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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22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22화

제9장 당효령 (2)

 

 

이른 아침 눈을 뜬 조윤은 멍하니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가 세수를 했다. 매일 살인적인 일과를 소화해 내느라 아침에는 늘 이 모양이었다. 잠을 자도 피로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제 열 살이건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았다.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만약 당자기가 준 당의환 덕분에 내공이 늘지 않았다면 밤마다 코피를 쏟았을지도 모른다.

 

“오셨군요.”

 

아침 수련을 위해 뒤뜰로 나가니 늘 그렇듯, 단목몽오가 먼저 나와 있었다. 그는 인상이 날카롭고 얼굴에 칼자국까지 있어서 외모만으로도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었다. 또한 성격이 호전적이어서 가르칠 때 상당히 거칠었다. 이에 조윤은 요령을 피우지도 못하고 아침마다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틀렸습니다. 다시 하십시오.”

 

벌써 저 말을 몇 번째 듣는지 모른다. 틀렸으면 어디가 틀렸는지 알려주고 교정을 해줘야지, 무작정 다시 하란다.

 

조윤은 불만이 많았지만 꾹 눌러 참으며 다시 육합권(六合拳)을 했다.

 

육합권은 손과 발의 합(合), 팔꿈치와 무릎의 합, 어깨와 과의 합을 통해 힘을 내는 권법이었다. 하나의 투로에 총 열일곱 개의 초식이 담겨 있으며, 처음 다섯 개의 초식을 통해 오행의 원리를 깨닫고, 이후 열두 개의 초식을 익혀 그 활용을 습득하게 되어 있었다.

 

“틀렸습니다.”

 

또다시 같은 말을 듣자 조윤은 그동안 인내하던 것이 뚝 끊어졌다. 이에 하던 걸 멈추고 단목몽오를 보며 말했다.

 

“제가 계속 틀렸다고 하는데 어디가 틀렸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먼저 한번 보여 주시면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좋겠군요.”

 

단목몽오가 육합권의 기식(起式)을 취했다. 그러자 눈빛이 사납게 바뀌면서 세찬 기세가 느껴졌다.

 

“흠!”

 

짧게 내뱉는 호흡 소리와 함께 주먹이 뻗어 나가면서 팡! 하는 파공음이 울렸다. 내공은 전혀 쓰지 않고 오로지 근력으로만 초식을 펼치는데도 그랬다.

 

조윤은 집중해서 그가 하는 걸 단 한 동작도 놓치지 않았다. 기세가 하도 대단해서 몇 번이나 움찔움찔 몸을 떨었으나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틀렸다고 한 거구나.’

 

조윤은 방금 그가 보여준 육합권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서 되돌렸다. 예전에 병원에서 수술이 끝난 후에 했던 이미지트레이닝과 같은 방법이었다.

 

한 차례 육합권을 모두 보여 준 단목몽오는 조윤이 가만히 눈을 감고 있자 웃음이 나왔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저러고 있다. 저런다고 실력이 늘 리는 없지만 단목몽오는 어디 한번 해보라는 생각으로 가만히 나뒀다.

 

그러나 일각(一刻)이 넘도록 조윤이 꼼짝도 않고 있자 감탄이 나왔다. 중간에 혹여 조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으나 저렇게 서서 자는 아이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굉장한 집중력이로군.’

 

그런 생각을 하는데 조윤이 눈을 떴다. 그러더니 육합권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말없이 그걸 지켜보던 단목몽오는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조윤이 하는 건 아까와는 완전히 달랐다. 아까는 합이 맞지 않아 힘이 꽉 갇혀 있었는데, 지금은 손과 발, 팔꿈치와 무릎, 어깨와 과의 합이 딱딱 맞아떨어지면서 힘이 쭉쭉 뻗어 나갔다. 또한 강할 때와 부드러워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힘의 흐름까지 통제하고 있었다. 여전히 동작은 어설펐지만 육합권을 완전히 이해한 움직임이었다.

 

“허!”

 

천재란 저런 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어떻습니까, 이게 맞습니까?”

 

“맞습니다.”

 

단목몽오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조윤이 잘하는데 이상하게 자신이 뿌듯했다. 가르치는 재미를 이제야 안 것이다.

 

솔직히 그동안은 단목태성이 가르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무공을 수련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건만 아이를 가르치라니.

 

더구나 무공을 배우기 시작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고, 이제 열 살이었다. 그래서 대충 틀이나 잡아주고 이후에는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조윤의 재능을 보니 욕심이 났다. 사실 조윤은 현대에서 살았던 삶 때문에 이해력이 좋은 거지 재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목몽오가 그런 걸 알리가 없었다.

 

“앞으로는 대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련이요?”

 

“투로의 초식들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고 몸에 습득하는 걸 말합니다.”

 

“네.”

 

조윤은 눈을 빛내면서 말하는 단목몽오가 겁이 났다. 지금도 이렇게 굴리는데 대련을 하면 얼마나 패대기를 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며칠 후면 가모님의 생신입니다. 그때 수련의 성과를 보여주려고 이 공자가 무공 수련을 굉장히 열심히 한다고 하더군요. 형으로서 부끄럽지 않도록 하십시오.”

 

“생신이 언제죠?”

 

“사흘 후입니다.”

 

조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최근 당이주가 백모연과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고, 자신에게도 잘해 주고 있으니 뭔가 선물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수련이 끝난 후 조윤은 글공부를 봐 주는 이석경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이화 대신에 호위를 맡고 있는 곽우를 설득시켰다. 몰래 세가를 나가려면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안 됩니다.”

 

이야기를 들은 곽우는 딱 잘라 반대했다. 그러나 조윤이 당이주의 선물을 사기 위해서라고 간곡히 부탁하자 마음이 약해졌다.

 

“선물만 사고 올 거라 잠깐이면 돼요. 함께 가면 위험한 일도 없잖아요.”

 

“알겠습니다. 대신에 이 일은 모두에게 비밀로 해야 합니다.”

 

“물론이죠.”

 

두 사람은 만약을 위해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세가의 담을 넘었다. 큰길로 나가니 때마침 장이 서는 날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조윤은 단목세가에 온 이후로 처음 나오는 거라 약간 들떴다. 그러나 도시의 화려함을 경험한 터라 별다른 감흥이 일지는 않았다.

 

당이주에게 줄 선물도 길가에서 파는 것이라 그런지 전부 조잡해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었다. 이에 뭐를 사야 할지 고민하며 걷고 있을 때였다.

 

앞에서 세 사람이 말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왔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분분히 비켜섰으나 그러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꺄아아악!”

 

젊은 여인이 넘어지자 말이 놀라서 앞발을 치켜들며 멈춰 섰다. 그러자 말에 타고 있던 소녀가 크게 휘청했으나 곧 중심을 바로잡았다.

 

“워, 워.”

 

“무슨 짓이냐? 감히 누구 앞을 막아서는 것이냐?”

 

말에 타고 있던 사내가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그러나 넘어진 여인은 정신을 잃은 상태라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조윤은 재빨리 여인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겉보기에는 멀쩡해서 단지 의식을 잃은 것 같았으나 또 모르는 일이었다. 당장에 의심되는 것은 뇌진탕이었다. 조윤은 단전의 기운을 움직여서 여인의 몸으로 흘려보냈다. 기를 이용해서 진맥을 하려는 것이다.

 

당의환 덕분에 십 년의 내공을 얻었고, 당자기에게 내기를 이용하여 진맥하는 법을 배웠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내기를 이용한 진맥은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라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빨리 비키지 않고 뭐 하는 거냐? 죽고 싶으냐?”

 

말에 타고 있던 사내가 다시 한 번 소리쳤으나 조윤은 계속 여인을 살폈다.

 

“비키라는 말이 들리지 않느냐?”

 

급기야 말에 타고 있던 사내가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들었다. 그걸 보고 곽우가 나섰다.

 

“혹시 당문에서 오신 분들입니까?”

 

“우리를 아는가?”

 

“옷차림을 보고 짐작했을 뿐입니다.”

 

말에 타고 있는 묘령의 소녀는 물론이고 두 명의 사내들 역시 모란이 수놓인 짙은 녹의를 입고 있었다. 당문 사람들은 공적인 일을 처리할 때나 세가 밖을 나갈 때는 항상 저런 옷을 입는다.

 

녹의를 입는 이유는 대부분의 독이 녹색이라 착시 현상을 일으켜 상대를 속이기가 쉽기 때문이고, 모란은 당문의 상징이었다.

 

“흥! 알면 어서 비켜라.”

 

“사람이 다쳤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우리가 알 바 아니다. 어서 비켜라.”

 

안하무인이 따로 없었다. 사람을 다치게 해놓고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당문이라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곽우는 힐끗 뒤에 있는 조윤을 봤다. 때마침 조윤의 응급처치 덕분에 여인이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뇌진탕은 아니었다. 크게 놀라서 정신을 잃은 거라 혈을 짚고 침을 놓자 금방 정신을 차린 것이다.

 

“괜찮으세요?”

 

“네? 네.”

 

“놀라서 그런 것이니 무리하지 마세요, 곽우 아저씨.”

 

조윤이 부르자 곽우가 다가와 여인을 부축해서 길가로 비켜섰다. 그러자 말에 타고 있던 사내가 코웃음을 치면서 묘령의 소녀에게 말했다.

 

“가시죠, 아가씨.”

 

소녀가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조윤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조윤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소녀는 무시당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빴지만 딱히 시비를 걸 만한 일이 아니라 말을 몰아 그곳을 벗어났다.

 

“굉장히 무례한 사람들이군요.”

 

“당문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아마 세가로 가고 있을 겁니다.”

 

곽우의 말을 들으면서 조윤은 소녀와 두 명의 사내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 * *

 

조윤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어 뭘 선물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에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현대의 병원에서 일할 때 유독 긴 머리를 나풀거리던 여자가 있었다. 치료에 방해가 되니 묶으라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비녀를 사서 선물했는데 그게 마음에 들었던지 항상 하고 다녔었다.

 

조윤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제법 손재주가 있는 장인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림까지 그려 가며 비녀에 대해서 한참을 설명했다.

 

“만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맡겨 주십시오.”

 

“언제까지 되죠?”

 

“이틀이면 됩니다.”

 

장인이 호언장담을 하자 조윤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이 시대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모양이고 직접 주문해서 만든 거라 의미가 컸다. 설명한 대로 장인이 잘만 만들어 준다면 당이주도 좋아할 거라 생각되었다.

 

세가로 돌아오니 시녀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백모연이 부른다는 말을 전했다. 조윤은 밖으로 나간 것이 들켜서 그런 줄 알고 마음을 졸였으나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대청에는 백모연과 당이주 외에 아까 길에서 봤던 세 사람이 함께 있었다. 그들은 조윤을 보고 살짝 놀란 눈을 했다. 특히 묘령의 소녀는 드러난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이번에 조윤과 혼인하기로 한 당효령이었다. 명문세가의 여식은 대부분 부모의 뜻에 따라 정략혼을 하게 된다. 당효령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혼사가 정해지자 반발심이 생겼다. 더구나 혼인을 할 상대가 자신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열 살짜리 꼬맹이라고 한다.

 

혼인하기가 싫어서 아버지인 당수백을 설득해 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단목세가에서 결정을 번복하게 만들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직접 찾아온 것이다. 한데 첫 대면부터 꼬여 버렸다.

 

“왜 그러니? 어디가 불편하니?”

 

당이주가 묻는 말에 당효령은 고개를 저었다. 아까 있었던 일은 차마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 당효령은 혼사 문제로 화가 나 있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평소 같았으면 대로에서 그렇게 말을 타고 달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다친 사람을 그냥 두고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데 하필 그걸 조윤이 봤으니, 심사가 상당히 불편했다.

 

“인사해라. 곧 너와 혼인할 당효령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단목조윤이라고 합니다.”

 

조윤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인사를 했다. 그러자 당효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답례를 했다.

 

“당효령이에요.”

 

조윤의 나이가 훨씬 어렸으나 정식으로 선을 보는 자리나 마찬가지라서 당효령도 예의를 차려야만 했다.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으나 두 사람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직 조윤의 나이가 어리니 오 년 뒤에 성인이 되었을 때 정식으로 혼인하게 될 게다. 그때까지 정혼자로서 서로를 많이 아껴 주어라.”

 

“네.”

 

당효령이 먼저 대답을 했다. 그녀는 아직 오 년이라는 시간이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 안에 어떻게 해서든 이 혼사를 깰 생각이었다.

 

그랬을 경우 사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건 그녀였다. 파혼을 하면 남자는 상관없으나 여자에게는 큰 흠집이 된다. 그럼에도 당효령은 아직 혼인할 마음이 없었다. 한참이나 어린 조윤과는 더더욱 하기가 싫었다.

 

어색한 자리가 끝나자 조윤은 지친 얼굴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잠시 그러고 있자 아까 본 당효령이 생각났다. 첫 대면이 좋지 않아서였을까?

 

예쁘고 총명해 보였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부부의 연을 맺고 함께 살아야 할 여인이었고,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다. 하니 앞으로 조금씩 이해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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