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41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41화
제6장 대막 (2)
파앙!
기라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조윤은 앞으로 돌진해 가면서 비연폭을 펼쳤다. 소리조차 없는 음속의 검이 맞서오는 기라의 독장을 베고 어깨를 베었다.
쾅!
“큭!”
목검이 터져 나가면서 조윤이 뒤로 날아갔다. 그리고 땅에 처박히려는 찰나, 기라가 와서 붙잡아줬다.
“괜찮으십니까?”
“으…… 괜찮지 않아요.”
조윤은 목검을 잡고 있는 손을 봤다. 목검이 터져 나갈 때의 충격으로 피가 흥건했다.
기라가 재빨리 상처를 살피면서 지혈제와 금창약을 뿌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픈 것이 없어지면서 오히려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뭐죠?”
“제가 만든 약입니다. 삼 일 정도 바르면 이런 상처는 금방 나을 겁니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보다 마지막에 썼던 건 뭐였습니까?”
“비연팔식의 비기였어요. 아직 완벽하지 않아서 되레 당했네요.”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그걸 진검으로 했다면 제 손이 남아나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은 저의 패배입니다.”
“그래도 진 건 진 거죠.”
“쉬십시오. 상처는 덧나지 않게 조심하고요.”
“네. 저기…….”
“뭐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나중에 이 약도 만드는 법을 알려주세요.”
“물론입니다.”
기라가 가고 나자 조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떠난다는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 * *
“떠날 준비를 하거라.”
당황학의 말에 조윤은 짐을 챙겼다. 오늘은 무슨 일인지 기라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인사를 못하고 가는 것이 미안했으나 보면 못 가게 하거나 함께 가겠다고 할까 봐 오히려 이렇게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윤은 어젯밤에 쓴 서찰과 함께 기라독해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기라가 가지라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용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그 가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조윤은 방을 나와 당황학과 함께 곡주인 만담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이보의 안내를 받아 독곡의 입구로 향하다가 걸음을 멈췄다.
“스승님!”
기라였다. 그는 뒤늦게 조윤을 만나러 갔다가 탁자에 놓인 서찰과 기라독해를 봤다. 그 순간 조윤이 떠났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곧바로 이리 달려온 것이다.
“조용히 가긴 글렀군.”
당황학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는 기라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조윤이 도움 받은 것이 많아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스승님, 벌써 가시려는 겁니까?”
“네, 죄송해요. 미리 말하지 못해서.”
“저는 아직 세균에 대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죄송해요. 저는 지금 할 일이 있어요. 그 일이 마무리되면 반드시 연락을 할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조윤은 미안한 마음에 거듭 기라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기라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부탁을 했다.
“그럼 함께 가겠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제가 쓸모가 있을 겁니다. 옆에 두고 써 주십시오.”
“아니요. 말했듯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니 기다려 주세요. 지금 저와 함께 가면 곡주님의 원망을 들을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기라 아저씨는 상관없어도 저와 사부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동안 독곡에서 신세를 졌는데 어떻게 그러겠어요? 그러니까 나중에 언제든 떠날 수 있게 곡주님께 빚을 많이 지워 두세요.”
“하아……. 알겠습니다. 그리 말하시니 어쩔 수가 없군요. 대신에 연락이 오지 않으면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꼭 연락할게요.”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받으십시오.”
기라는 자그마한 상자와 함께 조윤이 놔두고 간 기라독해를 내밀었다.
“이건 미안해서 놔두고 가려던 건데.”
“아닙니다. 전에 말했듯이 제게는 이제 필요가 없습니다. 스승님이 가져가십시오. 그리고 이건 보름달이 뜨는 날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드십시오.”
“이게 뭐죠?”
“음,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조기신단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조윤은 자신의 이름과 기라의 이름 첫 자를 따서 붙인 거라는 걸 바로 알아챘다. 이에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이름이 거창하네요.”
“내공을 증진시키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럼 보중하시고 후에 꼭 불러주십시오. 그동안 저는 세균에 대한 걸 좀 더 연구해서 체계를 세워 보겠습니다.”
“네, 그동안 고마웠어요.”
조윤이 인사를 하자 기라가 가당찮다는 듯이 마주 인사를 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제가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독곡을 나오면서 조윤은 마음이 착잡했다. 이 여행이 끝나면 당문으로 돌아가 가문의 복수를 해야 했다. 그때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이후 기라와는 못 만날 수도 있었다.
“그 책은 뭐냐?”
“기라 아저씨가 쓴 책이에요. 독술에 대한 전반적인 것들이 적혀 있어요.”
“하면 절대로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된다. 강호에는 탐욕에 눈먼 자들이 많다.”
“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인데 기라는 너를 스승이 아니라 제자로 삼고 싶었던 것 같구나.”
“예?”
갑작스러운 말이라 조윤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당황학을 쳐다봤다. 그러자 당황학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니라면 그가 왜 네게 일방적으로 독술을 가르쳐 줬겠느냐?”
“그건…….”
“하나 알아 둬야 할 것이 있다. 당문은 독곡과 약간의 왕래가 있으나 서로 사이가 좋지는 않다. 내가 그나마 곡주와 친분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독술 대신에 검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경쟁 상대인가요?”
“그보다는 적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 독곡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당문뿐이다. 그리고 당문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것도 천하에서 독곡밖에 없지. 그 때문에 아주 오래전 가문의 존망(存亡)을 걸고 전쟁을 치를 뻔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그때 내가 나섰고, 덕분에 곡주와 친구가 되었다.”
당황학은 그때의 일이 떠오르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곡주님을 설득시켰어요?”
“검으로 했다.”
어째 그다음은 안 들어도 알 것 같았다. 조윤은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곧 당황학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 * *
“이젠 어디로 가요?”
“대막으로 간다.”
대막은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었다. 준비도 않고 길도 모른 채 들어서면 탈진해서 죽거나 굶어 죽는다. 이에 당황학은 마을에 도착하자 터번과 피풍의를 사고, 그리로 가는 상인이 있나 알아봤다. 다행히 서른 명 정도 되는 대규모의 상단이 그리로 갈 예정이었다.
당황학은 상단의 책임자에게 돈을 주고 함께 가기를 청했다. 금천보의 상단은 사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재력이 대단했다. 이에 관은 물론이고 무림의 세력과도 연계가 있었다.
“부탁하오, 장 대인.”
장상삼은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금자가 무려 다섯 개였다. 이는 자신의 한 달 삯과 맞먹는 돈이었다.
“험! 혹여 마적은 아니겠지?”
사막에는 마적단이 많아서 이렇게 일행에 섞여 들어와서 음식에 독을 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합류하려고 하면 일단 그것부터 의심했다.
“아니오. 보다시피 어린아이와 함께요.”
“그래도 또 모르는 일이라 조심할 수밖에 없네.”
딱 보기에도 당황학이 나이가 훨씬 많건만 장상삼은 당연하다는 듯이 하대를 했다. 그것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건만 당황학은 웃으면서 말했다.
“도착하고 나면 조금 더 드리겠소이다.”
“뭐, 굳이 더 받자는 건 아니고, 저기 저 뒤에서 함께 오게나.”
허락한다는 뜻이었다. 당황학과 조윤은 이동하고 있는 마차 옆에서 걸었다.
“상인들은 다 저러나요?”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덕분에 편하게 되었지 않느냐?”
“왜요?”
“대막에는 마적 떼가 많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은 절대로 일행에 끼워 주지 않는다. 혹여 마적이 속이고 들어와 음식에 독을 푸는 경우가 있지.”
“당문에서 왔다고 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그랬어도 거절당했을 게다.”
“왜요?”
“금천보는 사천에 있는 상단이다. 하니 가는 동안 상전으로 모셔야 할 텐데, 괜히 그런 고생을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조윤은 당문의 영향력을 다시금 실감했다. 또한 그런 당문을 배신하고 칼을 들이댄 공손세가가 더욱이 크게 느껴졌다.
“왜 그런 표정이냐?”
“아니에요.”
조윤은 애써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당황학 덕분에 상단과 함께 이동하게 되니 여러 가지 이점이 있었다. 여행 중에는 잠자리와 먹을 것만 해결되어도 굉장히 편하다. 한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그게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게다가 장상삼은 하는 행동과는 다르게 대막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했다. 이에 낮에는 쉬고 서늘한 밤에 이동을 했고, 물이 있는 곳도 잘 찾아냈다.
“후우……. 덥네요.”
“익숙해지는 것이 좋을 거다. 보아하니 일정을 앞당길 생각인 것 같다.”
며칠 동안 늦장을 부리던 장상삼은 갑자기 낮에도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불만을 토로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예정일보다 늦으면 그만큼 돈을 덜 주겠다고 협박하자 어쩔 수 없이 땡볕에 움직여야 했다.
사막의 낮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더웠다. 잘 때도 너무 더워서 억지로 잤었으니 이렇게 움직이니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다. 더구나 모래 말고는 보이는 것이 없어서 몸뿐만이 아니라 정신도 쉽게 지쳤다.
“어? 저기, 저건 뭐죠? 모래바람인가요?”
멀리서 모래먼지가 자욱하게 이는 걸 보고 물었다. 그러자 당황학이 그쪽을 유심히 보다가 짐 보따리를 고쳐 메고 검을 꺼냈다.
“싸울 준비를 해라.”
“네?”
“마적단이다. 진검을 쓰되 절대로 손에 사정을 두지 말거라. 안 그러면 네가 당할 게다. 난전이 되면 너를 보호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당황학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조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껏 비무는 몇 번 해 봤지만 실전은 처음이었다. 천으로 돌돌 말아놓았던 백아를 꺼내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때 다른 사람들도 마적단을 발견하고 소리를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상단은 총 서른일곱 명이었다. 그중 호위로 따라온 것은 열두 명이고, 나머지는 상인들과 짐꾼들이라 싸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제길! 거의 다 왔는데.”
장상삼이 발을 동동 구르며 짜증을 냈다. 그러는 동안 덩치가 좋은 사내가 사람들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그는 호위무사들을 이끌고 있는 단명이라는 사람이었다.
“마차를 한곳에 모아 방책으로 쓴다! 빨리 움직여!”
상인들과 일꾼들은 마차와 낙타를 한곳으로 끌고 와 원을 만들었고, 무사들은 무기를 들고 싸울 준비를 했다.
잠시 후, 마적단이 도착했다. 대충 봐도 오십 명이 넘었다. 그들은 낙타를 타고 크게 원을 그리며 세워 놓은 마차 주위를 돌았다. 그러다 인상이 날카로운 사내가 덩치가 좋은 사내 두 명을 대동하고 천천히 다가왔다.
“우리는 사막의 정복자 붉은 매단이다. 들어본 적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