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43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43화
제7장 죄의식 (1)
대막의 가장 큰 세력은 북십자성(北十字城)이었다. 한때 대막에서 가장 강했던 열 명이 세력을 일궜고, 그것이 지금의 북십자성이 되었다. 이에 대막에서는 그들과 견줄 수 있는 세력이 없었다.
당황학은 그 열 명 중, 한 명의 후손과 친분이 있었다. 적룡대도(赤龍大刀) 칼힌이라고 불리는 그는 별호처럼 거대한 대도를 마치 작대기 쓰듯이 다뤘다.
조윤은 그곳에서 칼힌이 불러온 아이들과 비무를 했다. 모두 다섯 명이었고, 재능이 뛰어나 북십자성에서 촉망받는 아이들이었다.
비무는 상당히 거칠었다. 오면서 붉은 매단의 마적들과 상단의 호위 무사들이 하는 비무를 보지 않았더라면 크게 당황했을 것이다.
북십자성의 무공 역시 붉은 매단의 마적들이 보였던 무공처럼 실전적이고 험악했다. 자신의 팔이 부러져도 상대의 목을 따면 된다는 식이라서, 조윤은 어렵게 승기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뒤로 물러나야 했다.
“여리군. 저 아이는 용사가 되기에는 마음이 약하다.”
비무를 지켜보던 칼힌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건 당황학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굳이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이다.
“방법이 있겠나?”
“물론이지. 북십자성에도 저런 아이들이 있었지만 사람을 몇 명 죽이더니 달라졌다. 그래서 나는 마적들을 상대하게 하지.”
“썩 좋은 생각은 아니로군.”
“그렇지. 오히려 마적에게 죽는 녀석들이 많으니까. 어떻게 놈들을 죽인다고 해도 망가져서 미쳐 버리는 아이들도 있지.”
강호에서 살아남으려면 언제고 사람을 죽이게 된다. 더구나 조윤은 가문의 복수를 하고자 무공을 배우고 있었다.
한데 마음이 연약했다.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살리려고 노력한다. 그런 조윤이 만약 사람을 죽이게 되면 어떻게 될까?
칼힌의 말대로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나?”
“계속 죽이게 하지. 그러다 보면 가끔 제정신을 차리기도 하네.”
당황학은 과연, 이라고 생각했다. 대막에서는 사내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오로지 용맹뿐이었다. 어떤 때는 용맹한 것이 아니라 무모한 것이 분명한데도 대단하게 여겼다.
오면서 만난 마타만 해도 그랬다. 조윤이 전혀 겁먹지 않고 할 말 다하면서 부하들을 치료하자 용맹하다고 여겨 오히려 이름까지 알려주지 않았던가?
“오면서 붉은 매단을 만났었네.”
“호오. 그랬나? 요즘 힘을 키우고 있는 놈들이지. 그래 봤자 북십자성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그들이 다치니까 적인데도 치료를 해주더군.”
“저 아이가 말인가?”
“그래.”
“겁이 났을 텐데 용맹하군.”
생각했던 반응이 그대로 나오자 당황학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무모했다.”
“용맹한 자는 자신이 뭐를 잘하는지 알고 있지. 때를 맞출 줄도 알고. 그저 힘만 세다고 되는 것은 아닐세.”
“그렇다고 하고, 혹시 죽여야 할 마적단이 있나?”
“있지.”
“말해주게. 처리해줄 테니.”
“자네 수준에 맞을 만한 곳은 없는데.”
“알면서 그러나. 내가 아니라 저 아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곳을 알려주게.”
“여기를 나가면 어디로 갈 건가? 서장? 아니면 북해?”
“우선 서장으로 갈 걸세.”
“그럼 작은 호랑이단을 찾아가. 한, 오십 명쯤 되려나? 둘이 처리하기에는 딱 좋지. 원하면 안내를 붙여 주겠네. 물론 저 아이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부탁하지.”
“오랜 친구가 찾아왔는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칼힌이 웃으면서 말하자 당황학도 미소를 지었다.
* * *
‘그렇군.’
당황학은 칼힌이 말한 뜻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가 보낸 안내인이 조윤 또래였던 것이다.
“이름이 뭐냐?”
“칼라한입니다.”
“혹시 칼힌의 아들이냐?”
“네. 둘째 아들입니다.”
어쩐지 닮았다 했다. 이리 아들을 보낸 것은 나름대로 꽤나 신경을 썼다는 뜻이었다. 당황학은 오랜만에 찾아왔는데도 이렇게까지 해주는 칼힌의 마음이 고마웠다.
“인사해라. 여기는 내 제자다.”
“반가워. 난 조윤이야.”
“칼라한이다.”
마치 킬힌을 보는 것 같은 얼굴과 말투였다. 이에 조윤은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들어서 알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하마. 킬힌에게 작은 호랑이라 불리는 마적단을 처리해 달라고 부탁을 받았다. 한 오십 명쯤 된다고 하니 가는 길에 해치울 생각이다. 칼라한은 거기까지 우리를 안내할 거다.”
“꼭 해야 하나요?”
“며칠 동안 신세를 졌으니 밥값은 해야지.”
조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칼힌은 당황학이 머무는 동안 극진하게 대접했었다. 잠자리와 식사는 물론이고 조윤과 비무를 했던 아이들도 전부 직접 신경 써서 챙겨줬었다.
“오십 명이면 많은 수는 아니지만 너를 보호하면서 싸울 여력은 없다. 하니 네 몸은 네가 지켜야 한다.”
“네.”
“그들은 마적이다. 금품을 강탈하기 위해 부녀자를 강간하고 아이들을 서슴없이 죽인다. 살려둬서 이로울 것이 없는 자들이다. 망설이지 말고 죽여라. 안 그러면 네가 당한다.”
“네.”
대답은 했지만 조윤은 내키지가 않았다. 언제고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너무 갑작스러웠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충분치 않았다.
“저기예요.”
킬라한은 다 허물어진 집이 몇 채 있는 곳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드문드문 마적으로 보이는 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손에 사정을 두지 마라.”
당황학이 그렇게 말하면서 메고 있던 보따리를 내려놓자 조윤도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백아를 허리에 찼다.
“가자.”
당황학은 마적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자 몇몇 사내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이를 보이면서 웃는 것을 보니 이쪽을 전혀 경계하지 않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당황학이 검을 뽑아서 가차 없이 그들을 베었다. 워낙 순식간의 일이라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피를 뿌리면서 쓰러졌다.
당황학의 뒤를 따라가던 조윤은 그렇게 사람이 죽는 것을 보자 백아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어제부터 끊임없이 드는 의문이었고, 스스로에게 수백 수천 번 했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심적 부담감이 너무나 커서 다 관두고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너 뭐 해? 혹시 무서운 거야?”
칼라한이 등에 메고 있던 자신의 키만큼이나 커다란 대검을 꺼내 들며 물었다.
“어? 아, 아니.”
“그러고 있다가 죽는다.”
지난 며칠간 조윤이 십자성에서 비무 하는 것을 보고 칼라한은 크게 감동했었다. 마치 거대한 독수리가 먹이를 덮치듯이 강맹하고 빠른 검법으로 아이들을 상대하는데,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가 죽지 않고 방법을 찾아내서 결국에는 다섯 명을 모두 이겼다. 물론 몇 대 맞기는 했지만 칼라한이 생각하기에 그건 맞은 것도 아니었다.
한데 실전이 되자 겁을 잔뜩 먹고 얼어 있었다. 평소에 대련을 굉장히 잘하던 아이가 막상 실전이 되면 손발이 굳어서 제대로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죽는 것을 칼라한은 몇 번이나 봤었다.
딱 보니 조윤도 그렇게 될 것 같았다. 칼힌은 안내만 하라고 했지 조윤을 도우라고는 하지 않았다. 당황학도 거기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었다. 이에 미련 없이 자리를 뜨며 가장 먼저 부딪쳐 오는 사내의 머리를 대검으로 후려쳤다.
파앙!
“커헉!”
조윤은 눈앞에서 사람의 머리가 깨지면서 피가 튀는 것을 보자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칼라한은 재차 대검을 휘둘러 그의 허리를 쳐서 날렸다. 그리고 옆에서 공격해 오는 사내의 칼을 막아서 흘리다가 목을 쳤다. 그 앞에서는 당황학이 뭣 모르고 덤벼드는 마적들의 팔다리를 날리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몸이 마치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위험해!”
당황학의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로 앞에서 마적 한 명이 칼을 휘둘러 오고 있었다.
조윤은 본능적으로 백아를 꺼내서 상대의 칼을 쳐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아래에서 위로 백아를 움직이자 살을 뚫고 들어가는 느낌이 절절히 손에 전해졌다.
“컥!”
사내가 짧게 신음 소리를 내며 피를 왈칵 쏟았다. 밑에 있던 조윤은 머리에 그 피를 다 뒤집어썼다. 이에 잠시 멍하니 있다가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 초점 없는 눈으로 방금 자신이 베어 넘긴 사내를 봤다. 그는 풀썩 쓰러진 채 피를 콸콸 쏟아내다가 곧 숨이 끊어졌다.
“내가…….”
‘죽인 건가?’
조윤은 자신의 손을 봤다. 피가 묻어 있었다. 들고 있는 백아에도 붉은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순간 조윤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툭 끊어졌다. 현대에서는 다른 사람을 다치게만 해도 죄의식을 가진다. 살인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천인공노할 죄였다.
조윤은 이십 년을 넘게 정수현으로 살면서 그런 도덕적인 관념이 무의식 안에 꽉 자리 잡고 있었다. 한데 그게 갑자기 깨지자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자식! 죽어!”
동료가 죽는 것을 보고 마적 두 명이 조윤에게 달려들었다. 그걸 보고 당황학이 다급하게 몸을 날렸다. 처음부터 그는 언제든지 조윤을 도울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그가 미처 도달하기도 전에 조윤이 먼저 움직였다.
쉭!
비천하강으로 한 명의 어깨를 베고 다리를 걷어차서 넘어트린 조윤이 지나쳐 가며 목을 베고, 그 옆에 있던 사내의 겨드랑이를 올려쳤다. 그러자 팔이 깔끔하게 잘려 나가면서 하늘로 치솟았다.
“으아아악!”
사내는 고막이 얼얼할 정도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조윤은 전혀 반응하지 않고 무표정하니 목을 찔러서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죄책감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조윤은 본능적으로 움직이며 마적들을 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비연하강과 비연상승은 물론이고 비연참과 비연섬을 수시로 펼치며 날아다녔다.
그걸 보고 있던 당황학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자신이 만든 검법의 완성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조윤은 물을 차며 날아가는 제비처럼 빨랐다. 또한 때에 따라서 권법, 각법, 금나가 어우러지니 공격에 막힘이 없었다. 그렇기에 강했고, 마적들은 단 일 초식도 당해내지 못했다.
“대단해.”
칼라한 역시 입을 헤 벌리고 조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비무를 할 때는 조윤을 높게 봤었지만 겁을 먹고 덜덜 떠는 모습을 보자 한심하게 여겨졌었다.
한데 지금은 아니었다. 하도 강해서 보고 있자니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칼라한은 스스로 강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또래 중에서는 당할 아이가 없었고, 북십자성의 상급무사들과 겨뤄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조윤과 겨뤄보라는 아버지의 말도 듣지 않았다. 시시할 것 같아서였다. 뒤늦게 조윤의 실력이 뛰어난 것을 알고 조금 후회했지만 꼭 겨루고 싶은 상대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떨림은 뭐란 말인가?
저런 실력이라면 겨뤄봤자 자신이 진다.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판 붙어보고 싶은 욕구가 꾸역꾸역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 * *
조윤은 사흘 동안 앓아누웠다. 열이 심해서 밤에 헛소리를 몇 번이나 했고, 어쩌다 깨면 기력 없이 눈만 깜빡이다가 다시 잠들었다.
조윤의 상태가 그러니 당황학은 서장으로 가려던 계획을 당분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
힘없이 부르는 소리에 당황학은 조윤의 곁으로 갔다.
“죄송해요.”
“아니다. 충격이 컸을 게다.”
“눈을 감으면, 제가 죽인 사람들이 자꾸 보여요. 그때의 상황이 계속 반복돼요.”
“이겨내야 한다. 칼을 든 순간부터 각오했던 일 아니냐?”
조윤은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당황학의 말대로 칼을 들 때 이미 각오했던 일이었다.
이곳에서 살아가려면 강해야 한다. 이유야 어쨌든 상대가 나를 죽이려고 하면 먼저 상대를 죽여야 한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무엇보다 그들은 백 번 죽어도 싼 놈들이었다. 자신은 옳은 일을 했다.
죽지 않기 위해서 죽였고, 죽여도 되는 자들을 죽였다. 그럼에도 병이 날 정도로 마음을 갉아대는 이 죄책감은 뭐란 말인가?
왜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니 짚이는 것이 있었다.
현대에서는 당장에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을 인간의 존엄성을 들먹이며 살려준다. 어린아이를 강간하고,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여도, 사형시키지 않는다.
또한 정당방위라는 것도 쉽게 성립되지 않는다. 이유 불문하고 싸우면 무조건 양쪽 잘못이다. 양쪽 다 벌금을 물거나 구치소에 간다.
그래서 누가 때려도 맞서 싸우면 안 된다. 부모나 자식이 눈앞에서 얻어터지고 있어도 보고만 있어야 한다. 그리고 침착하게 경찰서로 가서 신고해야 한다.
웃긴 건, 그렇게 경찰서로 가서 신고를 한다고 해서 부모를 때리고 자식을 때린 놈이 꼭 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아닌 말로 돈 있고 뒷배가 좋으면 그냥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
집 안에 도둑이 들어와도 맞서 싸우면 안 된다. 칼을 들고 위협을 한다고 해서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면 과잉 방어니 뭐니 해서 도둑과 함께 잡혀 들어간다.
한마디로 현대는 폭력이 철저히 배제된 사회다. 법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는 이상을 강요하며 어렸을 때부터 하지 말라고 세뇌시킨다.
힘을 쓰는 것이 전부 폭력이 아님에도, 때에 따라서는 나를 지키고 가족을 지킬 유일한 수단일 수도 있건만, 무조건 하지 말라고 한다.
현대에 비해 이곳은 원시적이고 폭력적이지만 그만큼 더 자유롭다. 법보다는 스스로의 양심과 도덕관념, 가치관 등으로 판단할 수가 있다. 그래서 아무 대가 없이 의로운 일을 행하는 이들을 협객이라 부르며 칭송하지 않던가?
조윤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래야만 했는지, 그게 옳았는지를.
답은 몇 번을 물어도 똑같았다. 자신은 옳은 일을 했다. 죽일 수밖에 없었고, 죽여야 했다.
그게 나와 가족, 그리고 가까운 지인들을 지키는 길이라면 하는 것이 맞다. 그때마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겠지만 적어도 망설이지는 않아야 한다. 옳고 그른 기준이 바르면 죄책감에 시달릴 이유가 없었다.
“저는 옳은 일을 한 거죠?”
조윤이 나직이 묻자 당황학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너는 옳은 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