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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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39화
제5장 남독신의 (3)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냐?”
“말해도 믿지 않으실 테지만 판단은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묻는 것이 아니냐? 네가 말한 것들은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진짜인지 아닌지 알기가 어렵다. 하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타당성이 있다.”
“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조윤이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자 기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엔 기이한 일이 많다. 하니 열두 살인 아이가 그러한 걸 깨달았다고 해서 꼭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흔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럼 아까 했던 이야기를 계속해 봐라.”
“싫습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기에는 늦었다. 밖에서라면 아까 그자 때문에 너를 뜻대로 하는 것이 어려우나 여기에서라면 다르다.”
“힘으로 저를 굴복시킬 생각입니까? 그랬다가 만약 제가 조금씩 속여서 말한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 배움을 구하려면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이 예의입니다.”
“허, 어린놈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하는구나. 지금 네가 나를 가르치겠다는 거냐?”
“원하신다면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전부 알려 드리겠습니다.”
“발칙하구나. 나는 천하오대신의 중 한 명인 남독신의다. 네가 아는 것쯤은 언제든지 알아낼 수 있다.”
“그럼 묻겠습니다. 아까 제가 한 말을 전부 알아듣고 이해하셨습니까?”
기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략적인 흐름은 이해했으나 워낙에 기존의 의술에서 벗어난 방식이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용어들이 섞여 있어서 완전히 알아들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을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열두 살짜리 아이가 알아낸 것을 오십이 넘은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제가 말한 것들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장담하건대 천하의대신의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연구를 한다고 해도 그걸 다 이해하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릅니다.”
“오만하구나.”
“오만하지 않습니다. 제 지식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음, 좋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게 말했던 것 중에 세균이라는 것이 있었지?”
“네.”
“내가 그걸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봐라. 그런 후에 내가 정말 배울 것이 있다면 이곳을 나가겠다. 또한 너를 스승으로 모시고 배움을 청하마.”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아니다. 네 말대로 배우는 자가 고개를 숙이는 것이 당연하다. 더구나 그리 가치가 있다면 더욱이 그래야지.”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우선은 설명부터 하겠습니다.”
조윤이 그렇게 말하자 기라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집중해서 경청하겠다는 뜻이었다.
* * *
“허!”
조윤이 세균에 대해서 설명하는 동안 기라는 몇 번이나 감탄했다. 저 어린 나이에 어찌 저런 걸 알아내서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처음에는 스스로 그러한 것을 알아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서 설명을 듣는 중간중간에 몇 번이나 질문했었다. 그러나 조윤은 전혀 막힘없이 바로 대답을 했다. 그렇다는 건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기라는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천외천이라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나는 그동안 뭘 했던가?’
다른 오대신의들을 이겨보고자 몇 년간 집에 틀어박혀서 연구를 했건만 이제 열두 살밖에 안 된 아이보다 못하다니, 허탈함에 기운이 쭉 빠졌다.
천하오대신의가 대단하다지만 조윤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앞서 조윤이 장담한 대로 자신을 포함한 전부가 모여서 머리를 맞대도 방금 들은 걸 반도 알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 실마리를 주지 않으면 아예 그러한 것이 있는 줄도 모를 것이다.
사실 그 모든 것이 수백 년간 소위 천재라는 뛰어난 사람들의 연구로 이루어진 결과였으나 기라가 그러한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기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로 했다. 그리고 조윤에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본인은 만담기라라고 합니다. 오늘 천고의 기인을 만나 스승으로 모시게 되어 일생의 영광입니다. 부디 제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조윤은 기라가 갑자기 예의를 차리자 크게 당황했다. 방금까지 그리 대단하게 굴더니 왜 이런단 말인가?
“이러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어서 일어나십시오.”
“허락하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 대단하기는 하나 독술이나 의술은 한참이나 부족합니다. 그저 조금 더 아는 것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 해박하시니 실력은 금방 늘 것입니다. 그 길은 제가 열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허락해 주십시오.”
조윤은 난처했다. 아무리 부탁을 해도 기라는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그 고집을 꺾을 수가 없어 한숨을 푹 내쉬면서 허락을 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아는 걸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그만 일어나세요.”
“고맙습니다, 스승님.”
“대신에 존대는 안 하셔도 됩니다. 아직 제가 한참이나 어립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건 스승님에 대한 예의이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동안 자만에 빠져 스스로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오대신의들을 낮춰 보며 홀로 연구를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들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스승님을 만나고 나니 제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이후로도 그렇게 자만하지 않도록 계속 존대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크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참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알았다고는 하나 이렇게 바로 반성하고 바뀌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데도 스승으로 모시겠다며 머리를 숙이다니. 그것도 천하오대신의 중 한 명이 말이다.
조윤은 일이 이상하게 꼬이는 것 같아 괜히 나섰다는 후회가 들었으나 이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알았어요. 그건 편한 대로 하시고, 이제는 밖으로 나가죠. 사부님과 이보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기라가 조윤을 따라 밖으로 나오자 당황학과 이보가 요상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두 사람 다 내공이 뛰어나서 안에서 조윤과 기라가 나눈 대화를 모두 들은 것이다.
“기라 님을 뵙습니다.”
이보가 인사를 하자 기라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됐다. 들어서 알겠지만 오늘부터 조윤 님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다. 하니 너도 예의에 어긋남이 없도록 해라.”
“그리하겠습니다. 우선 곡주님부터 만나시죠.”
“알았다. 스승님도 함께 가시지요.”
“네? 네.”
조윤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을 하고는 당황학을 봤다. 그러자 당황학이 골치가 아픈 듯, 미간을 살짝 좁히며 인상을 썼다.
강호에는 기인도 많고 괴팍한 이도 많지만 이제 열두 살인 아이를 스승으로 모시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한데 기라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게 참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
“너, 너…….”
대청에서 기다리고 있던 만담은 당황학이 실패하고 올 거라 생각했었다. 한데 기라가 함께 오는 것이 아닌가?
“오랜만입니다, 곡주님.”
“어떻게 된 거냐? 내가 그리 나오라고 할 때는 안 나오더니.”
“오늘 조윤 님에게 크게 감명을 받아 스승님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뭐? 누구?”
“여기 이분입니다.”
기라가 조윤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만담은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저 어린놈을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건가? 만담은 혹시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냐?”
“그렇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저보다 대단하니 당연히 고개를 숙이고 배워야죠.”
“그러니까 저 어린놈이 너보다 독술이 더 대단하단 말이냐?”
“아닙니다.”
“하면 의술이 대단하냐?”
“아닙니다.”
“그럼 뭐냐? 뭐가 그리 대단하냐?”
“제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스승으로 모시겠다고? 네가 지금 내게 농을 치는 게냐?”
만담이 화가 나서 소리치자 그 기세가 사뭇 대단했다. 그런데도 기라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제 독술이나 의술은 스승님의 지식에 비하면 태양 아래의 반딧불과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밖으로 나온 것을 보면 모르시겠습니까?”
“아이구야. 저런 놈이 독곡 최고수라니 내가 부끄러워서 낯짝을 못 들겠다.”
“곡주님이 뭐라고 하시든 이미 결정된 일입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대신 어디 가서 독곡 출신이라고는 하지 마라.”
“그럴 생각입니다. 스승님의 지식을 얻기 전에는 남독신의란 별호도 버릴 겁니다.”
“하!”
만담은 기가 찼다. 명예에 그리 연연하던 기라였다. 승부욕도 강해서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건만, 전부 초연한 듯이 말한다.
도대체 저 어린놈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런단 말인가? 그제야 만담은 조윤에게 뭔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어린놈이 그리 대단하냐?”
“자꾸 어린놈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제가 스승으로 인정한 분입니다. 아무리 곡주님이라고 해도 스승님께 그리 대하는 건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만담은 이제 말문까지 꽉 막혔다.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옛날부터 괴팍한 구석이 있긴 했지만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아마도 집 안에 몇 년간 틀어박혀 있다 보니 머리가 살짝 이상해진 것 같았다.
“그래, 알았다. 뭐든 네 좋을 대로 하고, 일단 가서 쉬어라.”
“알겠습니다. 가시지요, 스승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만담을 향해 퉁명스럽게 대답한 기라가 조윤을 보고는 정중하게 말했다. 그게 눈에 거슬렸지만 입을 열면 또 시끄러워질까 봐 만담은 꾹 눌러 참았다.
“사부님.”
“먼저 가 있어라. 나는 곡주하고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가마.”
“네.”
당황학이 먼저 보내자 조윤은 기라와 함께 대청을 나갔다. 그러자 만담이 따지듯이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건가? 어떻게 했기에 기라가 저런단 말인가?”
“나도 모르겠소.”
“그 자리에 같이 있었을 것 아닌가?”
“그렇기는 한데 말해도 쉽게 믿지 않을 거요.”
“뭔지 들어나 보자.”
만담이 채근하자 당황학은 아까 있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했다. 그러자 만담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아이가 그리 대단하던가?”
“솔직히 나도 놀랐소.”
“정말인가? 혹여 딴 뜻이 있어서 나를 속이는 건 아니고?”
“그 자리에는 이보인가 뭔가 하는 자도 함께 있었으니 그에게 물어보면 될 거 아니요?”
“하긴, 그렇군.”
“그자를 떼어 놓을 방법이나 강구해 보시오.”
“내가 할 말일세.”
그렇게 말하면서 만담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라가 집 밖으로 나온 건 좋은 일이나 과연 설득시킬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와 다시 한바탕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