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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16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16화

제7장 총회 (1)

 

 

아침 식사가 끝나자 조윤은 어제 백모연이 보내준 옷을 펼쳤다. 총 세 벌이었는데 전부 몸에 착 감기는 비단옷이었다. 하나는 속옷 위에 덮어씌우듯이 입는 옷이었고, 또 하나는 좌우에서 여며 허리띠를 묶는 형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그 위에 입는 장포(長袍)였다.

 

이 시대에는 옷을 여러 겹 껴입는 것이 부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중요한 자리에 갈 때는 세 벌 정도는 기본으로 껴입었고, 여자들 같은 경우는 일곱 벌을 입기도 했다.

 

옷을 모두 입고 장신구인 패옥 두 개를 허리에 차자 마침 백모연이 들어왔다. 그녀는 조윤을 보고 놀란 눈으로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윤의 모습이 단목태성의 젊은 시절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헌앙하구나.”

 

“이런 옷은 처음이라 맞게 입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보자.”

 

백모연이 그리 말하면서 앞섶을 좀 더 여미고 어깨를 한 번 쓸어줬다. 마치 어여쁜 아이를 대하듯 정이 넘치는 행동이었다.

 

“건(巾)도 해야지?”

 

“네.”

 

“이리로 앉아라.”

 

조윤이 의자에 앉자 백모연이 빗으로 머리를 빗기고 건으로 올려 묶었다. 현대에서는 머리가 긴 남자들이 많지 않지만 이 시대의 사내들은 전부 장발이었다. 조윤 역시 머리가 어깨 아래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

 

“너는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된다. 하면 내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할 것이다. 절대로 겁내지 말고 의젓하게 해동해야 한다.”

 

“네.”

 

“다 됐다. 잘 어울리는구나.”

 

“고맙습니다, 어머니.”

 

백모연은 웃으면서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조윤은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가다가 앞에서 걷고 있는 백모연의 손을 잡았다.

 

순간 백모연이 흠칫하더니 조윤을 봤다. 조윤은 웃고 있었다. 백모연은 자신이 약간 긴장했음을 깨닫고는 작게 심호흡했다.

 

“가자꾸나.”

 

총회가 열리는 대전으로 가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와 닿았다. 백모연은 적지 않게 긴장되었으나 잡고 있는 손을 통해 전해지는 조윤의 온기 덕분에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있었다.

 

그렇게 대전에 도착하자 그 안에 있던 이십여 명이 일제히 입을 다물고 백모연과 조윤을 쳐다봤다.

 

백모연이 가모였으나 여자의 몸이라 가문의 총회에는 참여할 권한이 없었다. 한데 모습을 보이니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기는 한편, 조윤을 보고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백모연은 한쪽에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뒤따르던 조윤은 앉을 자리가 없어서 어정쩡하니 서 있어야 했다.

 

“둘째 가모께서 이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체구가 좋은 중년 사내가 곱지 않은 눈으로 백모연과 조윤을 보며 말했다. 성격이 깐깐하기로 유명한 그는 세가의 대소사를 관리하는 총관 단목맹찬이었다.

 

“이 아이를 모두에게 소개하고자 왔습니다.”

 

“여기는 가문의 총회가 열리는 자리입니다. 그것을 모르시지는 않을 거라 봅니다. 그 아이가 누구인지는 모르나 나중에 따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가 조윤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리 말한 것은 그가 당이주의 아들인 단목무호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모연은 그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고 느긋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이 아이에 대해서 듣고 나서 결정하시지요. 이 아이는 올해 열 살이고, 이름은 단목조윤입니다. 상공과 남궁여영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입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에서 낮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당이주에게 향했다. 그녀 역시 총회에 참여할 권한이 없었으나 단목태성이 쓰러지는 바람에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강하게 반발할 것 같던 당이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침묵을 지켰다. 한 마디쯤 할 만도 하련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보다 못한 단목종학이 나섰다. 그 역시 당이주의 아들인 단목무호를 지지하고 있었다.

 

“험!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아이가 가주님을 닮기는 했으나 아들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더구나 남궁여영은 십 년 전에 회임을 한 적이 없습니다.”

 

“당시에 남궁여영은 드러나지 않게 위협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회임을 하게 된 것을 알고 아이가 잘못될까 두려워 모습을 감춘 것입니다.”

 

“그것참 이상한 일이군요. 다들 가주님과 남궁여영의 관계를 알 겁니다. 가주님은 정말 열과 성을 다해서 남궁여영을 대했습니다. 하지만 남궁여영은 그런 가주님의 마음을 저버리고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이 사라졌지 않습니까? 그 때문에 가주님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이 때문이라니요? 혹여 둘째 가모님의 말대로 누군가가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면 가주님과 상의했었어야 옮습니다.”

 

“종학의 말이 옳소. 둘째 가모님이 알고 있는 사실만으로는 그 아이가 가주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소이다.”

 

단목지관이 거들고 나서자 다시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터라 백모연은 침착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남궁여영과 절친한 사이였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을 겁니다. 여영이 갑자기 사라진 이후 계속 행방을 수소문했었습니다. 그러다 우연찮게 여영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영은 상공을 만나기 전까지 순백지신(純白之身)이었습니다.”

 

“그것도 알 수 없는 일 아니오? 다른 사내와 정을 통했을지 어찌 아오?”

 

단목지관이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다. 백모연은 그가 한 말에 크게 화가 났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생각해보시오. 여자가 갑자기 사라졌을 때는 다른 남자가 생겼을 경우가 대부분 아니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성이 있지 않소?”

 

백모연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나 곧 화를 누르며 침착함을 되찾았다. 흥분해서 말실수가 나면 안 된다. 그게 저들이 원하는 바였다.

 

“나는 그대가 왜 저 아이를 데리고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소. 십 년이나 더 지난 이야기를 들춰내는 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소. 혹여 저 아이를 단목세가의 후계자로 내세울 참이오?”

 

백모연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단목지관이 저리 직접적으로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제야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다수가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들 모두가 당이주에게 넘어간 건가?’

 

백모연은 시종일관 입을 다물고 있는 당이주를 봤다. 그녀는 살짝 미간을 좁히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잠시 그녀를 노려보던 백모연은 이를 악물었다. 백모연에게는 아직 준비해둔 수가 남아 있었다.

 

“밖에 와 있으면 들어오너라!”

 

백모연이 소리치자 곧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며 공소가 이두와 함께 들어왔다. 그걸 보고 조윤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떠올랐다.

 

“아저씨!”

 

* * *

 

공소와 이두는 조윤을 보고도 모른 척했다. 지금은 해후를 나눌 때가 아니었다.

 

“공소는 지난 오 년간 여영을 찾느라 고생했습니다. 그러다 하늘이 무심치 않아 행적을 찾아냈으나 이미 여영은 죽고 없었습니다. 대신에 여영의 가복이었던 이두가 조윤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니 저 두 사람에게 사실을 확인해 보면 될 것입니다.”

 

“그 역시도 증거가 되지는 않소이다. 저 두 사람이 서로 입을 맞췄을지 어찌 아오? 남궁여영이 이 자리에 있다 해도 우리는 저 아이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오. 십 년 만에 나타나서 아무 근거 없이 가주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소? 아닌 말로 남의 자식을 데려왔을지 어찌 아느냔 말이오?”

 

백모연은 이를 악물었다. 저들이 이리 나올 줄 예상했으나 이건 너무 심했다. 아예 말을 들어보지도 않으려는 태도였다.

 

“당신들은!”

 

이두가 화를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때도 그랬었소. 당신네 가주라는 사람은 순진한 아가씨를 농락하고 책임을 지지도 못했소. 가신이라는 자들은 가주가 인정했음에도 아가씨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했었소. 아가씨가 가문을 등지면서까지 마음을 줬건만 당신네들이 한 일은 그거였소. 아가씨가 회임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떠났는지 당신들은 모를 거요. 당신들과 가주가 반목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아가씨는 스스로를 희생하셨소. 그랬건만 당신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소. 그 더러운 입으로 아가씨를 모욕하지 마시오. 당신들은 그럴 자격이 없소. 아니면 이곳이 아닌 남궁세가에 가서 어디 그 잘난 입을 놀려 보시오.”

 

“천민 주제에 감히 어디에서 그따위 말을 하는가?”

 

“내가 비록 천민이라지만 옳고 그름은 알고 있소! 도련님을 인정하기 싫다면 그냥 놔주시오. 내가 남궁세가로 모시겠소. 그곳에 가면 이런 대접은 받지 않을 거요.”

 

“닥쳐라!”

 

쾅!

 

단목지관이 크게 화를 내며 탁자를 내려쳤다. 그러면 보통은 탁자가 부서지기 마련이건만 그렇지 않고 선명한 손도장이 찍혔다. 그걸 보고 몇몇 사람들이 크게 감탄했다.

 

단목지관의 기세에 잠시 주춤했던 이두는 이를 악물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할 말은 다 하고 싶었다. 자신은 예전의 겁쟁이가 아니었다.

 

“죽이려면 죽이시오! 이미 내놓은 목숨, 당신들 따위는 두렵지 않소! 흥! 당신네 가주가 그리된 것도 천벌을 받은 것이오. 순진한 아가씨를 그리 대하니 천벌이 내린 것이오.”

 

“감히!”

 

단목지관이 손에 잡히는 찻잔을 이두에게 던졌다. 거기에 실린 힘이 대단해서 맞으면 즉사였다.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내면서 날아가던 찻잔은 이두의 바로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쾅!

 

“헉!”

 

이두가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고, 모두의 시선이 백모연에게로 향했다. 단목지관이 던진 찻잔을 그녀 역시 찻잔을 던져 막아냈던 것이다.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백모연이 노기가 가득한 음성으로 소리치자 장내에 쩌렁쩌렁하니 울렸다. 그 같은 내공에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침음을 냈다.

 

단목지관의 무공이 뛰어나다지만 백모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현재 단목세가의 최고수는 누가 뭐라 해도 백모연이었다.

 

“그런 논리라면 무호와 순명도 상공의 자식이라 어찌 믿는단 말입니까?”

 

“그 무슨 망발이오!”

 

“내가 틀린 말 했습니까?”

 

“아무리 가모라고 해도 그런 말은 용납할 수가 없소이다!”

 

분위기가 사나워지면서 큰 목소리가 오고 갔다. 그 와중에 찻잔이 깨지는 소리가 울리자 모두가 입을 닫고 시선을 던졌다.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조윤이 침착하니 모두를 향해 포권하고는 앞으로 나섰다. 방금 찻잔을 깬 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그가 한 짓이었다.

 

“저는 단목조윤이라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아버님의 친자(親子)가 아닌 것을 의심하니 확인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확인이라니? 그런 방법이 있다면 이리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있습니다.”

 

조윤이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며 당자기를 봤다. 그러자 당자기가 작게 헛기침을 하면서 모두의 앞으로 나왔다.

 

“험! 본인은 당자기올시다. 친자 확인은 피를 섞음으로 알 수가 있소. 가주의 피와 저 아이의 피가 섞이지 않으면 친자가 아니오. 타인의 피는 서로 섞이지 않소이다. 그렇지 않고 피가 섞인다면 친자가 확실하오.”

 

“그 방법을 어떻게 믿소?”

 

“실험해 보면 될 것 아니오? 우선 가주와 다른 사람의 피를 섞어 보고, 무호나 순명의 피를 섞어 본 후에 경과를 보고 저 아이의 피를 섞어 보면 되오. 이 방법은 궁중에서도 심심치 않게 사용되고 있소. 하니, 믿어도 좋을 거요.”

 

“음…….”

 

당자기가 그리 말하니 더 이상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거기에는 당자기가 당문 사람이라는 것도 단단히 한몫했다. 당문 사람이 당이주에게 해가 될 일을 하지는 않을 거라 여긴 것이다.

 

“미뤄 둘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 당장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당자기가 당이주를 보며 말했다. 현재 총회의 모든 권한은 그녀에게 있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가서 무호와 순명을 불러오너라.”

 

잠시 후 무호와 순명은 물론 셋째 가모인 공손미부까지 왔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얼굴이 약간 창백했다.

 

“친자 확인을 한다고요?”

 

“그렇습니다.”

 

“두 사람 다 할 필요는 없다고 들었어요. 순명은 아직 어리니 무호만 하세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피가 섞이는 걸로 친자 확인을 할 수 있는지만 알면 되니 굳이 두 사람이나 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 굵고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두가 헛바람을 들이켜며 눈을 크게 떴다.

 

“그 아이도 하라.”

 

“헉! 가주님!”

 

“가주님!”

 

양쪽에서 부축을 받으며 대전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단목태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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