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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44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4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44화

제7장 죄의식 (2)

 

 

“그럼 됐어요.”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게 되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고민을 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때 스스로 답을 찾으면 훌훌 털어버릴 수가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생 마음의 짐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너는 어떠냐? 스스로 답을 찾았느냐?”

 

“저는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배웠어요. 하지만 이번 기회로 그게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살기 위해서 죽여야 한다면 죽여야 하지.”

 

“말로 들었을 때와 그걸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의 차이가 너무 커요.”

 

“뭐든 그런 법이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모르지.”

 

당황학은 조윤이 심마(心魔)를 이겨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에 앞으로 한층 더 성숙해진 모습을 보일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흡족했다.

 

“오늘까지만 쉴게요.”

 

“상관없다. 며칠이든 네가 쉬고 싶은 만큼 쉬어라.”

 

“아니요. 조금 힘들어도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알겠다. 그럼 내일 떠나자꾸나.”

 

“네. 이제 어디로 가요?”

 

“서장으로 간다.”

 

“거기에서도 비무를 하나요?”

 

“그래야지. 서장의 무공은 지금껏 겪어본 것과는 많이 다를 게다.”

 

“기대가 돼요.”

 

“이만 쉬어라. 내일 떠나려면 잠을 푹 자두는 것이 좋다.”

 

“네.”

 

당황학이 방을 나가자 조윤은 눈을 감았다. 그러나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 * *

 

서장까지는 꽤 긴 여정이었다. 조윤의 나이가 어느덧 열세 살이 되었고, 포탈랍궁(布達拉宮)이 있는 랍살(拉薩)에 도착했을 때는 반년 가까이 더 시간이 흐른 후였다.

 

가는 동안 조윤은 기라독해를 몇 번이나 읽으면서 공부를 하는 한편, 아픈 사람들이 있으면 먼저 다가가 치료해줬다. 또한 현대 의학을 어떻게 적용할지 고민하며 의료 기구를 만들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당황학은 조윤이 뭐를 하든 내버려뒀다.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여전히 죄의식을 가지고 그런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해진다면 하도록 놔두는 것이 좋았다.

 

뭘 하든 간에 비연팔식을 터득하는 데 방해만 되지 않으면 상관없었다. 실제로 조윤은 단 하루도 무공 수련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이에 세 번째 비기인 비연폭도 동시에 세 번 검을 휘두르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제 남은 건 마지막 남은 비기뿐이었다. 그러나 당황학은 아직 그걸 완성하지 못했다. 한데 최근에는 몸 상태도 좋지가 않았다. 지금 걱정해야 할 건 조윤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었다.

 

“후우…… 아직도 더 가야 하나요?”

 

“그래. 저기 저 산을 올라야 한다.”

 

당황학이 가리킨 것은 마부르산이었다. 포탈랍궁은 마부르산의 정상에 위치해 있었다.

 

“괜찮으시겠어요? 오늘은 여기에서 쉬고 내일 올라가는 것이 어떨까요?”

 

잔기침을 하는 당황학을 보며 조윤이 물었다. 당황학은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몇 년씩이나 타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공이 고강하다고 해서 병이 안 드는 것은 아니었다. 또한 나이가 드는 것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괜찮다. 포탈랍궁에 도착해서 쉬어도 되니 계속 가자꾸나.”

 

“그럼 조금 천천히 가요.”

 

“그렇게 하자.”

 

산을 한참 오르자 멀리 포탈랍궁이 보였다. 거대한 성벽 뒤로 여러 개의 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조윤은 그리로 점점 다가갈수록 감탄이 나왔다. 이 높은 곳에 어떻게 저런 거대한 궁을 지었는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탈랍궁의 정문에 도착하자 당황학이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그러자 젊은 라마승이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안으로 안내했다.

 

“오늘은 시간이 늦어서 탐라 님은 뵐 수가 없습니다. 피곤하실 테니 푹 쉬시면 내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소.”

 

잠자리가 썩 편하지는 않았으나 그동안 워낙에 고생을 많이 해서 이 정도만 해도 좋았다. 밤이 깊어 한창 꿀잠을 자고 있는데 당황학이 기침하는 소리가 났다.

 

조윤은 안 떠지는 눈을 억지로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곤해서 몸이 무거웠으나 당황학에게 다가가 상태를 봤다.

 

“잠을 깨게 했구나.”

 

“괜찮아요. 잠시 진맥을 해볼게요.”

 

조윤의 말에 당황학은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이에 가만히 맥을 짚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당황학은 내공이 정순한 고수였다. 한데 지금은 무공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보다 맥이 좋지 않았다.

 

“약을 드시고 푹 쉬셔야 해요.”

 

“그리 안 좋은 게냐?”

 

“네. 그동안 계속 무리를 하셨어요.”

 

“괜찮다, 이 정도는. 정 안 좋으면 네가 치료를 하면 되지 않느냐? 천하의 명의가 옆에 있는데 뭐가 두렵겠느냐?”

 

당황학이 웃으면서 하는 말에 조윤도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도 생명을 연장시킬 수는 없었다.

 

다음 날, 젊은 라마승이 찾아와서 탐라에게 안내를 했다. 탐라는 서장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선리삼승(仙履三僧) 중 한 명이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만나기가 쉽지 않으나 오늘은 당황학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모두 물렸다.

 

“어서 오시게.”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바위에 앉아 있던 노승이 인자하게 웃으면서 당황학을 반겼다. 그가 바로 탐라였다.

 

“오랜만입니다.”

 

“그런가? 십 년도 지나서 보면 찰나에 불과한 법일세. 옆에 있는 아이는 누군가? 손자인가?”

 

“제자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단목조윤이라고 합니다.”

 

“나는 탐라라고 한다. 눈빛이 맑은 것을 보니 성정이 아주 바르겠구나. 당 시주가 아주 좋은 제자를 뒀군.”

 

“과찬입니다.”

 

“햇살이 좋군.”

 

“그렇군요.”

 

조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난데없이 탐라가 말을 돌리자 어색하니 대화가 끊겼다. 당확학은 다시 말을 걸려고 했으나 탐라가 지그시 눈을 감고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으니 선뜻 그러지를 못했다. 그러다 어렵게 다시 입을 뗐다.

 

“안 물어보십니까?”

 

“뭐를 말인가?”

 

“제가 왜 찾아왔는지 묻지 않으시는군요.”

 

“왜 찾아왔나?”

 

그제야 용건을 묻자 당황학은 약간 어이가 없었다. 이래서 수행이 깊은 노승과의 대화는 달갑지가 않았다. 세상사를 한 걸음 물러나서 관망하는 태도 때문에 뭐든 일반적인 상식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제자에게 서장의 무공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게나.”

 

“또래들과 비무를 하게 했으면 합니다.”

 

“좋은 생각이군.”

 

“도움을 주십시오.”

 

“흠.”

 

당황학이 부탁을 하자 탐라가 조윤을 빤히 쳐다보다가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조윤은 왜 그러나 싶어서 다가갔다. 그러자 탐라가 손을 슥 내밀더니 이마를 한 대 툭 쳤다.

 

따악!

 

“으아아악!”

 

아팠다. 너무 아파서 조윤은 양손으로 이마를 움켜잡고 눈물까지 글썽였다. 세상에, 손가락으로 가볍게 건드린 것뿐인데 뭔 위력이 이리 강하단 말인가?

 

“그런 것도 피하지 못하면 비무를 해봤자 의미가 없다.”

 

“때리려는 줄 몰랐어요.”

 

“그랬더냐? 그럼 미안하게 되었구나. 이리 와보아라. 어깨에 뭐가 묻었다.”

 

“네? 뭐가요?”

 

조윤이 아픈 것을 참으면서 자신의 어깨를 봤다. 그러자 탐라가 그걸 털어줄 것처럼 손을 내밀다가 다시 딱밤을 때렸다.

 

“으악!”

 

이번에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다. 조윤은 얼결에 두 번이나 맞자 화가 났다. 이에 탐라를 노려보자 어느새 와 있던 손가락이 또 한 번 튕겨졌다.

 

따악!

 

“크아아악!”

 

같은 곳을 세 번이나 맞으니까 어찌나 아프던지 머리를 잡고 그 자리에서 뒹굴었다.

 

“고얀 놈, 감히 누구에게 그리 눈을 치켜뜨는 게냐?”

 

“크윽, 왜 때려요?”

 

조윤이 억울함에 저도 모르게 소리치자 탐라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 실력만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릴 줄도 모르는구나.”

 

“아직 어립니다.”

 

보다 못한 당황학이 끼어들었다. 그는 지금 탐라가 조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나 그 방법이 아까의 대화와 마찬가지로 선문답을 하는 식이라 어린 조윤이 이해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되었다.

 

“어리다고 해서 검이 피해 가는 건 아니지. 아이야, 이건 시험이다. 방금 내가 너에게 한 행동의 의미를 알겠느냐? 만약 그렇다면 네 수행에 도움을 주마. 하나 모른다면 아무리 당 시주의 부탁이라고 해도 나는 모른 척할 것이니라.”

 

조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탐라를 봤다. 그러다 당황학을 보자 그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탐라는 그저 딱밤을 세 번 때렸을 뿐이었다. 첫 번째는 방심하고 있다가 얼결에 맞았고, 두 번째는 속아서 맞았다. 그리고 세 번째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맞았다.

 

조윤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정확히 뭔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제게 세 번의 기회를 주십시오.”

 

“네 목숨이 세 개더냐?”

 

“목숨 이야기가 왜 나옵니까? 단지 세 번 맞았으니까 세 번의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허, 녀석, 내게 맞은 것이 어지간히 억울했던 모양이로군. 좋다. 세 번은 안 되고 두 번까지는 기회를 주마.”

 

아예 안 된다는 것보다는 나았다. 조윤은 거기에 만족하며 생각난 것을 말했다.

 

“스님이 저에게 알려주려는 것은 상대가 누구든 방심하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틀렸다. 한 번 더 기회를 준다고 했으니 잘 생각해보고 대답을 하거라.”

 

“그럼 혹시 자연스러움에 대해 일깨워주시려고 했던 것입니까?”

 

“왜 그런 생각을 했더냐?”

 

“첫 번째는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맞았고, 두 번째는 속아서 맞았습니다. 세 번째는 또 때리지 않을 거라 여기고 있다가 맞았습니다. 만약 스님이 적이었다면 당연히 경계를 했을 테고, 그럼 그렇게 맞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대가 누구든 방심하지 말라는 뜻이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스님을 적이라 여기고 경계를 했어도 맞았을 것 같더군요.”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

 

“스님이 제 이마를 때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옳거니. 제대로 짚어냈구나. 많은 사람들이 홀로 연무를 할 때는 자연스러워도 상대가 있으면 그러지를 못한다. 생사대적을 앞에 뒀을 때는 더욱이 그렇지. 그래서 연습은 실전처럼 하고 실전은 연습처럼 하라고 누누이 일러도 그렇게 하지를 못하지. 상대가 누구든 검을 뽑았으면 절대로 마음의 평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 백 명이 덤비면 백 명을 죽이고, 천 명이 덤비면 천 명을 죽인다. 하나 내 마음은 결국 한 명을 죽인 것과 같다. 이것을 부동심이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네. 늘 한결같아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총기가 넘치는구나. 당 시주에게 맡겨놓기에는 아깝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조윤이 칭찬을 듣자 당황학은 기분이 좋았다. 그 모습을 보고 탐라도 미소를 지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군.”

 

“제가 말입니까?”

 

“예전에 봤을 때는 잘 벼른 한 자루의 검과 같았지. 다가가면 베일 것 같아서 옆에 있기가 꺼려졌었네. 그러나 지금은 부드럽군. 여전히 검을 드러내고 있으나 상대를 죽이려는 예기 대신에 포용하려는 마음이 보이네. 깨달음을 얻은 겐가?”

 

“아닙니다.”

 

“하면 곧 얻겠군.”

 

“이 나이에 또 깨달음을 얻어 무엇 하겠습니까?”

 

“글쎄. 그건 자네가 알고 있겠지. 저 아이는 며칠만 내게 맡기게. 비무나 시키고 있기에는 아깝군. 그동안 자네도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갖고. 어떤가?”

 

“선사님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당황학의 대답을 듣고 탐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윤을 봤다.

 

“따라오너라.”

 

“네.”

 

탐라는 천천히 걸으면서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물었다. 이에 조윤은 최대한 간략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탐라가 안타깝다는 듯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일을 겪었구나. 어차피 지난 일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거라.”

 

“네.”

 

대답은 쉽게 했으나 조윤의 마음은 아직도 그렇지 않았다. 당수백의 말에 따라 가문의 복수를 한다는 이유로 당황학에게 무공을 배우다가 여기까지 왔고, 온갖 고생을 하며 사람까지 죽였으나 아직도 자신이 왜 이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정수현으로 있다가 조윤으로 깨어났을 때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다잡고 조윤으로 살아가고자 했음에도 실은 그동안 자신을 속이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조심하여라.”

 

탐라는 포탈랍궁에서 가장 높은 탑의 지붕으로 조윤을 데리고 갔다. 밑을 슬쩍 보니 높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발을 헛디뎌서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끝장이었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자 탐라가 낮게 혀를 찼다.

 

“쯧쯧. 아까 얻은 것은 반쪽짜리였구나.”

 

“예?”

 

“됐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네.”

 

조윤은 조심조심 탐라가 있는 곳으로 갔다. 거기는 지붕 끝이라서 한 발자국만 잘못 내디뎌도 밑으로 떨어진다.

 

“왜 여기로 온 겁니까?”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여기에 있다가 오너라.”

 

“네?”

 

“만약 그 전에 여기에서 내려오면 다리를 부러뜨려서 여기에 던져 놓을 테다.”

 

탐라는 듣기에 끔찍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아찔한 곳에 홀로 남은 조윤은 뭐를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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