 하면…….”
갑작스럽게 아까 달거리 이야기를 했을 때보다 더 외설스러운 말이 흘러나오자 화설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자 그녀의 옆에 있던 우락부락한 덩치의 사내가 주먹으로 바닥을 내려치며 화를 냈다.
쾅!
“어린놈이 누구에게 수작질이냐?”
“수작질 아닌데요. 저는 그저 치료법을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지금 아가씨의 증세는 음기가 너무 강해서 몸과 마음의 균형이 깨져서 생기는 거예요. 그걸 맞추려면 양기가 필요한데, 한빙지기가 워낙 강해서 웬만한 영약으로도 어떻게 하지 못해요. 어떻게 구한다고 해도 문제죠. 상성이 맞는다고 해서 비율까지 맞지는 않거든요. 양기가 너무 적으면 효과가 없을 테고, 그렇다고 너무 강하면 아가씨가 지금까지 쌓은 한빙지기가 사라질 겁니다. 그래서 혼인 이야기를 한 거예요. 남자가 가지고 있는 양기는 선천적인 거라 부작용이 전혀 없으면서도 강해요. 그로 인해 생명이 잉태될 정도잖아요. 물론 처음에는 그 효과가 미비하겠지만 계속 관계를 가지다 보면 곧 균형이 잡힐 거예요.”
조윤이 이치에 맞게 설명을 하자 덩치 큰 사내가 뒷머리를 긁으며 멋쩍어했다. 그의 이름은 우노였고, 함께 있는 잘생긴 사내는 마수였다. 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오로지 화설린의 호위를 위해서만 키워졌다. 그 때문에 친오라비들보다도 그녀를 위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했어야지.”
“어차피 다 설명을 드리려고 했어요. 주의해야 할 건 같은 한빙지기를 익힌 사람은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럴 경우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어요. 꼭 한빙지기가 아니더라도 음유(陰柔)한 내공을 연공한 사람은 무조건 안 돼요.”
“그럼 열양지기를 익힌 사람이라야 하는 거냐?”
“아니요. 그런 사람도 안 돼요. 기운이 상반되기 때문에 아가씨의 한빙지기가 깎여 나갈 수도 있어요.”
“그럼 어쩌라는 거냐?”
우노가 따지듯이 물었다.
“그 두 가지 경우만 아니면 돼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은 피하는 게 좋고요. 아가씨의 음기를 버티지 못할 수도 있어요. 음, 굳이 추천을 하자면 자연의 기운을 품은 사람이 좋겠네요.”
“그럼 도사들과 혼인을 하란 말이냐?”
“하하.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지는 마시고요.”
“그만해요, 우노.”
“하지만 아가씨, 이 녀석의 의술이 의외로 뛰어난 것 같으니까 이참에 자세히 알아둬야죠.”
“그만하라니까.”
“그러지 마시고 아예 데려다가…….”
“우노!”
화설린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우노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마수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우노의 생각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혹시 또 압니까? 저 어린놈을 데려가면 쓸데가 많을 것 같군요.”
화설린은 마수가 뭐를 생각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렇잖아도 그 생각을 하던 참이었으나 확신이 들지 않아 망설이고 있었다. 한데 마수가 그 생각에 쐐기를 박았다.
“또 압니까? 기적을 일으킬지.”
조윤은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화설린이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나와 함께 신궁으로 가자.”
“예?”
조윤이 놀라서 화설린을 봤다. 그러자 화설린이 생긋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