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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24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24화

제10장 최선 (2)

 

 

당효령은 최근 짜증이 늘었다. 혼인하기까지 아직 오 년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급할 건 없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단목세가에서 혼사를 포기하게 하고 싶었다. 한데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당이주와 백모연이 마치 친딸을 대하듯이 너무나 잘해 주고 잘 챙겨 주니 파혼에 대한 말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당효령의 어머니는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 준 적이 없었다. 명문세가의 여식으로서 몸가짐을 조심하라며 항상 혼을 냈다. 그나마 아버지인 당수백이 잘 다독여 주지 않았더라면 모난 성격이 되었을 것이다.

 

“왔구나.”

 

“어서 오너라.”

 

후원에 있는 정자에 도착하자 당이주와 백모연이 당효령을 반겼다. 당효령은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다가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녀들의 머리에 꽂혀 있는 비녀로 향했다.

 

조윤이 선물한 비녀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크게 내색하지 않았으나 두 사람은 마치 자랑하듯이 저 비녀를 항상 꽂고 다녔다.

 

당효령이 보기에도 눈에 차도록 예뻤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알아봤지만 직접 주문을 해서 만든 물건이라 비슷한 것조차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게 탐이 나나 보구나.”

 

당효령의 시선을 알아챈 백모연이 놀리듯이 말했다. 그러자 당효령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 아니에요. 하도 예뻐서 그만.”

 

“이미 조윤에게 말해 놓았다. 네게 줄 것도 하나 만들어 두라고.”

 

“정말요?”

 

“역시, 탐이 났던 게구나.”

 

“아니요. 그…….”

 

내심을 들킨 당효령은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백모연과 당이주가 그런 당효령을 귀엽다는 듯이 봤다. 자신들도 저런 때가 있지 않았던가?

 

어린 당효령을 보고 있자니 옛날 일이 생각나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조윤과는 어떠냐? 이야기는 좀 나누고 있느냐?”

 

“네? 아니요.”

 

“조윤이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하는 것은 웬만한 어른보다 깊다. 이야기를 나눠 보면 그 아이가 다시 보일 게다.”

 

당효령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래 봤자 열 살 아니던가? 더구나 애늙은이 같은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봐 왔다. 바로 아래의 동생인 당자휘가 그랬다. 늘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아이답지 않고 어른처럼 말하며 행동했었다. 덕분에 당효령은 철이 없다고 어머니께 곧잘 혼이 나곤 했었다.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던 당효령은 할 일이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과 함께 있으면 편하고 좋기는 한데 조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심사가 뒤틀렸다.

 

조윤은 첫날 대면한 이후로 한 달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당이주의 생일에 잠깐 마주친 것이 다였다.

 

처음에는 안 봐서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어쨌든 약혼녀인데 한 번쯤은 와봐야 할 것 아닌가?

 

한데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꼭 무시당한 것 같았다. 처음 세가로 오는 도중 큰길에서 마주쳤을 때 홱 돌아서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재수 없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는데 때마침 조윤이 보였다. 그는 뭐가 그리 바쁜지 어딘가로 쪼르르 달려가고 있었다. 지금은 글공부를 할 시간인데 어디를 가는 걸까?

 

당효령은 호기심에 조용히 뒤를 밟았다. 조윤은 곽우와 만나서 뭐라고 몇 마디 나눈 후에 곧바로 세가의 담을 넘었다. 정문을 놔두고 담을 넘는 것으로 봐서 필시 떳떳한 일이 아니었다.

 

당효령은 마침 잘되었다 싶었다. 몰래 따라가서 뭐 하는지 알아보고 그걸 핑계로 파혼할 생각이었다.

 

조윤과 곽우는 큰길을 따라 한참이나 가다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그렇게 외곽으로 빠지자 당효령은 더욱이 수상쩍었다.

 

골목은 이리저리 꺾이면서 계속 이어져 있었다. 당효령은 기척을 죽이고 따라가다가 두 사람이 좌측 골목으로 휙 사라지자 당황하며 재빨리 달려갔다. 하지만 곧 다급하게 다시 몸을 숨겼다.

 

“어서 오십시오, 소신의.”

 

“오셨군요. 오늘도 치료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천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조윤을 반기고 있었다. 조윤은 그들의 인사를 뒤로한 채 낡고 허름해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지저분한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조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나와서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줄을 서세요. 새치기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순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밑바닥에서 굴러먹을 대로 구른 험악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모두들 아이의 말에 따라 한 줄로 쭉 늘어섰다.

 

당효령은 뭐 하는 건지 궁금해서 저도 모르게 조금씩 그리로 다가갔다.

 

“응? 뭐요? 아가씨도 치료를 받으려고? 그럼 줄을 서시오.”

 

앞에 있던 무식하게 생긴 사내가 당효령을 위아래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제야 당효령은 너무 가까이 왔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골목으로 숨으려고 했다. 한데 마침 밖으로 나오던 곽우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어? 혹시 당 소저가 아닙니까?”

 

당효령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에 곽우가 다가와서 다시 물었다.

 

“맞는군요.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아니. 그, 그게…….”

 

“아! 혹시 소가주님을 보려고 온 겁니까?”

 

뭐라고 둘러댈 말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곽우가 그렇게 물어보자 당효령은 옳다구나 하고 맞장구를 쳤다.

 

“네, 맞아요.”

 

“그렇군요.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지만 소가주님이 여기에 오는 건 비밀로 해 주십시오. 가주님이나 가모님들이 알면 혼이 날 겁니다.”

 

“알았어요. 그런데 안에서 뭐 하는 거죠?”

 

기왕지사 들킨 것, 당효령은 아예 대놓고 물어봤다. 그러자 곽우가 웃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러지 말고 직접 가서 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당 소저가 온 걸 알면 소가주님이 좋아할 겁니다.”

 

“그가 좋아한다고요?”

 

당효령이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무리 첫 만남이 좋지 않았다지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한 번쯤은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조윤은 얼굴조차 비춘 적이 없었다.

 

“물론입니다. 어서 이쪽으로 오십시오. 아, 그리고 소가주님에 대해서는 비밀입니다. 다들 당 의원님의 제자라고만 알고 있습니다.”

 

“알았어요.”

 

곽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끙끙 앓고 있는 환자들이 한쪽에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몸에는 침과 뜸이 놓여 있었고, 구석에서는 웬 젊은 여자가 쭈그리고 앉아서 약을 달이고 있었다.

 

탁자에 앉아서 노인을 진맥하던 조윤은 당효령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곧 미소를 지으면서 인사를 했다.

 

“어서 와요.”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죠?”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어요.”

 

누가 그걸 몰라서 묻나?

 

그녀는 소가주인 그가 왜 이런 곳에서 하층민들을 치료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러나 조윤은 대답 대신 이것저것 부탁을 하면서 그녀를 부려먹기 시작했다.

 

환자는 많은데 도움을 주는 사람이 적어서 그렇잖아도 일손이 부족하던 차였다. 곽우는 무사였고, 수민과 수문도 아는 것이 없어서 뭔가를 시킬 때는 일일이 가르쳐야만 했다.

 

한데 당효령은 당문의 여식답게 의술을 알고 있어서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얼결에 조윤이 시키는 대로 약재를 썰고, 달이고, 옆에서 보조를 하던 당효령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담?’

 

생각은 그랬으나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의술을 배우기는 했으나 이렇게 활용해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게 의외로 재미도 있고, 치료가 끝나면 사람들이 마치 명의를 대하듯이 진심으로 떠받드는 것도 좋았다.

 

어느새 한 시진이 훌쩍 지나자 조윤이 모두를 향해 말했다.

 

“모두 수고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예요. 수문은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이틀 뒤에 다시 오라고 하고, 곽우 아저씨와 수민 누님은 뒷정리를 좀 해 주세요.”

 

지시를 받은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조윤은 당효령에게 다가갔다.

 

“수고했어요. 역시 당문의 아가씨라서 그런지 솜씨가 좋네요. 곽우 아저씨보다 훨씬 나아요.”

 

“왜 비교 대상이 하필 접니까?”

 

조윤의 말에 곽우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수민이 미소를 지으면서 끼어들었다.

 

“그래도 무사님이 우리보다는 낫잖아요. 우리가 비교 대상이 되면 당 소저께서 기분 나빠 하신다고요.”

 

당효령은 격의 없이 천민과 대화를 나누는 조윤과 곽우가 신기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다. 천민을 대할 때는 항상 고압적인 자세로 명령만 내렸었다.

 

“그럼 이틀 뒤에 보자.”

 

“네, 그때 뵈어요.”

 

수민과 수문의 인사를 받으며 조윤은 그곳을 나왔다. 그러자 조용히 옆에서 함께 걷던 당효령이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다시 물었다.

 

“왜 저기에서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는 거죠?”

 

“하고 싶으니까요.”

 

“단지 그래서 한다고?”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요?”

 

조윤이 오히려 되묻자 당효령은 말문이 막혔다. 하고 싶어서 한다는데 뭐라고 할 것인가?

 

사실 그녀도 조윤처럼 뭐든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지금보다 자유스럽기를 원했다. 그러나 명문가의 여식으로 태어난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항상 몸가짐을 조심해야 했고, 함부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다. 물론 좋은 혼처와 신변의 안전을 위해 그런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때론 답답함에 숨이 막혀 왔다.

 

사실 파혼을 하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성인이 되자 어렵게 약간의 자유를 손에 넣었다. 그 전에는 세가 밖을 나가 본 것이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무공은 몸을 건강히 하는 정도밖에 익힐 수가 없었고, 당문의 비전인 독술과 암기는 배울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명문세가의 여식답게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고, 여자는 시집을 가면 출가외인이라는 것이 또 다른 이유였다.

 

“나도 너처럼 자유로웠으면…….”

 

당효령은 씁쓸한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중얼거렸다. 그걸 보고 조윤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러나 곧 웃으면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는 당신을 구속하지 않아요. 혼인을 해도 그럴 거예요. 그러니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요.”

 

멍하니 조윤의 말을 듣고 있던 당효령은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래서인지 조윤에게 잡힌 손이 뜨겁게 느껴져 뿌리치듯이 확 빼내며 몸을 돌렸다. 그 같은 반응에 조윤은 자신이 말을 잘못했나 싶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 * *

 

“어?”

 

맨 먼저 연기를 발견한 건 조윤이었다. 위치로 봐서는 단목세가가 분명했다.

 

“세가에서 왜 연기가 올라오죠? 불이 난 건가?”

 

“빨리 가 봐요.”

 

“기다리십시오.”

 

다급하게 달려가려는 당효령을 곽우가 붙잡았다. 뭔가가 이상했다. 단목세가에서 불이 날 이유가 없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먼저 사실을 확인한 후 움직여야 했다.

 

“적이 공격해 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소가주님이 우선적으로 노려질 겁니다.”

 

“아.”

 

그제야 당효령이 이해하고 짧게 탄성을 냈다. 곽우의 말대로 만약 적이 공격해 온 거라면 세가로 돌아가기보다는 상황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았다.

 

“우선은…….”

 

“저기 있다!”

 

“이쪽이다!”

 

곽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낯선 사내들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들은 모두 세 명이었는데 칼을 들고 있어서 대로에 있던 사람들이 겁을 먹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을 쳤다. 그 틈에 곽우도 조윤과 당효령을 잡아끌며 무작정 달렸다.

 

“서라!”

 

“도망간다! 어이! 이쪽이다!”

 

뒤쫓아 오는 사내들의 수가 점점 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잡히고 만다.

 

“두 분은 수민의 집으로 가십시오.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알았어요.”

 

당효령이 대답하며 조윤의 손을 잡고 달렸다. 조윤은 아직도 뭐가 뭔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위험하다는 것만은 여실히 알 수가 있었다.

 

“흐압!”

 

뒤쫓던 여섯 명의 사내들을 향해 검을 뽑아 든 곽우가 달려들었다.

 

검과 도가 빠르게 부딪치면서 사내들이 쫙 흩어졌다가 다시 짓쳐들었다. 그 와중에 곽우는 한 명의 다리를 베고 옆에 있던 사내의 팔을 잡아 방패로 삼았다. 동료가 붙잡히자 잠시 주춤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러 두 명의 팔을 베고 가슴을 찔렀다. 이어서 붙잡고 있던 사내의 다리를 차서 넘어트리고 목을 베자 남은 두 명이 겁을 먹고 물러났다.

 

싸울 때는 기세가 중요하다. 기세가 꺾여 겁을 먹으면 평소 움직임의 반도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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