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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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7화
제7장 총회 (2)
당이주는 크게 놀란 눈으로 멍하니 단목태성을 쳐다봤다. 백모연 역시 지금의 일을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놀라움이 컸다. 그러나 누구보다 가장 놀란 건 다름 아닌 공손미부였다. 침상에 누워 있어야 할 그가 어떻게 이곳에 왔단 말인가?
단목태성이 자리에 앉을 동안 대전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눈동자만 굴리며 상황을 파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상공, 괜찮으신 건가요?”
“괜찮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리를 하는 이유는 지금이 아니면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상공. 벼, 병이 치료된 건가요?”
공손미부가 더듬거리며 물었으나 단목태성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을 내저었다.
“하던 거 마저 하라.”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되잖아요. 지금은 우선 쉬셔야 해요.”
“맞습니다, 가주님. 우선은…….”
“조용!”
단목태성이 크게 일갈하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병든 호랑이라지만 그 기세만은 여전했다.
“하던 것을 하라.”
순간 공손미부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녀는 뭔가를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다.
“험! 그럼 아까 말한 대로 피를 섞어 보겠소.”
당자기가 나서서 단목태성의 손가락에서 피를 조금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피를 섞었으나 되지 않았다. 이어서 당이주의 피를 섞었으나 마찬가지였다.
“모두 봐서 알겠지만 부부라고 해도 피가 섞이지 않소이다. 하지만 친자는 다르오.”
당자기는 다시 단목태성의 피를 받아서 이번에는 단목무호의 피를 섞었다. 그러자 아까와는 달리 피가 서로 섞였다.
“오…….”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신기함에 탄성을 냈다.
“그럼 이번에는 조윤의 피를 섞어보겠소.”
단목태성이 먼저 피를 한 방울 떨어트리자 조윤이 거기에 자신의 피를 떨어트렸다. 사람들은 결과가 어찌 될지 궁금해 잔뜩 긴장하며 바라봤다.
피는 섞일 듯 말 듯 하더니 이내 하나가 되었다. 조윤이 단목태성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보다시피 조윤은 가주님의 아들이 확실합니다.”
여기저기에서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조윤으로 인해 단목세가가 크게 흔들릴 걸 예상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순명도 하라.”
단목태성의 말에 공손미부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그런 반응을 보고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단지 친자 확인을 할 뿐이거늘 왜 저런단 말인가?
“상공, 이미 다 증명되었는데 순명이도 하라니요?”
단목태성의 눈이 험악해졌다.
“혹시 저를 의심하는 건가요? 그럼 순명이 말고 교연이로 해요. 순명이는 지금 몸이 좋지 않아요.”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상공!”
“나는 내 생각이 틀리기를 바라고 있소.”
단목태성이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당자기가 단목순명에게 다가갔다.
“안 돼요!”
“피를 조금만 받으면 됩니다.”
“상공께서 어찌 저를 의심한단 말입니까? 아버님이 단목세가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데!”
“만약 순명이의 피가 나와 섞인다면 나는 무릎을 꿇고 사과할 것이오.”
“그럴 순 없어요! 차라리 여기에서 내가 죽겠어요!”
공손미부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목에 대었다. 사람들이 놀라서 말리려고 했으나 정말 목을 그을 것 같아서 섣불리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대가 그럴수록 나의 의심만 깊어 갈 뿐이오. 설령 그대가 죽는다 해도 나는 확인할 것이오.”
공손미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단목태성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원망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당신을 사랑한 대가가 이거로군요. 다시 한 번 묻겠어요. 꼭 이래야 하나요?”
단목태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의 대답이었다. 단목태성이 물러날 뜻이 없다는 것을 안 공손미부는 단목순명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몸을 날려 대전 밖으로 사라졌다.
“헛! 저게 무슨…….”
“가모님!”
사람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공손미부가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도대체 왜 갑자기 도망을 쳤단 말인가?
그러다 ‘설마!’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공손미부는 아들인 단목순명의 친자 확인을 거부했다. 그리고 도망쳤다.
왜?
당연히 이유는 하나였다.
“가주님!”
“설마 지금 저희가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까?”
“이게 무슨…….”
“조용히 하라.”
장내가 시끌시끌해지자 단목태성이 모두를 조용히 시켰다.
“몽오!”
“네, 가주.”
단목몽오는 낙성검대의 대장이었다. 날카로운 인상에 얼굴에 검상이 있었다. 무공이 뛰어나고 성격이 호전적이었으며 오로지 단목태성의 명령만 들었다.
“낙성검대를 모두 이끌고 공손미부를 잡아 오너라. 반항할 시 죽여도 좋다. 만약 공손세가가 방해를 한다 해도 망설이지 마라.”
“가주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혹여 공손세가를 적으로 돌리시려는 겁니까?”
공손순명을 지지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다 같이 굳었다. 단목태성이 이리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줄은 몰랐다. 자칫 공손세가와 대립하게 된다면 그들의 입지가 상당히 좁아진다.
“뭘 하는가? 가지 않고.”
“명을 받듭니다.”
단목몽오가 대전을 나가자 웅성거림이 커졌다. 단목태성이 왜 저러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혹여 공손미부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해서 단목순명을 낳았다고 해도 이런 식의 일 처리는 옳지 않았다.
더구나 아직 확인된 사실이 아니었다. 공손세가에서 이 사실을 알면 결코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것인데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는 걸까?
“맹찬!”
단목태성이 부르자 총관인 단목맹찬이 앞으로 나섰다.
“부르셨습니까?”
“너는 종학과 함께 세가의 무사들을 모아 공손세가의 반발에 대비해라.”
“그들과 전쟁을 치를 생각이십니까?”
순간 싸한 긴장감이 흐르면서 모두가 단목태성을 쳐다봤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상대가 누구건 끝장을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되레 당한다.
한데 공손세가는 당문을 함께 섬기는 가신 가문이었다. 이겨도 얻는 것이 없었다.
“필요하다면 그리할 것이다.”
아니기를 바랐건만!
여기저기에서 탄성과 한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몸이 성치 않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시기가 좋지 않습니다.”
“가라.”
더 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단목태성이 짧게 말을 내뱉었다. 그 기세에 단목맹찬은 저도 모르게 움찔 떨었다.
“명을 받듭니다.”
단목맹찬이 밖으로 나가자 단목태성이 곽우를 봤다. 그러자 곽우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단목태성이 어떤 명령을 내릴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를 데리고 오라.”
“명을 받듭니다.”
곽우가 예의를 갖춰 대답을 하고 그곳을 나갔다. 사람들은 단목태성이 말한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으나 감히 묻지 못했다. 대신에 공손세가와의 전쟁을 막으려고 했다.
“가주님!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유라도 알려 주십시오.”
“가주님.”
“그만! 총회는 삼 일 후로 미룬다. 그때쯤이면 몽오가 공손미부를 잡아 올 것이다.”
할 말을 끝낸 단목태성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 * *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단목태성은 당이주와 백모연의 도움을 받아 침대에 몸을 눕혔다. 문밖에는 어찌 된 영문인지 알기 위해서 따라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치료가 된 겁니까?”
당이주가 당자기를 향해 물었다. 그녀는 당자기가 단목태성을 치료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자기는 대답 대신 조윤을 봤다.
“아직 완치된 것은 아니나 병의 근원은 치료되었습니다. 이후 몸조리를 잘 하면 예전처럼 건강해지실 겁니다.”
조윤이 나서서 대답하자 당이주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당자기에게 물었는데 왜 조윤이 대답을 한단 말인가?
하나 그 의문은 곧 풀렸다.
“가주를 치료한 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옆에서 도왔을 뿐, 실제로 치료를 한 것은 이 아이다.”
당이주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조윤을 쳐다봤다. 당자기는 물론이고 신의문에서 온 의원조차도 치료하지 못했었다. 한데 이제 열 살인 아이가 어떻게 치료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네가 치료한 것이냐?”
백모연이 묻자 조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은 전부 조윤이 계획했다. 총회가 끝나면 결과가 어찌 되었든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으나 답을 찾지 못했었다.
그러다 당자기가 지나가는 말로 단목태성이 건재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하자 치료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조윤은 당자기에게 그 생각을 말하고 도와줄 것을 부탁했다. 고민하던 당자기는 결정을 내렸고, 그 이후부터는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일이 진행되었다.
당자기가 은밀히 당이주를 만나 단목태성을 치료할 뜻을 비치면서 실패할 경우에도 대비하라고 일렀다. 총회를 진행하는 내내 당이주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던 이유가 그래서였다.
당자기가 그렇게 당이주를 설득하는 동안 조윤은 당예상과 함께 수술 도구를 준비하러 다녔다. 그리고 깊은 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수술이 시작되었다.
끌과 망치, 톱을 이용해서 머리에 구멍을 내고, 혈종을 제거하는 조윤을 옆에서 도우면서 당자기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당자기는 침과 약으로만 어혈을 제거하려고 했지, 이렇게 직접 손을 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누군들 그랬을까?
이 시대의 의원들에게는 머리에 구멍을 낸다는 발상부터가 무리였다.
조윤은 처음에는 조금 어려워했으나 일단 머리에 구멍이 나자 그 뒤부터는 능숙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걸 내내 지켜보던 당자기는 연신 감탄했다. 당예상에게 부탁했던 도구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그제야 명확히 알 수가 있었다.
수술은 성공이었다. 사실 조윤은 어시스턴트로 몇 번 참여하기는 했으나 실제로 이런 수술을 하기는 처음이었다. 더구나 상황이 너무나 열악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수술을 해야만 했고, 이에 심적 부담이 적지 않았었다.
다행인 것은 당자기가 옆에 있었다는 것이다. 당자기는 기를 환자의 몸에 흘려보내 병세를 파악할 수가 있었다. 즉, 기진(氣診)이 가능했다. 덕분에 혈종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있어 훨씬 수월했다.
또한 마취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당자기는 독술에도 어느 정도 조예가 있어서 몇 종류나 되는 마취제를 만들 수가 있었고, 놀랍게도 혈도를 짚거나 침을 놓는 것으로도 가능했다. 그러니 만약 당자기가 없었더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