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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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30화
제2장 새로운 스승 (2)
“지독한 놈, 이후에 또 이런 짓을 했다가는 그 자리에서 죽여 버리겠다.”
지난 몇 달간 조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정없이 얻어터지기만 했다. 독기를 품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 당황학도 그걸 바라고 한 일이었다.
무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었다. 상대를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무공이 뛰어나도 되레 당할 때가 많다. 목숨이 오고 가는 진검 승부에서는 더욱이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존심마저 팽개치는 건 아니었다. 당황학이 화를 낸 건 그 때문이었다.
“하악…… 하악…….”
조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누운 채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온몸이 아팠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당황학이 하라는 대로 따르고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도 한계인 것 같았다.
* * *
몸이 아파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자야 했다. 안 그럼 피로 때문에 몸이 둔해져 내일 더 얻어터진다.
“자느냐?”
웬일일까? 이 시간에 당황학이 찾아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보통은 완전히 잠든 이후에 와서 약을 발라 주고 간다.
“아직 안 잡니다.”
조윤이 간신히 일어나 앉는 사이에 당황학이 방으로 들어왔다.
“맞은 곳은 좀 괜찮으냐?”
“버틸 만합니다.”
“날 원망하느냐?”
“아닙니다.”
“낮에 내 다리를 물어뜯기 전에 한 공격은 제법 좋았다.”
목검이 부러졌을 때 옆구리를 찼던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내공을 운용할 줄 몰라서 위력은 없었으나 지금껏 얻어터지기만 하던 조윤이 처음으로 성공시킨 공격이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겸손할 것 없다. 받아라.”
당황학이 그렇게 말하면서 검을 내밀었다. 목검이 아닌 진검이었다.
조윤이 받아서 조심스럽게 검을 뽑았다. 일반적인 검은 검신의 폭이 두 촌에서 세 촌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좁고 양쪽에 날이 있었다.
한데 당황학이 준 검은 한쪽에만 날이 있고 약간 유선형으로 휘어 있었다. 그래서 엄연히 따지자면 검이 아니라 도라고 봐야 했다.
조윤은 이런 형태의 검을 알고 있었다. 현대에서 정수현으로 살았을 때 본 적이 있었다. 병원의 동료 중 한 명이 검도를 즐겨 했었는데 하루는 진검을 샀다며 자랑을 한 적이 있었다. 당황학이 준 검은 그때 봤던 것과 같았다.
다만 상대의 칼이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한 호수의 모양이 조금 달랐다. 검도할 때 쓰는 검은 그게 동그랗게 되어 있는데 당황학이 준 검은 뭉툭하니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백아(白牙)라는 검이다. 명검은 아니나 웬만해서는 부러지는 일이 없을 게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건 네게 온 서찰이다.”
서찰이라니, 누구에게서 온 걸까? 의아해하며 받아보니 당자기에게서 온 것이었다.
“몇 달 전에 온 것이나 네 수련에 방해가 될까 봐 바로 전해주지 않았다. 그럼 푹 쉬거라.”
당황학이 나가자 조윤은 서찰을 펼쳤다. 거기에는 당자기가 신의문에 가서 겪은 일과 단목세가가 그리된 것에 대한 위로의 말이 적혀 있었다.
가망이 없던 흑묘가 정신을 차리고 조금씩 몸이 좋아지자 당자기는 신의문의 의술에 완전히 심취해 버렸다. 이에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마음으로 의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자기가 그러니 당예상도 함께할 수밖에 없었고 호위로 따라갔던 이화만 무료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단목세가가 멸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장에라도 돌아가고 싶었으나 이제 막 병세가 나아지고 있는 흑묘를 홀로 놔두고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로 상의한 끝에 이화만 돌아가기로 하고, 당자기와 당예상은 남기로 했고, 그걸 먼저 알리고자 서찰을 보낸 것이다.
눈물이 서찰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러자 적혀 있던 글이 번졌으나 조윤은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눈물을 흘렸다.
단목세가가 그렇게 되면서 전부 죽었다고 생각했었다. 한순간에 가까운 사람들을 잃자 예전에 하연이가 죽었을 때가 생각나서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었다.
한데 흑묘가 무사하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이화도 있고, 당자기와 당예상도 있었다. 조윤은 모든 이들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아직 함께 웃고, 서로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에 육예를 보고 정신을 차렸던 것처럼,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가리라, 그렇게 마음먹었다.
조금 진정이 되자 조윤은 날짜를 따져 봤다. 이화가 별일 없이 왔다면 벌써 몇 달 전에 도착했을 것이나 여기는 당문의 금역이라 외부인은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동안 이화가 찾아오지 않은 게 그래서일 텐데,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으니 만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일 이야기나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하며 침상에 누웠다. 흑묘가 다시 건강해졌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언제고 다시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 * *
이른 아침 눈을 뜬 조윤은 욱신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당황학과 대련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매일 아침마다 이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가 떠 온 물로 세안을 하고 가볍게 몸을 푼 후에 내공 수련을 했다. 비록 기초적인 토납법이었으나 이렇게 한 차례 하고 나면 고통이 덜하고 개운했다. 어떤 때는 아주 시원한 느낌까지 들곤 해서 이제는 하루라도 안 하면 이후에 하는 대련이 굉장히 힘들었다.
시간이 되자 식사를 준비했다. 식재료는 보름에 한 번씩 외부에서 가져다준다. 그걸로 요리를 하는데 처음에는 차마 먹지 못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제법 맛도 있고 모양도 낼 수가 있었다.
상을 다 차리자 당황학이 왔다. 평소와 달리 신경을 쓴 것이 보이자 당황학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젓가락을 들고 하나 먹어 보니 역시나 정성을 들인 맛이었다.
“흠, 맛이 괜찮구나.”
“신경을 조금 썼습니다.”
“어서 먹자.”
“예.”
밥을 먹으면서 조윤은 당황학의 눈치를 살피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잠깐 밖에 나가고 싶습니다.”
“여기가 답답한 게냐?”
“아닙니다. 저를 찾아온 사람이 있어서 만나려고 합니다.”
“어제 준 서찰에 그리 적혀 있더냐?”
“예.”
“아직 때가 이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 잠시라면 가주에게 일러 이리로 보내라고 하마.”
“그래 주시겠습니까?”
조윤이 크게 기뻐하며 되물었다. 함께 지낸 지 일 년이 넘었지만 저리 밝은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봤다. 어제 전해준 서찰로 인해 뭔가 심적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그게 무공을 수련하는 데 도움이 될지 해가 될지 알 수 없었으나 늘 다 죽어 가는 얼굴로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보기에 훨씬 좋았다.
“그리하마. 마침 가주에게 할 말이 있던 참이다.”
“고맙습니다, 사부님.”
“하면 식사를 하고 바로 갔다 올 터이니 수련을 하며 기다리고 있어라.”
“네. 만날 사람의 이름은 이화라고 합니다. 단목세가에 있을 때 잠시 제 호위를 해 줬던 누이입니다.”
“알았다.”
식사가 끝나자 당황학은 곧바로 죽림원을 나섰다. 그러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무사가 화들짝 놀랐다. 그가 이곳을 지킨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안에서 사람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금역이라고는 해도 그곳을 지키는 것이 별 의미가 없었고, 무사들에게는 한직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누, 누구십니까?”
“가주를 봐야겠다. 안내해라.”
“네?”
“가주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란 말이다.”
당황학이 가주를 하대하듯이 말하자 그제야 무사는 이곳을 지키라고 명령받았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이곳에는 당문의 가장 큰 어른이 죄를 짓고 갇혀 있으니 만약 안에서 그가 나온다면 곧바로 가주에게 보고를 하라고 했었다.
한데 오히려 당황학이 가주에게 가자고 한다. 뭐가 어찌 되었든 도망을 치려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또 모르는 일이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가주전으로 안내를 하는 동안 무사는 계속 당황학의 눈치를 살폈다. 혹여 자신을 죽이고 도망을 치지는 않을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황학은 뒷짐을 지고 느긋하니 걸으며 얌전히 따라왔다.
“여기입니다.”
“안에 있느냐?”
당수백의 집무실에 도착하자 당황학은 대뜸 소리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잡무를 보고 있던 당수백이 크게 당황하며 그를 봤다.
죽림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 왜 여기에 왔단 말인가? 이에 당수백은 뭔가 말을 할 듯, 말 듯 하다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물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그곳에서 나오시다니요.”
“언제까지 있으라고 기간을 정했더냐?”
“기간을 정하지 않은 건 평생 있으라는 뜻입니다.”
“어림없다. 누가 나를 가둘 수 있겠느냐?”
“당문을 우습게보지 마십시오.”
말은 그렇게 했으나 당수백은 당문의 모든 힘을 동원해도 당황학이 나가고자 하면 붙잡아 둘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문의 비전절기인 독과 암기는 은밀하게 써야 제 위력을 발휘한다. 한데 당황학은 이미 그 수법을 전부 알고 있었다.
더구나 일 년 전에 조윤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을 때보다 무공이 더 는 것 같았다. 방금 집무실로 들어오면서 크게 소리치지 않았더라면 그가 온 것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그때까지 당수백은 당황학의 기척을 전혀 잡아내지 못했었다.
그 정도면 사천에서는 청성파와 아미파의 은거 고수들 말고는 감히 상대할 자가 없었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니 그간 무공이 좀 는 게로구나.”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당수백의 도발에 당황학은 고개를 저었다.
“됐다. 너와 싸우고자 온 것이 아니다. 한동안 이곳을 떠나야겠기에 그걸 말하려고 온 거다.”
“어디로 가려는 겁니까?”
“조윤이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해서 비무를 좀 시킬 생각이다.”
“하면 실력 있는 아이들을 골라서 보내겠습니다.”
“아니다. 당문의 아이들로는 부족하다.”
자칫 당문을 낮춰보는 말 같았으나 당황학에게 그런 뜻이 없다는 걸 당수백은 알고 있었다. 그보다는 조윤의 재능이 그리 뛰어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누구와 비무를 시킬 생각입니까?”
“청성파(靑城派)에 갔다가 아미파(峨嵋派)로 갈 생각이다.”
흔히들 사천무림을 두고 구름 위에는 청성과 아미, 그 아래에는 당문이 있다고들 한다. 청성파는 도교의 사원이고, 아미파는 불교의 사찰이었다. 둘 다 수행을 목표로 하는 곳이었으나 무림문파로서의 명성도 굉장히 높았다.
이에 명문가의 자제들이 앞다투어 제자로 들어가려고 했고, 나름 무공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청성파와 아미파의 문부터 두드렸다.
그에 비해 당문은 아무래도 혈족 중심이다 보니 재능이 있어 찾아와도 쉽게 무공을 전하지 않았고, 직계와 조금 차별을 두었다.
“세 달이면 되겠군요.”
“아니, 최소 일 년은 걸릴 게다.”
“혹여 다른 곳도 가실 생각입니까?”
“이참에 새외를 돌아볼까 한다.”
“새외 말입니까?”
당수백이 되묻자 당황학이 은은하게 미소를 지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는 표정이었다.
“조윤이 내가 가르치는 마지막 제자가 될 것 같구나. 아직 어려서 다는 전하지 못하겠지만 재능이 뛰어나니 새로운 심득을 전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
한마디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 조윤을 제대로 키워 보겠다는 뜻이었다.
당수백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당황학이 죽는다니, 지금까지 그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워낙에 강해서 어떠한 때라도 늘 그곳에 그대로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받아라.”
“이게 뭡니까?”
“그동안 나름 깨달은 것들이 있어 정리를 한 것이다. 네게 조금은 도움이 될 게다. 제목은 생각한 바가 없으니 네가 붙이도록 해라.”
당수백은 선뜻 받지 못하고 당황학을 봤다. 그러자 당황학이 웃으면서 어서 받으라는 듯이 책을 한 번 더 내밀었다. 마지못해 그걸 받아 든 당수백이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말했다.
“청성파로 가든 새외로 가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뭐냐?”
“반드시 돌아오십시오.”
당황학에게 맡긴 아들이 죽었을 때는 정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믿고 따랐던 사람이기에 더욱이 그랬었다.
한데 세월이 흐르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다. 당황학에게 맡긴 제자들이 수련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 것을 보자 아들이 심약했던 것이 더 문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나 머리로는 그걸 알아도 마음으로 인정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을 필요로 했다.
조윤을 맡기고 오던 날, 당수백은 자신이 더 이상 당황학을 증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오늘 당황학이 금역을 벗어나 갑자기 찾아왔음에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아미파와 청성파를 찾아가는 것도 그다지 반대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마치 죽을 자리를 찾는 것처럼 새외로 간다고 하니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속죄는 아니더라도 뭔가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당황학이 당수백을 봤다. 당수백도 당황학을 봤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래, 그러마.”
당황학이 작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미련 없이 그곳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