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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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33화
제3장 청성파 (3)
그날 밤 조윤은 현진을 찾아갔다. 영허진인이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으나 직접 보고 싶었다. 침상에 앉아 있던 현진은 조윤을 보고 놀란 눈을 하더니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저기, 미안. 이건 상처에 바르면 좋은 약이야. 놔두고 갈게.”
조윤은 가지고 온 약을 놔두고 방을 나왔다. 어린아이를 괴롭힌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왔느냐?”
먼저 자는 줄 알았는데 당황학이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윤은 자리에 앉아 낮에서부터 생각하던 것을 물었다.
“계속 비무를 해야 하나요?”
“아니다. 내일 떠날 거다.”
“정말요?”
조윤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어진 당황학의 말을 들어보니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래. 하지만 영허가 이대로 보내려고 하지 않을 게다. 아마 현진과 한 번 더 비무를 해야 할 거다.”
“꼭 해야 하나요?”
“해야 한다. 혹여 져 줄 생각은 하지 말거라. 영허가 그걸 못 알아볼 리가 없다. 게다가 그 아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무를 할 때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다.”
“네.”
다친 아이를 또 상대해야 한다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다고 영허진인이나 현진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적당히 해서 져줄 실력도 되지 않았다.
“적당히 하다가는 네가 크게 다칠 거다. 오늘은 네가 타격을 할 때 힘을 빼서 많이 다치지 않았으나 그 아이에게서 그런 요행을 바랄 수는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네가 마지막에 했던 동작을 기억하느냐?”
조윤은 낮에 비무 했던 것을 떠올렸다. 당황학이 알려준 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자 다급한 마음에 공중으로 날아올라 내려치기를 했었다. 자신도 모르게 한 일이었으나 제때에 행한 아주 좋은 반격이었다.
“네, 기억하고 있어요.”
“얼결에 해낸 것이겠지만 그것이 비연팔식의 세 번째 초식이자 비기(秘技) 중 하나다.”
비연팔식은 일반적인 검법과는 많이 달랐다. 보통은 주된 초식이 많고 비전절기가 적다. 있어 봤자 한두 개가 다였다. 그러나 비연팔식은 주된 초식이라고는 달랑 두 개뿐이었고, 비전절기가 무려 네 개나 되었다.
“일단 보거라.”
당황학이 그렇게 말하더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밑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파아아앙!
바로 앞에 떨어진 검압에 조윤의 머리칼과 옷이 전부 뒤로 밀려났다. 그 같은 위력에 조윤은 계속 서 있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등골이 서늘한 것이 하마터면 오줌까지 지릴 뻔했다. 낮에 자신이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온몸의 힘을 집중해서 상대를 일도양단(一刀兩斷)하는 것이 바로 비연참(飛燕斬)이다. 해봐라.”
조윤은 목검을 들고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방금 본 동작을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되돌렸다. 그리고 똑같이 비연참을 해냈다. 처음 하는 거라 동작은 어설펐지만 핵심은 제대로 짚어냈다.
비연참은 언뜻 보기에는 체중을 실어 내려치는 동작 같지만 그보다는 한순간의 폭발력이 더 중요했다. 상대를 타격할 때 마치 폭탄이 터지듯이 압도적인 힘이 나와야 한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당황학은 내심 크게 놀랐다. 조윤의 재능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건 생각 이상으로 대단했다. 무엇보다 이해력이 남달랐다.
보통의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 이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 때문에 어렸을 때는 복잡한 상승무공보다는 단순히 몸만 움직여도 되는 외공단련을 주로 한다.
상승의 무공은 난해해서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면 수련을 할 수가 없다. 특히 내공수련이 그랬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하다가는 주화입마에 빠진다.
한데 조윤은 유독 이해력이 좋으니 좀 더 빨리 가르쳐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 * *
날이 밝을 때까지 조윤은 한숨도 안 자고 비연참을 연습했다. 아침을 코로 먹었는지 입으로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후다닥 쑤셔 넣고, 또 연습을 했다. 그리고 정오가 되자 다시 현진과 마주 섰다.
어제 내려친 곳이 걱정되어 시선이 현진의 어깨로 향했다. 그러자 현진이 인상을 팍 쓰면서 말했다.
“괜찮아. 다 나았어. 마음껏 해도 돼.”
“어? 어.”
의외였다. 현진은 조윤이 부담을 느껴 최선을 다하지 않을까 봐 염려를 하고 있었다. 그만큼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어리지만 당찼다.
조윤은 마음을 가다듬고 먼저 공격을 했다. 사흘 동안 매일 겨루다 보니 상대에 대해 거의 파악한 상태였다.
현진은 호승심이 강했다. 그래서 재빨리 다음 초식으로 전환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럽게 밀어붙일 때가 종종 있었다.
조윤은 그때 드러나는 빈틈을 놓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초식을 절제하며 나아갈 때는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는 재빨리 뒤로 빠졌다. 이에 조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다딱!
현진이 머리와 어깨를 반복해서 치고 들어오자 조윤은 다급하게 막아내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다 틈이 생기자 크게 발을 내디디면서 어깨를 내려치고 다시 나아가며 올려쳤다. 비연하강에 이은 비연상승이었다. 그러자 현진이 어제와 똑같이 겨드랑이를 노리고 들어왔다.
조윤은 당황학에게 배운 대로 공격을 흘리면서 팔을 잡고 던지려고 했다. 한데 현진이 손을 쳐내면서 다리를 차고 옆구리를 찼다. 거기에 더해 주먹까지 뻗어 오자 가슴을 맞고 뒤로 밀려났다.
“타핫!”
현진이 기회라고 여겨 앞으로 쭉 나오면서 목검을 찔러 넣었다. 뒤로 물러나서 피하기에는 늦었다. 그럼에도 조윤은 상체를 완전히 뒤로 넘겼고, 덕분에 목검은 피할 수가 있었으나 중심을 잡지 못해 넘어지고 말았다.
그때를 노려 현진이 다시 거리를 좁히면서 목검을 휘둘렀다. 조윤은 넘어진 상태에서 현진의 공격을 모두 쳐냈다. 동시에 다리를 쓸어 차자 현진이 뒤로 훌쩍 물러났고, 그 틈에 재빨리 일어났다. 그러나 현진이 다시 맹공격을 해 오자 정신없이 뒤로 밀렸다.
밤새도록 비연참을 그렇게 연습했건만 쓸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가 없었다. 비연참을 쓰려면 거리가 필요했다. 한데 그 거리를 만들 수가 없었다.
따악!
순간 현진의 목검과 조윤의 목검이 강하게 부딪치면서 멈췄다. 현진이 있는 힘껏 조윤을 밀어내며 다시 공격을 하려고 했다.
조윤은 그 힘을 이용해서 뒤로 훌쩍 물러났다. 그리고 허공으로 뛰어올랐다가 떨어져 내리며 목검을 휘둘렀다. 비연팔식의 두 번째 비기인 비연참이었다.
현진은 얼결에 목검을 들어 방어하려고 했으나 어제의 일이 생각나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파앙!
내려치는 기세가 사뭇 대단했다. 그러나 조윤의 목검은 현진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조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허공으로 날아올라 비연참을 펼쳤다.
조윤이 두 번이나 그렇게 뛰어오를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던 현진은 어제와 같은 실수를 하고 말았다. 목검을 들어 올려 조윤의 공격을 막은 것이다.
따악!
조윤의 목검은 현진의 목검을 누르고 어깨를 때렸다. 그러나 현진이 재빨리 무릎을 굽혀서 조금이나마 위력을 줄였기에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져, 졌습니다.”
욱신거리는 어깨를 잡고 현진이 힘없이 말했다. 조윤은 거친 숨을 정리하며 현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시 망설이던 현진이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이것 참. 현진의 재능도 뛰어나다 생각했건만 저 아이는 그 이상이로군요.”
“그렇지 않소. 간발의 차이였을 뿐이오.”
“어쨌든 진 건 진 거지요. 지금은 아무리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 같군요. 하나 몇 년 뒤라면 다를 겁니다. 아시겠지만 청성파는 도문(道門)이라 뒤로 갈수록 성취가 빠르지요.”
“그럼 그때 다시 한 번 겨루게 합시다.”
“하하.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신세 졌소.”
“이대로 가시렵니까?”
“원하는 걸 얻었으니 이제 떠나야지.”
“이거 아무래도 단순히 비무를 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던 것 같군요. 뭐를 얻으셨는지 빈도에게도 알려주시면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습니다만.”
“그대가 저 아이에게서 본 것을 나도 보았소.”
자신이 현진에게 본 것이라니, 그게 뭐란 말인가? 영허진인은 당황학이 하는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이만 가자.”
“언제든지 또 오십시오.”
“아니, 이제 내가 올 일은 없을 거요.”
당황학은 단호하게 말한 뒤에 조윤과 함께 그곳을 떠났다. 영허진인은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아까 당황학이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다.
사흘간의 비무를 돌이켜 보면 조윤이 계속 이기기는 했으나 실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진이 더 많이 늘었다.
승부욕 때문에 공격을 끊어야 할 때 끊지 못해서 쉽게 틈을 내 주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 약점을 완전히 고쳤다. 모르긴 몰라도 이제 청성파 내의 또래 중에서는 단연 최고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영허진인은 문득 깨닫는 것이 있었다.
“그랬던가? 허 참.”
“왜 그러세요?”
현진이 묻자 영허진인은 대답 대신 질문을 했다.
“조윤과 겨뤄보니 어떻더냐?”
“죄송해요. 대사숙조님께서 가르침을 주셨는데, 한 번도 이기지 못했어요.”
비무가 끝나면 당황학이 현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조윤에게 가르쳐줬던 것처럼 영허진인 역시 조윤의 초식을 어떻게 파해해야 할지를 현진에게 가르쳐줬었다. 그러나 워낙에 시간이 짧았고, 생각보다 조윤의 응용력이 대단해서 이길 수가 없었다.
“괜찮다. 승패에 연연해서는 큰 사람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조윤과 겨루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해봐라.”
“네. 처음에는 분명 이길 수가 있을 것 같았는데 이길 수 없었어요. 갑자기 기세가 바뀌면 마치 사부님을 대하는 것 같았어요.”
“그 이유를 아느냐?”
“혹시 조윤이 봐주면서 한 건가요?”
“아니다. 그 아이는 최선을 다했다.”
“그럼 왜 그런 거죠?”
“네가 조금 더 생각을 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가르쳐주마. 조윤이 계속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마음가짐 때문이란다.”
“마음가짐이요?”
“맞다. 조윤은 너를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하나 너는 어떠냐? 조윤을 꼭 이기고 싶었지?”
“네. 그랬어요.”
“그랬기에 네가 진 것이다.”
“잘 이해가 안 돼요.”
“승부에 집착하면 허점이 보이고 그럼 결국 지게 된단다. 그러나 조윤은 너를 이기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무공을 더욱이 높은 경지로 끌어 올리려고 했을 뿐이다.”
“그럼 저도 그렇게 하면 조윤을 이길 수 있나요?”
“그건…….”
영허진인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사실 말은 안 했으나 현진은 조윤의 적수가 아니었다. 만약 조윤이 처음부터 이기고자 마음먹고 독하게 손을 썼다면 현진은 단 일 초식도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걸 이야기해서 기를 죽일 필요는 없었다.
“앞으로 더욱이 노력한다면 다음에는 꼭 이길 수가 있을 게다.”
“네!”
힘차게 대답하는 현진을 보며 영허진인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현진에게서 본 것, 그건 청성파의 미래였다. 재능이 차고도 넘치니 앞날이 밝았고, 그랬기에 그동안 단점을 그다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한데 이번에 조윤과의 비무로 인해 생각이 바뀌었다.
장점이 뛰어나면 단점을 덮을 수도 있으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없앨 수 있다면 없애는 것이 좋았다.
당황학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동안 지켜본 바로 조윤의 재능은 현진보다 더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결코 못하지 않았다. 하니 그 재능에 가려 단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조윤에게 부족한 것, 그건 바로 독심(毒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