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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27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27화

제1장 당문 (2)

 

 

“별 시답잖은 것들이 짜증 나게 하는군.”

 

사내가 거칠게 중얼거리면서 다가왔다. 조윤은 당효령을 뒤에 두고 검을 뽑아 들었다.

 

‘내가 지켜야 해.’

 

두려움에 다리가 떨려 왔으나 필사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사내가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어린놈이 덜덜 떨며 검을 들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가소로웠다. 그러나 조윤이 선공을 하자 크게 놀라면서 칼을 치켜들었다.

 

창!

 

검은 사내의 목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막혔다. 조윤은 검을 써 본 적이 없었다. 배운 것은 육합권이 다였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 당효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온 힘을 다해 휘두른 검이었다.

 

“으아아아아아!”

 

조윤이 재차 공격을 했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이라 사내는 가볍게 피하면서 칼을 내려쳤다.

 

땅!

 

“헉!”

 

기겁을 하며 간신히 막아내자 손이 찌르르하니 울려 왔다. 충격이 너무 강해서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십 년의 내공이 있다지만 조윤은 아직 그걸 활용할 줄 몰랐다. 뒷걸음질을 치면서 두 번 더 공격을 막아내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사내가 비릿하게 웃으면서 칼을 치켜들었다. 바로 그때 조윤의 눈에 그의 발목이 들어왔다. 이에 앞으로 구르면서 검을 마구 그어댔다.

 

“크아아악!”

 

발목을 베인 사내가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넘어졌다. 조윤이 넘어지는 걸 보고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던 터였다. 더구나 설마 그런 식으로 공격을 해 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조윤은 얼결에 베어 놓고 사내가 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모습을 보자 몸이 굳었다. 멍하니 넋을 놓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 조윤을 베기 위해 또 다른 사내가 다가오려고 했으나 발목을 베인 동료가 앞에서 몸부림치고 있어 쉽지가 않았다. 나루터의 다리는 두 사람이 간신히 서 있을 정도로 좁았고, 양쪽은 강물이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자 사내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사내의 눈에 악귀가 보였다. 피를 뒤집어쓴 젊은 사내가 쌍검을 휘두르며 동료들을 순식간에 쓰러트리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열 명 이상이 피를 흘리며 물에 빠졌다. 그리고 그 악귀가 눈앞에 도착했다.

 

“다…… 당가십이비…….”

 

그게 사내가 뱉은 마지막 말이었다. 쌍검이 춤을 추며 사내의 몸을 난자했다. 살이 베이고 뼈가 잘려 나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걸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조윤은 현실이 인식되지 않았다. 사람이 저렇게 죽을 수도 있던가?

 

무자비한 칼질에 십여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그에게 발목을 베인 사내는 심장에 검이 꽂히고 목이 뚫렸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잔악무도한 광경이었다. 그것이 뇌리에 너무도 선명하게 박히는 바람에 조윤은 그저 숨만 쉴 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젊은 사내는 조윤을 그대로 지나쳐 당효령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단목세가에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출발했으나 종적이 묘연해서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사내의 이름은 당호명, 당문의 최정예인 당가십이비 중 한 명이었다. 냉철한 성격의 그는 가주인 당수백의 수족과 같은 사람이었다.

 

당효령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조윤에게 갔다. 조윤은 크게 놀라 눈에 초점이 없었다. 그녀 역시 이런 처참한 광경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다리가 떨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조윤이 넋을 놓고 있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났다. 이 빌어먹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윤! 정신 차려! 조윤!”

 

바로 옆에서 부르고 있건만 그 소리가 아득하니 멀었다. 조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굳어 있었다. 보다 못한 당효령이 조윤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아주 나지막하게 귀에 대고 속삭였다.

 

“괜찮아, 이제는. 괜찮아.”

 

* * *

 

그날의 일은 쉽게 잊히지가 않았다. 조윤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자지 못했고, 그로 인해 정신 불안과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며 작은 일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그나마 당효령이 안아주면 그제야 조금 진정했다.

 

“봐봐. 저기가 당문이야.”

 

말에 타서 멍하니 당효령에게 기대어 있던 조윤은 눈을 들어 앞을 봤다. 단목세가도 그리 작지 않건만 당문은 그 이상으로 어마어마했다.

 

정문은 마치 거대한 성문을 연상케 했고, 그 안에 쭉 펼쳐진 넓은 공터와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삼 층 전각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또한 주위의 담 넘어 보이는 누각들은 몇 개인지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객청 역시 이십 명 정도가 한꺼번에 들어가도 될 만큼 넓었고, 차탁이나 의자 등은 고급스러운 흑단목으로 제작되었다. 그 외에 벽에 걸린 족자나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기화요초들도 전부 범상치가 않았다.

 

“어서 오너라.”

 

짙은 녹의를 입은 중년인이 당효령을 반겼다. 이곳 당문의 가주이자 당효령의 아버지인 당수백이었다.

 

“아버님.”

 

“그래, 고생이 많았다.”

 

“아니에요.”

 

당수백이 당효령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다독여 줬다. 독술이 뛰어나서 그가 죽이고자 마음먹으면 누구든 죽는다. 그래서 강호에서는 독왕(毒王)이라 부르며 다들 두려워했으나 자식들에게는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그저 자상한 아버지였다.

 

“저 아이가 단목태성의 아들이냐?”

 

“네.”

 

당수백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조윤이 포권하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단목조윤이라고 합니다.”

 

“당수백이다. 일단 앉아라.”

 

세 사람이 자리에 앉자 하녀들이 차를 내왔다. 당수백은 차를 마시며 당효령을 향해 다정한 어투로 물었다.

 

“단목세가가 그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네 걱정을 많이 했었다.”

 

“죄송해요. 허락도 없이 가서.”

 

“아니다. 네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갑자기 혼사가 결정되어서 당황했겠지.”

 

“이제 안 그럴게요.”

 

“그래. 착하구나. 단목세가에서는 어떻게 빠져나온 게냐? 자휘와 순량이 찾지 못해 고생을 했었다.”

 

“그런 줄은 몰랐어요.”

 

당효령은 그날 조윤을 따라 단목세가를 나가서 겪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했다. 간간이 맞장구를 치며 듣고 있던 당수백은 당효령이 조윤을 상당히 좋게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그게 예전이었다면 반길 일이었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조윤이 신의문의 의원조차 포기한 단목태성을 치료했을 정도로 의술이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당자기가 그 재능에 반해서 만사를 다 제쳐두고 단목세가로 가서 오지 않고 있다는 보고를 전에 받았었다.

 

확실히 놀랄 정도로 대단한 재능이지만 안타깝게도 무재(武才)가 아니었다.

 

무가(武家)에 필요한 건 힘이었다. 다른 건 그다음이다. 더구나 단목세가는 완전히 멸문해서 생존자라고는 오로지 조윤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끼는 딸을 주자니 내키지가 않았다. 그러나 조윤이 산적들을 설득해서 오히려 호위로 고용했다는 말을 듣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허, 그랬더냐?”

 

이제 열 살인 아이가 그런 기지를 발휘했다니, 당수백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조윤은 마음고생이 심했던지 초췌한 모습으로 불안하게 계속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단목세가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

 

“네?”

 

“단목세가 말이다.”

 

“네.”

 

“좋은 소식이 아니라 말하기가 꺼려지는구나.”

 

“괘, 괜찮습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지, 짐작하고 있습니다. 사실대로 전부 말해 주셔도 되, 됩니다.”

 

조윤이 조금 더듬거리기는 했으나 또박또박 대답을 하자 당효령이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친동생인 당자휘에게도 저리 대하지 않거늘, 옆에서 보기에도 정이 가득한 행동이라 당수백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

 

“하면 이야기해 주마. 단목세가는 멸문했다. 공손세가가 인근의 군소 문파들을 규합해서 기습을 했고, 잔악하게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죽였다. 살아남은 건 너와 당이주뿐이다.”

 

역시나,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직접 확인하니 충격이 적지 않았다.

 

이곳은 원시적이고 포악했다. 특히 약자에게 그랬다. 천민으로 지내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일이었건만 단목세가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걸 잊고 있었다.

 

백모연은 친자식을 대하듯이 조윤을 아꼈다. 육예와 대호는 친동생이나 다름없었다. 그들 모두 조윤에게는 가족이었다. 한데 전부 죽었다.

 

“조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서 몸을 덜덜 떠는 조윤을 보고 당효령이 재빨리 품에 안았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조윤은 쉽게 안정을 찾지 못했다.

 

“조윤은 며칠 전에 끔찍한 광경을 보고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런 일이 있었더냐?”

 

“당호명이 사람을 마구 죽이는 걸 봤어요.”

 

“흠.”

 

당수백은 어떤 상황이었을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당호명은 일 처리는 확실하나 손을 쓸 때 좀 과한 감이 있었다. 보나마다 상대를 참혹하게 난자하며 베어버렸을 것이다. 이제 열 살인 아이가 그걸 봤다면 저렇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괜찮아, 효령 누이. 괜찮아.”

 

조윤은 여전히 떨고 있었으나 억지로 당효령을 밀어냈다. 그리고 당수백을 보며 물었다.

 

“어, 어머님은……. 어머님은 어디에 계시죠? 당시의 사, 상황을 직접 듣고, 싶습니다.”

 

“당이주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 멀쩡하면 그게 이상한 거지. 그때의 상황을 듣고 싶다면 당순량을 불러주마. 당자휘와 함께 당이주를 구해 온 것이 그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당수백은 하녀를 시켜 당순량을 불러오도록 했다. 잠시 후 객청으로 들어선 당순량은 당효령이 무사한 것을 보고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당시에 그는 당자휘와 함께 당효령부터 찾았으나 세가 밖으로 나갔다는 걸 알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에 단목태성과 백모연, 단목무호가 죽었고, 당이주마저 죽임을 당하려는 찰나에 간신히 구해냈다. 이후 당문에 연락을 하는 과정에서 당효령이 무사한 것을 알고 곧바로 이곳으로 온 것이다.

 

“저 아이가 그때의 일을 듣고 싶어 한다.”

 

“알겠습니다.”

 

당순량은 당시의 상황을 담담하니 이야기했다. 조윤은 그걸 들으면서 혹여 백모연이나 대호, 육예 등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렸다. 당순량 같은 고수도 당이주 한 명을 살리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공이 그보다 못한 사람들이 살아남았을 리가 없었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가문이 그리되었으나 네가 살아 있으니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힘내거라.”

 

이제 열 살인 어린아이가 부모의 죽음을 전해 들으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냉정하기로 소문난 당순량이지만 위로의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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