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14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4화
제6장 결심 (1)
“인사해라, 이화다.”
조윤은 백모연과 함께 들어온 여인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하는 그녀는 뚱뚱하다 못해 살이 옷을 찢고 삐져나올 것만 같았다. 얼굴도 살이 쪄서 그렇잖아도 쫙 찢어진 눈이 아예 보이지가 않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단목조윤이라고 합니다.”
조윤이 정중하게 양손을 모아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이화의 두툼한 손이 내려와 어깨를 툭툭 쳤다. 반가움의 표시였으나 조윤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 손에 귀싸대기라도 맞는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였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외모가 워낙에 위압적이라 겁을 먹은 것이다.
“왜 그러느냐?”
“네? 아닙니다, 아무것도.”
“당분간 이화가 너를 호위할 것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대해서는 아니 된다. 이화는 나와 동문이니라.”
백모연은 아미파의 속가제자(俗家弟子)였다. 아미파는 사천의 아미산에 위치해 있는 사찰이었으나 무림문파로서 이름이 높았다. 무공이 뛰어난 여승들이 많아 제자들도 주로 여인들이었다. 그리고 속가제자란 사제(師弟)의 연을 맺었으나 승적(僧籍)에는 이름을 올리지 않은 사람들을 뜻한다. 다시 말해 백모연과 이화는 아미파의 제자지만 비구니는 아니었다.
“새겨듣겠습니다.”
“그래. 하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라.”
백모연이 방을 나가자 조윤은 어색하니 머뭇머뭇하다가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러나 이화의 시선 때문에 몇 자 보지 못하고 내려놓아야 했다.
“왜 그렇게 보시는 겁니까?”
“아무것도.”
이화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는지 몰라 조윤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다시 책을 봤다. 그러자 다시 이화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에 힐끔 그녀를 보니 안 보는 척 재빨리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어머니와 동문이시라면 아미파의 여협이시겠군요.”
“여협은 아닌데.”
“제가 알기로 그런 명문 정파에서는 무공이 일정 수준 이상 되지 않으면 하산을 시켜주지 않는다던데, 정말입니까?”
“응.”
“여인의 몸으로 그러한 경지까지 무공을 익힌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군요.”
조윤의 칭찬에 이화의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그러자 아까처럼 고개를 휙 돌렸다. 그제야 조윤은 이화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 그런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 외로 부끄러움을 굉장히 잘 타는 것 같았다. 더구나 가만히 살펴보니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많이 잡아 봐야 열여덟 살 정도?
조윤보다 많은 나이지만 정수현보다는 훨씬 어렸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아까 겁을 먹었던 자신이 왠지 바보같이 느껴졌다.
“부끄러우나 저도 요즘 무공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다만 내공심법이 쉽지가 않군요. 어머니께서는 단전의 기운을 느끼는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하시는데, 한 달이 다 되도록 감을 못 잡고 있습니다.”
그저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한 말이었다. 한데 이화가 다가와서 덥석 조윤의 완맥을 잡았다. 이유를 몰라 조윤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이화가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단전에 집중해.”
“네?”
“몸 안의 기운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보는 거야.”
“느끼지 않고 본다?”
그 말을 음미하며 조윤은 눈을 감고 단전을 의식했다. 아니, 보려고 했다. 그 순간 이화의 기운이 완맥을 통해 들어와 단전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단전에서 후끈하니 열기가 느껴지며 불덩어리가 보였다.
‘아! 이것이로구나!’
조윤은 환희에 들떠 계속 집중하며 단전의 기운을 봤다. 사실 그 같은 방법은 자신의 내공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타인에게는 해주지 않는다.
이화 역시 방금 조윤에게 기운을 흘려보내 단전에 머물게 하는 바람에 삼 년 정도의 공력 소모가 있었다. 그걸 다시 회복하려면 적어도 일 년은 꾸준히 내공 수련을 해야 했다. 하니 조윤에게 큰 은혜를 베푼 것이다.
이화가 초면에 그렇게까지 한 것은 사실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어린아이를 좋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녀를 두려워하거나 놀리며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데 조윤은 처음에는 잠깐 두려워하는 것 같았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친근하게 굴었다. 그게 마음에 들어 지금과 같은 호의를 베푼 것이다.
조윤은 나중에 백모연에게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이에 몇 번이나 고맙다고 하자 이화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 * *
“오셨군요.”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곽우가 백모연을 향해 예를 갖췄다. 그러자 백모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
“안에 누가 있는가?”
“없습니다.”
“하면 잠시만 보고 나오겠네.”
“들어가십시오. 하지만 이 소저는 안 됩니다.”
곽우가 이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에 백모연은 이화에게 기다리라 하고 조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단목태성은 침대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백모연의 눈에 애잔한 감정이 떠올랐다. 미운 사람이었으나 미워할 수가 없어 힘들었다. 사랑하는 마음과 증오가 함께 있어 지금까지 한시도 편한 적이 없었다. 한데 이리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으니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제가 잠시 살펴도 되겠습니까?”
조윤의 말에 백모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당자기에게 의술을 배우고 있어 상세를 보고 싶어 하는 거라 생각했다.
조윤은 자신이 아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진찰했다. 그러나 알아낼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단목태성은 보기에 그저 잠을 자는 것 같았다.
만약 미리 혈종이라는 걸 듣지 않았다면 그러한 사실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이에 조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흑묘를 살폈을 때도 이랬었다. 그간 나름대로 의학에 매진해 왔었고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단지 의료 장비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병세조차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자신이 뭘 공부한 건지 비참하다 못해 자괴감마저 들었다.
“왜 그러느냐?”
“아닙니다. 제 한계가 느껴져 참담해서 그렇습니다.”
“너는 아직 어리다. 앞으로 노력 여하에 따라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게다.”
“네.”
백모연이 위로했으나 그다지 와 닿지가 않았다. 힘없이 대답한 조윤은 단목태성의 치료 방법을 생각해 봤다. 역시, 의료 장비 없이는 힘들었다.
‘예상이 부탁한 것을 잘 만들어 올지 모르겠군.’
당예상이 당문으로 돌아가기 전에 머리에 꽂아두었던 기다란 비녀를 보여준 적이 있다. 한데 그게 비녀가 아니라 암기였다. 비녀의 끝부분을 돌리면 꽃이 피듯이 앞부분이 활짝 열리면서 그 안에 있는 얇은 침이 쏘아져 나간다.
조윤은 암기의 효용보다 그 정교함에 놀랐다. 그 정도의 기술력이라면 의료 기구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시진에 걸쳐 설명을 하고 그림을 그리며 부탁했었다.
“나가자꾸나.”
“네.”
방을 나가자 곽우와 이화의 분위기가 묘했다. 그걸 이상하게 여긴 조윤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으로 가서 글공부하고 있어라.”
“네, 어머니.”
백모연은 최근 굉장히 바빴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함께 있었으나 요즘은 아침에 무공을 가르쳐 줄 때를 제외하고는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가문의 총회가 다가오니 준비할 게 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온 조윤은 이화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곽 무사님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어? 아니. 아무것도.”
이화가 크게 당황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저건 아무 일도 없는 표정이 아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다. 그게 뭘까 잠시 생각하니 짚이는 것이 있었다.
“요즘 곽 무사님의 평판이 좋지 않아요. 아버님을 지키고 있는 것이 출세에 눈이 멀어서 그런다고들 해요.”
“아니야! 그분이 그럴 리가 없어!”
생각대로 이화의 반응은 격렬했다. 설마하면서도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이화 누님.”
“응?”
“곽 무사님을 좋아하죠?”
“뭐, 뭐?”
이화의 얼굴이 다시 확 달아올랐다. 들키지 말아야 할 걸 들킨 것처럼 그녀는 안절부절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조윤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화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뚱뚱한 체구 때문에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이화가 다가가려고 해도 상대가 질색하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남자들은 그게 더했다. 하니, 곽우가 이화를 어떻게 볼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한마디로 두 사람은 이뤄지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저리 좋아하는데 마음을 접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응원할게요.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응.”
그동안 홀로 고민해 왔던 이화는 조윤의 말이 기꺼웠다.
* * *
외부로 나가 있던 단목세가의 중요 인사들이 속속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삼 개월에 한 번씩 있는 가문의 총회 때문이었다.
가주인 단목태성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저번에는 총회를 하지 못했었다. 그 때문에 근 반년 만에 하는 거라 여느 때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스승님!”
생각지도 않게 당자기와 당예상이 찾아오자 조윤은 깜짝 놀라며 그들을 반겼다.
“하하. 잘 지냈느냐?”
“네. 한데 어인 일이십니까? 오시기로 한 날이 아직 한참이나 남았잖습니까?”
“그랬지. 하지만 너를 만나고 싶어서 날짜를 좀 앞당겼다. 이번에는 서너 달 정도 머물 터이니 네 공부에 도움이 많이 될 게다.”
당자기는 백모연 때문에 마음대로 조윤을 가르칠 수가 없자 애가 탔으나 그렇다고 마냥 단목세가에 머물 수도 없었다. 이에 일단 당문으로 돌아가서 급한 일들을 처리한 후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렇군요. 정말 잘되었습니다. 그때 주신 책은 이미 정독을 다 끝냈습니다. 해서 몇 번이나 다시 보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래, 궁금한 것은 없더냐?”
“없습니다.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허, 그랬더냐?”
당자기는 놀라움을 감추며 허탈하니 말했다. 그가 단목세가를 떠나면서 줬던 책은 의술의 중급 이론서였다. 가고 나서 공부를 게을리할까 봐 일부러 조금 어려운 책을 주고 갔건만, 보아하니 전부 깨우친 것 같았다.
“침술은 어떠냐? 시킨 대로 꾸준히 연습했느냐?”
“네. 꾸준히 하기는 했는데 잘 안 됩니다.”
“하하.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더냐? 얼마나 늘었는지 한번 보자꾸나.”
“네.”
“한데 이 소저는 누구냐?”
당자기는 아까부터 멀뚱멀뚱 서 있는 이화를 보며 조윤에게 물었다.
“아, 너무 반가워서 실례를 했군요. 여기는 아미파에서 온 이화 누님입니다. 당분간 제 호위를 해주시기로 했습니다.”
“호오, 반갑네. 나는 당문에서 온 당자기라고 하네.”
“이화입니다.”
당자기는 이화를 살펴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는 어려 보이나 풍기는 기도가 남달랐다. 저 정도면 자신과 맞수이거나 그 이상이었다.
‘정말 조윤을 소가주로 만들 생각인가?’
백모연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미파에 손을 내밀지 않았었다. 한데 조윤을 위해 이화를 불렀다. 이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계속 외부 사람들을 불러서 세력을 일군다면 단목세가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었다. 더구나 그렇게 해서 조윤이 소가주가 된다면 의술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았다. 그건 당자기가 바라는 상황이 아니었다.
방으로 간 당자기는 조윤의 침술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확인했다. 침은 놓을 자리를 아는 것만큼이나 꽂는 기술도 중요했다. 침을 놓을 때 손이 떨리거나 깊이가 잘못되면 그만큼 효과가 줄어든다.
해서 당자기는 우선 무에 침을 놓는 연습을 시켰었다. 그게 익숙해지면 물 위에 무를 띄워 놓고 하고, 그마저도 익숙해지면 사람에게 침을 놓을 정도가 된다.
잘 안 되다던 조윤은 생각 외로 잘했다. 매일 꾸준히 연습을 한 것이 분명했다.
“그 정도면 되었다. 앞으로는 물에 무를 띄워 놓고 침을 놓는 연습을 해라. 네가 원하는 깊이까지 침을 놓을 수 있어야 하고, 무가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그 외에도 당자기는 진맥을 잡는 법부터 시작해서 기초적인 약학에 대해서 설명해 줬다. 조윤은 그가 말하는 것을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집중하며 새겨들었다.